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0
40화
장서각을 다녀온 뒤로도 충허암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청상과 청우는 수련에 박차를 가했고 진무는 언제나처럼 삼공암묘에서 ‘강(罡)’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물론 달라진 것도 있긴 했다.
일대제자들의 실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매일 아침 진무가 자소궁 외전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 * *
‘하아, 뭐 하러 이딴 영양가도 없는 회의를 하는 건지.’
실무 회의에 참석한 진무는 한숨을 내쉬었다.
주제도 없고, 핵심도 없고.
그저 할 일의 나열일 뿐이다.
이번 달 식단?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회의 석상 안건으로 올라온단 말인가?
어차피 풀뿌리 조금과 벽곡단이 전부인데.
그리고 궁금하면 직접 와서 보고 가면 되지.
오룡궁이 얼마나 재건되었는지를 왜 묻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쓸모없는 탁상공론.
이러니 정파 놈들이 고리타분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스승의 명만 아니었어도 이따위 회의에 참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인데.
“진궁 사형께서 연락을 보내셨네.”
진소가 전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진궁이 산에서 내려간 뒤로 나머지 제자 중 가장 선임 제자인 진소가 실무 회의를 주관하고 있었다.
“진궁 사형께서요?”
“그래. 단강구의 상단 간에 수로 이용권을 두고 마찰이 생긴 모양이야.”
“저런.”
진허가 미간을 찌푸렸다.
수로 이용권이라면 상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안 중 하나였다.
무려 네 곳의 물길이 모여 각지로 뻗어 나가는 단강구 수로.
그곳에는 상선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관의 순시선이 움직이는 시간대가 그것이었다.
그 외의 시간대가 되면 수로 곳곳에서 수적이 출몰하니 상행에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배가 그 시간대에만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인지라 매년 순서를 정하고 그 값을 매긴다.
수로 이용권으로 문제가 생겼다면 상단 간의 분쟁으로 발전할 여지가 다분한 사항이었다.
“해서 진궁 사형이 장문인께 제자들의 파견을 요청하셨네.”
“예? 진궁 사형께서 데려가신 이대제자들이 여덟이나 되지 않습니까?”
“허허, 여덟이나가 아니라 여덟뿐일세.”
진소가 고개를 저었다.
진무가 단강구의 무뢰배들을 소탕한 이후 무당과 다시 연을 맺은 상단이 모두 세 곳이었다.
진궁은 각 상단에 이대제자 두 명을 두고, 나머지 둘과 함께 세 곳을 번갈아 살피는 중이었다.
“상단이 셋 아닌가. 한곳에 이대제자 둘밖에 되지 않는다네.”
“음, 그리 생각하니 수가 부족하군요.”
“그래. 진궁 사형께서 힘에 부칠 만한 일이지.”
“그런데 상단의 호위만으로는 부족합니까? 통상 그런 경우에는 상단 간의 협의로 해결하지 않습니까?”
옳은 말이었다.
상단 간의 마찰에 무림의 문파가 끼어드는 일은 흔치 않았다.
본산의 무인들이 나서는 경우는 수적들에게 물건을 빼앗겼거나 사람이 죽었을 경우뿐이었다.
“그래. 맞네. 의외의 요청이기는 하지. 한데 그들만으로는 협의가 되지 않는 모양이야.”
“협의가 되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와 연을 맺은 일해상단과 마찰이 벌어진 곳이 이성상단이라네. 어째서인지 계속 협의를 거부하고 있다 하더군.”
진허의 찌푸려진 미간이 더욱 깊어졌다.
이성상단.
과거 무당과도 연이 있던 곳으로, 단강구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대 상단이었다.
그들의 규모라면 약소 상단 중 하나인 일해상단과 마찰이 일어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째서 그들이.”
진허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무당의 도사인 그들은 상계의 속사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진소가 진혜를 돌아보며 짜증을 내었다.
“너는 어찌 근래 아무 말이 없는 게냐?”
“예?”
묵묵히 듣기만 하던 진혜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는 멀찍이 앉아 있는 진무를 힐끗거렸다.
“아무래도 단강구의 사정은 네가 제일 밝지 않느냐? 의견을 말해 보아라.”
진소의 말에 진혜가 진무의 눈치를 살피다, 그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슬며시 입을 뗐다.
“그, 이성상단이라면 절대로 협의를 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협의를 해 주지 않는다고?”
“예.”
“어찌 그러하냐?”
진혜의 대답에 실무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성상단의 뒤에는 제갈분가가 있습니다.”
“제갈분가?”
“예. 그리고 제갈분가는 오랫동안 무당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막아 왔지요.”
진무가 여전히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귀찮은 듯이 입을 다물고 있자 진혜가 안도하며 말을 이어 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호북성의 패권입니다. 지난 십 년 계속해서 노력해 왔고요.”
“흐흠.”
“한데 지난번 사제……의 일로 약소 상단이라고는 해도 세 곳이나 무당과 연을 맺었습니다.”
진혜가 진무를 거론하며 다시 한번 눈치를 살폈다.
“계속해 보게.”
“……예. 어쨌든 그로 인해 제갈분가에서는 단강구의 상계가 분위기에 휩쓸린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말인가?”
“굳이가 아니라 ‘충분히’입니다.”
“…….”
“제갈분가에서는 상단을 보호해 주는 대가로 우리 무당과는 달리 막대한 후원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거대 상단과는 달리 약소 상단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요. 그런 와중에 무당이 다시 상단과 연을 맺고 활동을 재개한다니 반갑지 않겠습니까?”
“하면, 제갈분가가 뒤에서 이성상단을 조종해서 일해상단에 피해를 입히려 한단 말인가?”
“피해요? 분명 망하게 만들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에게 보여 주려는 겁니다. 제갈세가에 등을 돌린 상단이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
“으음.”
모두가 얼굴을 구겼고 진무가 의외라는 듯이 진혜를 바라보았다.
제법이다.
그저 쭉정이 놈인 줄 알았더니 그럴싸하게 세를 분석하고 읽을 줄 아는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죽이지 않길 잘했다.
좀 더 써먹을 가치가 있는 놈이다.
진무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다.
사패천주로 있던 당시에도 그는 이해관계에 그리 밝지 못했다.
계략을 꾸밀 정도로 똑똑하지도 못했다.
그가 가진 것은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꾸미는 건 먹물 좀 먹었다는 군사나 수하들이 할 일이었다.
‘헛! 저놈이 왜 또 나를 보는 거지?’
그 사이 진혜는 진무와 눈이 마주치고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혹시 뭔가 실수했나?’
진혜는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머리를 보호했다.
혹시나 진무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 아닌가 싶어 등줄기로 식은땀이 솟구쳐 흘렀다.
“진혜.”
“예?”
“무슨 생각을 하길래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는 겐가?”
“……죄송합니다.”
“말 끊지 말고 계속해 보게.”
“그…….”
이미 진무의 눈치를 살피며 잔뜩 쫄아 버린 진혜는 말문이 막혔다. 일전에 각인된 공포가 그의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사형.”
“예? 아, 아니 응?”
“계속해 보시죠.”
진무의 말에 진혜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저, 어디까지 말했죠?”
“허, 이 사람 이상하구만. 어디 몸이 안 좋은 겐가? 식은땀을 다 흘리고.”
진소가 일어나자 진혜가 다급하게 그를 제지했다.
“괜찮습니다. 지극히 정상입니다!”
망할 진무가 계속해 보라 했으니 말을 멈추었다가는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
“저들이 일해상단을 망하게 하려는 것 같다, 까지 말했네.”
진허의 말에 진혜가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번 일은 상단 간의 문제가 아닌 제갈분가와 무당의 힘 싸움이 될 것입니다.”
“음.”
진혜의 말에 진소를 비롯한 실무자들이 진한 침음을 흘렸다.
“그렇군. 하면 대책은?”
“표면적으로는 상단 간의 문제이니 제갈세가와 직접적으로 싸울 수는 없습니다.”
“하면?”
“일해상단이 수적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상행을 강행하는 수밖에 없지요.”
“강행한다?”
“예.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이성상단의 방해로 상행을 취소하면 일해상단은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상계에서 무당의 입지는 다시 좁아지겠지요. 하지만 반대라면.”
“수적을 물리치고 상단을 보호했으니 상계에서 무당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우호적으로 변하겠군.”
“맞습니다.”
진무는 진혜가 더욱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비열한 놈이지만 한편으로 끌어들이기에는 충분한 자질을 갖춘 놈이다.
뒤에서 자신의 등을 노릴 수도 있겠지만, 그따위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위험이야 언제나 목전에 놓인 곳이 무림 아니던가?
사패천주일 때도 자신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 놈은 천우명뿐이었다.
적재적소에 놓고 쓰기만 하면 되는 일이고, 필요 없을 때는 솥에 넣고 끓여 버리면 된다.
“자네 말이 맞다면 실무자 회의에서 결정할 사안은 아닌 게로군.”
진소가 굳은 얼굴로 말했지만, 진혜는 고개를 저었다.
“장문인과 장로님들께서도 아셔야 할 사안이지만, 결코 그분들이 나서서는 안 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그저 단강구의 약소 상단입니다. 장로님들이 나선다면 수적들로부터 지킬 수는 있을 것이나, 무당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고작 수적이 무서워 무림의 명숙이 직접 나서야 할 만큼 무당의 힘이 없다고 말이지요.”
“아! 음.”
정파의 무인들은 명예를 중시한다.
“힘들더라도 반드시 일대제자급에서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최소의 인원으로요.”
진혜의 말에 신음은 더욱 깊어졌다.
그의 말대로라면 마땅히 산문을 나간 진궁이 나서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대외 협력을 위해 나간 걸음이기에 그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일이다.
연을 맺은 곳이 일해상단만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결국, 누군가 내려가야 한단 말이군. 꽤 위험한 일이고 말이야.”
“예.”
“음, 누굴 보내야만 한단 말인가?”
모두가 고심하고 있던 그때, 진허가 진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는다.
‘어? 저 자식이 왜 날 보지?’
진무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설마?
“사형! 뭘 고민하십니까?”
“응?”
진허의 밝은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진무를 보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망할, 불안은 왜 항상 현실이 되는 거지?
“진무를?”
“예. 고민할 거리도 못 됩니다. 이미 오룡궁이 재건되는 중입니다. 그러니 응당 무당의 검이 될 오룡궁의 실무자 진무에게 맡겨야지요.”
저게 미쳤나?
그런데 잠시 고민하고 있던 진혜가 음흉하게 웃으며 동조를 하고 나섰다.
“옳은 말입니다. 응당 오룡궁이 나서야지요. 사제는 진허 사형을 이겼을 정도로 뛰어난 무공을 가지고 있습니다. 충분히 잘 해낼 것입니다.”
이 자식은 또 왜?
진무가 눈을 부라리자 진혜가 식겁하는 표정으로 회피했다.
잘되었다. 잘하면 저 악귀 같은 놈이 수적들과 싸우다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진혜는 그리 생각했다.
자신을 째려보는 진무의 눈빛이 공포스러웠으나 잠시만 참으면 되는 일이다.
무조건 강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허, 자네가 내 의견에 동의할 것이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모처럼 옳은 말을 했네.”
진허는 어째서 진혜가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인지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잘되었다 생각했다.
진허는 진무가 대제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번 일은 꽤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다른 일대제자에 비해 진무는 입지가 낮았다.
지난 일로 제법 이름값이 생기기는 했으나, 아직은 부족했다.
그러나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해낸다면 분명 대제자로 한 걸음 훌쩍 다가설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 새끼들이 쌍으로 미쳤나? 가려면 제 놈들이나 가지 어디서 나를!’
진무가 있는 대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빛으로 위협했지만, 진혜는 시선을 피했고, 진허는 바보스럽게 웃기만 했다.
“알겠네. 그럼 그리 정하는 걸로 하고, 나는 이 사실을 속히 장문인과 장로님들께 고하도록 하지.”
진소는 진무가 뭐라 할 새도 없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우리 진무가 이리 장성하여 주니 이 사형은 기쁘기 한량없구나.”
너 좋으라고 큰 거 아니거든?
“진무는 그리 알고 준비하고, 각 궁의 실무자들은 진무와 함께 갈 실력 있는 이대제자들을 선별하도록 하라.”
야! 잠깐만 인마!
내 의견도 들어 봐야 할 것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