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05
405화
“형님, 교주님께서 오셨습니다.”
“…….”
북리도평의 말에 북리도천이 알아들었다는 듯 눈을 천천히 떴다.
교주가 아닌 형님.
그들도 현재 교주라 불릴 수 있는 것은 하늘 아래 진무뿐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는 북리도천에게 이겼을 뿐 아니라 마성에 빠진 것을 구하기까지 했으니까.
물론 청염에 대한 것은 진무가 따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패자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 주기 위해서였다.
차라리 마성이 낫지, 귀신에 씌었다고 하면 다들 어찌 보겠는가?
어쨌든 이제 북리도천은 모두의 머릿속에서 전대 교주의 한 사람이자 북리가의 야인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으음…….”
힘겹게 눈을 뜬 북리도천이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신호를 보내 왔다.
과연 핏줄인지라 금세 알아들은 북리도평이 귀를 가까이 대었다가 북리도천을 부축해 침상의 끝에 기대어 앉혔다.
아마 자신을 일으켜 달라 한 모양이었다.
“이보게, 일기.”
“예, 가주님.”
“형님께서 고통을 좀 덜어 달라 하시는군.”
“예? 하지만 꽤 센 약을 써야 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괜찮네. 어차피 이젠 시간이 많지 않은가. 꽤 오래 정양하여도 상관없으니 약을 주시게. 지금은 교주님과 대화가 더 필요하신 것 같으니.”
“음……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입니다. 너무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잠시 고민하던 전일기가 품 안의 작은 병에서 약을 꺼내 북리도천의 입에 넣어 주고, 몇 군데 침을 놓아 고통을 덜어 주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약효가 천천히 퍼지고…….
“후우…….”
북리도천이 깊은숨과 함께 고통을 떨치고 맑은 눈동자로 진무를 바라보았다.
대, 대단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당장에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푸르죽죽한 낯빛이었는데.
대체 뭔 약인지는 몰라도 그저 진통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저 정도면 거진 영단인데?
진무는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전일기가 품 안에 감추는 약병을 주시했다.
이 험한 세상 저런 물건 한두 개쯤은 가지고 다녀야 하는 법이다.
때로 위기의 순간에 목숨을 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몇 개만…… 아니 몇십 개, 그것도 아니면 약병째로 달라고 해 볼까?
설마 달라는데 안 주기야 하겠어? 이젠 내가 교주인데?
“이보게, 혹시…….”
진무가 세상 음흉한 표정으로 전일기에게 슬쩍 다가가는데, 북리도천이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교주님.”
“…….”
북리도천의 존대.
그는 물러난 자로서 자신을 낮추고 진무를 교주로 대하여 불렀다.
마교에서 평생을 살았으니만큼 본능적으로 율법에 따라 상하를 나누는 것이다.
근데 교주고 천주고 난 모르겠고, 대화는 좀 이따 하자.
일단 이쪽 일부터 좀 마치고 나서.
“그 병 말인데…….”
진무가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하고 전일기의 소매를 잡으려는데 북리도천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부른다.
“교주님?”
“…….”
기다리라고, 이 환자 놈아.
죽다 살아난 노인네가 왜 이렇게 질척거려?
내가 먼저 이 의원 놈한테 말을 걸었잖아.
북리도천과의 대화보다는 전일기에게서 약을 뺏는 것이 급선무인 진무가 대놓고 외면하는데…….
“저런, 내 정신 좀 보게. 두 분께서 나누실 말씀이 많을 것인데. 자, 다들 나가세.”
“…….”
북리도평이 쓸데없이 오지랖을 부려 사람들을 수습해 밖으로 나가려는 것이 아닌가.
거기, 동작 그만!
이런 눈치 없는 자식이.
내가 지금 전일기한테 볼일이 있다고!
하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이제 마교의 교주씩이나 된 마당에 대놓고 약을 달라 하기에는 체면이 상한 것이다.
물론 그를 알아채지 못한 북리도평은 아련한 눈빛으로 손을 뻗는 진무를 두고 사람들과 함께 물러나 버렸다.
이런 젠장할. 전일기는 놓고……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전일기를 다시 만나서 몰래 말해 보는 수밖에.
아쉬움에 입맛을 쩍 다신 진무가 고개를 돌리는데 나가지 않고 남아서 기다리는 청상 일행이 보였다.
“니들은 안 나가냐?”
“……예? 왜요?”
“…….”
아이구, 귀돈께선 눈에 살이 찌셔서 단체로 밖으로 나가는 걸 못 보셨나 봐요?
안 그래도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데 이걸 확 그냥?
진무가 얼굴을 찡그리자 눈치 빠른 청상이 재빨리 청우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 읍읍!”
아마 ‘사형 왜 이러세요.’겠지.
그래, 이건 내 실수다.
자고로 물건을 살 때도 이 집, 저 집 돌아다녀 보고 골라야 하는 법인데, 하필이면 저놈을 제일 먼저 만나서 부하 일 호로 삼다니. 정말 큰 실수를 한 게야.
청우는 수하 삼십 호…… 아니 백 호 정도는 됐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 눈치 없는 놈을 여기서 죽여 버리고 청상을 일 호로…….
“사, 사숙, 술이라도 가져올까요?”
“…….”
청상의 말에 한기 서린 눈빛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던 진무가 한숨을 쉬며 힘을 풀었다.
청우야, 잘난 사형이 네 목숨을 살렸구나.
“그래. 독한 것이었으면 좋겠네?”
“예.”
청상이 혹시나 사제가 맞지는 않을까 싶어 재빨리 대답하고 청우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갔다.
“읍읍.”
눈치 없는 읍읍이 돼지는 그 와중에도 끝까지 발악하며 진무의 신경을 거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재미있는 사질이외다.”
“재미는 무슨.”
모두가 빠져나가고 둘만 남게 된 치료실.
“큰 은혜를 입었소.”
침묵을 지키며 잔잔히 웃던 북리도천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했다.
은혜 같은 소리 하네.
누가 너 좋아서 살려 준 줄 알아?
그 불꽃 놈이 귀신이라, 어? 도사로서 두고 볼 수 없기에 그리한 것이다.
“존대할 필요 없어. 나도 연장자에 대한 예우 따윈 하지 않을 거니까.”
“하대하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오. 이제 신강의 지배자이자 일월마교의 교주이시니 존대를 받아야 하는 것도 당연하고.”
“됐어. 우리 사이에 뭔 그딴 걸 신경 쓰고 있어?”
“…….”
“…….”
“우리…… 사이……요?”
“응?”
“예?”
“뭐?”
“…….”
너무도 당연하다는 표정을 한 진무를 북리도천이 눈을 끔벅거리며 쳐다봤다.
“아, 내 말뜻은…… 그래, 어차피 자넨 우리 사부와 벗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내게 사숙이나 다름없다, 이 말이지.”
진무가 어물쩍거리며 둘러대자 북리도천이 간신히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벗이라…… 그가 그리 말했소?”
“…….”
어째 기분이 좋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래, 뭐 그렇지.”
“그렇군요. 그도 나를 벗이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뭘 새삼 흐뭇해하고…… 자고로 남자들이 주먹을 나누고 술을 한잔했으면 그게 벗이지 뭐란 말인가?
그러다 문득 북리도천이 다시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내 알아보기론 교주님께선 혁련무강의 무공을 화산 금룡협에 남아 있는 묵룡동에서 얻었다고 들었는데.”
“…….”
망할 노인네, 그걸 또 그새 알아봤네.
교주 자리에 있을 때 마교의 정보 조직인 삭월천을 움직여 알아낸 모양이었다.
다만 개방이나 하오문에 비해 정보력이 조금 떨어지는 그들이 알아낸 것이라고는 겨우 그 정도였을 것이다.
비밀을 아는 사패오왕을 제외하고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은 그뿐이니까.
진무로서는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청염이 정확히 꿰뚫어 본 그의 정체를 북리도천은 모른다는 뜻이었으니까.
“써, 써 있었어. 묵룡동에.”
“호오? 그가 기록을 남겨 두었단 말이오?”
“그래.”
“그렇군요. 그가 나와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흐흠.”
붉은 수염을 쓸어내리는 북리도천의 눈동자에 그리움이…… 아니 저건 그리움을 넘은…….
야, 거기까지 해라.
난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더욱이 누가 다 늙은 놈 따위를.
“흠흠. 그래, 이젠 어쩔 생각이지?”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전환한 진무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어찌할 것이 무엇이겠소? 패자가 죽지 못했으니 이제는 그저 뒷방 노인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소? 봉문까지 한 마당에 모처럼 아무 걱정 없이 쉬어 볼 생각이외다.”
“…….”
진무는 그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뒷방 노인? 니가?
지나가던 개가 웃다 기절할 소리 하고 있네.
“그냥 하던 대로 교주 해.”
“……?”
“안 어울려, 뒷방 노인 같은 거. 너한텐 그냥 교주가 딱 좋아.”
짓궂게 웃는 진무의 얼굴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북리도천이 마주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교주께서 육가를 봉문하고 천산의 체계를 다시 세우고자 명하신 마당에 제가 다시 교주직을 수행하여 어쩌잔 말이오?”
“그건 그거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오. 나는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뿐더러, 이미 지나간 세월에 불과하오.”
“…….”
힘없이 뇌까리는 북리도천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무는 다시금 씩 웃었다.
“교주의 두 번째 명령이야.”
“……!”
“북리도천. 네게 교주 대리를 명하지.”
짐짓 엄하게 말하는 진무의 모습에 북리도천이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전과는 달라야 할 거야.”
“…….”
“그냥 침묵해. 막지도 말고, 억압하지도 말고. 그냥 다들 자유롭게.”
“…….”
“다만 몇 가지만 지키면 돼. 무인은 무인으로 존재하고, 무림과 관계없는 자들에겐 피해를 주지 않는다.”
“무림인으로만 살라는 뜻이로군.”
“그래.”
북리도천은 진무를 바라보며 한참을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명은 내려졌고, 수하가 된 자신은 지켜야 한다.
그것이 그가 지켜 온 마교의 율법이다. 말해 봐야 진무가 들어 먹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알겠소. 명대로 하리다.”
“잘 생각했어.”
진무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북리도천이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교주님.”
“왜?”
“부탁이 있소이다.”
“뭔 부탁?”
“마강을 받아 주시오.”
“…….”
염왕대주 마강.
그 고지식한 놈.
북리도천이 패배하고 마성에 빠진 뒤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 구금하여 뇌옥에 갇히기를 자처한 놈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됐어. 니 말대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 헌 부대를 끌고 다닐 수야 있나.”
“…….”
“나를 따르라고 하면 자결부터 할 놈이야. 그냥 하던 대로 데리고 다녀. 니 옆에 있어야만 빛이 나는 녀석이니까.”
퉁명스러운 말투였으나 그 안에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겼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어린 나이이나 생각이 깊은 자다.
자신은 물론 마강까지 배려한 것이 아닌가?
“교주께선 이제 어쩔 작정이오?”
“나?”
“사패천주에 정파 최고수, 이제는 교주의 위에 올랐으나 어떤 직책에도 앉을 생각이 없어 보이니.”
“글쎄…….”
무엇을 해야 할까?
무언가에 얽매여 있는 것은 원래부터 싫어하는 성격이니.
진무가 정사마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음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지금이다.
아직 궁이라는 놈들의 대장이 남아 있기는 한 것 같지만 어차피 무림을 노리고 있으니 언젠가는 만나게 될 터.
굳이 찾아다니는 수고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산서상회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니 돈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가문이나 하나 세워 볼까?
무림 최강의 가문.
멋지지 않은가?
일명 천하제일 진…… 아니, 혁련가.
그러곤 청상이랑 청우, 황신과 아이들을 데리고 전에 생각한 대로 영물이나 잡으러 다니며 세월을…….
아니지, 아직 하나 남았다.
청무 조사께서 해 보았다는 그것.
진무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황…….”
진무가 말을 꺼내려는 찰나였다.
“교주님!”
밖에서 북리도평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자식이 말을 끊어?
마교의 지존이시자 천하제일인이신 이 몸이 장차 이룩할 거룩한 첫걸음에 대한 포부를 밝히려는데?
잠시 씨근거리며 화를 잠재운 진무가 밖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무슨 일이야?”
“그게…… 외람되오나 잠시 밖으로 나와 보시는 것이.”
“……?”
근데 지금 이게 가능한 상황인가?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뻔히 아는 마당에 충성심이 하늘을 찌르는 북리도평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고?
갑자기 무슨 일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뭔가 급한 일인 게 분명한데…….
“우리 대화는 여기까진가 보군.”
“…….”
“몸조리 잘해. 내 말 명심하고.”
“알겠습니다. 교주님.”
북리도천이 아픈 몸에도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고, 진무는 막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좀 쉬어. 최대한 빨리 회복하도록 하고.”
“예.”
북리도천을 일별한 진무는 밖으로 나가는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려 발을 내디디는데…….
“……?”
이건 또 뭐야?
익숙한 모습이다.
번쩍거리는 경갑에 검은 피풍의를 걸친 이들.
저 복장은 분명…….
“무당의…… 아니, 사패천…… 젠장, 마교의 교주, 진무는 황명을 받들라!”
“…….”
그러니까 저 버벅거리면서 패 하나를 꺼내 들고 호령하는 얼굴 허여멀건 놈은 황제의 직속 감찰 기관인 동창(東廠)의 관리가 분명한데.
니들이 여긴 웬일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