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43
443화
철검단은 때마침! 소오태산에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인원이 필요했던 진무는 잘되었다는 표정으로 황신에게 명했다.
“황신, 어서 불러오너라. 순천부가 위태로운 이 시국을 그들로 하여금 지키게 해야겠다.”
“알겠습니다!”
진무의 명령에 그를 고깝게 쳐다보던 왕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게 무슨 소리요? 철검단이라니! 무림인에게 순천부의 치안을 맡기겠다는 거요?!”
“왜요? 뭐가 잘못됐습니까?”
“뭐요?”
“순천부의 치안을 담당하는 통령과 그 휘하의 장수들이 비리 건으로 잡혀 와 문초를 받고 있습니다. 귀비마마께서도 아주 자~알하였다며 칭찬하신 일이 아닙니까?”
“…….”
진무가 말하는 바를 깨달은 왕직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졌다.
“옥사에 갇힌 자들이 무슨 수로 치안을 돌보겠습니까.”
“…….”
“거기다 영왕이 좀 화난 상태입니까? 언제 군을 움직일지 모릅니다.”
“…….”
“이 비상시국에 때마침! 제가 사패천주이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
“안 그래도 귀비마마께서 도찰원을 제 사람들로 채워도 좋다 하였으니 겸사겸사 치안군으로 써도 좋지 않겠습니까? 영왕도 견제할 겸 말이지요.”
“…….”
귀비의 허락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도찰원에 국한된 이야기였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군(京軍)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 칭찬은 사양하겠습니다. 그저 수고비나 몇 푼 쥐여 주시면 됩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저렇게 청산유수로…….
제멋대로 생각하고 제멋대로 결정을 내리는 건 둘째 치고 칭찬? 수고비?
대체 누가 그딴 짓을 한단 말이냐? 애초에 어째서 니가 그걸 결정해?
“우도사! 나라에는 절차와 법도라는 것이 있소. 이리 무턱대고 일을 처리하는 것은…….”
“예? 절차와 법도요?”
진무가 천진난만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일개 무림인인 제가 그같이 어려운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뭐, 뭐요?”
“전 그저 마마의 말씀이면 전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 그게…….”
진무가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자 왕직이 황당하다는 듯 연신 입을 벙긋거렸다.
무지의 소치(所致).
마구잡이식 일 처리는 영왕 측의 세력을 처리하는 데 필요했을 뿐이다.
지금 진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영왕을 견제하는 것을 넘어 자신들에게도 위협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서창 제독께서는 그동안 무얼 하셨습니까?”
“…….”
“귀비마마께서 이토록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하다니요.”
점입가경이다.
지가 언제부터 귀비의 사람이었다고?
“내 그냥 두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 절차와 법도는 모르겠고, 서둘러 마마를 찾아뵌 뒤에 제 충심을 전해야겠습니다.”
“…….”
콧김까지 씩씩거리는 진무의 걸출한 연기력에 왕직의 얼굴이 똥 씹은 듯 구겨졌다.
수하를 잃은 것도 열 받는데 심지어 쓸모없는 인간 취급까지 해?
대체…… 대체 이 무식한 놈을 어찌 설득한단 말인가?
뭘 말해도 죄다 모르쇠요, 그런 것도 절차가 있느냐며 되묻는데 정말이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자, 가십시다. 사안이 시급하니 마마께 속히 청을 드려 허락을 구해야겠소.”
“…….”
“걱정 말고 갑시다. 한편 아니오, 한편!”
진무가 힘차게 왕직을 앞서 걸으며 음흉하게 웃었다.
하지만 귀비 또한 자네의 충심 다 이해한다며 한참 다독거린 뒤 그놈의 절차와 법도를 들먹이며 불허했다.
옆에서 왕직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뭐, 예상한 일이기는 했다.
아무리 진무의 도움이 필요해도 대규모의 무인대가 순천부에 주둔하는 것은 탐탁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원하는 바는 충분히 얻었다.
진무가 섭섭하지 않도록 일부를 추려 사병으로 주둔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즉 누구를 데려다 놔도 그 사실을 가지고 걸고넘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
어차피 핵심적인 놈 몇이면 충분하다.
천우명과 철검단의 조장, 그리고 은위단의 무인들까지.
나머진 소오태산에 그대로 둔다.
무슨 일이 생겨도 하루, 빠르면 반나절 안에 동원할 수 있으니까.
청상의 계획은 여기까지.
감시를 들어냈고, 영왕과 귀비 모두의 세력을 줄일 기초를 탄탄하게 다졌다.
이제 밑밥은 준비되었으니 고기만 낚으면 된다.
당장은 날 이용한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너희는 절대로 들여놓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여놓았다는 사실을.
* * *
모든 일이 차근차근 준비되어 가던 어느 날.
그날도 진무는 영왕 측 인사들을 잡아다가 악랄하기 짝이 없는 고신을 자행하고 퇴청하는 길이었다.
“어?”
익숙한 얼굴들이 진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아, 그래.”
황신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천우명을 위시한 철검단의 조장들과 은위단의 조장들.
그리고 녹빛 당의를 입은 한 무리의 무인들.
“오랜만입니다. 진무 도장.”
“…….”
누구보다 빠르게 다가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네는 여인을 본 진무의 얼굴이 팍 찌그러졌다.
아, 결국 너도 왔구나.
젠장, 어째서 불안은 항상 현실이 된단 말인가?
“그새 신수가 훤해지셨네요. 그사이에 좋은 일들이 많으셨나 봐요?”
“…….”
생글거리는 웃음하며, 예의 바른 말투하며…….
이건 또 뭔 개수작이지?
그딴 수식어가 너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냐?
매일 주식으로 처먹던 약초가 상하기라도 했나,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지랄이야!
“사숙모!”
“어머, 청우 도장. 반가워요. 청상 도장도 계시네요. 다들 정말 오랜만이죠?”
진무와 함께 퇴청한 청우가 대뜸 그녀를 알아보고 다가가서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야, 야, 이 망할 돼지 새끼가 진짜.
누가 사숙모야, 누가!
“사, 사숙모라고?”
옆에서 듣고 있던 천우명이 눈을 왕방울처럼 뜨고 경악성을 토했다.
젠장, 이 멍청한 놈이라면 분명…….
“사숙모라면? 주모님이시란 말입니까? 함께 있으면서도 몰라뵈었습니다! 속하 사패천 철검단을 맡은 철혈붕권 천우명입니다!”
“…….”
역시나 믿을 줄 알았다.
아예 무릎까지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염병할. 크고 뚱뚱한 이 멍청한 한 쌍을 어찌한단 말이냐?
“오랜만입니다. 사, 사숙모님.”
“…….”
믿었던 청상까지…….
“주모께서 계신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호오…….”
능서현에 황신과 아이들까지 눈을 빛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더니. 이 망할 년이 누구 앞길을 막으려고.
아무리 필요에 의해 부르기는 했으나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저 또라이가 주장하고 다니는 헛소문을 끊어 버려야……!
“야, 누가……!”
“사숙모라니요? 주모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
응? 너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갑자기 당세령이 직접 부인하고 나서자 도리어 당황한 진무가 말을 잇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저 혼자 진무 도장을 흠모했을 뿐인데 괜한 소문이 퍼졌습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
이게 진짜 독초를 처먹었나, 탈을 쓴 가짜인가…….
아니, 직접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 게 너 아니었냐?
“어찌 되었건 급히 저희를 찾으셨다고 하니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이쪽은 제 숙부이신 당가의 만독전주입니다.”
“당천입니다. 진무 도장의 높으신 이름을 많이 전해 들었는데 직접 뵈오니 감격을 금할 길이 없군요.”
당천의 정중한 인사에 진무가 엉겹결에 마주 포권했다.
“……아, 예.”
“자, 그럼 나눌 이야기가 많으니 들어가실까요?”
“…….”
지가 주인이라도 된 양 앞장서 일행을 안내하는 당세령의 모습에 진무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대체 왜 그러냐? 사람 적응 안 되게시리.
당위에게 꾸지람 좀 들었다고 저 또라이가 양갓집 규수가 되었을 리는 없고.
이게 말로만 듣던 신분 세탁, 아니 성질머리 세탁인가?
“……아니지, 지금 급한 건 이게 아니야.”
고개를 휘휘 저어 잡생각을 떨치고 방 안으로 들어간 진무는 당천에게 그들을 청한 이유를 설명했다.
“귀비가 궁의 인물이란 말입니까?”
“예. 증거는 잡지 못했으나 정황상 확실합니다.”
“그, 그런…….”
진무의 긴 설명에 당천 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황도, 그것도 권력의 가장 중심에 있는 귀비가 궁에 속해 있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으나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한 이가 진무였기 때문이다.
일궁, 이궁, 삼궁.
그 모두를 진무가 찾아다니며 무너뜨리지 않았던가?
듣기로 그 똑똑하다는 제갈협진은 물론이거니와 개방의 모든 정보를 손에 틀어쥔 양소방마저 궁에 관해서는 그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오며 들으니 진무 도장에 대한 소문이 흉흉하기에 신경이 쓰였는데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신 게군요.”
“그리되었습니다. 다들 귀비의 앞잡이라 한다지요?”
“예? 하하, 알고 계셨군요.”
“알다 뿐입니까? 일부러 그리 행동하고 있는 참인데 소문까지 나 주니 더할 나위 없이 잘된 일이지요.”
“과연…….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고생이랄 것이 있겠습니까. 이게 전부 다 나라를 위한 일인 것을요.”
진무의 말에 당천을 비롯한 당가의 인물들이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진무 도장의 고생을 덜어 드리기 위해서라도 태자를 시급히 확보해야겠군요.”
“…….”
이 자식이 잘 나가다가 그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오냐?
귀때기 열고 잘 들어 봐.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은 그게 아니고…….
“지금 진무 도장의 사정을 알면서 할 말은 아니지만, 안 그래도 그 일로 가주님께서 전해 달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말이요?”
“예. 진무 도장으로 인해 정사마가 연합을 하였으나 협조가 원활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
“마교와 사패천 쪽에 한마디 해 주십사 하고…….”
돌려 말하기는 했으나 결국 마교와 사패천을 야단쳐 달라는 말이었다.
아마도 일전에 마교에 양진 등을 은밀하게 탈출하도록 도와주라 한 것 때문인 모양인데……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중요한 내용은 쏙 빼고 협조해 주는 척만 하라고 하면 될 일이었다.
백날 찾아다녀 봐라, 이 자식들아. 니들은 태자 머리카락조차 못 볼 테니까.
“음, 알겠습니다. 좀 신경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주님께 그리 전하겠습니다.”
“…….”
태자 이야기가 나오는 바람에 이야기가 옆으로 좀 샜다.
진무는 헛기침을 하며 다시 화제를 돌렸다.
“흠흠, 여하튼 저들은 아마도 제가 자신들의 정체를 모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
“아마 영왕을 잡을 사냥개로 쓰고 버릴 생각이겠지요.”
“그렇겠지요. 만약 저들이 궁과 연결된 이들이라면 진무 도장은 불공대천의 원수와 같으니 말입니다.”
“해서 사냥개가 되어 볼까 합니다.”
“예?”
알 듯 모를 듯한 말에 당천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만독전주께서 한 가지 일을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황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독.”
“……!”
“그 독의 정체를 알아내 주십시오.”
“음, 귀비를 무너뜨릴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실 셈이군요.”
“예.”
“하지만 이미 묻은 시체가 아닙니까? 오래되지 않아 썩지는 않았겠으나 황자들의 무덤을 도굴한다는 것은…….”
“물론 묘를 파헤친다면 역모에 준하는 처벌을 받겠지요. 하지만 다행히 영왕의 반대로 약품으로 시신을 보존한 뒤 아직 묻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다만 귀비의 방해로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음…….”
당천이 미간을 깊이 찌푸리며 고심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조사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귀비가 아무리 진무 도장을 포섭했다 해도 자신의 치부까지 드러내지는 않을 텐데요.”
당천의 우려에 진무가 빙긋 웃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해 드리지요.”
“진무 도장께서요?”
“예.”
“어찌하시려고?”
자신만만한 진무의 답에 당천이 더욱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대로 조련하지 못한 사냥개는 토끼만 무는 게 아닙니다. 때로 사람을 물기도 하지요.”
“……?”
멍청한 표정 짓지 마라. 말한 그대로니까.
하오문을 통해 조사한 관리들의 수많은 비리 행적이 진무의 손안에 있었다.
어디 그게 영왕 쪽 사람에게만 국한되어 있겠는가?
귀비의 휘하에 있는 대신들의 것도 죄다 확보해 둔 상태였다.
자고로 사람이 평등해야지.
영왕 쪽이든 귀비 쪽이든 뭔 상관이란 말인가?
누가 누군지 말해 준 적도 없는데.
짓궂게 웃는 진무의 입술 새로 송곳니가 감추어 둔 모습을 드러냈다.
기왕 만조백관을 감찰하는 직분을 맡았으니 고루고루 잡아들여 문초할 생각이다.
어디 믿는 도끼, 아니 사냥개에게 제대로 물어뜯겨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