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91
391화
퍽! 팍! 턱.
“하아, 하아…… 휴우…….”
거칠게 숨을 몰아 내쉰 진무는 주먹질을 멈추고 양춘백을 지그시 바라보다 그를 움켜쥔 그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텁.
양춘백은 척추가 완전히 으스러진 듯이 축 늘어져 있었다.
“젠장, 아직도 관문이 하나가 더 남았네.”
고개를 슬쩍 돌린 진무는 마지막 관문을 바라보며 짜증스럽게 투덜댔다.
마종지로…… 더럽게 길다. 마의 종주고 뭐고 가다가 죽겠어, 아주.
나중에 북리도천을 쓰러뜨리고 마교의 주인이 되면 이딴 절차부터 없애 버릴 것이다.
도전하는 놈이 있으면 직접 내려와서 맞이하든가 할 것이지 원.
그나저나 선기를 제법 많이 허비했다.
팔도 성치 않은데 저 관문에 마지막 육제, 북리가의 주인이 버티고 있다면 큰일이었다.
더욱이 지금쯤 장로들과 원로원의 무인들이 뒤쫓고…….
“멈추어라!”
“…….”
젠장, 벌써 왔냐?
가쁘게 차오르는 숨을 차분하게 고른 진무가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무인들의 면면을 찬찬히 살폈다.
아래는 저들이, 위는 관문이 막고 있으니 오도 가도 못하게 생겼다.
천산의 정상이 멀지 않은 곳.
“놈! 효독의 주인을 놓아주지 못할까!”
“…….”
한 노인이 양춘백을 짐 보따리처럼 움켜쥔 진무를 향해 기세 좋게 호통을 쳤다.
목청도 크다. 조용히 말해도 될 걸 시끄럽게시리.
어디 보자…… 참, 많이도 몰려왔다.
정신없이 뚫고 올라올 때는 몰랐는데, 정말 많다.
마교의 자긍심이라고는 다 옛말인 모양이네. 나 하나 잡자고 떼거지로 몰려들어서 윽박지르는 꼴이라니.
“이놈!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
저 노인네, 어째 낯익은 얼굴이다. 청붕 어쩌고 하는 이름을 가졌던 거 같은데.
그뿐만 아니라 그 옆의 노인네들도 아는 얼굴들이다.
하긴 혁련무강 시절 같은 세대를 지냈던, 속칭 한가락 하던 노인네들일 테니.
문득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진무가 픽 웃자 원로원의 거마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를 노려보았다.
“이런 어린놈이 웃어?”
“…….”
그럼 우냐?
이런 힘든 때일수록 웃어야 사고도 긍정적으로 하게 되고, 위기의 순간도 헤쳐 나가는 법이다.
나이를 그리 처먹고도 아직 그걸 몰라요, 쯧쯧.
하긴 천산에 갇혀서 거들먹거리기 바빴을 니들이 어찌 인생을 알겠냐.
어쨌든 이제부터 어찌한다?
이놈들도 이놈들이지만, 빨리 독기를 완전히 몰아내야 하는데…….
오른손이 욱신거리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화불유와 양춘백을 잡는다고 다소 무리한 탓에 잔존했던 독기가 강해져 팔이 다시금 푸르스름하게 물드는 중이었다.
이러다 온몸이 퍼렇게 변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천하제일인이 되는 것은 좋지만 외팔이가 되는 것은 싫은데…….
양춘백을 넘겨주고 잠시 휴전을 하자며 달래 볼까?
잠시 고민하던 진무의 귓가에 누군가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중원 놈이 마교를 이토록 어지럽혀 놓다니.”
“…….”
청붕 어쩌고 하는 노인의 뒤편에 선 중년 무인이었다.
평소라면 저딴 혼잣말 백날 지껄여 봐야 너그럽게 웃고 넘겼을 텐데, 몸이 고되니 도무지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나서서 말할 자신도 없으면서 쪽수만 믿고 나대는 것들이…….
불치에 가까운 진무의 고약한 성미가 상황도 잊고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저런 것들과 타협을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 고깝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었다. 진무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버럭 외쳤다.
“야!”
진무의 모난 시선이 자신을 향해 중얼거린 무인을 향했다.
“사람 머리에 피 마르면 살겠냐? 대가리를 터트려서 햇볕에 한번 말려 봐 줘?”
“뭣이?”
“별 거지 같은 게 어디서 어른들 말씀 중에 나대고 지랄이야?”
“뭐, 뭐라고?”
원로원의 무인들이 있기에 차마 앞으로 나서지 못한 중년 무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너.”
“…….”
진무가 일휘를 들어 청붕 뭐시기 노인네를 지목했다.
“뭘 자꾸 꽥꽥거리고 소리를 질러?”
“…….”
“떼거지로 몰려와서 위협하면 누가 쫄기라도 한대?”
진무는 양춘백을 뒤쪽에 아무렇게나 던진 후, 그 앞을 막아섰다.
뒈지면 뒈졌지 저딴 놈들에게 절대로 굽히고 싶지 않았다.
북리도천과의 싸움이 남아 있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어디 자신 있으면 직접 와서 데려가 봐. 마교의 원로씩이나 되는 놈이 나불나불 주둥이나 털지 말고.”
“…….”
청붕 뭐시기, 아니 현 원로원주 청붕마조 이학성의 주름진 눈매가 매섭게 가늘어졌다.
권좌에 도전하는 사내, 진무.
육가의 방어막에 천산의 무인 전부가 뛰어들어 막았음에도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북리가의 관문까지 온 데다, 패배한 뒤 손을 들어 준 청화가의 문주를 제외한 육제가 모두 저자의 발아래 쓰러졌다.
가공할 정도로 뛰어난 자. 저 나이에 저만한 무위를 가진 자는 고금에 없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없을지 모른다.
이제 지금의 마교에 일대일로 저자를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교주 북리도천 단 하나뿐.
그 때문에라도 지금 반드시 막아야 했다.
화불유의 주장처럼 저자가 마교가 아닌 신교로서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전통과 율법을 바꾸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건 주인이 된 자의 당연한 권한이니 자신들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무거운 엉덩이를 떼지 않았던 마교의 원로들이 모조리 쏟아져 나와 저자를 막는 이유는 다른 것에 있었다.
저자는 사패천주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무당지검이었다. 무당의 정식 제자였고, 중원 정파의 젊은 영웅이었다.
그런 자가 정상에 선다는 것은 개인이나 세력 여부와는 관계없이 마교가 중원 정파에 패배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단순히 강자존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물며 저 한 명에 의해 굳건하기 그지없던 천산이 유린당하고 있지 않은가.
교주와의 일전이 어떻게 결론지어지는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지금만으로도 마교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기록될 것이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정상으로 가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뭐 해? 자신 없어? 혼자는 안 될 것 같아?”
“…….”
진무의 도발에도 이학성은 조금도 반응하지 않고 차갑게 얼굴을 굳힌 채 그를 응시하기만 했다.
“좋아, 좋아. 혼자가 두려우면 다 같이 덤벼 봐. 기꺼이 상대해 줄 테니까. 마교인이라는 자긍심 따위는 버려 버리고 말이지.”
이학성은 그리 멍청하지 않았다.
그는 원로원주이자, 오랫동안 무림을 살아온 무인이었다.
지금 진무의 말은 그가 원하는 바든 아니든 자신들의 자존심을 건드려 합공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임을 안다.
차분하게 내쉬는 저 호흡.
분명 시간을 끌며 조금씩 자신의 내력을 회복하는 중이리라.
도가의 선단법은 정순함의 표상이니 바른 호흡을 유지하기만 해도 충분히 내력을 회복할 수 있으니까.
더불어 지금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을 자신의 동료들을 기다리는 것이 틀림없다.
여백기마저 돌아섰으니 든든한 힘이 되어 줄 터였다.
이학성은 무거운 마음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까짓 자긍심보다는 마교의 역사에 치욕스러운 한 줄의 글귀가 남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모두 들어라!”
이학성의 목소리가 모든 곳에 울려 퍼졌다.
“지금부터 저자를 권좌에 도전하는 이가 아니라 마교를 유린한 적으로 간주한다. 육제를 쓰러뜨렸으니 그의 강함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니 마교의 무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전력을 다해 대적(大敵)을 참하라!”
“…….”
호언을 하기는 했으나 설마하니 이학성이 진짜로 합공을 명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진무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망할 노인네. 진짜로 했다 이거지?
좋아. 나도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생각은 없어.
어디 한번 끝까지 가 보자.
호흡을 차분하게 고른 진무가 온몸에 선기를 퍼트렸다.
천산의 찬 기운이 폐부 깊숙한 곳을 채워 흐르고, 청량한 선기와 더불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대신 완성에 가까운 무학을 지닌 진무였다. 충분히 해볼 만했다.
오른손? 씨발, 그까짓 거 자르지, 뭐.
외팔이 중에도 유명한 무인이 어디 한둘이던가?
차라리 팔 하나를 내줄지언정 절대로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라. 내 팔은 비싸.
너희 모가지 가지고는 어림도 없지. 천산을 흔적도 없이 지워 없애는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고오오오.
결심을 굳힌 진무에게 뒤는 없었다.
그가 몸 안의 선기를 바닥까지 긁어 끌어 올리자 곧장 뻗어 나온 기운이 푸르게 빛나며 그 존재감을 키웠다.
호북성 균현 무당산.
다르게는 태화산(太和山)이라 불리는 도가의 성지.
천주봉을 필두로 일흔둘에 달하는 거대한 봉우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괴이한 산세 곳곳에 굽이쳐 흐르는 계곡만도 수십이다.
무당의 도인들은 사해를 향해 줄기를 뻗은 그 거대한 산자락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명경지수처럼 마음을 갈고닦아 왔다.
나는 무당지검으로 무당의 팔궁과 이관, 삼십육 암당과 칠십이 암묘를 대표하는 자.
오너라.
무당의 기세를 보여 주마.
우우웅.
진무의 기세에 공명한 일휘가 웅장한 울음을 토해 내며 푸른 빛무리를 토했다.
그와 동시에 일휘를 던져 올린 진무의 손과 발이 춤추듯이 움직여 하나의 자세를 그렸다.
움직이되 화려하지 않고, 생동감이 넘치되 인위적이지 않으니 바람과 구름이 움직이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스으윽.
오른발을 앞으로 내민 진무가 일순 멈췄다.
멈췄으되 멈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일보.
그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듯 보였고, 그 움직임은 또한 끝없이 이어지며 하나의 길을 그렸다.
호흡하는 떨림마저도 움직임으로 느껴지게 하는 무당 권각술의 최상승 절예.
무극현공권(無極玄功拳).
어느 순간 진무의 반개한 눈이 은은한 빛을 머금고 전방을 바라보았을 때, 마교의 무인들은 마치 거대한 산악이 뿌리를 내리고 자신들의 앞을 막은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선도의 가르침은 기본이 계도지만…… 오늘만큼은 모조리 죽여 줄게. 와 봐.”
“…….”
기묘한 선기.
진무의 몸에서 뻗어 나온 것은 선기 특유의 온화함이 아니라 폭풍 같은 살기와 잔인함이었다.
명령을 내린 이학성은 물론 마교의 누구도 발을 떼지 못했다.
움직이는 순간 짓밟힐 것을 알기에…….
그리고 그 숨 막히는 대치에 관문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 사내가 느린 걸음으로 걸어와 끼어들었다.
“…….”
뒷짐을 진 사내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가와 진무의 앞을 막고 마교의 무인들을 향해 멈춰 섰다.
그러곤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원로원주가 어쩐 일이오?”
“…….”
담담히 내뱉은 그 말에 이학성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자신들의 움직임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마치 처음 알았던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장로부의 수장이신 대장로께서도 와 계시고.”
“…….”
“이거 참, 두문불출하시던 전대의 원로들께서 죄다 참석을 하셨습니다그려.”
사내의 말 한마디, 시선 한 자락이 닿을 때마다 진무와 대치하고 있었던 무인들이 움찔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나타난 사내는 다름 아닌 육제의 일인이자 천산의 마지막 관문을 수호하는 염인 북리가의 주인 북리도평이었다.
그의 얼굴을 알아본 진무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기랄, 일이 점점 꼬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