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99
399화
경천동지(驚天動地).
실로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드는 격전이었다.
당사자들의 치열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로되, 그들과 유리되어 멀리서 지켜보는 자들의 감상은 달랐다.
전투라기보다는…… 마치 화공이 세상을 화선지 삼아 그리는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광경.
붉은 물감 머금은 붓을 들어 일 획을 그으니 작열하는 폭양이요, 그 위로 먹을 더하니 이내 묵룡이 되어 날뛴다.
콰르릉. 콰쾅!
묵룡의 포효가 뇌성이 되어 세상을 울렸다.
날카롭게 세운 발톱은 대지를 뭉갤 기세로 할퀴고, 기세등등한 꼬리는 연신 천산의 봉우리를 둔중하게 후려쳤다.
하지만 천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며 거친 불길을 토해 용이 내려서려는 것을 방해했다.
하늘은 검게 물들었고 지상은 석양보다 붉게 달궈졌다.
그 안에서 간간이 번뜩이는 푸른빛이 천지의 경계를 범할 때마다 엄청난 충격파가 천산과 하늘을 떨쳐 울렸다.
서로의 모든 것을 드러낸 진무와 북리도천의 일전은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마저 불허했다.
진무는 포악함과 잔인함의 상징과도 같은 묵룡이 되어 세상을 짓밟으려 했고, 북리도천은 눈 덮인 천산을 불길이 넘실거리는 폭염의 대지로 바꾸려 했다.
이제는 정말로 보고자 하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싸움.
“저, 저…… 사람이 맞긴 한 거죠?”
“…….”
천산의 경계 외곽으로 피해 버린 이들 사이에서 나온 청우의 말에 대답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입만 떡하니 벌린 채 멀리 떨어진 전투의 현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은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자들의 싸움이었다.
“지켜보아라, 청우야.”
“예?”
“저분이 우리 무당의 자랑이시다.”
“…….”
“앞으로의 무당은 사숙의 이름으로 평가될 것이고, 무림은 모두가 사숙의 발치에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다.”
자랑스러움이 물씬 묻어나는 청상의 말에 청우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눈에 힘을 주어 전방에 고정했다.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황신과 아이들, 그리고 대궁은 주인 된 자의 무위에 자부심을 느꼈고, 동천의 무인들은 다시 한번 진무를 따르기를 잘했다 생각했다.
“…….”
반면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던 마강의 눈가에는 수심이 어렸다.
자신의 주인이 이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드러낸 둘은 호각지세, 아니 진무가 약간 앞서는 듯이 보였다.
쿠아악!
용은 계속해서 불길을 잡아먹고 있었고, 천산은 연신 쫓기는 모양새로 불길을 토하고 있었으니까.
역사의 전환점.
오지 않았으면 했던 그것이 당장에 이루어질 것 같아서 불안했다.
하지만 묵묵히 바라보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도울 수도, 지킬 수도 없는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교주님…….”
마강의 낮은 목소리가 허공을 잔잔히 울렸다.
* * *
휘리링!
진무의 손안을 휘돌았던 일휘가 허공에 떠올랐다가 섬전이 되어 내리꽂혔다.
동시에 다시금 선기가 거두어지고, 진무가 흑요석처럼 검게 물든 눈을 번들거리며 흑수를 뻗었다.
쓔아아악!
그의 손을 빠져나온 수많은 검은 빛줄기가 하늘에 가득한 먹구름처럼 모였다가 세차게 내려지는 손을 따라 소나기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쐐애액!
검은 소나기는 쉼 없이 떨어져 북리도천이 일으킨 불길을 꺼트리고 세상을 검게 물들였다.
하늘을 가득 메운 강기의 비가 발 디딜 곳 없이 빽빽이 쏟아졌으나 북리도천은 얼굴을 찡그리기는커녕 되레 하얗게 웃었다.
“좋구나!”
가쁜 숨과 함께 토해진 감탄사와 함께 북리도천의 신형이 멈춰진 듯이 보였다가 이내 바람에 흩날리는 수면처럼 일렁이니, 사방이 그의 잔상으로 가득 찼다.
우적사안박풍래수면빈(雨滴沙顔縛風來水面嚬).
비가 내리니 백사장이 얼룩지고 바람이 부니 수면이 일렁거린다.
자연의 흐름을 논하는 말처럼 둘의 전투는 균형을 이루듯이 어우러졌다.
쾅! 콰콰콰쾅!
떨어진 검은 강기의 소나기가 균형을 무너뜨리고 대지를 차례차례 터트렸고, 북리도천의 수많은 잔상은 폭발과 함께 아스라이 흩어졌다.
이어 달음질한 북리도천이 방향을 바꾸어 진무를 향해 뛰어들었다.
“하압!”
좌우로 펼쳤던 양팔이 대기를 끌어당기듯 모으자 뜨거운 열기가 거대한 해일처럼 진무를 덮쳤다.
휘오오오.
지면을 박차고 물러난 진무가 선기를 운용해 일휘를 높이 들었다가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무당 삼재검의 세 초식 중 하나.
딱히 정해진 초식명은 없다.
굳이 말하자면 검으로 사람을 말하는 인(人)의 수직 가르기.
양손으로 맞잡은 일휘가 무겁고 진한 여운을 남기며 호선을 그리다 중단 세 치 아래에서 멈췄다.
후우웅!
일휘가 머금은 압력에 밀려난 바람이 바닥에 부딪혀 터지고.
쩌저저적!
뻗어 나간 검의 기세가 북리도천의 장력과 함께 세상을 반으로 갈랐다.
북리도천은 반 보를 비틀며 검의 기세를 최소한으로 피해 내었다.
찌이익.
상의가 바람에 못 이겨 찢겨 나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고.
콰드득! 콰아앙!
검에 실렸던 힘의 여파가 천산의 외곽을 두르는 성벽을 도끼로 쪼갠 듯 갈랐지만 북리도천의 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삼재검의 두 번째, 지상과 하늘의 경계를 나누는 지(地)의 수평 가르기.
슈우욱!
횡으로 긋는 검에 새로운 지평선이 만들어졌다.
곧장 허리를 젖히며 미끄러진 북리도천의 가슴께가 얇게 베이고, 피가 튀어 올랐다.
하지만 아직 거리가 가까워지자면 좀 더 가야 했다.
파앙!
정면에서 방향을 튼 북리도천은 곧장 진무의 측면을 노렸다.
삼재검의 세 번째, 세상의 모든 것들의 근본을 이루는 점의 검격인 천(天)의 찌르기.
피윳!
흔들림 없이 뻗은 검극이 북리도천의 미간을 향해 쏘아졌다.
고개를 꺾는다.
몸이 움직이고, 사선으로 기운 북리도천의 한쪽 귓불이 머리카락과 함께 잘려 나갔다.
그는 그렇게 다가섰다.
붉은 안광과 함께 진무에게 접근해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후려쳤다.
열기를 머금은 그 매서운 주먹에 진무가 일휘를 던져 올리며 검게 변한 주먹을 휘둘렀다.
쩌어엉!
맞부딪치는 주먹.
먼저 출발했던 주먹과 막아선 주먹 사이에서 강렬한 충격파가 일었다.
주먹을 휘감은 사기와 열기의 강기가 충돌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짜부라들었다가 터졌고,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강한 반탄력을 서로에게 안겼다.
하지만 물러나지 않는다.
마치 물러나면 진다 생각하는 애들처럼 되레 몸을 들이밀며 이를 악물고 서로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염인, 염열(炎熱).
묵룡혼원공, 흑룡난투.
사방에서 진무를 향해 쏟아지는 북리도천의 주먹에 화답하듯 진무가 쉼 없이 손발을 놀렸다.
빠각! 빠바바박!
둘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쩌어엉! 쩡! 쩌엉!
주먹에 서린 강기와 강기가 폭발하듯이 터져 나갔다.
놈, 아주 잘 자랐구나. 네 스승보다 훨씬 더 나를 긴장하게 만들다니.
지랄하네. 긴장 정도로 끝날 줄 알아?
둘은 피하지 않았다.
마치 주먹으로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듯 맞서며 점점 더 앞으로 밀어붙였다.
쾅! 콰쾅! 쾅!
힘이 더해지자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음이 이제는 만년거석을 망치로 때리는 듯 거세졌다.
“크으…….”
주먹에 실린 압력 때문이 아니었다.
북리도천의 주먹이 머금은 열기가 입은 물론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말려 버린 탓에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웠고, 온몸의 털이란 털은 모조리 그을렸다.
망할, 이러다가 머리털이 다 타서 대머리가 되는 건 아닌지 몰라.
하지만 참아 주마.
차라리 소림에 귀의하는 한이 있어도 네놈보다 나의 주먹이 훨씬 더 우위에 있음을 보여 줄 것이다.
“으아아아!”
거친 기합성과 함께 진무가 조금씩 힘을 더하며 선기와 사기를 번갈아 운용해 미친 듯이 주먹을 뻗었다.
떠어어엉! 찌이익.
“……!”
북리도천의 눈동자에 경악이 떠올랐다.
주먹이 맞부딪히는 충돌음 사이로 분명히 들었다.
발이 밀리는 소리를.
처음에는 한 치. 그리고 두 치…….
진무의 손과 발이 더해질 때마다 북리도천의 몸이 하나둘 새겨지는 상처와 함께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망할 놈! 이렇게까지 해야겠느냐?
암! 내 주 전공이 주먹인데 너 따위에게 밀릴 수야 있나!
점점 더 당황하는 북리도천과는 달리 진무는 더욱 악착스럽게 몰아붙였다.
쩌어엉!
이전과 다른 파열음.
북리도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튕겨 나온 주먹에서 욱신거림이 느껴졌다.
이어 느껴지는 섬뜩함.
북리도천은 찡그린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튕겨 난 팔에 가슴이 열린 틈을 놓치지 않고 품 안에 파고든 검은 눈동자 한 쌍.
진무가 웃고 있었다. 새하얀 송곳니를 빛내면서.
망할…….
북리도천이 튕겨 나갔던 팔을 세차게 당겨 교차했다.
견고한 방어막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진무의 주먹이 그 위를 강타했다.
하지만 충격이 오지 않는다.
분명 그 속도만 보았을 때는 교차한 팔과 함께 몸이 들려졌어야 마땅함인데 어찌하여 나비가 내려앉은 듯이 가볍단 말인가?
설마?
“……!?”
북리도천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는 순간 그의 교차한 팔에 닿았던 진무의 주먹이 비틀렸다.
묵룡혼원공, 용연와류(龍撚渦流).
취리릭!
쿠루루. 짜아악!
나선으로 비틀리는 주먹에 말려든 살이 찢기고 피가 튀어 올랐다.
“크윽!”
이를 악물고 버텼음에도 신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피로 물든 팔이 근육을 훤하게 드러내며 기괴한 모양으로 튕겼다.
방어의 무력화.
다음에 이어질 상황은 예상하고도 남았다.
쩌어억!
올려친 주먹이 북리도천의 명치를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살갗을 파고든 충격이 가슴뼈를 관통해 그의 심장을 짓눌렀다.
“커억!”
신음을 토해 낸 입가에 피가 왈칵 솟구쳤다.
그 핏물을 고스란히 얻어맞았으나 진무의 얼굴에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북리도천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재빨리 모든 공력을 돌려 강기의 방어막을 겹겹이 쌓으며 몸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처음이 어려울 뿐, 두 번째는 쉽다.
무너진 방어막이 다시 세워지기 전에 끝내 주마.
휘리리링.
진무를 향해 빨려든 바람이 벗어나려는 북리도천을 단단히 움켜쥐듯 잡아당겼다.
그리고 묵룡이 다시 고개를 쳐들고 북리도천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세웠다.
이전에 없던 광포한 눈빛으로.
진무는 짙게 웃었다.
널 위해 이제껏 남겨 두었다.
묵룡혼원공의 마지막 비공 삼파격의 첫 번째, 파막(破膜).
후우우욱! 투우웅!
진무는 목줄이 완전히 끊어진 짐승처럼 광기 어린 눈빛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간결함이 아닌 묵직함을 담은 주먹.
“꺽!”
첫 번째 주먹은 강기로 만든 두터운 방벽에 균열을 만들었다.
슈우욱!
곧이어 날아드는 두 번째 주먹, 파육(破肉)은 살을 찢고 뼈를 부수었다.
콰드드득!
“크아악!”
핏물과 함께 터지는 거친 신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춤에 당겨진 주먹에 가공할 기운이 응축되었다.
쿠우우우.
그리고 땅을 짓눌렀던 발이 섬광처럼 앞으로 뻗었다.
세 번째 주먹.
혼을 부수는 파혼(破魂).
쩌어어어엉!
진무는 주먹을 곧게 뻗은 자세 그대로 멈추었다.
그리고 북리도천은 힘을 잃고 날아갔다. 실 끊어진 연이 바람을 타지 못하고 힘없이 지상에 떨어지는 것처럼.
털썩.
오랜 세월 찬연히 빛나던 마도의 영광이 북리도천과 함께 지면에 내려앉았다.
고오오오.
서서히 흩어지는 열기를 끝으로, 천산은 침묵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