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1
41화
“…….”
결국, 내려와 버렸다.
스승이 장하다며 부둥켜안고 잘 다녀오라 격려해 주지만 않았다면.
망할 도동의 기억이 자신의 정신을 지금까지 지배하지 않았다면.
실무 회의의 임시 결정권자인 진소를 두들겨 패서라도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아.”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는 진무의 모습에 청상이 다가왔다.
“사숙, 무슨 고민이라도…… 허업!”
넌지시 물었다가 당장이라도 누구 하나 잡아먹기라도 할 것 같은 진무의 눈빛에 청상은 헛바람을 삼키며 물러났다.
고민?
그래, 고민이지.
진무는 자신의 뒤를 따르는 행렬을 바라보았다.
청상, 청우.
그리고 각 궁에서 선별해 보낸 이대제자 일, 이, 삼, 사, 오.
모두 다섯.
나름 각 궁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는 이대제자들이다.
하지만 청우와 비교해도 지극히 모자란 그저 그런 녀석들.
그들이 누군진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진무의 눈에는 그들 모두 그저 세상 구경을 한다는 생각으로 부푼 새끼 오리들이고, 그 앞을 이끄는 자신은 어미 오리가 된 기분이었다.
망할, 어째서 이런 짐 덩어리들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두고 보자 진허, 진혜. 쓸모 있게 써먹어 주겠다는 생각은 취소다. 돌아가면 반드시 모가지를 따 버리겠다.’
모두 그 두 놈 때문이었다.
진무 홀로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하며 걱정하시는 스승을 그 두 놈이 설득해서 명령을 내리게 만들었다.
장문인과 장로들을 설득하던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열성적이던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격려하며 자신을 떠나보내던 진허.
그리고 특히 진혜 놈.
그놈이 무당의 자존심 운운하며 반드시 최소 인원으로 가서 해결해야 한다며 강력하게 주장했다.
등 뒤에서 칼을 꽂을 줄은 알았으나 이런 식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혼자 가라고?
가서 수적들에게서 상단을 보호하라고?
이런 어린 오리 새끼 같은 이대제자들이랑?
그냥 가서 죽으란 이야기다.
먹물들이 자주 써먹는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 따위를 해 볼 속셈임을 모를 리가 없었다.
제 놈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수적들의 힘을 빌어 자신을 죽여 보려는 것이리라.
그 둘을 생각하자 진무는 눈에서 불길이 토해지는 것만 같았다.
“죽인다. 죽여 버릴 거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진무의 모습에 걱정스럽게 다가왔던 청상이 사색이 되어 물러났다.
“처, 청우야.”
“예?”
“지금 사숙께서 심기가 몹시 불편하신 모양이다. 지금 걸리면 알지? 아이들 단속을 잘 시켜라.”
“헛! 아, 알겠습니다.”
이미 몇 번 맞아 본 청우는 제법 눈치가 생겼다.
대개 이런 경우 진무의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죽기 일보 직전까지 맞는다.
그 고통은 맞아 본 사람만 안다.
특히나 고통이 뼈까지 절절히 사무쳐 있는 청우는 더욱 잘 안다.
이미 숱하게 경험한 청우와 청상은 나머지 다섯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필히 경고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당을 내려온 진무 일행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마치 살얼음을 걷듯 조심스럽게 일해상단으로 향했다.
이미 무당산에서 그들이 온다는 연락이 전해진 것인지 상단의 총관이 그들을 마중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일해상단의 총관 곡우량입니다.”
“진무요.”
총관이라는 자는 둥근 얼굴에 성격 좋은 미소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할까?
지금 진무는 매우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뭐 하나 걸리기만 하면 아작을 내 버리고 싶었다.
이런 날은 청우를 때리며 기분을 푸는 게 제일인데.
저 돼지 녀석이 근래 눈치가 빨라졌는지 아까부터 아예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진무의 퉁명스러운 태도에도 곡우량은 조금도 언짢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살갑게 짐까지 건네받으며 진무 일행을 안내했다.
“가시지요. 상단주님과 진궁 도장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럽시다. 까짓것.”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빨리 해결한다.
수적이고 제갈분가고 걸리는 족족 작살 내 놓고 무당산으로 돌아가서.
‘진허, 진혜. 이 새끼들.’
진무는 두 눈으로 여전히 시퍼런 불길을 토하며 이를 갈았다.
* * *
“혼자란 말이냐?”
“예.”
진무의 대답에 진궁의 미간이 찡그려졌고 일해상단주 강유가 실망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근데 뭐, 이 새끼들아.
“허,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오. 무당에서 이리도 무관심하시다니. 내 무당을 믿고 또 믿었거늘…….”
실망을 넘어 절망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 말을 들은 진궁이 강유를 향해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짜증이 잔뜩 오른 눈으로 진무를 노려보았다.
“어찌 혼자란 말이냐! 내 분명 이번 일이 중요하다 전서에 써넣었거늘!”
내가 결정했냐?
안 그래도 짜증 나 죽겠구만, 이놈이나 저놈이나 어찌 이리 지랄들인지.
마음 같아서는 확 그냥 노려보는 진궁의 눈깔을 파 버리고 싶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다시 전서구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인원을 좀 더 충원할 수 있도록.”
진궁이 달래자 강유는 더욱 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도장, 지금 충원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일 출발한다고 해도 고작 이틀입니다. 수로를 이용해 부지런히 달려가도 물목이 도착하기도 빠듯한 시간이란 말입니다. 언제 무당에 전서를 보내고, 언제 또 무인들이 당도한단 말입니까?”
“그, 그것이…….”
할 말을 찾지 못한 진궁은 점점 더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이보시오. 도장. 내 근래 진무 도장의 이름이 높은 것은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수적을 만날 것이 뻔한 일인데 어찌 고작 일대제자의 막내를……. 더욱이 이성상단 뒤에 제갈분가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도 없소. 무인들을 모집한다고 해도 누가 지원을 하겠소! 이 마당에 말이오!”
말이 길다.
강유가 맘속에 있는 말을 쉬지 않고 쏟아 내기 시작했다.
은근히 진무를 높여 주면서도 까는 것이 분명했다.
“진무 하나로 안심이 되지 않으신다면 제가 이대제자들을 모두 다른 상단으로 보내고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궁의 흘겨보는 저 눈빛.
그리고.
뭐? 안심이 안 돼?
이것들이 사람 면전에서 대놓고 무시를 하고 있었다.
고작 진궁 따위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사실에 진무는 심히 기분이 나빠졌다.
안 그래도 기분이 더러웠던 차에 아주 기름을 부어 대는 꼴이었다.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른 진무가 진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혼자 가죠.”
“…….”
진무의 단호한 말에 진궁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가 눈에 쌍심지를 돋아 올렸다.
“지금 뭐라 했느냐?”
“혼자, 제가, 이대제자 일곱과.”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또박또박 다시 말하는 진무의 모습에 진궁의 눈가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이놈이? 지금 말이면 단 줄 아느냐!”
“일정에 변동은 없습니다. 상단은 내일 출발할 것이고 호위는 예정대로 제가 합니다.”
쾅!
“닥쳐라, 이놈!”
더 참지 못한 진궁이 탁자를 치고 일어나 부리부리한 눈으로 진무를 노려보았다.
“이런 얼빠진 놈 같으니! 네놈은 지금 이 사안이 얼마나 큰지 모른단 말이냐! 상단도 상단이지만 이번 일이 실패하면 무당에 미칠……!”
진궁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말을 이어 가다 강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뒷말을 삼켰다.
“분명히 말했습니다. 혼자 갑니다. 이번 호위의 책임자는 접니다. 오룡궁의 실무자인 제가 무당의 ‘검’으로서 받은 임무입니다. 사형의 간섭으로 문제가 생긴다면 차후 사문에 그대로 보고하겠습니다.”
“이, 이놈이!”
진궁이 좀처럼 화가 진정되지 않는지 볼을 푸들거리며 몸을 떨었다.
마음 같아서는 확 두들겨 패고 싶었으나 외부인이 있는 자리였다.
사형제 간에 말싸움하는 것을 보인 것부터가 이미 실수였다.
주먹다짐까지 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진무가 스스로 무당의 ‘검’임을 언급했다.
어찌 이다지도 철이 없단 말인가?
제 자존심에 무심코 내뱉은 말이리라. 하지만 그 말은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적어도 진궁에게는 그러했다.
무당의 ‘검’.
그것은 무림 문파의 한 곳으로서 가지는 무당의 자긍심이었다.
무당이 사패천에 습격을 받았을 때, 그리고 그로 인해 무당이 아무런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말했다.
무당의 검은 이제 부러졌다고.
그런데.
진무가, 일대제자의 막내가 지금 그 자긍심을 꺼내 들며 공언한 것이다.
실로 대견하다 해야 할 일이었으나 진궁은 오히려 화가 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놈이 천년 도량을 지켜 온 모든 무당 도인의 이름을 등에 업은 무게를 모르고 호기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한낱 도동에서 벗어난 지 고작 이 년이 채 못 된 놈이 감히 무당의 자긍심을 더럽히려 하고 있었다.
“상단주님, 잠시 자리를 비켜 주시겠소?”
“아, 그…… 알겠소.”
답답하기만 했던 강유가 뭐라 대꾸하려 했지만 진궁의 몸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압력에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었다.
강유가 몇 번이고 쳐다보며 물러났지만 분노한 진궁의 시선은 진무에게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강유와 상단의 인물들이 모두 나간 뒤.
“네놈.”
진궁이 진무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 말을 책임질 수 있겠느냐?”
“뭘 말이오?”
“네놈이 한 말의 의미는 실로 무겁다. 네놈, 아니 명진 사숙조차 함부로 책임질 수 없는 말이다.”
진궁은 자긍심에 대한 말을 한 것이었으나 진무가 알아들을 리 없었다.
그 와중에 더욱 기분이 나쁜 것은 자신의 스승인 명진을 거론했다는 사실이었다.
“네놈이 자신했으니 나는 아무것도 돕지 않겠다.”
“바라던 바요.”
“그래, 좋다. 하나 모든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할 것이다.”
“당연한 말.”
“네놈은 무당의 검임을 자처했다. 그것은 무당의 자긍심이자 지켜야 할 마땅한 본질이다. 그럼에도 실패하면 네놈과 명진 사숙의 목숨, 그리고 재건되는 오룡궁마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절대로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규율이다.”
뭐?
규율? 고작 그따위 것 때문에 감히 스승의 목숨을 운운해?
“좋소.”
“…….”
“만약 내가 이번 일을 문제없이 마무리하고 나면 사형께선 어찌하시겠소?”
“뭐라?”
진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막내 사제의 당돌함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이번 일해상단의 일은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했다.
실패하면 무당에 대한 신뢰도는 추락할 것이고 상계는 또다시 무당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자신의 협박에 진무는 차라리 도와달라 간청을 했어야 했다.
그럴 용의는 충분히 있었다.
어차피 진무 혼자서는 어려운 임무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함께 간다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자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단강구의 수적(水賊)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일반적인 도적이 아니었다.
일전에 진무가 소탕한 단강구의 무뢰배나 청양상단 같은 밀수 패거리와는 급이 달랐다.
그들은 저 간악한 사패천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고 있는 거대한 집단이었다.
모두가 고된 수련과 생사의 역경을 거쳐 온 무인들이고, 집단전에 능한 자들이다.
또한, 일신의 무공과 관계없이 물에서는 최강을 자랑할 만큼 뛰어난 수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자들을 강호 경험조차 일천한 애송이가 홀로 막겠다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자신이 임무를 잘 수행하고 나면 어찌하겠느냐 묻기까지 한다.
“너…….”
“무릎 정도는 꿇을 수 있겠지?”
진궁이 분노로 말을 이어 가지 못하는 순간 진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
“나를 무시한 것에 대해서 머리를 처박고, 내 스승님의 목숨을 운운한 것에 대한 사죄.”
“가, 감히.”
주체할 수가 없다.
무당의 명운이 걸린 일이 어찌 일개 도사의 목숨이나 자존심과 비교될 수 있단 말인가?
“이노옴!”
결국 진궁의 분노가 터져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뻗어 낸 손을 따라 거친 장력이 뿜어졌고 그 방향은 진무를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