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26
426화
정무맹을 떠나 쉬지 않고 달린 끝에 저물녘이 되어서야 순천부에 도착한 진무는 곧장 영왕부를 찾아갔다.
영왕이 금군을 움직이기 전에 만나야 했기에 시간이 없었다.
따로 약속을 잡지 않은 터라 진무는 정문을 지키는 군병에게 아주 예의 바르게 청했다.
“영왕을 만나러 왔소. 나는 무당의…….”
“썩 꺼지지 못할까! 이곳이 어디라고 감히!”
“…….”
이 새끼가 아직 말도 다 안 끝났는데.
서슬 퍼런 기세로 막아서는 군병의 호통에 진무가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무당지검 진무라는 사람이오.”
“무당(武當)인지, 무당(巫堂)인지는 내 알 바 아니고 어서 꺼지지 못해?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와서 지랄이야?”
“…….”
군병의 태도에 화가 나기는 했지만, 진무는 차분하게 다시 한번 청했다.
이봐 니가 너무 직급이 낮아서 잘 모르나 본데, 나 진무라니까?
니들 주인이 날 만나겠다고 그 먼 신강까지 동창을 파견했었어.
사패천주 진무라고도 했고, 마교의 교주라고도 했다.
“이놈이! 치도곤을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
안 먹혔다.
그냥 꺼지란다.
마음 같아서는 저 목청 좋은 군병 놈과 함께 정문을 박살 내고 들어가고 싶은데 상대가 하필이면 황실의 종친인 영왕이다.
집을 습격하는 순간, 순천부를 지키는 군사들이 떼거리로 몰려올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역적 어쩌고 지랄들을 할 게 분명한데…….
물론 역적으로 몰리더라도 쫓아 오는 놈들의 멱을 죄다 따 준 다음에 숨어 버리면 그만이긴 하지만 지금의 목표는 황실과 싸우는 게 아니라 황실을 자신의 손안에 넣는 것이다.
애써서 가짜 태자까지 만들어 놓은 판에 일을 그르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미 무당지검이라고 밝혔으니 괜히 아무 죄도 없는 사문에 해를 끼칠 수도 있는 일이고.
그래. 대승적으로 생각하자, 대승적으로…….
그럼 이제 어쩐다.
영왕을 만나야 하는데 이 망할 군병 놈이 들여보내 줄 생각은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내 체면에 몰래 숨어들 수도 없고…….
잠시 고민하던 진무가 정문에서 물러나 황신과 대궁, 그리고 소동보를 불렀다.
“니들 셋.”
“예?”
“대화 좀 하게 들어가서 영왕 납치해 와라.”
“예…… 예?”
“괜한 소란 만들 필요 없잖아? 이런 일은 조용히 처리하는 게 상책이다.”
“…….”
저기, 천주님?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거나 그거나 둘 다 사고 치는 것은 매한가지 아닌가요?
영왕이 무슨 동네 꼬마도 아니고…… 아니, 여염집 아낙 보쌈하는 것도 이것보단 신중하겠어요.
“처, 천주님, 상대는 영왕인데요? 황실 종친의 가장 큰 어른이라구요.”
“그래서 뭐?”
“…….”
일부러 화를 낼까 둘러 말했던 황신이 진무의 반응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쯧쯧, 이놈들아 내가 그걸 모르겠니?
안다. 다 알아. 내가 바보냐?
그러니까 니들을 시키지.
걸리면 쫓기기밖에 더하겠니?
니들 잘 뛰잖아.
잡힌다고 해 봐야 감옥에 가거나 참수를 당해서 저잣거리에 효시(梟示)되는 게 고작 아니냐고.
“나는 너희들의 뛰어난 은신술과 경공술을 믿는다.”
진무는 진심으로 그들을 격려하며 주먹을 슬쩍 들어 올렸다.
“……!”
그, 그딴 걸 지금 격려라고?
망할, 얼마 전에 곤륜산에서 매병 걸린 풍환자와 만나더니 병이 옮으신 건가?
요즘 들어서 미친 소리를 너무 자주 하신다.
태자 사칭 같은 거대한 일을 벌이더니 황실 종친 납치 같은 일은 사소해졌나 보지 아주?
하지만 저 송곳니를 드러냈는데 안 들을 수도 없는 일이고…….
파팟!
울상을 한 셋이 순식간에 영왕부 안쪽으로 사라졌다.
빠르게 스며드는 그들의 기척을 느낀 진무는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요 근처 조용한 객점으로 데려와라.”
누구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한 사람은 들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작은 소리를 들은 황신은 차마 뱉어 내지 못한 욕설을 마음속으로 삭일 뿐이었다.
씨발, 미친 개천주 같으니. 가다가 똥이나 밟아라.
황신 등이 영왕부에 잠입한 지 한참, 군병 놈의 눈치에 정문에서 조금 떨어져 기다리던 진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소란은 들려오지 않는 걸 보니 셋 다 내부로 안전하게 잠입한 모양이었다.
말마따나 황실의 종친이니 그 내부에 적지 않은 군병이 있을 것이나 황신과 소동보, 대궁이라면 문제없다.
원래부터 은신술이 뛰어난 녀석들인 데다가 자신의 정성스러운 가르침 아래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성장했지 않은가?
아마 영왕부에 강의 고수 정도 되는 무장이 있지 않다면 그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물론 영왕을 납치해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들킬 수도 있는 일이지만, 뭐 그 녀석들이라면 알아서 잘하겠지.
“이보시오!”
다시 정문으로 다가간 진무의 부름에 그들을 내쳤던 정문의 군병이 짜증스럽게 쳐다보았다.
“또 뭐야?”
하, 요 새끼 봐라.
지가 영왕인 줄 착각하는 거 아냐?
대신 집에 살면 개도 대신처럼 행동한다더니.
제 위치에서 임무를 명확하게 수행하는 것은 좋지만, 그래 봐야 개 주제에 어디서 야자를 트고 눈을 부라린단 말인가?
“뭘 그리 화를 내시오? 그저 근처에 조용한 객점이 없나 물어보려는 것인데.”
“뭐야? 이 자식이 여기가 무슨 안내소야? 그딴 건 네놈이 직접 찾아!”
“…….”
뭐 이런 희로애락에 노(怒)만 가득한 놈이 다 있지?
참고 인내하려 했지만 군병 놈이 도를 넘어 버렸다.
기르는 개를 보면 주인의 심성을 안다고 했다. 영왕이라는 놈도 인성이 별로인 게 틀림없었다.
“빨리 안 꺼져?”
“…….”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닦달해 대는 군병의 모습에 진무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오랜만에 살계를 열어야 하나? 으슥한 데 데려가서 그냥 묻어 버릴까? 정문부터 시작해서 다 때려 부수고 안에 들어가서 영왕을 기다려?
진무가 심각하게 고민하며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자 또 다른 군병이 말리고 나섰다.
“이 사람, 전하를 찾아오신 손님에게 어찌 이러는가? 그리 잘못한 것도 아닌데.”
“시끄러워! 안 그래도 귀비 쪽 놈들이 호시탐탐 영왕부를 노리는데 별 잡스러운 것들까지 와서는.”
자, 잡스러워?
진무의 관자놀이에 굵은 힘줄이 돋아 올랐다.
약한 애들 괴롭히는 취미는 없는데…… 얘들아, 관들은 다 짜 뒀지?
“어허, 이 사람 그래도! 물러나 있게.”
“흥!”
화가 많은 군병을 밀어낸 동료가 진무를 향해 웃으며 사과했다.
“미안하오. 근래 영왕부의 사정이 워낙 흉흉하다 보니 이 친구가 신경이 곤두선 모양이오.”
“…….”
“조용한 객점을 찾는 것이면 담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가면 순천부의 뒷골목이 나올 것이오.”
“저딴 놈에게 뭘 그리 세세하게 설명해? 얼른 쫓아 버리지 않고!”
화가 많은 군병은 동료에 의해 밀려나면서도 침을 튀겨 가며 호통을 쳤다.
“…….”
너, 얼굴 똑똑히 기억했다.
순천부에 오자마자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참는다만 나중에 꼭 후회할 거야.
진무는 화 많은 군병을 향해 야릇하게 웃어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가자!”
“예.”
더 상대하다가는 진짜로 사람 하나 죽일지도 모른다 생각한 진무는 다른 군병이 알려 준 대로 영왕부의 담벼락 우측을 따라 걸어갔다.
뒤에서 화 많은 군병 놈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지만…….
참자, 아직은 아니다.
곧 좋은 날이 있겠지.
극도의 인내력을 발휘해 영왕부의 정문에서 한참을 벗어나던 진무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사숙, 어찌?”
청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고.
“주군, 아까의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돌아가서 군병 놈의 목을 뽑아 올까요?”
능서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목을 뽑다니, 이런 충성스럽게 잔인한 녀석 같으니.
그런데 그게 아니라…… 쟤는 뭘까?
아무리 황신 등이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벌써 기어 나올 리가 없는데.
답하지 않은 진무가 앞쪽에 있는 담벼락의 한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길가에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의 가지가 늘어져 담벼락에 닿은 곳.
바로 그 아래에서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솟구쳐 나무 위로 숨어들어 가더니, 진무 일행을 의식한 것인지 기척을 숨기고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근데 어쩌냐. 이미 봤고 지금도 잘 보이는데.
은신술을 익힌 놈이 분명한데, 황신과 소동보만 보다 보니 그 실력이 너무 조잡했다.
뭐 하는 놈일까?
담벼락의 안쪽은 분명히 영왕부인데 저렇게 몰래 빠져나온다면…….
영왕이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놈이거나, 아니면 영왕을 살피기 위한 적이거나.
뭐든 정상적이지는 않은 놈이란 뜻이다.
어쨌든 이런 횡재가 있나.
전자든 후자든 들켜서는 안 되는 놈이니 갑자기 지나가다가 날벼락을 맞은들 누가 문제 삼을 것인가?
때마침 내 눈에 걸린 니 운명을 안타깝게 여겨라.
“서현.”
“예, 주군.”
“쟤 잡아 와. 모가지 뽑지는 말고.”
“……?”
곧게 뻗은 진무의 손가락 끝이 향한 나무를 살피던 능서현이 싸늘한 미소를 머금고 몸을 날렸다.
뭐 직접 나설 수도 있는 일이지만 체면이 있지.
이런 자질구레한 일까지 직접 도맡아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파악!
능서현은 강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다. 그것도 와중에 진무를 땅바닥에 메다꽂은 전력이 있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진무도 놀랐던 그 빠른 접근 속도에 나무 위에 있던 놈이 기겁하고 도주를 감행했다.
그래 봐야 능서현에 비하면 벼룩이지.
투툭! 퍽! 쩍쩍! 터엉!
귀영마수라 불리는 능서현의 손바닥에 복면 쓴 놈이 나무를 채 벗어나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혔다.
짜악! 짝! 짝!
곧바로 멱살을 잡은 능서현이 아예 행동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릴 요량인지 쉬지 않고 따귀를 때렸다.
그 손놀림이 너무 빨라서인지 복면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속절없이 얻어맞고 있었다.
“사, 사숙, 너무 심한…….”
청상이 우려를 표했지만, 진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산적이나 수적을 보면 눈이 돌아가는 놈이 무른 척하기는.
봐라, 저 정돈 돼야지.
청상아, 너도 잘 보고 배워 놔라. 원래 조질 때는 확실하게 조져야 하는 법이란다.
“…….”
이윽고 능서현이 축 늘어져 버린 복면인을 바라보다 멱살을 잡고 질질 끌면서 진무에게 다가왔다.
“목은 뽑지 않았습니다.”
“잘했다.”
기특한 녀석.
대리만족이 충분히 느껴졌어. 아주 내가 때린 듯이 후련하구나.
“감사합니다.”
능서현이 황송해하는 표정으로 물러나자 진무가 돌 맞은 개구리처럼 땅바닥에 널브러진 복면인을 바라봤다.
“청우야.”
“예?”
“얘 좀 메라. 이래서야 무슨 대화가 될까? 정신을 잃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객점 가서 물어보자꾸나.”
“…….”
청우가 눈을 끔벅이며 복면인과 진무를 번갈아 쳐다봤다.
정신을 잃어요?
쓰고 있는 복면이 부풀 정도로 처맞은 게, 코끝에 손을 대 보진 않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죽은 걸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진무가 후련한 표정으로 객점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청우는 냉큼 복면인을 둘러업고 뒤따랐다.
역시 우리 청우.
금 궤짝도 잘 들고 사람도 잘 들고. 하여간에 뭘 메는 건 청우가 제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