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32
432화
우르릉.
좌도독의 본가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통째로 뒤흔들렸다.
“이, 이게 지금 무슨?”
“…….”
진동뿐만이 아니다.
거대한 화탄이 폭발한 듯한 소음에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경악하는 영왕을 바라보던 곽종산이 긴장 가득한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 이 진동의 근원은 다름 아닌 진무일 것이다.
들이길 청하였으되, 막으라 명한 것 또한 그였기 때문이다.
“좌도독, 설마 화탄을 사용하신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면?”
“기 폭발이라는 것이겠지요.”
“기 폭…….”
무림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하여도 영왕은 진무 정도의 무인을 본 적이 없었다.
평생 전쟁터를 떠돌아다닌 곽종산조차도 이 정도의 충격파는 처음 겪는데 황족인 영왕은 오죽할까.
“설마 진무라는 자가 인간의 몸으로 이만한 진동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단 말입니까?”
“…….”
듣기만 했지 본 적이 없었으니 믿기 힘든 일일 터였다.
영왕의 얼굴 가득 자리한 의아함에 곽종산이 앞에 놓인 찻잔을 잡았다.
“좌도독, 지금 무슨……?”
하지만 그의 질문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곽종상이 잡은 찻잔에서 김이 오르는가 싶더니, 그 안에 있는 차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곤 이내 허연 서리를 머금었다가 꽁꽁 얼어 버렸다.
“군문에서야 외공을 주로 사용하지만 무림인들은 내공을 사용합니다. 이런 내공은 쓰임이 다양하여 여러 가지로 활용하지요.”
“…….”
“듣기로 내공이 강한 자들 중 열양의 기운을 사용하는 이들은 하나의 마을을 통째로 불태우고, 한빙의 기운을 사용하는 이들은 보이는 모든 곳을 얼린다고 하더이다.”
“대, 대단하군요.”
지붕을 밟고 날아다닌다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든가 하는 것은 익숙히 보았으나 눈앞에서 내공의 쓰임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던 영왕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대단하지요. 아마 무림을 평정했다는 진무 도장이라면 지닌 능력이 산을 허물고도 남을 것입니다.”
“사, 산을!”
과장된 감이 없지 않았으나 좌도독 곽종상의 말이니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허! 태조를 도우셨다는 청무라는 자가 산허리를 베었다는 것이 건국 과정에서 꾸며진 허황된 과장이라 여겼거늘…….”
“무림에는 때로 그런 자들이 있습니다.”
“……?”
“촉의 명장 관목후처럼 홀로 만 명의 군세를 감당할 만한 자들이지요. 어떻습니까? 그만한 자라면 옆에 두었을 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까?”
곽종상이 무리를 해 가며 진무를 막아서게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영왕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다.
황성을 장악한 귀비와의 싸움은 영왕에게 불리하고, 군은 황제의 명 없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으니 반드시 그를 도울 사람이 있어야 한다.
진무 하나라 해도 도움이 될 것인데, 그를 따르는 정사마의 무인들이라면 앞으로 벌어질 일에서 귀비를 압도하고도 남을 것이었다.
“음……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무림인들을 믿지 못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는 영왕의 모습에 곽종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도 불신이 깊을 줄이야.
“그나저나 그가 너무 강하다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이요?”
“화탄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진 무공이라면 아무리 좌군의 정예라고 해도 맨몸으로 막아 내기에는…….”
“헛헛, 진무 도장을 높이느라 제가 좌군을 너무 낮추었군요.”
“예?”
“영왕 전하, 내 순천부로 오면서 황궁 최고수로 구성된 서창을 상대하려 한 사람입니다.”
“…….”
“진무 도장이 강하긴 하나 그만한 대비는 이미 갖추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핫핫핫!”
곽종산은 호탕한 웃음으로 영왕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방금의 진동, 그리고 꽤 떨어져 있음에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오를 정도로 강력한 기세.
예측을 까마득히 넘어서는 건 둘째 치고, 끝이 어디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무위였다.
이놈, 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설마 싶었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자신이 준비한 그들까지 힘없이 무너지는 것인가.
한편으론 차라리 그랬으면 싶기도 했다.
그 정도 실력은 되어야 앞으로 영왕이 가는 길에 도움이 될 테니까.
* * *
휘오오오.
충격파가 만들어 낸 회오리가 질풍으로 변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진무가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십여 장의 대지가 송두리째 터져 버렸다.
지지대를 세워 진무를 압박하던 방패들은 그 형체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한 채 찢기고 우그러졌고, 충격파를 직격으로 맞아 버린 군병들은 사방으로 튕겨 나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그 흉물스러운 공터를 만들어 낸 장본인인 진무는 그 중심에서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금 전의 일격.
아무리 사상자를 내지 않기 위해서 힘을 조절했다고는 하나 원래의 위력이라면 한 이십여 장은 족히 날아가 버렸어야 했다.
그럼 한 백 명 정도는 거뜬히 해치웠을 것인데 고작 십여 장이다.
방패가 충룡의 폭발을 반감시킨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작 쇠붙이로 강기의 폭발을 막아?
대체 재질이 뭐기에?
진무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방패 조각을 허공섭물로 당겨 쥐었다.
성강에 이른 무인조차도 무쇠를 두부처럼 썰어 내는데 함강을 넘은 자신의 강기를 쇠붙이로 막다니.
만년한철은 아니고, 한철도 아니다.
하지만 딱딱하니 강도가 뛰어나다. 와중에 가볍기까지 한 것이, 이 정도면 구야자가 살아 돌아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비싸다는 것.
만든 놈도 뛰어나지만 필시 이 정도의 물건을 만들려면 많은 돈이 들어갔을 것이다.
좌도독이 부리는 군병에게 지급되는 방패가 이 정도면 대체 얼마나 부자인 것일까?
역시 황가.
천하의 주인이라더니 헛말이 아니다.
뜯어먹을 것이 살 오른 황태보다 많을 게 분명하다.
추측도 되지 않는 황가의 부유함에 진무는 지금 가고자 하는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좀 아까웠다.
이런 비싼 물건인 줄 알았다면 좀 조심할 것인데 괜히 무리해서 쓰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렸네.
그나저나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비싸 보이는 방패 조각에 좀 즐겨 볼까 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급하다, 급해.
어서 이놈들을 쓰러뜨리고 영왕과 좌도독을 만나야겠다.
방패도 돈이지만, 시간도 돈이다.
영왕과 교섭을 끝내 금군의 움직임을 막고, 서둘러 진짜 태자를 찾아야만 했다.
그래야 이놈 저놈 달라붙기 전에 태자를 꼬드겨 최대한 많은 돈을 뜯어낼 것 아닌가.
내가 이 일에 투자한 게 얼만데.
무조건 두 배, 아니 세…… 열 배!
그래 열 배로 회수한다.
돈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 진무가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던 군병들을 향해 씩 하고 웃었다.
뭘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냐?
유람은 끝났다.
영왕까지 최단 거리, 최단 시간 안에 간다.
진무가 흥분에 차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멈춰라!”
“……?”
뭘 해 보려는 순간에 꼭 방해꾼들이 끼어드는 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법칙 같은 건가?
진무가 언짢은 눈빛으로 군병들 사이를 헤치고 등장한 무장들을 꼬나보았다.
갑주가 번쩍번쩍한 것이 꽤나 있어 보이는…… 이 새끼들 설마?
진무는 눈을 부릅뜨고 그들의 군장을 살폈다.
저 갑주. 저 칼.
분명하다.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방패랑 같은 재질이다.
즉 비싸다는 이야기다.
망할 부자 군인 놈들 같으니. 이 비싼 걸로 방패도 만들고 갑주도 만들고, 칼까지 만들어 쓰는구나.
좋겠다, 니들은. 그 비싼 걸 몸에 주렁주렁 달고 다닐 수 있어서.
진무가 체면도 잊고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나타난 무장들 중 수장인 듯한 자가 주변을 정리했다.
“군진을 해하고 물러나라!”
“예? 동지 대인! 어찌 군진을 해한단 말입니까! 저자는 일격에 군진의 축을 무너뜨릴 정도로 강합니다!”
“…….”
군진의 수장이 항변하자 비싼 갑주의 무장이 언짢은 표정으로 째려보았다.
“그래서? 군진을 유지하면 막을 성싶으냐? 괜한 피해만 키울 뿐이다. 좌도독께서 내린 명령은 저자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시험하는 것임을 잊지 말라!”
“…….”
“잔말 말고 군진을 해하라. 이제부터는 우리가 맡는다.”
“알겠습니다.”
명이 내려진 이상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사내의 직급은 종일품의 도독동지로, 좌군의 부사령관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군진의 수장 신분으로는 항변을 할지언정 항명은 할 수 없었다.
군병들이 서둘러 부상자들을 수습해 비켜나자 진무가 의문을 가득 담은 눈길로 무장들을 바라보았다.
이 자식들이 뭔 수작이지?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비켜 주는 거라면 잘된 일이긴 한데.
방패가 망가진 것은 아까운 일이나 일이 한결 빨라진 것을 무척이나 다행스럽게 여기는데 도독동지가 진무를 향해 다가왔다.
“진무 도장.”
“……?”
뭐야, 이 새끼. 뜬금없이 왜 친한 척이야.
진무가 고개를 비뚜름히 기울이자 무장이 환하게 웃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그게…….”
내가 원래 관이나 도사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라서.
이제 겨우 도사에 익숙해졌는데 아직 관은 조금 힘들거든.
근데 너 누구냐? 어째 얼굴이 익숙하긴 한데.
“핫핫, 역시나 그때의 일을 까맣게 잊고 계신 모양입니다. 나라를 위해 그리 큰일을 하시고는.”
“…….”
무장의 웃음에 진무는 더욱 난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냥 아는 척하면서 반갑다고 해 버릴까?
“정의의 장사꾼.”
“…….”
그건 또 뭔 소…… 응?
“당신?”
“핫핫핫! 나 방만평이오. 그대가 태양명의 치부책을 건넨.”
“아!”
기억났다, 누군지.
섬서성 서안, 동림전장, 탐관오리 태양명, 치부책…….
그리고 도지휘첨사 방만평.
다짜고짜 위소를 찾아가서 치부책을 금원보 서른 개에 팔아먹었던…… 젠장, 그때 강제로 팔아먹었었지. 복면을 쓰고 들어가서.
혹시 그 일 때문에?
“내 참, 그걸 금원보 서른 개에 사 가시다니.”
“…….”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쳐다보는 것이, 그때의 일을 문제 삼으려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망할, 그게 언제 적 일인데.
“흠흠, 나는 정의의 장사꾼 같은 그런 건 모르오. 도사에게 어찌 그런 속된 표현을…….”
진무가 도사 신분을 들먹이며 시치미를 떼자 방만평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핫핫! 역시 발뺌하실 줄 알았소이다. 하지만 이미 다 알아보았소. 내 그동안 그대의 용모파기를 입수해서 매일 보았다오.”
“…….”
징그러운 자식.
뭘 그리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지랄이야?
용모파기를 매일 볼 정도로 금원보가 아까웠냐? 그래도 그때 땅문서는 안 건드렸잖아.
그리고 그 금원보 종려군이라는 미친년이 마을을 날려 먹는 바람에 사람들 도와주는 데 다 날렸어.
하지만 조사를 다 해 봤다니 발뺌을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어쩐지, 나리들 좀 만나러 왔는데 다짜고짜 칼부터 들이밀더라니.
죄인 취급을 했던 거구나.
씨발, 이걸 그땐 미안했다고 사과를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아, 그때는 그…….”
진무가 난감함에 어물어물 말을 고르고 있을 때 방만평이 갑자기 군례를 취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대의 의로움에 그동안 감사할 길이 없었는데 만나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오.”
“…….”
응? 뭐? 왜? 뭐라고?
나 지금 귀가 좀 잘못되었니?
“그대가 힘을 써 준 덕에 전 군의 감찰 조사가 시행되었고, 비리를 저질러 왔던 이들이 모두 삭탈관직을 당했소이다. 덕에 나는 좌군 도독동지로 승차를 하였고요.”
“…….”
“귀하가 보인 의로움을 되새기기 위해 내 한시도 감사함을 잊은 적이 없었소. 그대는 실로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외다.”
“…….”
진무는 고개를 숙인 채 힘껏 외치는 방만평을 멍하니 응시했다.
이건 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런데 주변에서 갑자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자가 그 사람이었구나’라든가, ‘그때의 그 의인이 저자였다니.’라든지.
군병들이 보이는 선망과 존경의 눈초리 하며.
그…… 뭔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진 몰라도 다 잘됐다는 이야기 아냐?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흐뭇하게 웃은 진무가 방만평에게 다가가 아주, 몹시 친근하게 그의 어깨를 힘껏 움켜쥐었다.
“그럼 좀 비켜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