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20
420화
새로운 목표는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무림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은 끝났다. 이제는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갈 때.
와중에 대궁과 태자라는 먹음직한 목표가 나타나 주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그래, 하늘이 눈곱만 한 도움을 주어 날 되살린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인 것이다.
정사마를 통일해 무림계에 군림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뭐…… 한 백 년에 한 번? 아니면 천년에 한 번 정도?
어쨌거나 나 말고도 그런 놈이 없으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황가는 다르다.
그곳을 발아래 두는 순간 인세에서 이룩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고 망할 놈들에게 길러져 점소이에 짐승사냥의 미끼나 하던 나다.
내가 잘나서 망할 영감탱이에게 무공을 배웠고, 또 내가 잘나서 사패천주에 오르는 기염까지 토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보잘것없는 인생이었다.
이젠 다르다.
이 한 방으로 신분 상승, 인생 역전.
진무란 무인의 파란만장한 성공 이야기로 대대손손 기록될 것이다.
일찍이 황제를 발아래 두었다는 청무 조사? 풉! 그건 이제 업적 축에도 못 낀다.
고로 이건 무조건 해내야만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물론 지금으로도 충분히 고금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것은 사실이다.
하나 뒷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진무는 새로운 목표에 헤어날 수 없는 기쁨과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저, 사숙? 무슨 말씀이라도…….”
진무가 자신의 감정에 흠뻑 취해 아무런 말이 없자 청상이 대표로 나서서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가만있어 봐라.
이 사숙 생각 좀 정리하자.
자, 이제 어떻게 한다?
일단은 대궁은 접어 두고 태자부터 찾아야 한다.
찾는 놈이 많다.
양소방의 말로는 귀비라는 년이 서창을 동원해 찾고 있고, 영왕이라는 놈은 동창을 동원해 찾고 있다고 했다.
정무맹이 영왕과 결탁해 발 빠르게 움직였으니 모르긴 몰라도 태자에 관련하여 꽤 많은 정보를 알아내었을 것이다.
양소방에게서 간략하게나마 태자의 신상 정보를 얻었지만, 이미 움직이는 중인 그들보다 앞설 수는 없었다.
그럼 어찌한다?
생각을 짜내야 한다.
지금부터 한편은 없다. 어느 놈이든 태자를 먼저 확보하는 쪽이 이기는 법이다.
“하아, 젠장.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 넓은 중원에서 열다섯 살 먹은 태자 놈을…… 응? 열다섯 살?”
자신의 일행을 바라보던 진무의 시선이 갑자기 우양진에게서 멈췄다.
열다섯 살…….
하, 이거 봐라?
곤궁이통(困窮而通)이라더니.
우양진과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제갈공명이 살아 돌아와 절을 하고 배움을 청할 만큼 기찬 생각이 떠올랐다.
우양진, 열다섯 살.
유장에게 듣기로 연기력이 하도 출중해서 하마터면 장가도 안 간 자신이 진짜 아들인지 착각을 할 뻔했다 하지 않았던가?
진무의 미소가 점점 더 음흉하게 바뀌자 모두가 동정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우양진을 바라보며 그에게서 슬며시 떨어졌다.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우양진은 빠르게 엄습해 오는 불길함에 이내 털썩 주저앉아 울먹거렸다.
이미 몇 차례, 아니 수도 없이 보았다.
진무의 신경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맞고, 대꾸했다고 맞고, 눈을 마주쳤다고 맞고…….
“살려 주십시오, 스승님!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사숙, 우 공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차라리 저를 벌하십시오.”
우양진에 이어 청상마저 그 앞을 막으며 죄를 청해 왔다.
응? 뭔 개소리야? 대체 니들은 그간 나를 어떻게 생각해 온 거냐?
우양진의 갑작스러운 사죄가 어이없었고 청상의 행동이 뭔 지랄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미 진무의 머릿속에는 계획이 착실하게 세워지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태자를 찾지 못했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다면 모든 이목이 그쪽으로 쏠릴 것이다.
상황이 딱 떨어지지 않는가?
궁의 잡놈들이 정마대전을 일으키기 위해 만들었던 가짜 구야자 사건을 차용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놈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놈들이 정신이 팔린 사이에 여유롭게 진짜 태자를 찾는다.
자, 그럼 우선 나의 눈과 귀가 되어 줄 놈부터 만들어야겠지?
진무의 시선이 각출을 향했다.
사람은 좋은데 입이 가벼운 놈.
지금으로서는 이만한 놈이 없었다.
“각출아.”
“옙!”
혹시나 자신에게 붙지도 않은 불이 우양진에게서 옮겨 오지 않을까 긴장한 각출이 경직된 자세로 대답했다.
“지금부터 네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야겠다.”
“주, 중요한 역할이요?”
“그래. 개방의 후개씩이나 했던 네가 나를 위해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너밖에 없어.”
“처, 천주님……?”
어깨를 힘껏 움켜쥐는 진무의 모습에 각출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뭐지 이 눈빛은?
어째서 저런 신뢰가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지?
오직 진무를 위해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
서, 설마 지금 자신이 저 괴물 천주에게 인정을 받은 건가? 도움을 청해 올 정도로?
“천주님……!”
머리가 하얘졌다.
그동안 모질게 처맞아 온 기억들이 일시에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 사내는 자신을 인정해 주는 자를 위해 목숨도 바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명하십시오! 개방의 각출! 성심을 다해 수행하겠습니다!”
“…….”
각출이 ‘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의 자세로 답해 오자 진무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래야지.
너는 지금부터 나의 눈과 귀가 되어 줄 이중 첩자니라.
“지금 즉시 개방으로 돌아가라.”
“알겠…… 예?”
힘차게 대답하던 각출이 갑자기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개방으로 돌아가라고? 왜?
하지만 진무의 표정이 너무도 심각했기에 도저히 물어볼 수가 없었다.
“각출아.”
“예?”
“소방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눈 것을 보았겠지?”
“예.”
안 그래도 기막으로 소리까지 통제하며 심각하게 나누던 대화의 내용을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었다.
“지금 무림의 상황이 풍전등화와 같다. 너도 알아보면 알게 되겠지만, 궁의 놈들이 곧 중원에 당도하려 한다. 그들은 무림의 전복을 넘어 이 나라까지 위협하고 있구나.”
“…….”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냐? 난제로다, 난제야.”
갑자기 처연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진무의 모습에 감화된 각출이 콧구멍까지 벌렁거리며 숨을 씩씩거렸다.
“이제 그들을 상대해야 할 것인데 모든 것이 검은 장막에 싸여 있는 듯하니, 나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구나.”
“음…….”
한탄에 가까운 진무의 목소리에 각출이 절로 침음했다.
“하니 네가 나의 눈과 귀가 되어 주려무나. 개방으로 돌아가 정무맹이 움직이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은밀히 알아보고 내게 보고해 다오.”
저 천주가 부탁을 했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빌어먹는 능력뿐이라며 제 자존감을 후려치기 바빴던 저 망할 천주가.
그런데…….
“으, 은밀하게요?”
“그래. 특히 개방의 움직임을 알아내 다오.”
“하지만…….”
“암, 내 안다. 어찌 모를까? 사문을 몰래 살핀다는 것이 저어되겠지. 하지만 무림을 위한 일이다. 무림의 안녕이 너에게 달린 것이야.”
“무림이…… 제게…….”
진무의 능란한 언변과 눈빛, 그리고 시기적절한 손짓과 발짓은 각출의 마음을 들쑤시기에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개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장하다, 장해. 내 너를 믿고 또 믿을 것이다.”
“맡겨 주십시오!”
진무의 격려에 각출이 제 가슴을 탕탕 소리가 나도록 때리며 다짐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내가 시킨 일을 말해서는 안 된다.”
“방주나 무풍개 어른께도요?”
“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지 않더냐? 지금은 힘들지라도 모든 일이 끝나면 너는 중원을 구한 영웅으로 기록될 것이다.”
“중원을 구한…… 영웅…… .”
각출이 홀린 듯이 진무의 말을 되뇌었다.
“알겠습니다. 무림을 걱정하시는 천주님의 마음, 그리고 그 말씀.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겠습니다.”
“장하다. 참으로 장하다.”
진무가 각출을 와락 끌어안고 등을 두들겼다.
“천주님…….”
감격을 이기지 못한 각출이 금세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개방이 은밀히 찾고 있는 소년이 있을 것이다. 내겐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 아이게 관한 정보를 모조리 나에게 넘기거라.”
“알겠습니다.”
각출이 최면에 걸린 것처럼 바로 대답했지만 진무는 여전히 불안했다.
입 싼 거지 놈. 요 정도로는 너를 믿을 수가 없지.
“각출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 내가 내린 명은 절대로…….”
“발설치 않겠습니다!”
“장하다. 어찌 이리도 장할꼬.”
대답 한 번에 칭찬과 격려가 쉬지 않고 쏟아지니 각출의 가슴은 부풀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았다.
모두가 비밀 임무를 받은 자신을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지 않는가?
하물며 이제 개방으로 떠나니 더 이상 그 지옥 같은 수련을 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대화라 포장된 구타를 견디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다.
이야기가 무르익었음을 너무도 잘 알아챈 진무가 각출의 절절한 마음에 완벽한 쐐기를 박아 넣었다.
“각출아.”
“예?”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네가 발설해서 궁의 놈들을 처단할 계획이 틀어진다면…… 우린 죽어서도 긴 시간 대화를 이어 가게 될 것이란다.”
“…….”
신뢰의 눈빛 안쪽 깊숙이 담긴 섬뜩함에 각출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되었다.
가거라, 나의 충실한 이중 첩자여.
개방의 동향을 모조리 파악해서 나에게 안기거라.
“그럼 부디 무운을 빈다. 서둘러 가거라!”
“알겠습니다.”
진무의 응원에 힘입어 각출이 숨 한 번 쉬지 않고 즉시 떠났다.
진무는 혹여 각출이 돌아볼세라 그 뒷모습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그러기를 한참.
“크크크.”
무림을 걱정하며 밤이라도 지새울 듯했던 진무가 얼굴을 싹 바꾸고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각출이는 보냈고, 이제 진짜로 계획을 시작할 때였다.
“양진아.”
“예?”
우양진이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니가 수고 좀 해야겠다.”
“……?”
그래, 넌 이해가 안 되겠지.
이해하지 마라. 그냥 이 스승님께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너의 연기력이면 충분하다.
한차례 우양진의 머리를 쓰다듬은 진무가 능서현을 바라봤다.
“서현.”
“예, 주군!”
“북리도천에게 전서를 보내라. 삭월천주 이하 모든 정보 자산과 마교 내에서 사람을 지키는 데 특화된 최강의 호위를 원한다고.”
“최강의……?”
“그래. 이 무림에서 나 이외에는 절대로 뚫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놈 오십을 추려 감숙 천웅방으로 은밀하게 보내라고 해.”
“알겠습니다. 즉시 전서를 보내겠습니다.”
능서현의 즉답에 고개를 끄덕인 진무가 황신을 바라봤다.
“신.”
“예?”
“세찬이에게 전서를 보내라. 내가 감숙의 천웅방에서 기다린다고.”
“네!”
“소동보. 너는 살막의 특급살수를 모조리 불러들여라.”
“마찬가지로 천웅방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진무의 명령을 받은 이들이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이걸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크크크,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진무가 아니면 절대로 행할 수 없는 계략.
정무맹은 물론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을 거대한 판이 짜였다.
누구도 생각 못 한 공동산의 어귀에서.
혹여 실패하면……?
쯧, 재수 없게시리.
무조건 성공한다. 나의 사전에 실패란 없으니까.
태자를 가지는 것은 천하에서 오직 나, 진무뿐이다!
“크핫핫핫!”
진무가 별안간 앙천광소를 터트리자 청상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숙,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청상아.”
“예?”
“니가 걷는데 뛰는 놈이랑 나는 놈이 앞질러 가고 있으면 어찌해야 하는지 아니?”
“…….”
뭔 개소린가 싶겠지.
걷는 놈은 절대로 앞선 두 놈을 이길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이 사숙은 걸을 것이다.
뛰는 놈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나는 놈은 날개를 꺾어서.
그럼 결국 걷는 놈이 이기는 법 아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