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90
390화
그러고 보니 어째 둘이지?
육제 중 셋을 쓰러뜨렸으니 이제 셋이 남았을 텐데 눈앞에 있는 것은 화불유와 양춘백 둘뿐이다.
북리가의 주인은 어디 있지?
설마 이놈들처럼 어딘가에서 모습을 숨기고 기다리고 있는 건가? 이들과 어우러지는 사이 자신의 틈을 노리기 위해서?
둘 정도는 자신이 있었지만, 지금의 상태로 셋은 무리다.
최대한 빨리 싸움을 끝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험을 안고 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진무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훑어 북리가의 주인을 찾는 동시에 놈들을 떨어뜨려 싸울 방법을 궁리했다.
지금의 시간은 진무의 편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고작 둘이서 되겠어?”
“뭐라?”
“마룡 갈성혁, 청화 여백기, 광혈 묵호현…….”
“…….”
“걔들은 별거 없던데?”
한눈에 보기에도 나이 차이가 수십 년은 족히 날 것 같았지만 진무는 마치 아랫사람 대하듯이 말하고 있었다.
와중에 허세 가득한 여유까지.
하지만 화불유와 양춘백은 그런 진무의 언행에 대해서 조금도 언짢음을 보이지 않았다.
예의보다 실력을 우선하는 마교에서, 지금 그들이 막아선 진무는 이보다 더 오만하고 버릇이 없다 해도 상관없을 만큼 강한 실력자였으니까.
“니들 둘로는 한 팔이 아니라 양팔을 다쳤다고 해도 상대가 안 돼. 그러니 가서 북리 녀석도 불러와라. 그래야 내 몸에 생채기라도 입힐 수 있을 테니까.”
“…….”
검집을 허리 뒤춤에 꽂은 진무가 비릿하게 웃으며 일휘를 늘어뜨렸다.
가가각.
눈 속을 파고들어 흙을 긁어 대는 쇠붙이의 소름 끼치는 소리가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흥, 그깟 북리 놈! 없어도 그만이다. 우리 둘만으로 충분해.”
“…….”
짜증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화불유의 외침에 양춘백이 눈짓으로 눈치를 주었다.
그것을 본 진무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이런 고마울 데가 다 있나. 북리가의 주인은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확인시켜 주다니.
그럼 지금 이곳엔 니들 둘뿐이란 말이지?
양춘백의 독기로 접근조차 못 하는 사방의 떨거지들은 접어 두고, 너희 둘만 쓰러뜨리면 된다는 말이렷다.
“니네 둘로? 아서라. 그러다 니들 피똥 싸.”
확인은 끝났고, 이제 쓸 만한 자리를 선점한다.
과장스럽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진무는 원을 그리듯이 돌아 둘의 측면으로 다가갔다.
그들과 나란히 놓이기까지 앞으로 한 발.
양춘백에 의해 화불유의 시선이 가려지는 지점.
일식이 일어나듯 찰나에 불과하겠지만 아주 잠시간 진무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게 되는 순간.
그때를 노려야 한다.
평소의 상태라면 그냥 뛰어들어서 무자비하게 패 놓겠지만, 지금 진무의 상황으로는 전략적으로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의 기본 중의 기본.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난 뒤에.
착.
목표했던 한 발을 내디딘 순간 진무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어렸다.
“네놈…… 설마?”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양춘백이 진무의 의도를 깨달은 듯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싸움을 승리로 가져가기 위한 두 번째 전략.
딴 거 없다. 선수필승.
파앙!
용천혈을 향해 온 힘을 다해 기운을 내뿜은 진무가 몸을 비트는 것과 동시에 무당의 호종보를 운용해 양춘백을 향해 뛰어들었다.
아주 잠깐, 양춘백의 몸에 겹친 터라 진무의 움직임을 놓친 화불유의 반응이 늦어졌다.
한 호흡.
그 정도면 충분하다.
순식간에 양춘백의 품 안으로 파고든 진무가 무릎을 굽히며 낮게 자세를 낮추었다가 솟구쳐 올랐다.
“이런!”
생각지도 못했던 빠른 공격에 양춘백이 허겁지겁 독기를 머금은 팔을 교차해 진무의 공격에 대비했고, 그를 도우려는 화불유가 뒤늦게 비수를 뻗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미끼.
진무가 진정으로 노린 것은 화불유였다.
솟구쳐 오를 듯 보였던 진무의 움직임이 낮아진 그대로 지면을 스치며 양춘백의 몸 주위로 휘어졌다.
“……!”
양춘백은 움직임을 놓쳤고, 진무는 이미 그를 지나쳤다.
“이, 이런!”
쐐애액!
진무의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꺾으려던 양춘백의 귓가에 위협적인 파공성이 들려왔다.
일휘였다.
이기어검을 운용하면서 화불유를 쓰러뜨리자면 내공 소모가 극심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잠시만 놀고 있어라. 금방 끝내고 너도 피똥 싸게 만들어 줄 테니까.
따아앙!
“크으윽!”
양춘백이 일휘에 잡힌 사이 진무는 화불유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진무와 일대일로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화불유는 재빨리 몸을 빼내려 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고 양춘백과 합공해야만 했다.
입술을 깨문 그가 지면을 박차고 물러나며 은신술을 펼치려는데, 순간적으로 진무의 손이 묘하게 움직였다.
장력? 준비 동작도 없이?
마땅히 있어야 할 움직임이 생략된 탓에 막지 못한 일장이 화불유의 가슴팍을 때리고 선명한 장인을 새겼다.
쩌어억!
“크억!”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물러난 화불유가 거칠게 신음을 토했다.
충격이 컸다.
진무가 사용한 것은 평범한 일장이 아닌, 무촌경을 활용한 십단금이었다.
궁의 무공을 사용한다는 것이 짜증 났지만, 지금은 전력을 다해 빠르게 싸움을 끝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뒤이어 곧장 따라붙은 진무는 칠성의 첫 방위를 밟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시간을 주지 않는다.
거리가 제법 멀어졌으니 일휘에게 나누었던 신경을 모조리 화불유에 집중해서라도 다음 일격으로 끝낼 작정이었다.
방금의 공격은 목덜미를 물어뜯은 정도였다. 완전히 무력화시키려면 목뼈를 으스러뜨려야 했다.
슈아악!
진무가 내지른 주먹이 유성처럼 날아가고, 겨우 몸을 세운 화불유가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서도 본능적으로 비수를 휘두르며 마기를 뿜었다.
콰아앙!
허공에서 충돌한 두 개의 기운이 폭발하는 순간, 진무가 뻗어 낸 주먹이 수십 개의 권영으로 분열되었다.
“……!”
뻑! 뻐버버벅!
크게 휘어 들어온 주먹이 화불유의 턱을 강타하고, 이어 나머지가 그의 몸에 격중하며 움푹 팬 흔적을 남겼다.
“크으윽.”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밀려나는 화불유에게 다가선 진무가 두 번째와 세 번째 방위를 밟으며 마구잡이로 그를 때리기 시작했다.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한 진무의 주먹에 끌려다니듯 얻어맞은 화불유가 몸을 가누지 못할 즈음…….
어느새 네 번째 방위를 밟으며 사라졌던 진무가 화불유의 등 뒤에서 나타나 온몸으로 부딪쳤다.
칠성권, 개산벽.
터어엉!
“커억!”
등줄기가 아스러지는 충격.
마교 제일의 살수라고 불렸던 화불유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는 것뿐이었다.
정신을 온전히 가누기조차 쉽지 않았다. 어디서 주먹이 날아오는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화불유의 귓가에 대지를 짓밟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꾸우우웅.
진무의 발이 거목의 뿌리처럼 박히는 순간 허리춤으로 당겨졌던 주먹이 거대한 선기를 머금고 내질러졌다.
쿠루룽!
벽력성을 내며 주먹을 떠난 강기, 선강(仙罡).
칠성권의 창룡출두(蒼龍出頭)의 기운이 화불유를 집어삼켰다.
콰아아앙!
몸에 닿자마자 마치 화포가 쏘아 낸 포탄처럼 폭발하는 기운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검붉은 피를 뿜어내며 튕겨 나간 화불유가 거목에 처박혔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를 또다시 바짝 따라붙은 진무는 비로소 마지막 방위를 밟으며 솟구쳐 올랐다.
극점에 이른 순간 몸을 비틀어 화불유 쪽으로 방향을 튼 진무의 주먹이 천천히 속도를 더하며 뻗어 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라졌다.
그리고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는 푸른 빛무리.
무당 칠성권의 마지막 초식, 백열(百裂) 유성우(流星雨)였다.
슈아아악! 콰콰쾅! 쾅! 쾅!
진무의 손에서 빠져나온 푸른 빛무리가 화불유가 쓰러져 있던 곳에 그치지 않는 낙뢰처럼 연신 틀어박혔다.
정확히 일곱 걸음을 걷는 짧은 시간 동안 폭풍처럼 치러진 격전.
이로써 화불유는 잡았고…….
“이노옴!”
쿠류류류!
체공(滯空) 중인 진무를 향해 녹빛 독강이 쏘아져 들어왔다.
참, 시기적절하기도 하지.
화불유를 짓밟는 것에 집중하느라 교감이 끊어진 일휘를, 양춘백이 떨쳐 내고 공격해 온 것이다.
하지만 두 번 당하진 않는다.
파앙!
허공을 밟고 몸을 비튼 진무가 공중제비를 돌며 독강을 피해 지면에 내려섰다.
양춘백은 일휘에 의해 적잖이 고초를 겪은 뒤인 데다 화불유까지 당해 적잖이 화가 치민 표정이었다.
“네놈, 감히 이따위 비열한 수법으로…….”
“…….”
이 새끼는 뇌가 없나…… 뭔 생각의 흐름이 죄다 자기중심적이야?
비열한 건 합공한 네놈들이지.
이건 실력이라고 하는 거다, 이 새끼야.
한 사람이 이기어검과 선도비기를 함께 운용해서 두 사람을 상대하는 게 쉬운 줄 아냐?
그나저나 이제 너 혼자 남았다.
그 말인즉슨.
“오른손, 사실은 엄청 아파. 쓰라리거든.”
“…….”
“기분도 상당히 엿 같고…… 그러니까 피똥 쌀 준비나 해.”
진무가 스산하게 웃으며 주먹을 힘껏 움켜쥐고 자세를 잡자, 그제야 자신의 상황을 깨달은 양춘백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진무의 뒤에 보이는 화불유는 손가락조차 꿈틀거리지 않는다.
주, 죽은 걸까?
“미리 알았다면 기저귀라도 가져왔을 텐데…… 아쉽네.”
“…….”
이죽거리는 저 말투마저 소름이 끼쳤다.
어…… 어쩌면 정말로 피똥을 쌀지도…….
혼자서 진무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무리 육제의 이름을 가졌다고 해도 진무의 무위는 이미 그들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심지어 바로 눈앞에 화불유가 쓰러져 있지 않은가?
도망쳐야 하는 건가?
지금이라도 독기를 거두면 여태 접근하지 못했던 수하들이 방패막이 되어 줄 것이다.
양춘백이 진무의 스산한 눈빛을 마주한 채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사이, 멀리에서 소란스러움이 밀려들었다.
수하들의 머리 위로 날 듯이 달려오는 저들은…… 원로원의 고수들?
잊고 있던 희망을 떠올린 양춘백의 눈동자에 작은 안도감이 스쳤다.
“하, 이 새끼 웃기네.”
“…….”
“너 지금 쟤들 믿고 있지?”
진무의 눈이 잔인하게 빛났다.
“내가 많이 패 봐서 아는데, 사람 피똥 싸게 하는 데 얼마 안 걸려!”
“……!”
움직였다.
아니 쏘아졌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었고, 진무가 다가오는 순간 양춘백은 본능적으로 뒤돌아 달렸다.
밑이 아니라, 천산의 정상을 향해서.
“이런 개새끼가. 육제라는 새끼가 도망을 쳐? 내 오른팔에 독기까지 남겨 놓고?!”
우직, 파아앙!
진무는 거칠게 지면을 밟고 속도를 더해 가며 양춘백의 뒤를 쫓았다.
막는 자와 뚫는 자에서 쫓기는 자와 쫓는 자로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둘이 천산의 정상을 가린 구름 속으로 파고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이런 젠장! 쫓아라! 속도를 높여라! 놈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뒤늦게 도착한 목등여가 화불유를 발견하고 멈춘 채 목놓아 외치고, 마교의 무인들이 일제히 천산을 향해 거슬러 올랐다.
* * *
“거기 서라, 이 새끼야!”
“……!”
양춘백은 정말로 사력을 다했다.
다 늙어서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란 말인가?
살면서 이렇게 쫓겨 본 것은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악마 같은 놈.
선기 때문에 독기에 제대로 중독도 되지 않는 미친 괴물 같은 놈.
머금은 것은 분명 고고한 푸른빛 선기인데 그 목소리와 표정에 담긴 것은 악귀 같은 잔인함이었다.
“크하하핫! 반드시 피똥을 싸게 해 내 오른팔의 복수를 할 것이다!”
빌어먹을 놈이 무슨 피똥에 한이 맺혔나…….
기괴한 웃음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등골이 오싹해졌다.
죽음을 두려워해 본 적은 없는데, 놈은 두렵다.
왠지 화불유보다 더욱 처참한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아 너무나 무서웠다.
제기랄, 위치가 아래쪽이었다면 좋았을 것인데. 어째서 놈의 위쪽에 있었단 말인가?
어쩔 수 없다.
서둘러 마지막 관문을 맡은 북리가의 영역에 들어가는 수밖에.
우리와 뜻을 모으지는 않았으나 내가 놈에게 해를 입는 것을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놈도 지쳤을 터이니 북리도평과 합류해서 상대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폐가 찢어질 정도로 힘을 다해 달리던 양춘백의 눈동자에 북리가의 관문이 보였다.
조금만,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희망에 부푼 그가 마지막 발걸음을 내디딘 순간.
“잡았다. 이 쥐새끼 같은 새끼.”
“……!”
어느새 그를 따라잡은 진무의 스산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쩌어억!
그리고 달려온 속도 그대로 뒤통수를 거세게 후려 차는 진무의 발.
쿠당탕, 터더덕.
양춘백은 달리던 그대로 엎어지며 볼썽사납게 땅바닥에 처박혔다.
그리고 등 위로 올라탄 진무가 그의 허리를 허벅지로 꽉 움켜쥐었다.
“자, 지금부터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안마를 선사해 주마.”
슈아아악!
진무의 눈동자가 새하얀 광망을 토하는 순간, 인정사정없는 주먹이 양춘백의 등에 폭사하듯 떨어졌다.
퍼퍼퍽, 퍽퍽, 쩍쩍, 쩌저쩍!
“꾸에-엑!”
땅바닥에 드러누운 채 맞이하는 구타의 안마가 전하는 상상도 못 할 충격.
척추를 시작으로 온몸의 뼈마디가 연체동물처럼 흐물흐물 녹는 그 고통스러운 시간.
양춘백은 자신이 상상한 처참한 미래가 이루어졌음을 직감하며 고통 속에서 정신을 잃어 갔다.
점점 더 땅속으로 처박히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