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22
422화
“예에?”
우양진은 하마터면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다.
비단 그뿐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눈을 찢어질 듯 동그랗게 뜨고 진무를 바라보았다.
가짜 태자를 만든다고?
심지어 우양진이 그 역할을 한다고?
이 미친 개천주가 이젠 하다 하다 역적 놀이까지 하려는 것인가?
우양진은 그제야 진무가 말한 수고의 의미를 알게 되었지만, 이건 도무지 수고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죽일 거면 차라리 칼 하나씩 던져 주고 이 자리에서 자결하라고 등을 떠미실 일이지. 아니면 절벽에서 밀든가…….
이게 차도살인지계라면 아마 역사상 최대의 규모이리라.
무림 자체를 지워 버릴 수도 있는.
“스, 스승님…….”
제게 대체 왜 그러시는데요?
뭘 시켜도 묵묵히 잘했었잖아요?
무인들도 힘들어하는 그 수련을 꾀 한번 부리지 않고 다 했는데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입니까?
“양진아, 나는 너의 출중한 연기력을 믿는다.”
“…….”
그게 지금 제자에게 할 말이냐? 이 미친 스승아.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린 우양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 줄기 희망을 담은 눈빛으로 진무를 올려다보았다.
제발 농담이라고 말해 주세요.
제가 태자라니요?
지금이야 모두가 부러워하는 스승님의 제자지만, 애초에 전 화전민촌에서 태어난 농부의 아들이라고요.
만약에 일이 잘못되면 저는 당연한 일이고, 부모님과 제 동생들까지 다 죽어요.
아마 기억도 나지 않는 윗대, 그 윗대의 할아버지들 무덤까지 찾아내서 부관참시를 할 걸요?
우양진은 처음으로 진무가 싫다는 생각을 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그때 구해 주지 말지. 희망을 줬다가 뺏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자, 시간이 없으니까 할 일들을 빨리 설명해 주마.”
우양진의 간곡한 눈빛을 매몰차게 무시한 진무가 혼이 빠져나간 듯 보이는 모두를 향해 자신이 세운 계획을 설명했다.
“세찬이는 지금부터 개방으로부터 태자에 관련된 모든 신상 정보를 확보해서 우양진을 변장시킨다.”
“또한, 태자를 빼돌린 환관이 있다고 했으니 그에 어울리는 놈 하나도 섭외해서 붙여. 경공이 빠른 놈이면 더 좋겠지.”
“마강과 염왕대는 태자의 호위로서 그가 잡히지 않도록 적들을 막는다.”
“황신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소동보와 살막을 이용해서 적들의 연락책을 은밀하게 교란한다. 하지만 연락 자체를 막아서는 안 돼. 서로 간의 연락을 늦추기만 하면 충분하다.”
“그사이 하오문과 삭월천은 겉으로는 정무맹에 협조하고, 저들의 시선이 양진에게 집중되면 가용한 모든 전력을 동원해서 진짜 태자를 찾는다.”
“진짜 태자를 찾을 때까지 가짜 태자로 변장한 우양진은 절대로 잡혀서 안 된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절대 죽이지 마라. 이상. 질문 있어?”
“…….”
막혔던 둑이 터진 듯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말에 도무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와중에 참 세세하게도 계획을 세워 둔 것이, 갑자기 어디 가서 전략 전술이라도 사사한 건가? 왜 이렇게 똑똑해졌지?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 걸로 아는데…….
어쨌든 정리하자면 간결했다.
우양진이 태자, 마강과 염왕대가 호위, 하오문과 삭월천은 정보 교란 및 진짜 태자 찾기.
그래, 그게 다다. 뭐 어려울 것이 없다.
간단해도 너무 간단했다.
간단하게 미쳤다.
저 개천주는 대체 지금 자신이 하려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인식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다른 일도 아니고 태자 사칭이다.
잘못하면 황제의 분노를 사 구족이 멸해질 위험한 계획을 고작 몇 마디의 말로 때워 버렸다.
주머니에서 동전 꺼내는 것보다 더 쉽게.
“저어, 사숙?”
“뭐야? 질문이야?”
모두를 대표해서 손을 드는 청상을 진무가 해맑게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맑냐고?
“농……담이시죠?”
“…….”
진무는 한차례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내 한숨을 깊이 내쉬며 탁자에 양 팔꿈치를 올리곤 깍지 낀 손을 천천히 턱에 괴었다.
그래, 아무래도 니들 다 내가 돌았다고 생각하나 본데…….
“청상아.”
진무는 눈을 한껏 휘어 웃었다.
“예?”
“농담 같으니?”
“…….”
저 해맑게 섬뜩한 미소를 보라.
안 한다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머릿속에 확연하게 그려졌다.
안 그래도 다 부서져 버린 내실이 순식간에 지옥도로 변할 게 분명하다.
황제의 분노도 무섭지만, 그건 나중 일이었다.
지금은 황제보다 눈앞의 저 지옥 야차 같은 개천주를 피해야 했다.
“처, 천주님.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일단 가짜 태자를 만들어 저들의 시선을 돌린다고 해도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진무의 스산한 위협에 찍소리도 못 하고 물러나 버린 청상을 대신해 명세찬이 황급히 반박했다.
“문제? 어떤 문제?”
진무의 눈썹이 서로 모여 하늘을 향해 치솟는 것이 심히 불길했지만 절대로 굴해서는 안 됐다.
맞아서 얼굴이 시퍼렇게 부어오르고 온몸이 빠짐없이 욱신거렸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자신의 말에 모두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명세찬은 지금 이 자리에서 진무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다른 이들은 고작 삼 년 정도의 인연이나 명세찬은 전생까지 포함하여 일 갑자는 족히 그를 알아 왔지 않던가?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바로 돈.
자린고비도 학을 뗄 그의 돈에 대한 집착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했다.
그 부분을 건드려 어떻게든 지금의 미친 짓을 막아야만 했다.
“천주님, 저들이 가짜 태자를 쫓는 동안 저들의 눈을 피해 진짜 태자를 찾으려면 하오문은 물론 삭월천의 모든 전력이 움직여야 합니다. 하다못해 길거리 부랑자들에게도 정보를 사야 하는데…… 그 정보를 죄 취합하고 분석하려면 실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갈 것입니다. 아니, 얼마가 들어갈지 추측도 되지 않습니다.”
“흠…….”
“……!”
진무의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먹혔다. 갈등하는 것이다.
쾌거를 이룩한 명세찬을 향해 모두가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
이 순간만큼은 마강과 매환마저 해묵은 원한을 잊고 그에게 모든 기대를 걸었다.
그들 또한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이 판은 엎어야 한다는 것에 가슴 깊이 공감하고 있었으니까.
“음…….”
치열한 갈등과 고뇌의 시간을 거친 진무가 무거운 표정으로 밖을 향해 외쳤다.
“유장!”
“예!”
명령과 함께 밖에서 대기하던 유장이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산서상회에 모인 자금이 얼마나 되냐?”
“꽤 됩니다.”
“정확히 말해.”
“음……. 한 개의 성을 일 년 정도 먹여 살릴 정도겠군요.”
“……!”
미친! 언제 그렇게 많이 모았단 말인가?
유장의 발언에 모두의 얼굴에 패전한 장수와도 같은 침울함이 어렸다.
“좋아, 그 정도면 됐다.”
쩔거럭.
고개를 끄덕인 진무가 허리춤을 끌러 깊숙하게 감춰 두었던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이건?”
“야명주다.”
그동안 쓰지 않고 모아 두었던 야명주.
천문학적인 가치를 가진 그것이 주머니 안에서 예쁜 얼굴을 드러내며 환하게 빛을 발했다.
제기랄. 저딴 걸 계속 들고 다녔단 말인가?
“황신!”
“예!”
“적생에게 연락을 보내라. 사패천에 그동안 모은 재물들을 보관한 비고가 있다. 그곳을 개방해서 모자란 비용을 충당한다.”
“처, 천주님. 그건 안 됩니다. 사패천 운영에도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인데…….”
명세찬이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잡아 보려 했지만, 진무는 매몰차게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지. 큰 이문을 남기려면 그에 걸맞은 투자는 당연한 일이야.”
“…….”
생각지도 못했던 진무의 통 큰 투자.
저 미친 짓에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부을 것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못했다.
하늘이 무너진다.
이젠 개천주를 막을 방법이 없다.
“교주님.”
끝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침몰하는 명세찬의 모습에 마강이 힘껏 손을 들었다.
이제 자신이 나서야 할 때였다.
“왜?”
“명하시면 반드시 받들겠습니다만 이런 중차대한 일에 계획을 허투루 세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주님 휘하에 있는 모든 이의 운명을 걸어야 할 일이니, 지금이라도 사패천의 총사와 마교의 군사인 마뇌를 불러 세부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
진무의 표정이 굳는다.
다시 갈등의 시간이 찾아왔으리라.
그걸로 되었다.
마뇌와 적 총사가 천웅방으로 오자면 아무리 빨라도 열흘은 족히 걸린다.
거기에 계획을 세운답시고 시간을 끌다 보면 저쪽에서 먼저 태자를 찾을지도 모른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비록 마교인이지만 도관이나 불당을 찾아가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를 드려서라도.
명세찬마저도 감동한 듯 마강을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해?”
“……예?”
“계획은 다 세웠잖아. 가짜 태자를 만들고 도주시킨다. 그사이 진짜를 찾는다. 뭐가 더 필요해?”
“…….”
안 먹힌다.
저 망할 인간은 진짜로 할 생각인 것이다.
명세찬에 이어 마강까지 고집불통인 진무에게 패배하자 모두가 실의에 빠진 듯한 모습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자, 빨리 시작하자고.”
“…….”
“하오문과 삭월천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진짜 태자를 찾아내.”
“…….”
“그리고 마강.”
“예.”
“절대로 잡히지 마라.”
음산한 위협과 함께 회합은 끝이 났다.
* * *
다음 날 밤, 어둠에 몸을 숨긴 이들이 세 패로 나누어 길을 떠났다.
그리고 열흘 뒤, 확인되지 않은 한 가지 첩보가 전서구를 타고 정무맹을 강타했다.
태자의 행적이 감숙에서 발견되었다.
그 충격이 만들어 낸 여파가 너무도 거세었기 때문일까?
툭 하고 불거져 나온 첩보는 순식간에 동창과 서창에 전해졌다.
출처가 다름 아닌 중원 최강의 정보력을 가진 하오문이다 보니 전 중원의 시선이 삽시간에 감숙으로 집중되었다.
반드시 감추어져 있어야 할 일이었기에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은밀한 자들의 입을 통해 들불처럼 번져 나간 이야기는 순식간에 와류(渦流)를 만들어 내었다.
소용돌이.
잔잔하던 수면 아래 작은 구멍 하나가 뚫리게 되면 물줄기는 그곳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린다.
그 하나의 어긋남에 거대한 흐름은 쥐어짜이듯 비틀리고, 그 소용돌이에 휘말린 모든 것들은 경계를 허물고 합쳐진다.
그리고 종내에는 원래의 목적을 잊고 오직 그 점과 같은 구멍을 빠져나가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급해질 수밖에 없다.
생각하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점을 향해 몰려드는 것은 하나의 물줄기가 아니기에, 목표에 당도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빨리 움직여야만 한다.
또한, 힘 있는 놈들에게 시간이 부족해졌으니 마땅히 크고 작은 싸움이 따라올 것이다.
싸움은 혼란을 만들고, 혼란은 사실과 거짓을 뒤얽는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를 만들어 낸 장본인은 이미 감숙을 떠나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천주님, 각출에게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천웅방을 빠져나온 진무에게 황신이 작은 쪽지 하나를 건넸다.
개방의 동향.
동창과 서창에 이어 양소방이 감숙으로 향했다고 한다.
멍청한 놈들.
이제야 죄다 몰려갔구나. 그래, 가짜를 쫓아다니며 열심히 싸우도록 해라.
진짜는 이 진무가 먹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