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37
437화
“능 호위님!”
“아, 청상 도장.”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갔던 청우와 함께 돌아오는 청상을 본 능서현이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알리기 위해 입을 떼려는데 청상이 먼저 빠르게 물었다.
“사숙, 사숙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예? 벌써 가셨는데요?”
“……제길.”
“어찌 그러십니까?”
평소 차분한 성격과 달리 다급해 보이는 청상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고 여긴 능서현이 연유를 물었다.
“사숙께서 함정에 빠지실지도 모릅니다.”
“예? 그게 무슨?”
“서창 제독이라는 자, 저희가 아는 자입니다.”
“……?”
“제 추측이 맞는다면 궁의 인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구, 궁이라고요? 서창 제독이 말입니까?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되지요. 해서 더욱 불안합니다.”
어떻게 봐도 농담으로는 보이지 않는 심각한 어조에 능서현이 눈을 부릅떴다.
“허! 저들이 어찌 황궁까지?”
“아직 그들의 손길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서창 제독이 궁의 인물이 확실하다면 그를 부리는 귀비라는 여인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젠장.”
능서현은 그제야 진무가 함정에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완전히 이해했다.
그가 궁이고, 진무를 함정으로 끌어들였다면 사달이 나도 크게 날 것이 분명했으니까.
또한 능서현은 마교의 십이동천 통일 과정에서 만났던 궁의 무인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교인인 그녀조차 여태껏 겪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강하고 독한 자들.
특히나 한승이라는 인물은 당시의 진무에 필적할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런 자들이 한둘이 아니라 더 있다면?
아무리 진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어려울지 몰랐다.
더군다나 그들의 공격으로 진무가 패악질을 부리기 시작하면 황궁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터.
그렇게 황궁을 공격한 최초의 무림인이 되면 이제 막 손을 잡은 영왕도 절대로 도울 수가 없게 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군요.”
“예. 사숙을 황궁으로 들어가시게 해서는 안 됩니다. 속히 알려야 합니다. 또한 그들이 무슨 음모를 꾸밀지 모르니 어서 무림 쪽에도 지원을 청해야…….”
능서현이 고개를 저었다.
진무가 이미 황궁 쪽으로 움직인 상황에서 뒤늦은 지원을 청하는 건 무의미했다.
어찌해야 하는가?
진무가 없는 상황, 그의 사질인 청상과 청우가 있으나 아직 경험이 모자라니 자신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럴 때일수록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 진무를 도울 수 있는 인물은 단둘이다.
영왕과 좌도독.
일단은 진무에게 먼저 소식을 전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청해야만 한다.
“청상 도장께서는 지금 즉시 황 호위에게 이 소식을 전하십시오. 저는 영왕을 만나 보겠습니다.”
“황 호위를요?”
“혹시나 해서 주군의 뒤를 은밀히 따르라 했습니다.”
“아!”
혹여 진무가 사고를 칠까 우려되어 붙인 것이 이렇게 다행스러울 수 없었다.
따르고 있는 것이 황신이라면 굳이 뛰어가지 않아도 되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서두르시죠.”
“예!”
* * *
왕직의 안내를 받은 진무가 황성에 도착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코앞에 보일 정도였으니까.
막 성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갑자기 진무가 걸음을 멈추었다.
“귀비마마께서 기다리신다. 속히 들어가라.”
“…….”
개도 제집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더니.
기세 오른 왕직의 채근에도 진무는 걸음을 내딛지 않고, 도리어 왔던 걸음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 채 눈살을 찌푸렸다.
뒤에서 느껴지는 기의 흐름, 황신이다.
“천주님!”
“…….”
진무의 예상대로 이내 도착한 황신이 급히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왜 온 거지?
분명 기다리라고 명을 내렸는데.
은신을 익힌 놈이 버젓이 모습을 드러내고 달려왔다면 보통 일은 아닌 모양인데.
[무슨 일이냐?]듣는 귀가 많았기에 진무는 전음으로 물었다.
[청상 도장이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청상이?] [예.]청상이?
그건 그 나름대로 더욱 의아한 일이었다.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기다리는 사이 청상이 빠르게 달려 도착했다.
[사숙.] [할 말이 뭐야?] [예. 실은…….]“…….”
청상이 다급하게 제가 알아낸 것을 전음으로 고했다.
“뭘 하는 것이냐! 귀비마마를 기다리게 할 참인가!”
왕직의 호통에는 대꾸조차 않고 묵묵히 듣기만 하던 진무는 청상의 전음이 끝나자 그제야 왕직을 향해 웃는 얼굴로 사과했다.
“아, 미안하다. 우리끼리 할 말이 있어서.”
“…….”
왕직은 짜증이 적나라하게 묻어나는 표정으로 진무를 노려보았다.
“청상, 황신.”
“예.”
“서현에게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해.”
“예? 하지만…….”
“그렇게만 전해. 니들도 그만 돌아가고.”
“사숙!”
함정이 뻔히 보이는 상황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진무의 모습에 청상이 당황스러워했지만, 이미 진무는 몸을 돌려 성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 가지. 괜히 소란을 떨었군.”
“……흥!”
진무의 사과에 왕직이 잠시 청상과 황신을 째려보고는 성큼성큼 앞섰다.
그의 등을 바라보는 진무의 입가엔 한 줄기 비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내 참, 이 새끼가 그때 그놈이라니.
어째 낯이 익다 싶긴 했어도 그때 무월루에서 대랑이 데려간 놈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진무의 입장에서 그때 그 청부업자 놈은 기억할 만큼 대단치 못했다.
청우가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목숨을 걸고 싸워 본 첫 상대였기 때문이리라.
역시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써먹을 데가 있긴 있구나.
어쨌든 참 대단한 놈들이다.
그때부터 고작 삼 년이 지났을 뿐인데 청부 살인이나 하던 놈을 키워서 서창 제독으로 만들어 놓다니.
어쨌거나 놈이 궁의 끄나풀이라면 그들을 부리는 귀비는 말할 것도 없었다.
궁의 족속들이 황궁에까지 손을 뻗고 있는 것이다.
나 참, 악연도 이 정도면 아주 지랄일세. 정사마도 모자라 이제는 황궁까지?
청상은 자신이 사지로 가고 있다며 만류했으나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아마도 놈들은 내가 그들의 정체를 모른다 여기고 자신만만하겠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랍시고 말이야.
하지만 이제 나도 너희를 알게 되었으니 어쩔 것이냐?
두고 봐라. 이 거지 같은 궁 자식들아.
똑같이 지피지기해도 니들은 겨우 위태롭지 않은 정도에 그치겠지만 나는 백 번, 아니 천 번의 승리를 거둘 것이다.
영왕은 그저 단물만 빨아먹을 생각이었다만, 니들은 거기에 더해서 탈탈 털어 주지.
왕직을 따라 드넓은 자금성의 외곽을 따라 걷는 동안 진무는 머릿속으로 수많은 가설을 세우고 그에 대응할 방책을 생각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서 오시오.”
곤녕궁 앞에 도착한 일행을 맞이한 환관들 중 한 늙은 환관이 진무를 유심히 살피며 인사를 건네 왔다.
“이분이 그 자입니까?”
“예, 대태감.”
마주 인사한 왕직이 진무를 향해 날카롭게 소리를 쳤다.
“인사드려라. 이분께서는 사례감을 총괄하시는 위정필 대태감으로, 환관의 몸으로 유례없이 정이품 대총관에 오르신 분이다.”
“…….”
대총관이건 정이품이건 환관이 환관이지 유례 따져서 뭐 해.
살짝 고개만 까딱여 인사하는 진무의 모습에 왕직이 눈에서 불을 토했다.
“이런 배워 먹지 못한 놈이!”
“허허, 그냥 두시오, 왕 제독.”
“죄송합니다. 야지에서 살아온 무부인지라 예를 모르는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암요, 암요. 이해해야지요. 앞으로 우리와 함께 대업을 도모할지도 모를 일인데.”
“…….”
대업이라는 말에 진무가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자, 들어갑시다. 귀비마마께서 기다리실 터이니.”
“예. 대태감.”
위정필이 앞서자 왕직이 공손하게 그 뒤를 따랐다.
늙은 놈이나 젊은 놈이나 죄 똑같은 놈들이다.
아무 죄도 없는 이들에게 패악이나 끼치는 못된 궁의 족속들.
기대해라.
지금의 미소가 처절한 비명으로 바뀌게 해 주마.
천천히 안으로 들어간 진무는 몇 개의 복도를 지나 미리 준비된 방에 도착했다.
방 안의 구조는 단순했다.
진무가 서 있는 곳에서 봉황이 조각된 의자를 가린 발까지의 거리가 십여 장, 너비는 대략 이 장.
직선거리에서 오는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좁고 긴 방의 좌우 벽면에는 칼을 찬 여인들이 도열해 있었다.
또한, 호위들이 등진 좌우의 벽 너머로 전해져 오는 수많은 예기는 어림잡아도 일백 이상.
하지만 위협이 될 만큼 강한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기운은 서창의 제독 왕직이니 위험한 상황이 발생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심해서는 안 된다.
의심하기로 한 이상 작은 티끌 하나 놓치지 않아야만 했다.
비록 그 개 같은 환골탈태의 경지를 경험하였으나 만독불침에 이르렀는지 실험해 본 적은 없으니까.
고작 실험 한번 해 보자고 목숨을 걸 수도 없고 말이지.
어쨌든 그들이 진무에게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무림에 잠입했던 일궁과 이궁, 삼궁까지 진무의 손에 죄 털려 나갔으니 원한이 그야말로 차고 넘칠 것이다.
그런 와중에 자신을 불러들일 정도라면 만반의 준비를 갖췄을 터.
고작 이곳에 있는 약해 빠진 무인들이 전력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암기, 기관진식, 진법, 독공 등등.
아마 셀 수도 없이 준비해 놓았을 테지.
진무가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며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는 도중 밖에서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비마마 납시오!”
차자자작!
방 안에 늘어서 있던 호위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검을 감췄다.
함께 온 왕직과 위정필도 무릎을 꿇고 바닥을 짚은 손을 소매 아래로 감추며 절을 올렸다.
“이놈! 어서 꿇지 못할까!”
“…….”
멀뚱하게 선 진무를 향해 슬쩍 고개를 든 왕직이 눈을 부라리며 다그쳤다.
새끼, 말 참 안 듣네.
눈 그렇게 뜨지 말라고 친절하게 경고도 해 줬는데.
하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부럽지 않은 위치에 있는 귀비의 앞인 만큼, 일단은 예를 갖출 수밖에.
거래가 끝날 때까지 그 눈깔 잘 보관해 두고 있어라.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해 참은 진무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절을 올리는 사이 멀리 태사의 근처의 문이 열렸다.
사박, 사박.
휘황찬란하게 장식한 머리에, 화려한 궁의로 치장해 한껏 멋을 부린 여인의 걸음에 방 안이 고요함으로 물들었다.
숨소리마저 잦아든 그 짧은 거리를 걸어온 여인은 넷이나 되는 시비의 부축을 받으며 발 너머 태사의에 앉았다.
“기다리게 하였군.”
낮고 근엄하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소신이 너무 늦어 심려를 끼침에 황송할 따름입니다.”
왕직이 코를 바닥에 처박으며 외치는 동안, 진무는 이유 모를 두근거림에 휩싸여 있었다.
어째서 그 악독하다는 귀비에게서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목소리가 나오는지에 대한 의문은 둘째 치고…… 왜 익숙하지?
어디서 들어 봤나?
절대 흔한 목소리는 아닌데…….
“발을 걷어라.”
“예, 마마.”
귀비의 명령에 시비들이 조심스레 발을 걷어 올렸다.
차르륵.
“예를 거두고 고개를 들게.”
“…….”
귀비의 명에 호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원래의 자세를 취했다.
위정필과 왕직을 따라 일어난 진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영왕과 세를 나누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는 귀비 만 씨.
그래, 어디 얼마나 대단한 여자인지 얼굴이나 한번…… 어?
귀비의 얼굴을 본 진무의 눈이 점점 더 커다래졌다.
어? 어어?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지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체 어째서? 무엇 때문에?
왜 니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거니…… 화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