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13
413화
서북의 영산 곤륜.
신선들이 기거하는 낙원이라 불리는 그곳에는 수많은 전설이 있었다.
오르는 높이에 따라서 수양이 깊어지니, 양풍에 오르면 불사를 얻고 현포에 이르면 영이 되며…….
“헤엑, 헤엑.”
상천에 다다르면 신이…….
“허억, 허억.”
신은 개뿔.
곤륜산 인근의 양풍현은 지난 지 오래고, 산 중턱의 우물 현포정(懸圃井)도 막 지났다.
불사를 얻고 신령이 돼?
그래, 어떻게 보면 사실이네.
힘들다 못해 죽어 귀신이 될 것 같으니까.
망할 철환 탓에 손목은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였고, 팔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드드득, 스윽.
발도 제대로 들 수 없다 보니 철구가 땅바닥에 질질 끌려, 지나온 길을 따라 당장 밭을 가꿔도 될 정도로 깊은 고랑이 팼다.
악에 받친 이들은 차마 진무를 째려보진 못하고 묵묵히 산을 오르는 청상의 뒤통수만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처음에는 이래저래 진무의 억지에 반박도 곧잘 하고 태도도 반듯하길래 타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중원 도사의 모범이라고 해야 할까.
근데 모범이 하필이면 왜 그쪽이란 말이냐?
부모 자식 간에도 저 정도로 맹목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진무가 수련 어쩌고 하면 제일 먼저 나서서 모범을 보이질 않나, 악착같기는 또 어찌나 악착같은지 다 죽어 가는 청우에게 호통까지 쳐 가면서 앞장을 섰다.
“자, 다들 힘을 냅시다.”
“…….”
“정상이 멀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됩니다.”
닥쳐라!
이런 예의 바르게 악독한 놈!
너의 정갈함에 침을 뱉어 주마!
망할 천주의 앞잡이 놈!
새끼 천주!
퉤! 퉤퉤!
청상의 독려에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침을 뱉고 욕을 했다.
물론 악랄함의 화신인 진무가 들으면 다 죽으니까 마음속으로…….
실제로 황신은 전날 은밀하게 접근해 저 새끼 천주의 목에 바람구멍을 내 버리려고 했지만, 소동보가 사력을 다해 말린 덕에 겨우 참을 수 있었다.
불쌍한 청우.
저 뚱뚱한 녀석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정말이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녀석이다.
하기 싫은데도 잘난 제 사형 놈이 모범을 보이는 통에 말도 못 하고 억지로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함께 다녀 보니 청우의 식탐이 겨우 이해되었다.
처음에는 어째서 그리 많이 먹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하지만 이젠 안다.
먹어야 겨우 살아남는다.
그 험난한 사제지간의 길에서 오는 정신적인 고통을 먹는 것으로 풀고 있는 것이다.
가여운 녀석. 나중에 먹을 것 하나라도 더 챙겨 줘야지.
진무의 의도는 아니었으나 동병상련의 고통 앞에서 그들은 점차 하나로 뭉치고 있었다.
정사마의 구분 없이…….
“어? 다 왔네.”
마차에 몸을 싣고 느긋하게 산을 오르던 진무가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 보이는 곤륜의 산문을 바라보았다.
전에도 봤지만 저 거대한 산문을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산문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의 도사.
아, 그러고 보니 그때 듣기로 저 관문에 어마어마한 기관진식이 숨겨져 있다고 했었지?
진무는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기막힌 생각에 손을 들어 행렬을 멈추게 했다.
당시에 찾아왔을 때는 얻고자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얌전한 척을 했었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오랜만에 왔으니 애들 수련도 시킬 겸 일단 인사부터 거하게 해 볼까?
“유장, 너는 이대로 상단을 이끌고 양풍현에서 대기하고 있어라.”
“예? 걸어가시게요?”
“어차피 산문을 지나면 계단이라 마차가 못 가.”
“알겠습니다.”
유장의 대답을 들은 진무는 고개를 돌려 온화하게 말했다.
“풀어.”
“……?”
짧은 한마디에 청상을 위시한 진무의 쫄따구들은 혹시나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풀라니까? 뭐 해?”
“……!”
잘못 들은 게 아니다.
투툭, 쿵, 쿵.
곳곳에서 울리는 묵직한 소음과 함께 몸이 말도 못 하게 가벼워진 이들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자유를 만끽했다.
“다 풀었냐?”
“예!”
“다들 곤륜은 처음이지?”
“예!”
진무의 온화한 목소리에 모두가 힘차게 대답했다.
“좋아. 그럼 시작해 볼까?”
“……무엇을?”
갑자기 미소를 짓는 진무의 모습에 모두는 더럭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 미친 인간이 갑자기 또 왜 이러지? 산문이 코앞인데 어째서 기척을 죽이고 몸을 숨기는 걸까?
“황신 좌측 작은 도사, 소동보 우측 도사.”
“……?”
“상처 없이 제압해.”
응? 뭐? 어쩌라고?
지금 곤륜산에 와서 곤륜 산문을 지키는 도사들을 제압하라는 말인가? 왜?
설마 이거 곤륜파를 공격하려는 건가? 마교의 교주가 되었다고? 무당지검이면서?
“뭐 하냐? 알아듣게 다시 말해 줘야 해?”
저 망할 놈의 섬뜩한 미소 앞에 이유는 필요 없었다.
손발의 구속도 자유로워졌겠다, 일단은 까라는 대로 까는 수밖에.
파팟!
황신과 소동보가 몸을 날림과 동시에 신형과 기척을 감췄다.
“괴충, 능서현은 황신조로 산문 좌측! 각출, 청상, 청우는 소동보의 조로 관문 우측! 내가 산문을 지나는 순간 최대한 빠르게 지나서 올라올 수 있도록.”
“……?”
빠르게 명을 내리는 진무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었다.
멀쩡한 산문을 두고 어째서 좌우로 나누어 산을 오르라고 하는 거지?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황신과 소동보가 산문을 지키는 도사 둘을 제압했다.
털썩.
쓰러지는 소리와 동시에 진무가 몸을 날리며 외쳤다.
“먼저 올라오는 조는 곤륜에 머무르는 내내 휴식을 보장한다.”
“……!”
진무의 목소리가 모두의 가슴에 불씨를 댕겼다.
이유…… 그딴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그리고 언제부터 자신들이 진무의 말에 이유를 따졌던가?
그들의 뇌리에 남은 것은 오직 ‘휴식’이라는 두 글자뿐이었다.
눈을 부릅뜨고 곧바로 달려갈 듯한 자세를 취한 무인들이 진무가 산문을 지남과 동시에 질세라 쏘아져 나갔다.
이건 달리기 시합이나 다름없다.
이기면 쉰다.
“힘을 냅시다!”
청상의 독려에 짜증이 벌컥 치밀었지만…….
오직 최단 거리로 달릴 생각으로 쏘아져 나갔던 그들이 산문의 좌우 경계를 넘는 순간이었다.
툭, 그긍, 슈가가각!
“……?”
어딘가를 건드리자마자 움직임이 느껴짐과 동시에 무언가가 쏘아져 나왔다.
그러니까…… 엄청난 양의 암기가, 순식간에 환경을 뒤바꾸어 버리는 진법이.
어쩐지…… 저 망할 천주가 그냥 휴식을 취하게 해 줄 리가 없지.
“이, 이런, 씨바알!”
진무는 황신의 날카로운 욕설을 뒤로하고 천천히 곤륜의 산자락을 올랐다.
얼마나 대단한 기관인지는 모르지만 청상, 청우, 황신과 아이들 등등이 뚫고 나오지 못할 리는 없다.
하지만 불시에 공격받았으니 쉽게 빠져나오지도 못할 터.
와중에 기관이 작동되었으니 산정에서 곧 알게 될 터이고, 곤륜의 도사들이 개떼처럼 몰려 내려올 것이 틀림없었다.
뭐, 청상과 청우가 있으니 좀 싸우다가 금세 서로의 선기를 알아보고 소강되겠지만.
곤륜 놈들, 한동안 편안했을 것이 틀림없다.
사람이라는 것이 원래 가만히 놔두면 나태해지는 법이 아니던가?
진무가 마교 정벌을 시작하면서 더 이상 마교인이 경계를 넘어오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 한 번씩 이렇게 불시에 점검을 해 줄 필요가 있다.
이른바 전투 준비 태세 점검.
크으, 이 얼마나 자애로운가?
도문의 큰 어른으로서 이렇듯 그들의 정신 상태까지 점검해 주고 있으니까.
덕분에 이놈들도 기관진식을 뚫는 훈련에 곤륜의 무학까지 경험하고.
앞으로도 내 그늘에서 살아야 할 녀석들이니 이래저래 강해지는 편이 좋다.
살날이 구만리인데 언제까지 내가 다 처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지 못해서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냥 상상만 해도 기분이 참 좋았다.
“청~사안~!”
절로 흘러나오는 구성진 노랫가락에 맞춰 진무는 발걸음도 가볍게 곤륜산을 올랐다.
……휙?
젠장, 또 오는 줄 알고 놀랐네.
* * *
때앵, 때애앵!
고요하던 곤륜의 산정이 때아닌 경고성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숙! 산문의 기관입니다! 기관이 작동했습니다!”
“뭣이? 그게 무슨 소리냐?”
“모르겠습니다! 산문이 적의 습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젠장! 마교란 말이냐?”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허!”
곤륜의 경계를 총괄하는 운영 장로가 얼굴을 찡그렸다.
이미 진무에 의해 평정된 신강 땅이었다.
진무가 동천과의 전투를 벌인 이후로 마교인들은 단 한 차례도 청해성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또한 북리도천을 꺾은 진무가 곤륜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 이미 정무맹에서 당도한 뒤였다.
오랜 전투 끝에 이제 겨우 평화가 찾아왔으니 청해의 사람들도 더 이상 혈난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고, 곤륜의 도사들도 비로소 제대로 도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망할…… 마교가 무너진 뒤에 갈 곳이 없어진 잔당들일지도 모르겠구나.”
“예? 하지만 잔당들이 어찌 숨지 않고 곤륜을?”
“궁지에 몰린 쥐가 범이라고 못 물까? 전환, 너는 서둘러 장문인과 장로들에게 알려라. 나는 곧장 제자들을 이끌고 산문으로 내려가겠다.”
“예, 사숙!”
운영이 곤륜의 도사들과 산문을 향해 내려가려는 그때였다.
“으이차.”
“……?”
듣기에도 기합이 잔뜩 들어간 힘찬 구호와 함께 한 인물이 곤륜의 산정으로 올라왔다.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묶고 대충 걸친 피풍의에 옻칠한 듯 새카만 검을 둘러멘 사내.
“진무…… 도장?”
“응? 운영 장로님?”
지난날 곤륜에 머물렀을 때 안면을 익혔던 터라 서로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니들 뭐 하냐?
설마 이제야 연락을 받고 내려가려는 거야?
“온다는 소식은 들었네.”
“…….”
소식을 들었다고? 어떻게?
애들한테 시켜서 흔적을 다 지우라고 분명히 지시했는데?
“그런데 아래쪽에서 소란이 일어난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
진무가 의아해하는 와중에 운영이 다급하게 물었다.
아, 소란? 못 볼 리가 있나.
내가 주도한 일인데.
근데 니들 반응이 너무 느린 거 아니냐?
이렇게 느려 터져서야 그것들이 벌써 기관을 뚫었겠다.
“저런, 쯧쯧. 산문이 공격당한 지가 언제인데…… 역시나 곤륜이 많이 나태해졌군요.”
“……?”
혀까지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진무의 모습에 의아함이 운영에게로 옮겨 갔다.
이건 또 무슨 소릴까?
“자네, 그게 대체 무슨?”
“아무리 신강이 안정되어 평화가 찾아왔다고는 하지만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운영 장로님께서는 유비무환(有備無患)도 모르십니까?”
“……으응?”
“무릇 평화로울 때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라 하였거늘, 어찌 이리도 방만하단 말입니까!”
“……그, 그게.”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치는 진무의 모습에 운영이 본능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잠깐만…… 그런데 왜 욕을 먹어야 하지?
언제부터 무당의 제자가 곤륜의 전투 준비 태세까지 신경을 쓴다고?
“같은 도문의 일원으로서 곤륜이 이리 방만한 태세로 있으니 신경을 아니 쓸 수가 없군요. 점검을 해 보길 너무도 잘하였습니다.”
“…….”
점검? 그걸 대체 네가 왜?
하지만 진무가 너무도 서슬 퍼런 기세를 흘리고 있었기에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
“뭣들 하십니까? 만약 진짜로 적이었다면 어찌할 뻔했습니까? 산문을 지키던 제자들은 고혼이 되어 구천을 떠돌 것입니다. 그 비싼 기관에만 의지하니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러니까 네가 그걸 왜 신경 쓰냐고.
“뭘 보고 계십니까! 이건 훈련입니다! 산문을 공격한 자들을 속히 잡아들이지 않고 어찌 이리 보고만 계신단 말입니까!”
“아, 알겠네. 내 속히 내려가 보겠네.”
진무가 더욱 기세등등하게 호통을 치자 운영이 엉겁결에 제자들을 데리고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 내려갔다.
진무는 산 아래로 사라지는 운영과 곤륜의 제자들을 보면서 음흉하게 웃었다.
자, 이제 싸움은 붙였고…… 누가 이기려나?
뭐, 아무나 이겨도 상관없지만 기왕이면 곤륜이 이기면 좋겠다.
애들은 아직 훈련이 많이, 아주 많이 더 필요할 만큼 약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