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45
445화
“무슨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한단 말이오! 육부의 상서라니!”
왕직이 눈을 치켜뜬 채 진무를 향해 곧장 다가와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고신은 계속되었다.
치이익!
“끄아아아악!”
벌겋게 달아오른 쇠꼬챙이가 닿자 형부상서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이, 이놈들! 멈추지 못하겠느냐!”
치이익!
“끄억, 끄어어억!”
왕직이 연신 호통을 쳤지만 누구도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지금 추국장에서 고신을 집행하는 자들은 도찰원의 관리들이 아니라 오직 진무의 명령에만 충실한 이들이었으니까.
“이노옴!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
왕직이 눈을 매섭게 뜨고 진무를 노려보았다.
거 새끼, 더럽게 시끄럽네.
좀 떨어져라. 침 튄다, 이 새끼야.
“멈춰!”
인상을 찌푸린 진무가 한참 만에 손을 들자 고신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제독께선 어쩐 일이시오?”
“어쩐…… 일이냐고?”
“그렇소.”
태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왕직은 분노로 윗머리가 통째로 뜯겨 나갈 것만 같았다.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벌이는지 알고는 있는 것이냐!”
“심문이지요.”
“…….”
이놈이 미친 것도 아니고.
다른 이들도 아니고 육부의 상서들이었다.
정이품의 고위 관리직이자 황제에게 직접 품계를 받은.
역모에 준하는 죄나 황제의 명령 없이는 절대로 잡아들일 수 없는 자들인 것이다.
이들을 그 자리에 앉히기 위해 지난 삼 년간 귀비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대체 무슨 연유로!”
“내 제독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군요.”
“뭐라?”
“도찰원이 죄인을 추국하는 것은 근래 계속 있어 온 일이 아니오? 그게 뭐가 잘못되었단 말이오?”
“뭣이? 있어 온 일? 도찰원이 어이하여……!”
왕직이 얼굴을 기괴하게 일그러뜨리자 진무가 추국장이 떠나가도록 소리쳐 물었다.
“누가 도찰원의 임무를 한번 말해 봐라!”
“예!”
진무의 명령에 미리 시킨 대로 천우명이 대뜸 앞으로 나서서 정자세를 취하고 우렁차게 외쳤다.
“하나! 우리는 천…… 아니 폐하의 명령을 받아 조정을 감찰하며, 둘! 어떠한 외압에도 굴복하지 않으며, 셋! 법을 준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그마안!”
왕직이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왜요? 뭐가 또 잘못됐소?”
끝까지 듣지.
저 멍청한 녀석이 저거 외우려고 밤을 꼬박 지샜구만.
“내가 지금 도찰원 복무신조나 듣자 물은 것인가!”
“그럼요?”
“저들을 어찌하여 허락도 없이 잡아들였느냐고 묻는 것이다!”
“난 또…….”
진무가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보시오, 제독.”
“…….”
“도찰원의 임무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서 문무백관들의 비리를 감찰하고 처벌하는 것이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데 어찌 추국장에 찾아와서 호통을 친단 말이오?”
“이, 이놈이…….”
“…….”
왕직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다시금 질책하려 들자 진무가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끝까지 이놈 저놈이네.”
“뭐?”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왕직이 토끼 눈을 떴다.
눈치가 없어도 작작 없어야지.
이미 일이 이 지경이다, 이놈아.
이유가 뭐겠냐?
이제 네놈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뜻이야.
니들한테 대놓고 반기를 들고 있는 거라고.
알겠니? 이 꼬추까지 잘라서 궁에 협조한 놈아.
“야!”
“……!”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분명 자신에게 향한 말이다.
“지, 지금 나한테…….”
“그럼 누가 또 있냐?”
“…….”
“이 새끼가 듣자 듣자 하니까 어디서 막말이야?”
살이 떨릴 정도로 살벌한 기세와 반말, 갑자기 달라진 태도…….
“이 새끼가 아까부터 대접해 주느라 참고 있었더니. 니가 뭔데 관직 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지랄이야?”
“뭐, 뭐?”
“내각의 대학사, 육부의 대상서, 오군도독부의 도독.”
“…….”
“그리고 그 모두를 감찰하는 폐하 직속의 감찰 기관 도찰원.”
진무의 기세가 점점 더 스산해졌다.
“지금 내가 맡은 직책이 뭐야?”
“…….”
몰라? 모르면 내가 말해 줄게. 귀때기 활짝 열고 들어라.
“정이품의 도찰원 우도사야. 오직 폐하의 명령을 받들어 만조백관을 감찰하는 위치. 그런데 넌 뭐야? 서창 제독?”
“…….”
“남의 뒤나 캐서 가져다 바치는 서창의 환관 나부랭이 주제에 어디 추국장에 쫓아와서 이놈 저놈이야? 내가 니 친구야? 어?!”
기가 막히다 못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왕직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갑자기 달라졌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간이며 쓸개며 전부 빼놓을 듯이 살살거리며 고개를 조아리더니…….
하지만 그의 말대로 직급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누명이든 뭐든 죄진 이들에게나 공포로 군림해 온 서창이었다.
직급으로 따지면 도찰원 우도사인 진무가 훨씬 더 위이니 당연히 예를 갖추고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것이 옳았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은 귀비의 충복인데…… 이놈이 권력의 맛을 보더니.
“……내가 말이 심했소.”
이를 부득부득 갈아 댄 왕직이 겨우 화를 삭이고 사과했다.
도저히 마음에 안 들지만 잡으려는 것은 놈이 아니라 그 윗줄이니까.
“그 사과 받아들이지. 그리고 이들을 왜 잡아들였냐고 물었지?”
“……그, 그렇소.”
조금 전의 기 싸움으로 상하가 명백하게 나누어져 버렸다.
자연스레 하대하는 진무와 고개를 숙이며 존대할 수밖에 없게 된 왕직.
“굳이 그럴 이유는 없지만, 차근차근 설명해 주마.”
“…….”
진무는 보란 듯이 단을 뛰어 내려간 뒤, 황신이 고신 중인 형부상서의 앞에 섰다.
“어디 있어 봐라. 이놈의 죄목이…….”
파라라락!
언제 꺼냈는지 모를 두툼한 서책이 빠르게 넘어갔다.
“형부상서, 형부상서…… 아, 여기 있네. 하, 이놈 봐라?”
“……?”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여인을 겁탈했네? 와중에 지 놈의 죄를 숨기려 남편까지 죽였어?”
왕직더러 들으라는 듯 진무가 서책에 쓰인 내용을 크게 읽었다.
“이런 개쌍놈을 봤나. 죄를 집행해야 할 놈이 도리어 죄를 졌네?”
“…….”
그러더니 씩 웃는다.
분명 그저 입꼬리만 올려 웃었을 뿐인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왕직의 질린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무는 웃는 그대로 황신에게 명했다.
“잘라.”
“뭐……?”
푸학!
“끄아아아악!”
반문은 없었다.
채 말릴 새도 없이 뽑혀 나온 황신의 비수가 곧장 내리박혔다.
비명과 함께 하반신을 피로 물들인 형부상서가 눈을 까뒤집으며 고개를 꺾었다.
흠칫 놀라 몸을 떨어 대는 왕직의 모습을 보아하니 아마 제 놈만이 기억하고 있을 그때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자, 다음은…… 호부상서라는 놈이 소작농의 땅을 빼앗아?”
쩌억!
“이부는 돈을 받고 관직을 팔고.”
쩌억! 뻐억!
“병부는 군역을 빼 주고, 예부는 행사비 횡령에다, 공부는 친인척에게 공사를 몰아 주기까지 했네? 어이구 이게 다 얼마야?”
쩌적!
“뭔 죄를 이리도 많이 졌누. 아주 온 조정이 개판이야, 개판.”
빠가가각!
“높은 자리에 앉았으면 청렴결백하게 국정을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제 배때기 불릴 생각을 해?”
퍽퍽퍽!
“죄가 이것 말고도…….”
쩌억!
“이건 또…….”
빠악!
진무가 죄를 거론할 때마다 죄인들의 옆에 선 이들이 신이 난 듯이 구타를 가했다.
원래 맞아 본 놈이 잘 패는 법이다.
죄가 거론되자마자 곤죽이 되는 모습에 왕직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이게 무슨 돼먹지 못한 상황이란 말인가?
이곳은 무림이 아니다.
나라에서 정한 법률에 따라서 죄를 묻고 형이 집행되어야 마땅하다.
그저 조사해 온 것만으로 처벌을 내려서는 아니 될 일이었다.
“크악!”
“끄아아악!”
“…….”
왕직은 황급히 단을 뛰어 내려갔다.
뭐가 어찌 되었든 진무의 죄를 물어 직위를 해제하는 것은 나중이었다.
중차대한 곳을 잘려 돌이킬 수 없게 된 형부상서는 몰라도 나머지는 어떻게든 구해야만 했다.
그들 모두가 귀비의 측근이기 때문이었다.
“우도사! 멈추시오! 멈추란 말이오!”
“……?”
애원에 가까운 왕직의 외침에 진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뭐요?”
“어째서 멈춰야 하냐고.”
“…….”
“나는 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군.”
고개를 갸웃거리는 진무의 모습에 왕직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내 딴에는 평등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반응이 다른 것이지?”
“…….”
“군부의 대신들을 잡아다가 죄를 물어 고신하고 처벌을 내릴 때는 그리 칭찬이더니, 어찌 육부의 이들은 더한 죄를 저질렀음에도 그만두라 하는 건가?”
“육부를 건드리는 일은 귀비마마께서 좋아하지 않으실 게요.”
최후통첩과도 같은 말에 진무가 짙게 웃었다.
“귀비가?”
“……?”
지금 분명 ‘귀비’라고…….
“네놈……?”
“또 네놈이라고 하네. 여하튼 그게 어쨌단 말이냐? 귀비의 사람이든, 영왕의 사람이든. 그래서 죄가 달라지나?”
“뭐?”
왕직이 당황해 허둥거리는 찰나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건 나도 의아하군.”
“……!”
추국장으로 들어온 인물.
“여, 영왕…….”
“영왕? 허, 서창 제독의 이름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군. 이제는 전하라는 호칭도 생략하는 것인가?”
“…….”
실수였다.
너무 놀란 나머지 생각이 그대로 뱉어져 버렸다.
한데 어찌하여 영왕이 이곳에 나타난단 말인가?
왕직은 부릅뜬 눈으로 진무와 영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설마? 이 모든 것이?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지더니, 텅 비어 버린 머릿속에 지금껏 진무가 해 온 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어쩐지 자신의 측근들을 잃은 영왕이 너무도 쉽게 물러난다 생각했다.
당장에 좌군을 움직여 잡혀 온 군부 대신들을 방면하라 압박을 가해야 했는데.
모든 의문의 결론은 하나였다.
영왕과 진무는 처음부터 한패다.
지금의 상황을 위해서 자신들의 눈과 귀를 속인 것이다.
진무가 신뢰를 얻을 때까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살점을 잘라 내고, 이제 의심과 감시가 약해진 틈을 타서 자신들의 뼈를 부수려 하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일단은 벗어나야 한다.
추측이 사실이라면 지금 육부가 문제가 아니다. 잘못하면 귀비마저도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일이었다.
서둘러 그녀에게 알려 황제의 힘을 빌리도록 해야만 했다.
왕직은 최대한 빨리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허리를 깊이 숙여 영왕에게 사죄했다.
“여, 영왕 전하, 소신이 너무 놀라 허언을 했습니다. 용서하시길.”
“하루 이틀인가? 괘념치 않음세. 그나저나 서창 제독이 도찰원의 일에 관여할 바가 아닌 것으로 아는데?”
“…….”
영왕이 게슴츠레한 눈매로 비꼬자 더욱 마음이 다급해진 왕직이 재차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육부의 상서들이 잡혀 왔다 하여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왔을 뿐입니다. 하면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왕직이 뒷걸음질하며 물러나려던 그때였다.
“누구 마음대로?”
“……?”
언제 움직인 것인지 진무가 그의 뒤를 막고 섰다.
뿐만 아니라 고신을 하던 진무의 수하들이 무구를 빼 들고 퇴로가 될 만한 곳을 모조리 차단하고 있었다.
“이게 지금 무슨?”
“내 참, 비리 조사가 육부에만 국한된 것으로 아는 모양이지?”
“……!”
“니놈의 비리도 가득이더구나.”
비리는 그저 구실일 뿐임을 어찌 모를까?
절망에 빠진 왕직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잘 보고 있느냐, 청상아?
싸움은 이렇게 하는 거란다.
멈추었을 때는 잔잔한 수면처럼 고요하여야 하나, 일단 발을 떼면 단번에 세상을 쓸어 놓는 폭풍처럼 휘몰아쳐야 하는 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