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88
388화
몸을 돌린 진무를 향해 암습자들의 공격이 쉬지 않고 날아왔지만, 여백기가 뿜어낸 한기에 의해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무력화되었다.
그사이 서늘한 기세와 함께 앞으로 나선 진무는 청화 가문의 정문을 바라보았다.
살수들의 암습이 전부가 아니었다.
황신의 부상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기운을 끌어 올린 덕분에 선명하게 느껴지는 문 바깥의 기운.
정문과 담벼락의 너머, 아니 청화 가문의 밖에 엄청난 수의 살기와 마기가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아주 죄 몰려온 모양이지? 청화의 가문과 함께 날 묻어 버리려고?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영역을 침범당해 턱밑까지 위협을 느꼈을 테니.
날 정상에 보내지 않으려, 어떻게든 지금의 자리에서 좌초시켜 더 이상의 항해를 하지 못하게끔 암초가 되려는 것이겠지.
남은 세 개의 가문이 전부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재수가 없으면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던 장로부와 원로원의 거마(巨魔)들까지 저 담벼락 너머에 진을 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징그러운 마교 놈들.
하긴 그 오랜 역사를 함께했다고 한들 이놈들에게 동료와 정이 있을 리가 있나. 부모 형제의 정도 모르는 놈들인데.
여백기 같은 고고한 인물이 이런 놈들과 부대끼며 잘도 그 오랜 세월을 버텨 낸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나저나 많아도 너무 많다.
진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수가 아무리 많아도 진무 본인에게는 그리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의 일초를 받아 낼 수 있는 놈이 몇 안 되기도 했고, 여차하면 몸을 빼서 튀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남은 자들이었다. 청화의 가문이 돕고 있다고는 하지만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인데…….
여백기를 등지고 정문을 노려보던 진무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어렸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산 아래에 기다리는 동천의 무인들을 죄다 데려오는 건데……. 괜히 고집을 부렸나?
진무가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에도 곳곳에서 끊임없이 비명이 들려왔다.
적뿐 아니라 아군도 이래저래 부상을 입고 쓰러지는 것이다.
“좌측은 내가 맡겠다. 우측을 지원해라!”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던 진무의 귓가에 날카로운 고함이 들렸다.
펑! 퍼퍼펑!
“크에엑!”
이어 강맹한 장력이 휘몰아치자 몰려든 암습자 서넛이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능 호위님! 이쪽은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다른 곳을 도와주십시오!”
“알겠소!”
간결한 합의와 동시에 쾌속하게 날아간 푸른빛 선기가 싸늘하게 적들을 갈랐다.
“이놈들 감히 내 집 안에서! 뭣들 하느냐! 흑살과 효독 가문의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어라!”
쩌저적!
여백기의 고함에 따라 청화 가문의 무인들이 빙공을 뿌리며 사방을 얼렸다.
치열하기 그지없는 격전.
상처를 입으면서도 전의를 불태우며 싸우는 그들의 모습이 진무의 눈동자에 아로새겨졌다.
담벼락을 가득 채우며 넘어오는 적들이 얼마인지 추측조차 되지 않는데도 겁을 집어먹고 몸을 움츠리는 자는 보이지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런 개쌍놈의 새끼들, 나를 상대로 은신술을 펼쳐?”
부상을 입은 황신마저도 일어나 맹렬하게 송곳을 휘두르는 모습에 진무는 문득 피식 웃었다.
나도 참,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구만.
자신의 길을 따라온 이들은 하나같이 허투루 산 적 없는 이들이었다.
새끼 새처럼 품 안에서 보듬어져 살기보다는 목숨을 내놓고 철혈의 전장을 넘어온 이들이었다.
생사의 경계에서 단 한 번도 물러남이 없었고, 내일의 죽음 따위에 연연하지 않은 채 오직 오늘의 위협에 목숨을 걸어 온 무인이었다.
괜한 고민에, 괜한 걱정을 했다.
도움은 무의미하다.
그들은 누가 돕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충분히 해결할 정도로 힘이 넘친다.
또한, 이미 제 거처를 유린당한 여백기가 가문의 무인을 동원해 적들을 향해 얼어붙은 철퇴를 내리고 있었다.
자신이 어째서 모두를 살려야 한단 말인가?
괜한 기우였다.
죽고 죽이는 것이 무인의 삶.
그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한 사람이 전부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니, 그들이 자신을 믿고 있듯이 자신도 그들을 믿어 줘야 한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닌가?
이만한 수가 모여들었다면 적들은 지금 전력을 다해 공격하는 중일 것이다.
그들로서도 이 전투가 마지막 결전임을 알고 있겠지.
자신의 발걸음을 막을 마지막 보루라 생각하고 발악하는 것이리라.
저들의 포위망을 뚫고 나면 싸움은 끝난다.
그래, 뒤의 싸움은 저들에게 맡기자.
그리고 자신은 자신이 할 일을 하면 된다.
지금의 싸움을 끝내는 가장 빠른 방법은 놈들의 포위망을 뚫고 정상에 올라가 북리도천과 결착을 보는 것.
그들이 자신을 막는 방패가 된다면 나는 능히 하늘을 꿰뚫는 창이 되어 줄 것이다.
이윽고 진무의 얼굴에 가득했던 모든 고민이 사라졌다.
황신의 부상으로 인해 분노로 이글거리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고, 싸늘한 투기가 폭발하듯이 끓어올랐다.
그리고 휘몰아치는 검은 사기를 두른 채 걸음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내내 멈추어 있던 진무의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귀가 열려 사방의 소리가 시끄럽게 찾아들고, 시야가 열려 전방의 모든 것이 눈동자에 그려졌다.
파앗!
진무의 걸음이 여백기의 한기를 넘어서자 인근에 숨었던 은신자들이 공격을 감행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예기를 머금은 비수가 진무의 목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그저 고개를 젖혔다.
츄아악!
바람을 가르며 날아든 비수가 귀밑을 스치며 지나갔다.
흑살 가문의 살수.
빛의 반대편에 숨고, 치열한 전투 속에 날카로운 이빨을 감춘 자들.
니들이지? 내 새끼의 몸에 암기를 박아 넣은 게.
콰득.
보이지 않음은 관계없었다.
진무의 뻗어진 손에 무언가가 잡히고…….
후욱! 콰드득!
움켜쥠과 동시에 바닥에 처박는 손을 따라 형체를 드러낸 암습자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짓누른 손힘에 퍼덕거리던 암습자는 머리가 터져 이내 잠잠해졌다.
그리고 진무의 차가운 눈동자가 흑요석처럼 빛난다.
묵룡혼원공, 묵룡안.
묵룡의 거친 안광은 상대를 주눅 들게도 했지만, 진무에게서는 인간의 감정을 앗아 갔다.
자비는 사라지고, 잔인함만이 남는다. 사람으로서 느껴야 할 수많은 감정을 배제하니 적을 돌볼 이유가 없었다.
“후우…….”
가볍게 뱉는 숨과 함께 사기가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묵룡혼원공, 투사체.
파앗!
짓밟은 발이 땅을 파헤치고 진무의 신형이 청화 가문의 정문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슈아아악!
어둠에 숨었던 적들이 여섯 방위를 차지하며 진무의 전면을 노리고 공격해 왔다.
공격마다 각기 다른 기운이 서려 있으니 암습자는 모두 여섯.
“귀찮은 것들…….”
피하지 않았다. 고작 암습자의 공격 따위.
따다다당!
사기를 휘말아 펼친 보갑과도 같은 기운, 용린을 뚫지 못한 비수들이 튕겨 나가고 일휘를 허공에 던진 진무의 양손이 암습자들의 기운을 찾아 뻗어 나갔다.
퍼퍽! 퍽!
잡음과 동시에 움켜쥐자 허공에서 머리가 터트려진 시신 두 구가 쓰러지며 모습을 드러냈다.
시뻘건 선혈이 낭자하고, 놀란 암습자 넷이 일제히 물러나 도망친다.
움직임을 드러내는 것을 보니 적잖이 놀란 눈치다.
그런데 어딜 가?
누가 보내 준대?
슈우우웅!
진무의 미소와 함께 일휘가 새하얀 나신을 드러내며 날아오르고, 이내 섬광이 되어 쏘아졌다.
“이, 이기…….”
놀란 암습자의 외침은 끝을 맺지 못했다.
스걱, 스거거걱!
이제는 눈이 닿는 어느 정도의 거리까지 운용할 수 있게 된 이기어검, 목어검의 경지.
보이는 모든 곳에 일휘가 살육의 춤을 춘다.
단번에 몸과 분리된 네 개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솟구친 핏물이 비가 되어 쏟아졌다.
그리고 그 핏속을 뚫고 진무가 일휘와 함께 달렸다.
곳곳에 포진한 암습자들이 제 주제도 모르고 공격을 해 왔지만 살아 움직이는 일휘의 춤에 진무의 근처에는 다가서지도 못하고 잘려 나갔다.
진무의 걸음이 지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신체 일부가 깔끔하게 잘려 버린 시신들과 혈우가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진무의 걸음이 정문을 앞에 두고 멈췄다.
착!
일휘의 손잡이를 힘껏 움켜쥔 진무가 멈춘 그대로 자세를 낮추며 기운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응축된 사기가 어리니 일휘가 검게 물들고.
후아악!
빠르게 당겨 내는 힘에 의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긴 꼬리를 만들며 휘어진 강사가 세상을 상하로 갈랐다.
슈아아아!
그러고도 그 힘이 남아 미치는 모든 곳까지 닿는 모든 것들을 잘라 내었다.
우두둑, 쿠쿵.
굳게 닫혔던 정문과 담벼락, 정원을 장식했던 석등이 사람의 허리 높이에서 잘려 쓰러지고, 그 너머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 무슨?”
정문 밖에서 장로부의 무인들을 이끌고 대기하던 대장로 목등여와 장로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이 만들어 낸 참상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내부의 소란스러움이 한꺼번에 들려오고, 검은 실 같은 무언가가 날아왔다.
세상이 갈리고 정문 앞에 있던 무인 수십 명이 깨끗하게 잘렸으며, 흩뿌려진 핏물이 눈밭을 붉게 녹이며 물들였다.
청화 가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보이는데 마땅히 있어야 할 흉수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진무라는 자가 만든 참상일 것이다.
이 정도의 무위를 펼칠 수 있는 것은 육제를 뛰어넘은 그만이 가능하니까.
“놈을 찾아…….”
목등여는 일그러진 얼굴로 명을 내리려다 말고 머리 위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섬뜩한 기운에 고개를 쳐들었다.
검은 물체?
아니, 검은 기운을 품은 채로 세상을 짓밟아 오는 사람이다.
묵룡혼원공, 용보 압진.
그리고 용의 일보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장로들이 위치한 자리의 중심.
“피, 피해라!”
목등여가 핏대를 세우며 다급하게 외치는 순간, 진무가 가공할 기운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앙!
거칠게 새겨진 일보가 대지를 짓밟아 터트리고, 일대를 혼란으로 집어삼켰다.
쿠우우우.
자욱한 먼지구름과 함께 충격파가 폭풍처럼 퍼져 나갔다.
휘오오오.
그리고 그 폭풍이 일으킨 혼란의 중심에서 모습을 드러낸 진무가 서늘한 눈빛으로 장로들을 주시했다.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용의 발걸음에 깔려 처참하게 짓이겨진 자들, 폭발의 범위에서 조금 벗어난 덕에 목숨을 잃지는 않았으나 상처 입고 허덕이는 자들, 수하들을 방패 삼아 겨우 목숨을 건진…….
“너, 오랜만이네?”
진무의 스산한 시선이 한 인물에게서 멈췄다.
다리 하나가 짓이겨진 채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장로, 육지마동 공손승.
“네, 네놈…….”
공손승이 어찌 진무를 알아보지 못할까?
가짜 구야자 사건이 있었던 그때, 칠동천주 이강백을 구하러 왔던 그는 똑똑히 진무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무 역시 그와 그가 남긴 말을 기억에서 끄집어내 뇌까렸다.
“다음에 만나면…… 목을 잘라 준다고 했었지?”
“…….”
진무의 음산한 미소가 공손승의 눈동자에 그려진다.
그리고 까딱거리는 손가락과 함께 벼락이 내리꽂혔다.
콰콱!
새하얀 섬광이 공손승의 머리를 잔인하게 꿰뚫었다.
허무한 죽음.
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공손승을 죽이고 다시 허공에 떠오른 핏물을 머금은 검, 일휘가 싸늘한 기세를 머금고 장로들을 향해 검극을 세웠기 때문에.
“이, 이기어검…….”
목등여가 얼굴 가득 경악을 드러내며 주춤거렸다.
검의 극의를 깨달은 이들만이 펼칠 수 있다는 그것.
지금의 무림에서 오직 검성 철지량만이 이룩해 낸 그 전설적인 경지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니들, 운이 좋았다. 황신이 다친 걸 생각하면 죄 찢어 버리고 싶은데…….”
이기어검으로 일휘를 허공에 띄워 장로들의 명줄을 노리던 진무가 갑자기 씩 웃더니 몸을 돌렸다.
자, 잠깐, 설마?
목등여의 눈이 채 완전히 커지기도 전에 진무가 천산 정상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놈이 정상으로 간다! 호각을 불어 화 문주님께 연락을 취해라! 반드시 막아야 한다!”
무지막지한 무위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목등여가 재빨리 외쳤다.
청화 가문? 진무를 따라온 무인?
그들의 목숨 따위는 아무런 필요도 없다.
포위망을 구성한 것은 오직 진무 때문이었다.
진무가 정상에 도착해 버리면 자신들의 노력은 모조리 허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움직인 사실을 북리도천이 알게 되면?
“쫓아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목등여가 피를 토하듯이 외치며 진무를 뒤쫓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