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39
439화
황신이 차마 물어보지는 못하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진무를 이리저리 살폈다.
한참을 고민하던 진무가 이윽고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뗐다.
“계획을 바꾸어야겠다.”
“예? 무슨 계획이요?”
황신이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진무는 이미 다음 명을 내리고 있었다.
“대궁.”
“예?”
“세찬에게 나의 명을 전해라.”
“…….”
“하오문의 모든 전력을 동원해 사패천을 떠난 화양이라는 여인의 지난 삼 년간 행적을 찾는다.”
“예…… 예?”
“사패천을 떠난 뒤로 어찌 되었는지를 알아야겠다.”
진무의 명에 대궁은 물론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렸다.
화양. 대궁이 그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
전 사패천주 혁련무강이 유일하게 자신의 곁에 둔 시비이자, 첩으로까지 삼았던 여인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시국에?
온 무림을, 아니 천하를 발칵 뒤집어 놓고는 전대 천주의 첩이나 찾겠다고?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처, 천주님. 그건 아니 될 말씀입니다.”
명을 받은 대궁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이미 천주님의 명으로 하오문에 삭월천까지 진짜 태자의 행적을 찾기 위해 밤낮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일 내로 결과를 가져오라 하신 상황이고요. 일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도 모르는 판국에 그 일을 접고 다른 이를 찾는다는 것은…….”
“알아.”
“…….”
진무는 상황을 다시 한번 인지시키려는 대궁의 말을 담담히 일축했다.
“황당하겠지.”
“…….”
“하지만 지금은 화양이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해. 태자를 찾는 일은 조금 미룬다.”
“예?”
의아하다.
가짜 태자를 만들어 천하의 시선을 돌려 놓았다.
이제 진짜 태자만 찾아내면 모든 소란이 잠재워질 것이고, 영왕이든 귀비든 진무가 어느 편의 손을 들어 주는가에 따라 천하의 운명이 뒤바뀔 터였다.
그를 위해서 이미 사패천에 있는 천주의 개인 비고가 열렸고, 산서상회의 막대한 자금이 하오문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동안 보아 온 진무라면 그만큼의 투자금을 회수하지도 않고 일을 중지시킬 리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무는 자신이 뱉은 말을 병적으로 지키는 인물이었다.
계획이 바뀐 적은 있어도 목표를 바꾼 적은 없었는데.
“천주님. 하면 우 공자는 어찌합니까? 모두에게 쫓기고 있는 시점에서 진짜 태자를 찾는 일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마교와 사패천이 천라지망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에게 은밀하게 길을 열어 도우라 했으니 한동안은 버틸 수 있을 거야.”
“…….”
분명 자신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물어 무엇 할 것인가? 이미 그의 표정이 너무나 확고한데.
“즉시 전달하겠습니다.”
대궁이 고개를 숙여 답하자 진무가 다시 황신을 바라보았다.
“황신.”
“예?”
“너에게 순천부와 그 인근 하오문의 전력을 맡기겠다. 지금부터 귀비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 와라.”
“귀비를……요?”
“그녀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찌 궁에 들어왔는지, 어찌 황제의 비가 될 수 있었는지. 그녀의 주위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말고 알아 와라. 필요하면 황제를 심문해서라도 알아 와.”
“…….”
미쳤다.
뭐? 황제를 심문해서라도 알아 와? 황제가 저잣거리 무뢰배냐?
이럴 거면 차라리 때려라.
아니, 진짜 어이가 없네. 그냥 직접 죽이든가 자결하라고 하지, 왜 되지도 않는 명령을 내려 차도살인지계를 꾸미고 남의 손에 피를 묻히려고 한단 말인가?
“천주님, 귀비는…… 황후나 진배없는 인물입니다. 자칫하면…….”
지금도 꽤 깊이 발을 들인 상태였다. 영왕과 귀비 사이에서 이미 충분히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와중에 귀비를 조사하는 것이 걸리기라도 하면 황신 하나의 목이 베이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가짜 태자 사건도 그렇고, 천주는 무림의 명운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천주님, 황 호위의 말이 맞습니다.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능서현이 황신의 말을 돕고 나섰지만, 진무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중요한 일이다.”
“……?”
“내가 알아야겠다, 반드시.”
“……!”
굳이 세세히 말하며 설득하지 않아도 뜻은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음이었다.
자신들의 주인이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일.
“……부탁한다.”
“…….”
어울리지 않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후우…….”
황신은 한차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마치 위험천만한 전장을 향해 목숨을 걸고 나서는 장수처럼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부탁이라니요. 시팔, 귀비가 별거겠습니까? 세세하게 알아 오겠습니다.”
“…….”
욕설 섞인 황신의 호언에 진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을 받은 대궁과 황신이 급히 거처를 나서는 모습에 장원에 몸을 숨기고 감시하던 이들도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방 안으로 들어간 뒤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가 싶더니, 잠시 후 두 사람이 나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젠장, 삼 조는 이곳을 지키고 일 조와 이 조는 각기 한 놈씩 나누어 쫓아라. 아직 그들과 적이 될지 아군이 될지 모르니 절대 교전을 벌여서는 안 된다.]보이지 않은 곳에서 전음이 전해지자 이내 어둠이 일렁거리며 양쪽으로 나뉘었다.
얼마 뒤, 남아 있던 자도 금세 몸을 날려 사라졌다.
* * *
쪼르륵.
위정필과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던 귀비가 급한 보고가 있다며 찾아온 왕직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녀석이 뭔가를 꾸미는 듯하다?”
“예.”
“호오…….”
귀비가 손에 든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조소를 머금었다.
일궁에서부터 삼궁까지.
오랫동안 준비해 온 궁의 계책을 번번이 무너뜨려 온 놈이었다.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전에 보인 그의 반응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렸다.
자신을 처음 대면했을 때,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행동하던 모습이 자꾸만 이상한 불안감이 들게 했다.
하지만 위정필의 말대로 일개 무림인이 귀비씩이나 되는 자신을 직접 대면했으니 긴장했을 것이라 치부해 버렸다.
그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
“그놈이라면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겠지?”
“…….”
“알고 있을 게야. 그 정도는 되니 그 어린 나이에 전 무림을 손에 넣었을 테지.”
혼잣말 같은 귀비의 중얼거림에 왕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귀비의 말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하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들이 기막을 쳤기에 대화를 들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자신들의 감시를 알고 있다는 뜻이나 진배없는 행동이다.
“도찰원 우도사직을 받고도 손을 잡을지 말지 고민을 한다? 좀 더 재 볼 요량인가?”
“두 명의 수하가 밖으로 나가 종적을 감춘 것을 보면 무언가 다른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흐음.”
왕직의 대답에 귀비가 고운 아미를 찡그렸다.
“그 두 놈은 어디로 갔는가? 좌도독 곽종산? 아니면 영왕부?”
“죄송합니다. 원체 신출귀몰한 은신술을 가진 자들이라…….”
“머저리 같은 것들.”
“…….”
귀비가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자 왕직이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되었다. 네놈들이 무능한 것을 탓해 보아야 무엇 할 것인가?”
“…….”
졸지에 무능력한 인간이 되어 버린 왕직은 불편한 심사를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더욱 조아렸다.
“무얼 노리는 것일까? 필경 영왕과 나를 저울질하려는 것이 다가 아닐 것인데…….”
고민 가득한 말과 함께 귀비가 다시금 미간을 찡그리자 곁에 있던 위정필이 슬쩍 말을 건넸다.
“제가 한번 만나 의중을 떠볼까요?”
“대태감 그대가?”
“예. 맡겨 주시면 늙은 머리나마 최선을 다해 굴려 보겠습니다. 왕 제독만큼 무공이 강하진 않으나 눈치를 살피는 정도라면 세상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니.”
“…….”
위정필의 말에 귀비가 빙긋이 웃었다.
위정필, 그라면 충분할 것이다.
설마하니 무림인들이 대태감의 지위를 가진 그를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삼대의 황제를 모시는 내내 수많은 권력 다툼 속에서 슬기롭게 자리를 유지해 온 능구렁이가 아니던가?
“좋아. 그대에게 맡기도록 하지. 필요하면 그에게 좀 더 많은 조건을 제안해도 좋다. 지금으로서는 그를 반드시 끌어들여야 하니까.”
“맡겨 주십시오.”
위정필이 미소를 함뿍 머금고 뒷걸음질로 곤녕궁을 물러났다.
“왕 제독.”
“예, 마마.”
“위정필에게 사람을 붙여라.”
“예? 그를 감시하란 말입니까? 이미 우리와 뜻을 같이하기로 한 사이인데…….”
왕직의 말에 귀비가 음산한 미소를 머금었다.
“뜻을 함께해? 웃기는 소리.”
“…….”
“나는 지금까지 사람들을 이용해 본 적은 있어도 믿어 본 적은 없다.”
“…….”
“그에 대한 일은 위정필에게 맡기고 너는 감숙 쪽에 조금 더 신경을 쓰도록 하라. 만약 진무라는 자가 우리의 손을 잡으면 그 즉시 감숙으로 파견된 서창에 명을 내려 태자를 죽여라.”
“알겠습니다.”
* * *
진무가 귀비를 만난 이후부터 영왕은 연일 입시를 청했고, 귀비 측의 인물들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대며 그를 막아섰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그들의 논쟁이 날이 갈수록 더 날카로워지는 사이, 황도에서 멀리 떨어진 감숙에서도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정무맹에서 각 파로 하달된 명령.
귀빈이라 명명된 한 소년을 찾기 위한 대대적인 동원령에 사천의 당가와 청성, 공동이 남쪽, 섬서의 화산과 종남이 동쪽, 곤륜이 서쪽에서 움직이며 연합 전선을 형성했다.
또한 진무의 도움으로 신강 마교의 무인들이 내려와 북쪽을 막고, 감숙의 맹주인 천웅방까지 나섰다.
더욱이 동창과 서창이 내려와 관부까지 들쑤셔 나서게 하니 감숙에는 원래 사는 사람들보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이들이 더 자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 많은 이들이 구축한 포위망이 이리도 쉽게 뚫리게 될 것이라고는…….
“뭐, 뭣이!”
정무맹 남쪽을 맡게 된 당위가 수하의 황당한 보고에 기함을 토했다.
“마교 측이 맡고 있던 북쪽 지역에 나타났던 귀빈께서 흔적을 감추었습니다.”
“…….”
말이 되지 않는다.
북쪽에서 포위망을 구성한 것은 다름 아닌 마교가 자랑하는 추혈살귀대와 마교의 정예 일천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자는 육제들 중 가장 강한 무인이자 북리가를 이끄는 북리도평.
당위조차도 함부로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놓쳤다고?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그래서? 어디로 갔단 말이냐?”
“그게…….”
“답답하게 하지 말고 어서 답하라!”
“마교 측에서 보내온 전언으로는 알 수가 없다고…….”
“이런 미친 새끼들이!”
수하의 보고에 당위가 눈을 치켜뜨며 고함치듯 욕설을 내질렀다.
그 무슨 개똥 같은 소리란 말인가?
고작 열다섯 살 먹은 소년이다.
아무리 그를 호위하는 자들이 있다는 정보가 있었으나 육제의 한 사람인 북리도평은 물론이거니와 추혈살귀까지 뚫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그 소년이 무슨 진무 놈의 동생쯤이라도 된단 말인가?
“저희도 이해가 가지 않아서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으나…….”
“했으나?”
“자신들이 따르는 것은 진무 도장이지 정무맹이 아니니 굳이 설명할 이유가 없다면서…….”
“허!”
수하의 대답에 당위가 힘 빠지는 숨과 함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런 개자식들…….”
당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장 북쪽으로 가서 북리도평의 면상에 암기를 빼곡하게 박아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진무에 의해 결성된 사상 초유의 동맹.
참 대단한 일이라는 건 인정한다.
누가 있어 그딴 일이 가능하리라 생각했겠는가?
하지만 동맹을 맺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정작 중요한 지휘 체계가 양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오직 진무의 명령에만 복종했고, 정파의 요청은 늘 개무시로 일관했다.
“제기랄. 녀석들이 제대로 협조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라도 뭉치는 수밖에. 지금 즉시 양소방에게 연락을 취해라. 개방의 정보력을 총동원해서 놓친 귀빈의 행적을 찾아야 한다!”
“예!”
당위의 명령에 수하가 급히 뛰어나갔다.
“망할 마교 놈들…… 내 이리될 줄 알았지. 동맹은 개뿔이……. 내 반드시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빌어먹을 진무 녀석에게 청탁을 해서라도.”
홀로 남게 된 당위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아니, 그뿐 아니라 감숙에 파견된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진무가 만들어 놓은 사기판에 앉아 허상을 쫓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