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31
431화
끼이익, 쿵.
곽종산의 본가로 들어간 진무의 뒤로 정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요상타.
멀리 커다란 전각 앞으로 펼쳐진 거대한 연무장, 아니 훈련장으로 불러야 할 만큼 큰 정원에 군병들이 빼곡했다.
몇몇 제법 실력 있는 장수들도 보이고, 다른 군병들 또한 흉흉한 눈빛을 번득이며 예리하게 날이 선 창검을 쥐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생사의 격전을 수도 없이 치러 온 정예가 분명했다.
척, 척, 척.
덧입은 갑주가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마치 전각의 전방을 수호하듯 열을 지어 첩첩이 늘어선 그들의 모습에 진무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그의 앞에 펼쳐진 검산도해(劍山刀海).
뭐, 불청객이 찾아왔으니 제 주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이면 경계심을 내보일 만도 하겠지.
그런데 진무의 시선을 끄는 것은 그들의 위치였다.
다섯 명이 한 조를 이루는 군진의 기본 형태인 오(五)를 다시 늘어뜨려 방어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진법에 조예가 깊지 않은 자라고 해도 목적이 빤히 보였다.
전방의 적을 막는 전형적인 수비진이었으니까.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
진무를 안내한 수문장이 그리 말하고 뒤로 물러났다.
들어가라고? 저길?
이 새끼가 아주 실실 쪼개면서 장난하는 거냐?
군병들이 이룬 방어진은 단 하나의 입구를 제외하고 대전각으로 가는 모든 길을 막고 있었다.
게다가 수문장이 물러남과 동시에 진무를 막아선 군병들이 일제히 마보를 밟으며 창을 양손으로 잡아 중단세를 취했다.
창술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
들어오면 꼬치 꿰듯이 찔러 죽이겠다고 대놓고 말하면서 들어가란다.
하, 이 새끼들.
대화하자고 부른 게 아닌데?
손님 접대를 이딴 식으로 한단 말이지?
군병들을 바라보던 진무가 별안간 고개를 숙이며 웃기 시작했다.
“큭, 큭큭큭.”
“…….”
왜 웃는지 궁금하지?
좋아서 웃는다, 좋아서.
“이런 거란 말이지?”
혼잣말 같은 진무의 중얼거림에 군병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통상은 당황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지금 그들이 이룬 방어진은 수없이 많은 전투에서 경험이 축적된 사임배수진(死臨背水陣). 물을 뒤로한 채 목숨을 거는 진법이었다.
비록 열세인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기는 하나 곽종산에 의해 변경된 그것은 소수의 강력한 적을 상대하는 방어진이자 공격진이었다.
적이 입구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군병은 피해 따윈 무시하고 적을 섬멸하기 위해 움직인다.
모두가 죽음을 각오한 그것은 상대가 진무라는 걸출한 무인임을 고려하여 생각해 낸 최강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진작 말해 주면 좋았잖아. 내 딴에는 꽤 고민했는데 말이야.”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든 진무의 눈빛은 어느새 스산하게 변해 있었다.
대화, 설득…….
성격에도 맞지 않는 그 귀찮고 피곤한 과정을 거치기 위해 얼마나 머리를 쓰고 연기를 해야 했던가.
근데 이런 식이라면 거칠 것이 없다.
“좋아. 들어오라 했으니 들어가 주지.”
“…….”
“니들만 뚫으면 저 안에서 영왕과 좌도독이 나를 기다린다, 이 말이지?”
빙글거리며 웃는 얼굴.
마치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듯 쉽게 말하는 진무의 태도에 군병들은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리 이름 높은 무인이라 해도 철혈이라 불러도 좋은 죽음의 전장을 건너온 자신들이 아니던가?
진무의 태도는 기폭제나 다름없었다.
화약처럼 가득하게 쌓인 군병들이 살을 엘 듯한 살기를 뿜어내며 진무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진 살기는 거대한 군기(軍氣)로 변해 진무에게 집중되었다.
피부가 따끔거리고 뼈마디가 저릿해 올 정도로 강렬한 기운이었으나 진무는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자신이 선 위치에서 대전각까지.
종심으로 따지면 백여 장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의 진무라면 무당 호종보로 솟구친 뒤, 제운종을 펼쳐 그들이 찔러 오는 창극을 구름 삼아 밟고 지나가도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었다.
몸놀림이 구름을 넘어 바람같이 변한 진무다.
군병의 창극으로는 자신의 옷자락 하나 베어 내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지.
이런 대화.
진무가 가장 좋아하는 온몸으로 나누는 대화.
그 즐거움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와중에 이렇게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밥상까지 차려 놓았으니 떠먹지 않으면 실례다.
“넌 좀 기다리고 있어야겠다.”
“……?”
진무가 함께 끌고 온 이평세를 휙 하고 담벼락에 던져 놓고는 기어이 진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저벅.
태극을 이룬 이후 더 이상 상대를 위압하는 기세는 뿜어지지 않았다.
일휘를 어깨에 걸친 것만 아니면 무의 길에 들어선 적도 없어 보일 만큼 평범한 모습으로, 진무는 그저 걸었다.
하지만 마치 장벽처럼 굳건히 뭉친 살기 어린 군기는 그의 몸에 어떠한 제약도 가할 수 없었다.
저벅. 저벅.
걷는 걸음마다 천여 명에 가까운 군병들이 내뿜는 기세가 진무의 몸에 닿음과 동시에 산들바람처럼 변해 흩어졌다.
아무렇게나 걷는 걸음이었으나 너무도 여유로웠다.
저벅, 저벅, 탁.
“…….”
진무가 진의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멈춰 서자 수많은 창극이 일제히 방향을 틀어 그를 노렸다.
명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공격하는 자는 없었으나 무수한 첨단에서 느껴지는 예기가 전신을 후벼 팔 듯이 매서웠다.
하지만 진무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의 입구에 선 채 경치를 감상하듯 한 손을 들어 시선을 방해하는 볕을 가렸다.
“햇빛에 창검이 번쩍이니 잘 보이지 않더라고.”
히죽 웃은 진무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그 내부를 찬찬히 살폈다.
고작 한 장도 안 되는 너비의 입구였지만 거리가 가까웠기에 안을 보기에는 충분했다.
창수(槍手)들이 포진한 첫 번째 열.
그 뒤는 검을 든 무장들이 방어진에 힘을 더했고, 뒤이어 진무의 움직임을 제약할 방패수와 근거리용 단궁수가 있었다.
가장 처음 무리가 그 정도였다.
그 뒤는 군병들이 하도 많아서 보이지도 않았다.
새끼들, 많이도 준비했네.
“자, 그럼 어디 들어가 볼까?”
개전을 알리는 진무의 한마디에 군병들이 무구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온다. 모두 준…….”
일 열을 통제하며 명을 내리려던 무장은 이어진 진무의 행동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 이런 놈이?
분명 속도를 더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껏 여유로운 모습으로 자신들을 방심하게 했으니 갑자기 진 안쪽으로 뛰어들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또 걷는다.
너무도 당당한 그 모습에 당황한 무장은 명을 내리지 못했고, 명이 떨어지지 않으니 창수들도 찌르지 못한 채 지켜보기만 했다.
탁.
진무가 천천히 입구의 경계에 발을 들였다.
“쯧, 정예인 줄 알았는데 대응이 영 시원찮네.”
“…….”
“자, 들어왔다. 이제 어쩔 거냐?”
“…….”
태연스레 진의 경계를 넘어와서는 다음 행동이 무엇인지 묻기까지.
이상하다. 어째서 그가 다가오는 것을 빤히 보았음에도 명령을 내리지 않은 것이지?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까맣게 잊었던 무장이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길가의 들풀을 보고 발톱을 세우는 맹수는 없는 법.
태극을 이룬 이후 흔하디흔하게 볼 수 있는 자연처럼 잔잔한 기운을 품은 진무의 평범함은 어느 누구에게도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박수 소리를 내려면 맞부딪혀야 할 것인데 제 기운을 뿜어내지 않은 것은 물론 그들이 뿜어낸 살기마저 흩어 버렸으니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뭐 해? 시작 안 할 거야?”
“……!”
우두커니 선 무장을 향해 진무가 눈살을 찌푸렸다.
기껏 들어오라 그래서 들어와 줬더니 뭘 멀뚱히 쳐다보고 있어?
그러고도 니들이 좌군의 정예냐?
이래서야 시시해서 원. 좀 놀래켜 주기나 할까.
가볍게 들렸다가 내려지는 뒤꿈치가 대지를 짓누르는 순간.
쿠우우웅.
마치 거센 바람을 머금은 폭풍이 지면을 강타하듯이 거대한 기운이 군병들을 짓눌러 왔다.
“크윽.”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창수들의 무릎이 굽혀지면서 발이 땅바닥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단 일 보가 만들어 낸 변화.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이 순식간에 전장의 살벌함으로 물들고, 그 상황을 만들어 낸 장본인은 짓눌린 자들을 오연하게 내려다보았다.
“이, 이런 망할 놈이! 전군 개진하라!”
정예(精銳)라는 이름은 함부로 따라붙지 않는다.
고된 훈련과 시련을 이겨 내고서야 비로소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무장의 한마디는 위축된 군진을 일깨우고 전력을 다해 달리도록 채찍질했다.
슈아아악!
주저앉은 이들의 무릎이 펴짐과 동시에 창날이 사방을 빼곡하게 채우며 진무를 향해 섬전처럼 쇄도해 왔다.
암, 이래야지.
진무의 입가에 그린 듯한 미소가 감돌았다.
뻗어 나온 예기에 살갗이 베이고 뿜어진 핏물의 비릿함에 코끝이 절로 찡그려지는 전장.
검이 산이 되고 칼이 바다를 이룰 정도로 위험천만한 곳.
그러나 그까짓 산은 오르면 그만이고 바다는 건너면 그만이다.
슈욱! 텁!
쏘아져 들어오는 창대를 움켜쥐고 당기자 군병들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우르르 딸려 왔다.
빠가가각!
일휘를 던져 올리고 양쪽 군병의 투구를 잡아 힘차게 맞부딪자 돌 터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크억!”
머리를 마주 박은 두 군병이 신음과 함께 비틀거리고.
휘익! 쩌적!
모았다가 힘차게 펼쳐지는 진무의 주먹에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쓰러졌다.
“이 맛이지! 암!”
그게 시작이었다.
진무는 군병들의 틈으로 쾌속하게 파고들었다.
우직, 빠각! 쩍!
최소한의 내공만을 사용하는 그의 손과 발이 움직일 때마다 창대가 부러지고 검이 엿가락처럼 휘었다. 뼈 부러지는 소리는 덤이었다.
한번 넘어진 이들은 일어나지 못했다.
행동 불능이 될 정도로 뼈가 부러지거나, 아예 혼절해 버렸으니까.
“이 정도로는 턱도 없어!”
따다다당!
진무의 몸놀림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
손과 발은 철갑 두른 방패가 되어 파도처럼 휘몰아쳐 오는 창검을 튕겨 내고.
파앗!
뛰고 달리는 발은 노가 되어 창검을 헤치고 지난다.
하나 쾌속선이 되어 곧장 가지는 않을 것이다.
너희가 만든 이 바다와 산을 찬찬히 구경하는 유람선이 되어 노닐어 주마.
고절하다기보다는 약자들에게 내려치는 횡포를 닮은 진무의 무위에 군진이 본능적으로 물러났다.
어딜 가, 어딜.
짜자자작!
촘촘히 덧대어져 보검조차 긁고 지나가는 어린갑(漁鱗鉀)이 그의 손아귀에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핑, 피피핑!
사방에서 쏘아진 짧은 화살은 그의 몸 주위에서 흐르는 바람을 뚫지 못하고 회오리에 휩쓸리듯이 바닥에 떨어졌다.
쩌어억!
번뜩이는 창검은 그의 움직임을 조금도 제약하지 못했다.
죽음을 불사한 군병들이 사력을 다해 따라붙고 있었으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저, 저럴 수가!”
일 진을 상대하는 진무의 모습에 이 진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장이 놀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작 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강하다지만 백여 명의 군병들이 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좌군의 최정예로 구성된 군병들이 단 한 사람의 무인에게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젠장!”
싸움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이 진의 무장은 똑똑히 깨달았다.
진형을 바꾸어야 한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자를 일 진만으로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시기는 이르나 총력전으로 상대해야만 했다.
후미의 중심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군진의 수장이 그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전군! 압쇄진(壓碎陣)으로 변경한다!”
무장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자 진무를 상대하던 창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이내 제 키의 반만 한 철방패를 든 방패수들이 빈자리를 채우며 진무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
막 흥분이 끓어오른 참에 진형에 변화가 생기자 진무가 한 덩어리로 뭉쳐 다가오는 방패수들을 주시했다.
압쇄, 짓눌러 부순다.
그럴 리야 없을 것이고, 필시 내 움직임을 제약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래 봐야 철판 따위로 뭘 하겠다고?
쿵!
힘껏 진각을 밟은 진무가 가까이 다가온 방패를 밀듯이 후려쳤다.
떠어어엉!
“……?”
거친 쇳소리.
거암을 두부처럼 으깨는 자신의 주먹인데 희한하게도 방패수가 물러나기만 했을 뿐 무너지지 않는다.
우그러진 철 방패에 자신의 주먹 모양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반탄력도 상당했는데?
군병 주제에 만년한철로 만든 방패를 들고 다닐 리도 없고…… 뭐야?
황당함에 한 발 물러선 진무의 눈에 보인 것은 바닥에 길게 팬 고랑이었다.
이 자식들 보게.
방패에 쇠막대를 단 건 둘째 치고, 방패 하나당 방패수 한 놈이 아니었다.
방패를 든 놈 주위로 두 놈, 총 셋이 충격을 받는 순간 지지대와 함께 진무의 주먹을 버틴 것이다.
“눌러 제압하라!”
“……!”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진무를 향해 사방에서 방패가 밀고 들어왔다.
“지금이다! 찔러라!”
일정 간격에서 방패가 멈추자 그 사이사이의 틈새를 파고든 창극이 진무를 향해 쏘아져 들어온다.
이런 잔인한 새끼들.
이건 숫제 사람을 상자에 넣고는 촘촘하게 칼을 박아 넣어 죽이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원, 참. 이딴 짓으로 사람을 띄엄띄엄 보네.
아무래도 내가 너무 참하게 놀아 줬나 봐.
진무는 송곳니를 있는 대로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여기서 더 소란 떨기는 싫지만, 니들이 정 원한다면 내가 오늘 모처럼 제대로 놀아 주마.
우우우웅!
분위기가 일변한 그의 흰자위에 검은빛이 스침과 동시에, 그의 손안에 응축된 새하얀 강기의 구슬이 대지에 쑤셔 박혔다.
콰드득.
모조리 날려 주마.
묵룡혼원공, 충룡 대지창파.
드드드드, 콰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