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14
414화
산정을 오른 진무는 곤륜 장문인의 거처인 운궁으로 가지 않고 천룡각으로 향했다.
풍환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장문인? 그딴 직급 따위는 진무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다.
자고로 어떤 집에 가든 어른께 먼저 인사를 드려야 하는 법이 아니던가?
진무는 아주아주 예의 바른 무당 도사니까.
“오! 어서 오게!”
“…….”
진무가 천룡각 제자들의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서자 풍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내 자네가 온다는 소식은 미리 들었다네.”
“들어요?”
“하핫, 내 자네를 처음 볼 때부터 무림사에 큰 획을 그을 것이라 생각은 했네만, 설마하니 사패천에 마교까지 넘다니……. 정말 대단하네그려. 앞으로 백 년 안에 자네 같은 인물은 없을 게야. 암, 그렇고말고. 자네는 진정 우리 중원 도문의 희망일세.”
백 년은 무슨.
이미 내가 살아온 삶이 팔십 년을 넘었다.
그 안에도 나 같은 인물은 없었지.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
피식 웃은 진무는 정작 신경 쓰이는 부분에 집중했다.
“그런데…….”
“혹, 양의를 이룬 것인가?”
자신이 온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 물으려는데, 풍환은 들을 생각이 없는지 신이 나 제 할 말만 해 댔다.
“…….”
이 염병할 노인네가 사람 말을 막아?
그래도 사패천 이야기를 하면서 간악한 혁련무강 어쩌고 하지 않는 것을 보니 매병이 많이 호전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게 낫는 병이었나?
초기여서 그런가…… 아무튼 매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참으로 좋은 일일 텐데.
과거에 갇혀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현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니까.
어쨌든 저리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물으니 답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예. 운이 좋았습니다.”
“허허, 이 사람. 그게 운만으로 될 일이던가?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였네. 자네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어찌 하늘이 그만한 복을 내려 주었겠는가.”
하늘이 복을 내려 줘?
이 노인네 이거 아직 멀었구만.
그래 진인사대천명, 참 좋은 말이기는 하지.
하지만 세상엔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 모두가 필연적인 무언가에 의해 이어지는 법.
또한 복이라는 건 하늘이 내려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기회를 쟁취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그래도 뭐, 하늘이 이 몸한테 해 준 게 하나는 있지. 되살려 준 거.
개미 앞다리만 한 도움이지만 말이야.
“이제 보니 자네 외모가 많이 변했구만.”
“그리되었습니다.”
“머리카락도 길어졌고…… 체격도 조금 커진 것 같은데?”
“아, 머리카락은 곧 자를까 생각 중입니다. 여간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라서…….”
“허허, 긴 머리도 제법 잘 어울리는데 뭘 그러나. 원래 자네가 좀 생기지 않았던가.”
“…….”
풍환이 눈까지 찡긋거리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이 노인네…… 원래 이렇게 혓바닥이 길었나.
뭔 말이 이렇게나 많아?
지금 외모 품평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야. 대체 내가 곤륜에 온다는 걸 어떻게 안 거냐고.
진무가 묻고 싶은 것은 그것이었으나 풍환은 좀처럼 질문을 그치지 않았다.
“외양이 이리 바뀐 것을 보면 혹시…… 그 전설적인 경지인 환골탈태를 경험한 것인가?”
“예.”
“오오! 역시 대단하네. 대단해. 내 죽기 전에 실제로 그걸 이룬 사람을 보게 되다니.”
“그리 대단하게 여길 일도 아닙니다.”
“말해 보게. 어떻던가?”
“그게…….”
풍환이 옛날이야기를 조르는 아이처럼 호기심 넘치는 눈빛을 하자, 사무치게 고통스러웠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진무가 얼굴을 찡그리며 설명했다.
그 세세하고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에 풍환이 몸소 경험하는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며 질색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을 것 같구만. 소문과는 꽤 다른 모양일세그려. 하긴, 고통 하나 없이 어찌 대성을 이루겠는가?”
“…….”
이 양반이 남의 고통이라고 참 쉽게 말한다. 그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대성 따위 이룰 생각도 안 했겠지. 하여간에 직접 안 해 본 놈들이 말들이 많은 법이라지만.
진무는 한차례 고개를 내저으며 풍환을 바라보았다.
궁금한 것은 거의 해소가 되었는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이제 진무가 물을 차례.
“풍환자 어른, 그…… 제가 온다는…….”
벌떡!
질문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풍환자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진짜…….
“나가세.”
“예?”
“무엇 하는가? 어서 나가세.”
“어딜요?”
“내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당장에 내일이 불투명한 나이일세.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이 자유로울 때 경험해 보고 싶네.”
“지금…… 비무를 하자는?”
“암! 당연하고말고! 이 무림에 자네와 같은 무학의 경지를 개척한 이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북리도천마저 이긴 자네의 상대로서 나는 부족함이 많으나 꼭 경험해 보고 싶네.”
“…….”
저 방금 도착했는데요?
“무엇 하는가? 어서 따라나서게!”
“…….”
조바심을 느끼며 채근하는 풍환의 모습에 진무는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하아, 그래. 질문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는다.
무인들에게 대화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서로 주먹을 나누어 보는 것이 인사고 대화다.
말마따나 내일 당장에 병환으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풍환자가 아닌가?
진무가 곤륜으로 온 것도 실은 그를 한 번쯤 보아 두고 싶어서였다.
그는 함께 과거를 나누었던 사람이었고, 진무가 양의를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가시죠. 성심껏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암, 응당 그리해야지! 그렇고말고. 으핫핫핫!”
앞장선 풍환이 천룡각의 문을 열자마자 소속 제자 전홍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너는 지금 즉시 운궁으로 달려가 장문인과 장로들을 데려오라. 또한, 곤륜의 모든 제자에게 천룡각으로 모이라 전하라.”
“예? 지금 산문에 소란이 있어서.”
“소란?”
“예. 아직 상황은 전파되지 않았으나 불의한 자들이 산문을 넘어왔다고 합니다. 적의 기세가 매서운지 먼저 가신 운영 장로님께서 지원을 청하여 다들 준비 중인데…….”
그에 관한 사실을 전달받지 못한 풍환이 눈을 끔벅거리며 진무를 쳐다봤다.
“허, 진무 도장에 의해 마교가 무너진 이 마당에 대체 어떤 자들이 곤륜의 산문을 공격했단 말이냐?”
“…….”
풍환의 말에 진무는 시선을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뭐, 일이 이렇게 진행될 줄 낸들 알았나?
“이런, 어떻게 한다?”
잠시 기다린들 진무가 가 버릴 것은 아니지만,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회 앞에서 지체하게 된 풍환은 조바심이 들었다.
자신과 진무의 비무.
최선을 다해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것임을 알지만, 그들의 비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필시 많은 도움이 될 터였다.
“잠시 기다려 주겠는가? 내 직접 나서서 일을 해결하고 옴세.”
“…….”
풍환이 직접 나서겠다 하니 괜스레 미안해진 진무가 슬쩍 운을 뗐다.
“저어, 풍환 어른.”
“응?”
“그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닐 터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게 무슨 말인가?”
“그…… 산문에 소란을 피운 게 제가 데려온 녀석들이거든요.”
진무가 볼을 긁적거리고는 머쓱하게 웃자 풍환이 멀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어찌?”
“실은 기관에 의지해 산문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려 주기도 할 겸…… 에, 또 데려온 녀석들에게 곤륜이 어떤 곳인지 알려 주기도 하고, 그리고…….”
그냥 재미 삼아 쌈 한번 붙여 봤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었던 진무가 갖가지 이유를 붙이자 가만히 그를 응시하던 풍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렇군. 잘하였네. 자네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줄은 몰랐구먼.”
“…….”
응? 뭐? 그냥 그렇게 이해해 주는 거야?
“하기야 나 역시도 무인이 기관 장치에 의지해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터였네.”
“……에?”
“말이야 바른 말이지 대 곤륜이 기관 장치라니. 그딴 것에 의지하니 자꾸만 약해지는 게야.”
“…….”
“차라리 확 뚫려 버렸으면 좋겠구먼. 이 기회에 장문인과 장로들의 정신이 번쩍 들도록 말일세.”
“그, 그렇죠? 하, 하하하.”
“암, 그렇고말고. 잘하였네.”
잔소리를 들을까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칭찬을 받게 된 진무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웃었다.
뭐, 상관없지. 모로 가도 황도만 가면 되는 것 아닌가?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풍환이 이해해 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야.
“전홍아.”
“예.”
“가서 장문인께 내 말을 전하도록 하고, 이대제자들에게 일러 산문에 있는 이들도 모두 데려오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풍환이 품은 뜻을 깨달은 전홍이 명을 받고 뛰어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기다렸다 나올 것을 그랬구먼.”
“…….”
“차를 한잔 더 하겠는가?”
“……그러시죠.”
비무를 위해 나왔다가 졸지에 기다리게 되어 버린 둘이 어색하게 탁자를 두고 마주 앉았다.
겨우 여유가 생긴 진무가 줄곧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제가 온다는 걸 미리 알고 계셨던 모양이지요?”
“응? 자네가 그쪽에 연락을 보낸 게 아닌가?”
“그게 무슨?”
“장문인이 그러더군. 맹에서 서신이 왔다고.”
“…….”
“자네가 곧 도착할 것이니 속히 맹으로 와 달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 적혀 있었다더군.”
“왜요?”
“글쎄.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았네.”
흠, 그렇게 된 거로군.
맹에서 자신을 찾고 있었구나.
근데 어떻게 곤륜으로 향한다는 것을 알았지?
분명 내가 행적을 지우라고 했는데.
유장을 만난 것은 필요에 의해서였지만 딱히 어디로 간다는 말을 사패천에도 전하지 않았다.
그건 정무맹에도 마찬가지인데 자신이 곤륜으로 향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각출이 이 자식이……?”
확실하다.
그놈 말고 누가 범인일까?
행적을 지우라고만 했는데, 이게 지 맘대로 맹에다가 시시콜콜 일러바쳤단 말이지?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어쩔 수 없지. 귀때기를 찢어 벌려서라도 알아듣게 해 주는 수밖에.
암, 그게 도리지.
진무가 각출을 벼르며 스산한 한기를 품고 있는 가운데 전홍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곤륜의 무인들이 천룡각으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지쳐 버린 듯한 청상 일행과 함께 운영이 진무를 향해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이보게! 진무 도장!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
뭐, 화가 난 건 알겠는데 나도 지금 각출이 때문에 좀 짜증이 난 상태거든?
그러니까 그 손가락 좀 치울래?
확, 그냥 손가락을 마디별로 꺾어 놓을까 보다.
“운영은 그만하고 물러나 있거라.”
“사숙, 그게 아니라 지금 산문의 기관이 모조리 부서졌단 말입니다. 그걸 다시 짓자면 대체 얼마나 큰 비용과 많은 인력이 필요할지 가늠도 안 됩니다. 아무리 무당지검이라고 해도 도를 넘은 행동입니다.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운영이 신경질이 잔뜩 난 얼굴로 진무를 쏘아보며 끝까지 손가락질을 해 댔다.
“어허! 내 말을 듣지 못한 것이냐!”
“사숙……!”
“쯧쯧, 어찌 이리도 아둔한가!”
“…….”
한차례 호통을 친 풍환이 운영에게서 시선을 돌려 장문인 운해를 바라보았다.
“장문인, 그리고 장로들은 들으시게.”
“예, 사숙.”
풍환의 목소리에 위엄이 어리자 곤륜의 수뇌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부서진 기관은 더 이상 유지하지 않도록 하게.”
“예? 하지만…….”
“아직도 모르겠는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게.”
“…….”
“우리가 그까짓 기관 따위에 의지하며 이곳을 지키는 사이에 무당은 벌써 저만치 앞서 있네.”
“…….”
“자네들이라면 진무 도장처럼 저 신강에 들어가 마도에게 계도의 칼날을 세울 수 있었겠는가?”
풍환의 추상같은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가 이곳을 지키며 저들이 청해에 넘어와 환란을 일으키는 것을 막고 있는 사이에 무당의 어린 제자들은 신강을 정벌해 평화를 이끌어 냈네.”
모두가 안다.
청해와 신강의 경계가 열리고, 교역이 시작되니 사방에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그동안 갇혀 살며 서로를 오해하고 있던 마음들도 조금씩 옅어져 가는 것을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했던가?
“보게, 무당지검은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워 준 것이네. 기관에 의존해서 곤륜을 지키려 하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렸으니 고마워해야 마땅한 일이거늘, 어찌하여 타박한단 말인가?”
“…….”
그건 아니지만 해석이 좋으니 다른 말은 보태지 않아야겠다.
후학들에게 폭풍 같은 잔소리를 마친 풍환이 호흡을 고르고는 다시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다들 마음을 열고,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게. 내 비록 모자람이 많으나 무당지검과 비무를 하여 보여 줄 것이 있으니.”
“…….”
“비록 어린 나이지만, 무학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 이룩해 낸 경지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보여 줄 것이네. 자네들이 믿고 있는 그따위 기관이 아니라 말이야.”
풍환이 말을 마치고 나서자 곤륜의 제자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물러나 두 사람을 커다랗게 둘러쌌다.
“진무 도장.”
“예.”
“부탁하네. 모쪼록 최선을 다해 주게나.”
“…….”
풍환과의 두 번째 싸움.
첫 번째는 풍환이 제정신이 아니기도 했고, 운이 좋아 이길 수 있었다. 그때는 과거의 힘도 되찾지 못하였었고, 지금의 경지를 이루지도 못하였을 때니까.
하지만 이젠 보여 주리라.
자신이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차라리 잘되었다.
사패천이야 원래 주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고, 마교까지 힘으로 넘었다.
당연히 이길 수 있는 자들이지만 아직 남궁무휴를 제외하고 정무칠성을 모두 발아래 두지 못했다.
무인 간에 고하를 나누는 일은 소문이나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법이다.
보여 주고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이제 풍환을 시작으로 정무칠성을 모조리 넘어 정파에도 내가 군림자임을 알려 줄 것이다.
“청상.”
탁.
짧은 부름에 달려온 청상에게 일휘를 건넨 진무가 각출을 슬쩍 째려보았다.
“각출이 너…… 나랑 할 이야기가 좀 있더라.”
“……!”
뭣이었을까? 방금 그 눈빛은?
자신이 뭔가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 같은데.
하지만 답을 내려 주지 않은 진무는 어느새 풍환의 앞에 서 있었다.
아무런 자세도 취하지 않은 채로, 무척이나 자연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