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2
42화
철썩!
짐을 잔뜩 실은 배가 강물을 가르며 단강구를 떠났다.
순풍이다.
바람을 한껏 받은 돛이 터질 듯이 팽팽하게 부풀자 배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흐흐흐.”
뱃머리에 앉은 진무는 무당산을 내려올 때와 달리 무척이나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사숙.”
“오, 청상이냐.”
“여기.”
이빨이 몇 개인지 드러나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는 진무를 향해 청상이 공손하게 술병을 내밀었다.
퐁!
마개를 열자 향긋한 향이 퍼지고.
꿀꺽.
입에 머금자 알싸함이 감돌았다.
“캬아! 술맛 좋다!”
진무는 도포 자락으로 입가를 닦아 내며 웃었다.
“너도 마실래?”
“아, 아닙니다. 사숙. 저는 괜찮습니다.”
청상이 부동자세를 취하며 거절했다.
뱃전을 가득 채운 일해상단의 사람들은 그런 진무를 벌레 보듯이 했지만.
청상을 비롯한 무당의 이대제자들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가서 쉬어라. 수적이 나타나려면 단강구 수고(水庫)를 한참이나 벗어나야 할 테니.”
“옙!”
목소리는 온화하고 사질들을 생각하는 마음에 애틋함마저 묻어나는 진무였으나.
청상은 전보다 훨씬 공손했다.
“날씨 좋고! 바람도 선선하고, 핫핫! 순행이구나, 순행이야!”
진무는 지금 시조라도 한 수 멋들어지게 읊으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청상은.
‘설마하니 그 진궁 사숙을…….’
존경심을 넘어 경외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청상, 그리고 청우와 나머지 이대제자들은 전날 분명히 보았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 속에서 악마처럼 웃고 있는 진무의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렬했다.
‘잘해야 해. 눈 밖에 나면 진짜로 죽을지도 몰라.’
* * *
전날, 일해상단.
진궁의 일장이 진무를 향해 쾌속하게 뻗어져 나갔다.
그 엄청난 기세에 휘말린 대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비틀렸다.
진궁.
그를 수식하는 말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탄기를 깨달은 일대제자’였다.
그로 인해 그의 이름은 무당뿐 아니라 중원 무림 전체에 퍼져 유명 인사가 되었고.
진명과 함께 무당을 이끌어 갈 후기지수라 칭해졌다.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고 있는 진명과는 달리.
고지식하지만 올곧고 철두철미한 성격의 도사였던 그를 누구나 다음 대의 장문인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이대제자들이 가장 존경하며 닮고 싶어 하는 그였다.
그런 그의 일장이 진무를 노린 것이다.
그런데.
“쯧, 사형제 중 연장자라는 자가 제 분조차 이기지 못하는 꼴이라니.”
뭐가 저리 여유롭단 말인가?
공간을 넘어 펼쳐진 진궁의 일장은 무당을 대표하는 장법인 면장(綿掌)이었다.
유연하고 날렵하면서도, 부드러움을 간직한 장법은 무당 무공의 정수를 담았다 알려져 있었다.
한번 펼쳐지면 서른여섯 번의 변화를 일으키며 적을 쇄도한다.
시작은 가벼우나 갈수록 그 위력이 더해져 종래에는 태산마저 무너뜨릴 기세를 품는 내가중수법의 총아였다.
쿠콰콰콰!
진무는 면장의 위세가 그의 면전으로 치고 들어올 때까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사, 사숙!”
위급한 상황에 청상이 다급하게 외치는데, 그 순간 진무의 양손이 커다란 원을 그렸다.
“태, 태청산수?”
면장에 대응한 방법이 다른 것도 아닌 태청산수임에 지켜보던 이대제자들이 놀람을 토해 내었다.
태청산수라니?
설마 면장을 흩어 버릴 생각이란 말인가.
그런 말도 안 되는…….
“……!”
흩어졌다.
분명 연이어 폭발해야 할 면장의 흐름이 끊어진 것도 모자라, 사방을 압박하고 있던 막대한 양의 선기가 진무의 손에서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진무가 진궁의 간격 안으로 쑥 하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꼬리에 불이 붙어 날뛰는 멧돼지 같으니.”
비웃음과 함께 곧바로 이어진 손아귀가 진궁의 목을 잡아 갔다.
일직선으로 뻗어지는 동작이 군더더기 없이 짧고 간결하다.
하지만.
일대제자 중 최고라 칭해지던 진궁의 실력 또한 녹록하지 않았다.
허리를 뒤로 접는 동작과 함께 앞발이 솟구쳐 올라 다가온 진무의 턱을 노렸다.
빠각!
강렬한 타격음이 들려왔을 때 모두가 진무의 패배를 직감했다.
“제법인데?”
하지만 들려오는 진무의 목소리.
진궁의 발이 솟구친 순간, 진무는 팔꿈치로 그의 발끝을 찍어 내고 물러나 혀로 입술을 쓸고 있었다.
“크윽.”
되레 충격을 받은 것은 진무가 아닌 진궁이었다.
사람의 뼈 중 가장 강한 곳 중 하나가 팔꿈치였다.
그리고 그곳에 부딪힌 발끝.
아무리 단련한다 해도 발가락이 팔꿈치를 이길 수는 없었다.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 정도로 진한 고통에 끊어졌던 진궁의 이성이 돌아왔다.
“네 녀석?”
거리를 벌리고 진무를 바라보는 진궁의 놀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좀전의 공격으로 거리를 벌린 진무는 승기를 잡았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진무로서는 굳이 여기서 진궁과 싸울 이유가 없었다.
가장 강한 자가 대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평판 좋은 자가 대제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였다.
진허는 오해가 있었고, 진혜는 자신의 목숨을 노렸으니 당연히 가르침이 필요했다.
하지만 진궁과는 싸워도 얻을 것이 없었다.
귀찮기도 하고.
하지만 진궁은 달랐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진무.
치기에 날뛴다고 생각했던 가장 어린 사제가 이 정도의 무위를 가졌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자신의 면장을 흩어 버린 태청산수만으로도 기함을 토할 지경인데 방금의 능수능란한 대처는 실로 놀라웠다.
언제 이 정도로 성장했단 말인가?
탄기의 경지에 이른 자신의 면장을 쉬이 막을 정도라면?
설마 스스로 무당의 검임을 자처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란 말인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진궁 역시 무당의 제자다.
비록 변화를 꿈꾸는 진허와는 달리 무당의 전통과 규율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생각했으나.
누구보다 무당을 아끼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제자가 되려 했던 것이다.
쇠퇴해 가는 무당이 과거의 영광을 찾음과 동시에 올곧게 나아가기 위해, 더 강한 무당을 만들기 위해.
“이봐, 진궁 사형. 그만하지.”
“…….”
그런데 사형에게 ‘이봐’라니?
진무의 말투는 고지식한 진궁의 성격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반드시 사형제 간의 예의를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실력에 호기심이 일었다.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사제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
진허에게 듣기로는 변칙에 능하다 하지 않았던가?
궁금해졌다.
무당의 일인으로서 가진 분노는 진무에 대한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그것은 다시 무인으로서의 호승심으로 변했다.
“그만? 흥!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안 그러냐?”
“…….”
진궁이 약간 신이 난 듯한 얼굴로 자세를 고쳐 잡자 진무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이거 봐라?’
냉정해졌다.
진궁은 탄기의 경지를 이룩한 경험 많은 무인이었다.
진허나 진혜와는 달랐다.
근래 발전을 이룬 덕분에 의기의 경지까지 오른 진무였으나 목숨을 빼앗는 생사투(生死鬪)가 아니라 제압해야 하는 싸움이다.
사형제 간의 대련에서 상대를 해할 정도의 기운을 사용하는 것은 무당이 금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였다.
결국, 최소의 기운을 이용한 초식 싸움이다.
면장을 날렸을 때 박살을 내 놓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제길, 그나저나 이거 뭐야? 그저 고리타분한 도사 놈인 줄 알았더니.’
불같이 일장을 날려 올 때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냉정해지고 난 다음 진궁의 몸에 갈무리된 선기가 너무도 침착하다.
또한, 진궁의 눈빛.
싸움을 즐기는 자의 그것이었다.
대부분 그런 자들은 경험이 많다. 또한, 경험으로써 발전하는 족속이 대부분이었다.
‘쳇, 머리 아파. 내가 언제부터 앞뒤 생각하고 행동했다고……. 결국 밟아 줄 수밖에 없다 이거지?’
진궁과 마주 선 진무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자세를 취했다.
처음이었다.
진무의 몸이 된 이후 처음으로 기수식을 취한 것이다.
“좋구나! 탄탄하다. 기본공인 칠성권(七星拳)의 자세가 그리도 완벽할 수 있다니!”
진궁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청우가 익히고 있는 무당의 기본 권공인 칠성권이었으나 진무가 취한 그것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허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자세였다.
“언제까지 감탄만 하고 자빠져 있을 거야? 할 거면 빨리해.”
“하하! 내 너무도 놀라 너를 기다리게 하였구나.”
진궁이 주먹을 움켜쥐고 진무의 반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취한 무극현공권(無極玄功拳)의 자세에 진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검 들지? 그 편이 조금이라도 유리할 텐데?”
“녀석. 좋은 자신감이다. 하나 적수공권인 사형제에게 검을 쓰는 것은 규율로 금하는 일. 그리고 이 사형의 주먹이 그리 녹록지는 않을 것이다.”
멍청한 놈. 또 규율 타령이냐?
이기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지. 그리 고지식해서야.
하지만 진궁이 자세를 취하자 몸에서 뻗어 나는 기세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꾸밈없이 정직하다.
무릇 기운은 가진 사람의 성격을 대변하는 법이었다.
진궁의 기운은 올곧다.
이리저리 간을 보지 않고 정면에서 곧장 뻗어져 진무의 전신을 압박하려 했다.
‘이 자식은…… 진짜 도사, 아니 무인이로군.’
진무는 진궁에게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스승이었던 명진.
자소궁을 등지고 혁련무강의 앞을 막아섰던 그의 잔상이 겹쳐졌다.
아무리 도를 수련한다 하여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본시 악하여 유혹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명진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는 구걸하지 않았고, 목숨을 내걸고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기에 기특했다.
그렇기에 자소궁을 무너뜨릴 수 있었음에도 혁련무강은 명진을 살려 주고 물러났었다.
진궁은 그런 명진을 닮아 있었다.
그 역시 자신의 길을 향해 흐트러지지 않고 나아가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다.
이 무림에 몇 되지 않는.
하지만.
봐줄 수는 없다.
그냥 조금, 아주 조금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찌이-익.
발끝이 밀리며, 둘은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뻗어진 둘의 손등이 닿는 순간 둘의 눈동자에서 신광(神光)이 쏟아졌다.
파파팍!
지켜보는 이대제자들은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움직임이었다.
근래 현기를 깨달은 청상만이 어렴풋이 그들의 움직임이 남긴 잔상을 뒤쫓고 있었다.
“허!”
청상의 놀람에 이대제자들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보이지 않는 둘의 대결보다 청상에게 듣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청상은 그저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호? 제법인데?’
놀라기는 직접 진궁을 상대하고 있는 진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궁은 초식의 이해도와 깊이에서 진무를 따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변칙적인 공격을 해도 수없이 공격을 허용하면서도 자신이 아는 바를 그대로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또한, 지극히 자연스럽다.
공격의 흐름이 끊임없이 연결되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게 꼭 좋은 건 아니지.’
진궁의 움직임에 감탄하던 진무가 갑자기 멈췄다.
‘엇!’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던 공수에 순간적으로 엇박이 끼어들자 진궁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짧은 순간의 멈춤이 공격의 맥을 끊고 있었다.
‘이, 이런!’
뻗은 주먹과 발의 끝자락에서 생겨난 찰나의 멈춤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공격의 흐름이 흐트러졌다.
“크크크. 박자 뺏기다, 이 자식아.”
순간적으로 놓쳐 버린 진무의 신형이 유령처럼 휘어져 진궁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
놀람과 함께 진궁의 늑골 아래에 닿은 진무의 손.
뻐걱!
숨이 멎는다.
딱 그만큼의 발경.
뻗어 낸 기운의 충격으로 몸이 떠오르고, 진무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빡! 빠바바바박!
무차별적으로 날아오는 주먹과 발이 진궁의 전신을 두들겼다.
“끄아아악!”
* * *
“으음…….”
억눌린 신음.
“사숙!”
함께 산에서 내려왔던 우진궁의 이대제자 청강이 급히 진궁의 고개를 받쳐 안았다.
“물입니다. 드십시오.”
“으음.”
청강의 도움으로 겨우 몸을 일으킨 진궁이 힘겹게 물을 삼켰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정신을 차린 진궁이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무는?”
“출발하였습니다.”
“허, 내가 하루를 누웠더냐?”
“예.”
“거참.”
진궁은 진무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해 하루 동안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찰지게 팬 것인지 온몸이 욱신거려 왔다.
하지만 싫지 않은 기분에 빙긋이 미소가 지어졌다.
“어쩌면…… 그 녀석이 정말로 홀로 해낼지도 모르겠구나.”
“…….”
청강은 그토록 처맞은 진궁의 미소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형에게 말버릇이…… 음, 그것만은 잔소리를 해서라도 고쳐야 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