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4
44화
무당의 검이 어쩌고 하던 도사가 분명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분명 상선과 본선의 거리는 거의 오 장여나 떨어져 있었는데?
한 번에 뛰어넘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설마? 수상비(水上飛)?
그럴 리가. 전설적인 경공의 하나로 불리는 수상비를 약관의 애송이 도사가 펼쳐 낼 리는 없었다.
탄기의 경지에 이른 두낙통조차 그 정도 거리는 쉽지 않았다.
스르릉.
두낙통이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동안 진무는 가로로 든 검을 천천히 뽑았다.
두낙통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내는 검날을 보며.
“이런 개 후레자식이!”
뭐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도사 놈이 싸가지 없이 자신의 본선에 올라탔다. 허락도 없이.
두낙통은 분기탱천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죽여!”
그의 외침과 함께 수적들이 저마다 무기를 빼 들고 뱃머리를 향해 뛰었다.
선상을 가득 채우고 빼곡하게 달려오는 수적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진무의 시선이 두낙통을 향했다.
좌우의 소선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현기의 청상이나 칠성권의 청우나 그리 얄팍한 실력이 아니니 수적들을 상대로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남은 건 진무가 맡은 본선.
‘굳이 모두와 싸울 필요는 없지.’
두목인 두낙통만 잡으면 될 일이었다.
싸움은 그걸로 끝이다.
“하압!”
기합과 함께 높이 솟구친 발.
진무의 입가에 지어지는 싸늘한 미소.
그리고.
쿠웅.
세차게 찍어 내린 천 근의 짓누름에 거친 진동음과 함께, 수적들의 본선이 깊이 짓눌린다.
앞이 눌리자 지렛대처럼 선미가 바닥을 드러내며 솟구쳤다.
“으헉!”
평행을 이루던 배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리자 진무를 향해 다가서던 수적들이 기겁하며 중심을 잡으려 애를 썼다.
그리고 발이 떨어지는 순간 제자리를 찾아 가며 배가 세차게 흔들렸고 수적들이 균형을 잃는다.
파앙!
진무는 그 힘을 이용해 솟구쳐 올랐다.
“두낙-토옹!”
거대한 외침과 함께 해를 가리며 떨어져 내리는 진무가 두낙통을 일검에 쪼개 버릴 듯이 수직으로 그었다.
까아앙!
하지만 천수채에 두낙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러나는 두낙통의 앞으로 거대한 월도가 횡으로 휘둘러지자 쇳소리가 선상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새파랗게 어린 놈이!”
월도를 휘돌리며 진무의 앞을 가로막은 자는 청우에 버금갈 정도로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살 대신 근육이라는 것?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본선에 올라탄 것도 모자라 채주님을 노려?”
“…….”
월도를 든 사내의 뒤로 나타난 것은 모두 넷.
모두가 구릿빛 피부에 알찬 근육을 가지고 흉흉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진무는 그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딱히 긴장하거나 경계심을 머금은 표정이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짜증?
“니들은 또 뭐냐?”
“흥, 들어 보았겠지. 우리 천수채의 정예 천수오걸이다.”
못 들어 봤다.
하물며 너무도 성의 없는 명호 아닌가.
천수채의 천수오걸이라니.
딱 봐도 힘이 절로 빠지는 것이 피라미가 확실하다.
“멍청한 놈, 가까운 좌우 소선을 먼저 공격한 시도는 좋았으나 네놈은 너무나 무모했다.”
하지만 두낙통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천수오걸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표정이었다.
“놈, 우리를 너무 우습게 보았구나. 좌선과 우선에는…….”
“끄아악!”
두낙통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좌측 소선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당연히 청상의 비명이 아니었다.
“오, 오극상?”
부릅뜬 두낙통의 눈에 보인 것은 양팔이 잘려 피를 흘리는 수적과 도포를 피로 적신 살기 어린 청상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청상의 손에 들린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기운.
“거, 검기라고?”
두낙통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희미하긴 했으나 분명 검기가 확실했다. 고작 약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좌측은 끝난 모양이네.”
진무가 검을 어깨에 걸치고 비웃었다.
“자, 그럼 우측은 어떨까?”
“……!”
마치 친절하게 안내하듯 말하는 진무를 따라 두낙통과 천수오걸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빠박! 빡!
처맞고 있다.
우측 소선의 우두머리 백탄이 도포 아래 비대한 살을 출렁거리며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는 주먹에 몸을 맡긴 채 진한 타격음을 흘리고 있었다.
“대충 우측도 끝날 것 같고.”
“…….”
저렇게 쉽게?
그들은 수많은 전투를 치러 오며 생사의 경계를 넘어온 천수채의 정예였다.
그런데.
“자, 그럼 남은 건 본선 하나로군. 사숙이 되어 사질들에게 뒤처지면 체면이 안 서겠지?”
진무의 몸에서 푸른 선기가 선명하게 피어올랐다.
“사질이라고?”
좌측의 놈이 검기를 뽑아낼 정도라면 일대제자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약관의 무당 장로.
말도 안 된다.
무슨 전설의 반로환동의 경지도 아니고.
“젠장!”
저 어린놈이 장로일 리가 없다.
‘사질’ 어쩌고 한 것은 필시 자신이 ‘사제’라고 하는 것을 잘못 들은 것이다.
아랫것보다 강하다고 해 봐야 겨우 희미한 검기나 뽑아내겠지.
뭐, 좀 더 강하다고 해도 상관없고.
놈은 혼자였다.
어찌 넘어온 것인지 보지는 못했지만, 아직 거리가 멀어 지원군은 올 수 없다.
즉, 서둘러 놈을 죽이고 공격해 일해상단의 배를 수장해 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뭣들 하는 게냐! 놈을 죽여라!”
두낙통의 외침에 천수오걸이 흉흉한 기세를 뿜으며 넓게 펼쳐 섰다.
“누가? 니들이? 나를?”
두낙통의 외침에 진무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쑤우욱! 파가각!
진무의 손에 잡힌 검에서 푸른 선기가 솟구쳐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을 파고들었다.
“……?”
역시나 검기다.
더욱이 자신에 버금갈 정도로 시푸른, 고농도의 검기였다.
‘이런 씨발. 다 망해 가는 무당에 영약 잔치라도 벌어졌나, 애새끼들이 뭐 이리 강해?’
두낙통은 물론 천수오걸의 눈까지 왕방울만 해졌다.
검기가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새파랗게 어린 도사들이 저리도 쉽게 사용한단 말인가?
“시장통 당과보다 못한 새끼들이 나를 죽이겠다고?”
도발이 꽤 신선하다.
사람을 달고 맛나는 당과에 비유하다니. 무공도 무공이지만 말 좀 하는 도사 놈이었다.
하지만 그따위 것에 감탄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파앙!
단 한 순간.
진무가 일 보를 내디뎌 밟고 쏘아지는 순간.
빠각!
천수오걸의 수장 이치룡의 얼굴에 진무의 무릎이 깊숙이 틀어박혔다.
“이노옴!”
생각지도 못한 선수에 천수오걸들이 동시에 무기를 휘둘렀다.
놀라긴 했어도 효과적인 대응이었다.
슈아악!
네 개의 무기가 한곳으로 집중된 순간 진무의 몸이 잔상이 되어 흩어지고.
뻐어억!
“크아악!”
천수오걸의 셋째 두견이 몸을 옆으로 꺾으며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그의 옆구리에 깊숙하게 박혀 있는 진무의 주먹.
그리고 그 주먹은 곧장 반대편 옆구리와 얼굴을 때렸다.
텁!
뒤로 넘어가는 두견의 멱살을 잡아챈 진무는 계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퍽퍽퍽!
진무가 이치룡을 쓰러뜨리고 두견을 두들겨 팬 것은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식간에 피떡이 된 두견이 진무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더욱이 그만하면 되었을 법도 한데 진무의 주먹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놈! 멈추지 못할까!”
형제같이 지내 온 아우의 처참한 모습에 둘째 왕적의 철편이 휘둘러지는 순간, 진무가 두견의 멱살을 잡고 던져 버렸다.
자, 놨다.
“어헉! 이, 이런 간악한 놈!”
잘못하면 두견을 때리게 생긴 왕적이 급히 철편을 멈춘다.
“놓으래서 놓았더니 욕질은!”
콱!
틈을 놓치지 않은 진무의 발끝이 왕적의 명치를 찔렀다.
“큭!”
콰앙!
그리고 진무의 머리가 곧장 왕적의 코뼈를 들이박았다.
“꾸엑!”
뒤이어 뛰어든 넷째 한두광의 공격이 이어지기도 전에.
“늦었다. 이 멍청한 놈아!”
콰득!
올려 찬 발에 맞은 한두광의 턱뼈가 으스러졌다.
우드득!
진무는 뒤로 쓰러진 왕적의 다리를 밟아 뼈를 부수며.
빠바바박!
허공에 떠 버린 한두광의 몸을 검집으로 무자비하게 후려쳤다.
“이 망할 도사 놈이!”
검기는 쓰지도 않았다.
그저 주먹질, 발길질만으로 천수채의 정예 천수오걸을 걸레처럼 짓이겨 놓은 것이다.
그것도 고작 다섯 걸음 만에.
두낙통은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얼굴을 흉신악살처럼 일그러뜨렸다.
“이 개새끼! 아주 죽여 달라고 염불을 외는구나!”
피떡이 되어 진무의 발아래 쓰러진 천수오걸의 모습에 두낙통이 거칠게 기운을 일으키자.
쑤우욱!
박도에서 푸른 기운이 쑥 하고 뻗어 나왔다.
진작에 그랬어야지.
근데 이걸 어쩌냐?
이미 늦었다.
애초에 합공을 했어야지.
수하들을 미끼로 삼고, 급습을 하거나 독을 풀고, 암기를 던지고, 화살이라도 쏘았어야지.
정파도 아닌데 뭐 하러 체면을 차린단 말인가?
수적이란 놈들이 정정당당해서 어디에 쓴다고.
그럴 거면 어디 가서 작은 무관이나 열고 아이들이나 가르쳐야지.
어려운 사람들이나 돕고, 봉사 활동이나 하러 다녀야지.
비열하고 간악한 사파로서 자긍심도 없는 업적 나부랭이 새끼.
“죽어라, 이놈!”
쿠르릉!
두낙통이 다가서는 진무를 향해 박도를 양손으로 잡고 휘두르자 도기가 용음(龍音)을 토해 내며 늘어났다.
순간.
진무가 도기를 향해 뛰어들었다.
“잡았…….”
가가각!
꿰뚫릴 것으로 생각했던 진무가 검집을 들어 도기를 비껴 내고, 그의 신형이 쭉 늘어났다.
“헙!”
단 일 보의 움직임만으로 파고든 진무의 신형에 두낙통이 재빨리 박도를 끌어당겼다.
쏘아졌던 도기가 진무의 등을 향해 채찍처럼 휘어져 달려들었다.
‘놈. 죽어라!’
진무의 움직임을 보았을 때 노리는 것은 늑골 아래.
두낙통은 자신의 옆구리를 내어 주는 대신 진무의 몸을 베어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하지도 못한 곳에서 뻗어진 진무의 손바닥.
“허업!”
기겁한 두낙통이 재빨리 기운을 모아 맞받아쳤다.
쩌어엉!
가볍게 시작된 장력이 연거푸 이어지며 폭풍을 몰고 왔다.
무당의 면장이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준비 동작 자체가 사라져 버린.
퍼어엉!
“크으윽!”
두낙통은 서른여섯 번째 변화를 끝으로 깊은 신음과 함께 뒤로 밀려 나갔다.
“우웩!”
밀려남과 동시에 뱉어진 검붉은 핏물.
두낙통의 모습에 천수채 본선을 채운 수적들 사이에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오직 진무만이 그 중심에 우두커니 서서 자신의 손바닥을 보고 있었다.
이름 모를 노인을 흉내 낸 완벽하지 않은 장법.
무당 면장에 대입한 그것은.
“쓸 만하네.”
진무가 히죽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진무가 진득한 선기를 피워 올리며 두낙통을 향해 걸어갔다.
“이 개자식!”
두낙통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부하들이 죄다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이런 쓸모없는 것들.’
원래 수적이라는 것이 그렇다.
쪽수는 많아도 고수는 몇 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먹고살기가 힘들어 수적이 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경우는 대부분 고수가 자신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 줄 때였다.
천수채 최정예 고수인 천수오걸이 개처럼 두들겨 맞고 자신마저 피를 토했으니 전의를 상실할 만도 했다.
결국.
“이런 개 쌍놈 새끼. 오냐! 끝까지 가 보자!”
천수채주 두낙통이 자신의 모든 기운을 끌어 올려 박도에 담았다.
차라랑!
세찬 기운에 칼끝에 매달린 고리가 부딪히며 잘게 떨리는 순간.
가가가각!
두낙통이 칼끝으로 바닥을 긁으며 달렸다.
“하압!”
바닥을 파헤치며 온 칼이 직각으로 솟구쳐 올랐다.
섬전 같은 그 빠름과.
후웅!
거센 풍압이 진무의 전면을 쓸어 갔다.
‘십(十)자 도기.’
두낙통을 잡으려 했던 많은 고수가 그 노림수에 당해 허리가 잘렸다.
해서 사람들은 두낙통을 ‘요절도(腰折刀)’라고 불렀다.
허리를 쪼개는 도.
거대한 아가리로 시선을 끌고, 감추어둔 발톱으로 상대를 절단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십자 도격.
사파의 고수 두낙통이 가장 신뢰하는 장기였다.
수직으로 솟구치는 첫 번째 도격에 진무가 옆으로 비켜났다.
지금이다.
“크크크! 놈! 걸렸구나!”
첫 번째 도격을 피해 내는 순간 진무의 방향을 잡은 두낙통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허리춤에서 만도를 잡아당겼다.
끝이다. 이걸로 놈의 허리는…….
쩌어엉!
하지만 만도가 다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막혔다.
“……!”
발.
옆으로 피함과 동시에 달려 거리를 좁힌 진무의 발이 만도를 뽑던 두낙통의 손을 힘껏 밟고 있었다.
“얍삽한 새끼. 이걸로 끝이다.”
“……!”
진무의 손이 두낙통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검이 내던져지고, 진무의 주먹이 신들린 듯이 쏟아졌다.
빠바바바박!
단강구의 위대한 수적, 두낙통의 비명이 끊이지 않고 서협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