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21
421화
감숙성 난주에 자리 잡은 천웅방.
천웅방주 원천호는 갑작스러운 방문객들로 인해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
회합장으로 마련된 전각의 내실에 앉아 서로를 노려보는 자들.
왜 하필…….
울상이 된 원천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기 바빴다.
제일 먼저 찾아온 것은 하오문의 수장, 사도서생 명세찬과 그 휘하의 은위단이었다.
사패천의 권력자 중 하나인 그가 변방의 세력권에 직접 나타난 것만 해도 천웅방 전체가 발칵 뒤집히고도 남을 일인데…….
명세찬의 뒤를 이어 은밀하게 천웅방에 나타난 두 명의 인물.
부리부리한 호목에 날카롭게 뻗은 검미, 한 자루의 칼날 같은 매서운 기도가 인상적인 사내는 적염제 북리도천의 칼이라 불리는 염왕대주 마강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선 키가 크고 깡마른 체구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자는 중원 삼대 정보 조직이라 불리는 마교 삭월천의 주인, 매환이었다.
대체 왜?
아무리 진무가 마교를 정벌했다고는 하지만 어째서 이름만으로도 난리가 날 법한 그들이 경계를 넘어왔단 말인가?
그것도 하필이면 천웅방에?
“흥, 사파의 떨거지 놈과 같은 자리에 있다니 기도 안 차는군.”
“우리 매환이가 많이 크더니 선을 넘네. 나한테 떨거지 같은 소리를 다 하고.”
매환의 말에 명세찬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싸늘하게 비웃었다.
“미친놈, 원래 키는 내가 더 컸지. 다른 곳도 그렇고.”
“오, 그래? 그 냄새나는 발목이라도 잘라서 좀 줄여 줄까? 고자 만들기는 더 쉽고 말이야.”
“자신 있으면 어디 한번 해 보시든지?”
매환이 옆구리의 검병에 손을 대며 이죽거리자, 명세찬도 그에 질세라 싱긋 웃어 보이며 자신의 애병인 한철 서책을 움켜쥐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각각 사파와 마교를 대표하는 정보 조직의 수장.
거지 주제에 정파랍시고 겉으로나마 점잔을 빼는 개방과는 달리 하오문과 삭월천은 오랫동안 충돌해 왔고, 자연히 그 사이에서 죽어 간 이들도 여럿이었다.
아무리 이제 같은 주인을 모시는 사이라고는 해도 뿌리 깊은 원한이 쉽게 해소될 리는 없었다.
아니, 당장 생사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왜?
어째서! 하필 천웅방이냐니까?
싸울 데 많잖아.
천지가 평지고 산지인데 니들이 왜 여기 와서 서로 눈을 부라리는 건데?
원천호는 체면이고 나발이고 땅을 치며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만하지. 쓸데없는 싸움은 우리를 청하신 그분께 누가 될 뿐이다.”
서로 으르렁거리는 매환과 명세찬을 번갈아 보며 난감해하는 원천호를 보다 못한 마강이 중재하고 나섰다.
“뭐야? 얘 혼자선 쫄리니까 둘이 덤벼 보려고? 하긴, 마강 니가 궁금하긴 했어. 북리도천이 끼고 사는 통에 그 잘난 칼 솜씨 구경할 일이 있었어야지.”
명세찬이 눈빛을 날카롭게 번득이자 마강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북리……도천?”
그가 눈가를 씰룩거리는 것과 동시에 내실에 차디찬 한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누울 자리 못 보는 미친놈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감히 전대 교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다니.”
“지랄. 전대 교주니까 막 부른다. 왜, 꼽냐?”
“가부자, 말을 가려 하라!”
“이런 씨발 놈이! 누가 가부자야!”
명세찬이 가장 혐오하는 말.
오직 진무만이 부를 수 있는 그 멸칭이 튀어나오자 명세찬이 욕설과 함께 거친 살기를 뿌렸다.
퍽, 퍼퍽!
넘실거리며 충돌하는 두 개의 살기에 탁자와 벽이 퍼석거리며 부서졌다.
절대자라 불리는 자들의 기세 싸움에 온 힘을 끌어 올려 간신히 버티던 원천호는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망할, 그러니까 대체 왜 니들이 한자리에 있는 거냐고.
어째서 천웅방이냐고.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 놓은 주인공은 왜 안 나타나는 거냐고!
원천호는 그들을 천웅방으로 불러들인 진무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아니 지난번에는 마교의 관문인 이오현을 공격하라고 하지 않나.
그때도 일이 잘 해결되었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마교와 전면전을 치를 뻔했다.
대체 전생에 자신이 무슨 죄를 지어 매번 이 모양이란 말인가?
좋은 날을 골라서 치성이라도 드려야지 원…….
벌컥!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하던 그때, 누군가 회합장의 문을 거침없이 열어젖혔다.
“뭐야? 다들 벌써 도착했어?”
“…….”
“…….”
그 해맑은 목소리에 회합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살기가 씻은 듯이 가셨다.
그 망할 상황에서 난데없는 등장으로 원천호를 구해 준 은인은 다름 아닌 진무였다.
“아, 오셨습니까?”
명세찬이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반갑게 고개를 숙였다.
“그간 어찌 지내셨습니까?”
“뭐 그럭저럭 지냈어. 사패천에는 별일 없지?”
“예. 천 단주가 천주님을 찾아가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말리느라 고생한 것만 빼면요.”
“우명이가?”
“약벽 누이와 제가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그 고집.”
“쯧쯧, 그놈은 어째 나이를 먹어도 한결같으냐?”
“그러게요.”
“그래, 몇이나 왔어?”
“은위단 전부를 끌고 왔습니다.”
“서른이나? 뭐 하러 그래? 혼자 와도 되는데.”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이 명세찬이 마강과 매환을 힐끗 쳐다보며 자부심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봤냐? 이 자식들아?
천주님과 나 사이가 이 정도야.
니들은 꿈도 못 꿀걸?
그런데 우쭐해진 명세찬을 부러워하기는커녕 슬쩍 비웃음을 머금은 마강이 갑자기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염왕대주 마강이 교주님의 존체를 배알합니다.”
“삭월천주 매환이 교주님의 존체를 배알합니다.”
이마는 물론 사지를 땅바닥에 밀착시킨 채 큰 목소리로 외치는 극상의 예법.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고개를 처박은 그들은 일말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상하 간의 예의는 마교가 제일이다. 인사만 받아도 대접받는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하핫! 이 사람들 뭘 그렇게나. 우리 사이에 예의가 다 무슨 소용인가? 그만하고 일어나 앉아.”
“아닙니다. 어찌 저희 같은 것들이 존귀하신 교주님과 동석을 하겠습니까?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원, 사람들하고는.”
예의 가득한 그들의 모습이 싫지 않은지 진무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손사래를 치며 다가갔다.
“갑자기 연락을 받고 먼 길 오느라 고생했겠구만.”
“…….”
“북리 교주께서는 별고 없으시고?”
“그렇습니다. 존귀하신 분의 배려로 근래 소일거리를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계십니다.”
“그 양반, 이제 쉴 때도 되었지.”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래, 자네들은 얼마나 왔나?”
“호위로 청하신 것에는 저를 비롯한 염왕대 일백이 왔습니다. 또한, 지금 이곳에는 없지만 삭월천의 무인 일천이 감숙의 전역에 몸을 숨긴 채 대기 중에 있습니다.”
“삭월천이 일천이나?”
“예.”
“너무 과하구만. 은밀히 오라고 했더니.”
“걱정 마십시오. 산서상회의 상인, 표국의 쟁자수, 혹은 신강과 감숙을 넘나드는 여행객 등으로 위장했으니 눈치챈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 뭐 그쪽 방면으로는 자네들이 뛰어나니 알아서 잘했겠지.”
진무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삭월천이야 은위단과 마찬가지로 정보 조작만 하면 되니까 차치하더라도 염왕대 일백이라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아니, 넘쳐 흐를 정도다.
북리도천을 수호해 온 그들의 호위라면 그 누구도 우양진을 손아귀에 넣지 못할 것이다.
“뭘 그렇게나 많이. 어쨌든 잘됐구만. 자, 일어나. 어서.”
거듭되는 진무의 권유에 마지못해 일어난 마강이 힐끗 명세찬을 보며 비웃었다.
봤냐? 예의도 모르는 망할 가짜 공자 놈아. 주종 간의 예의는 이렇게 지키는 거다.
그리고, 고작 은위단 서른?
우리 봐라. 지원을 하려면 이 정도로는 화끈하게 해야 하지 않겠냐?
그 비웃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행동이 그들과 비교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던 명세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자, 다들 앉으라고. 그리고 거기 천웅방주. 가서 차라도 한잔 내와.”
“예? 예!”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던 원천호는 그 불편한 자리를 이탈하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급히 물러났다.
“다들 궁금하지? 어째서 공사가 다망한 그대들을 이리 한자리에 청했는지?”
진무가 대화의 포문을 열자 양측이 지지 않고 대답했다.
“할 일은요? 천주님께서 부르시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만사 제쳐 두고 뛰어와야지요.”
“천 리 길인들 마다하겠습니까?”
“저는 만 리…….”
“이만 리…….”
“삼…….”
“…….”
조금씩 거리를 늘리는 마강과 명세찬의 모습에 진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니들 지금 누가 더 충성심이 깊은가 겨루냐?
나이도 잡술 만큼 잡수신 놈들이 설마 지금 애들처럼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이라도 하는 거야?
“저는 땅끝까지라도 갈 수 있습니다!”
“지옥이요!”
이젠 아예 벌떡 일어나 탁자를 짚고 얼굴을 들이댄 채 서로를 잡아먹을 듯 마주 노려보는 둘.
미친놈들, 그러다가 둘이 입맞춤이라도 하겠네.
“하하, 이놈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애처럼 기 싸움이냐? 그만들 해라.”
목소리가 낮았기 때문일까?
이미 과열된 둘은 진무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으르렁거렸다.
“어쨌든 내가 그대들을 부른 건 다름이 아니고, 둘이서 함께 뭔가를 좀 해 줬으면 해서 말이야.”
“함께요? 하핫, 천주님. 그냥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마교의 떨거지들이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다고. 괜히 다 된 밥에 재나 뿌리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뭐든 염왕대와 삭월천에게 맡겨 주십시오. 고작 배수나 기녀 따위를 수하로 부리는 하오문이 어찌 저희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수는 많아도 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나는데.”
“뭐야? 이런 빌어먹을 자식이!”
“흥! 너야말로!”
또 싸우네.
“그만해. 둘이 반드시 같이해야 할 일이야. 사안이 작지 않다고. 재수 없으면 개방과 정무맹은 물론 동창에 서창과도 일전을 벌여야 하니까.”
“그럼 응당 저희가 해야지요!”
“아닙니다. 저희가 합니다.”
“…….”
서로 지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단계별로 높여 가는 모습에 진무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니들이 무슨 악공이냐?
번갈아 가면서 오음육률이 뭔지,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가 뭔지 나한테 알려 주려고?
서로 노려보기 바빴던 마강과 명세찬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진무의 눈썹이 서서히 역팔자로 치솟는 것을.
다른 이들은 이미 휘말리지 않으려 벽 쪽으로 한참이나 물러난 채였다.
진무는 여전히 핏대를 세우며 노려보는 둘을 향해 덤덤히 손을 뻗었다.
그래, 내가 굳이 니들을 데리고 말로 설명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나름 자존심을 생각해서 애들 있는 데서는 손을 안 대려고 했는데…….
지금부터 내 친히 궁상각치우를 알려 주지.
턱.
“……?”
휘익, 콰앙!
“크으윽!”
진무가 둘의 목을 잡아채고는 그대로 탁자에 처박아 버렸다.
“한번 그만하라면 그만해야지, 왜 말을 안 들어 처먹어?”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끝낼 진무가 아니었다.
“내가 그만하랬잖아, 이 새끼들아!”
쉬이익! 콰직, 콰직, 콰직.
“이런 쌍놈의 새끼들이 나이를 처먹어서 귓구멍이 좁아졌어?”
콰직, 빠각!
“황신이 불러다가 송곳으로 넓혀 줄까?”
쿠악, 퍼억, 쩌적.
“지금이 어떤 시국인데 자존심 싸움이야? 어?”
콰직, 콰직, 우지끈 콰아앙!
내실이 순식간에 엉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 사람의 유형은 대개 두 종류였다.
화를 내면 풀리는 사람과 화를 내면 낼수록 더욱 화가 나는 사람.
마강과 명세찬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진무는 후자였다.
그리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등선까지 걷어차고 온 성질머리가 어디 가겠는가.
진무는 여전히 진무였다.
“차라리 뒈져라. 뒈져 버려, 이 새끼들아!”
콰직, 콰직, 콰직.
“크아악!”
때리고 처맞고 부서지는 소리가 오음이 되어 울려 퍼지고, 진무의 호통과 마강과 명세찬의 비명이 가락이 되어 내실을 가득 채웠다.
이미 여러 번 짓밟혀 본 명세찬과는 달리 생소한 경험을 하게 된 마강은 혼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교, 교주…… 읍, 읍읍.”
운 좋게 살아남은 매환이 조심스레 진무를 막아 보려다 청상에 의해 입이 막혔다.
“……?”
자신을 향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 대는 청상.
그러고 보니 내실에 들어와 있는 모두가 고개를 돌린 채 두 사람이 짓밟히는 모습을 외면하고 있었다.
마치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이.
아! 설마 그런 건가?
괜히 참견했다가 휘말려서 같이 맞을까 봐?
매환은 본능적으로 진무의 옆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체득해 나가고 있었다.
좌우지간 장차 중원을 통째로 뒤흔들 회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엉망진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