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46
446화
왕직은 진무가 다가서는 만큼 몸을 물리며 소매 아래에 감추어 둔 양손을 꺼냈다.
비수처럼 반들반들한 예기를 품은 기다란 손톱이라면 필시 조법.
찌르거나 할퀴거나 찢어발기는 데 특화된 무공을 익힌 것이 분명했다.
궁지에 몰리니 고양이, 아니 호랑이의 콧등을 최선을 다해 물어 볼 속셈인가 본데…….
진무는 코웃음을 쳤다.
멍청한 놈.
그래서 니가 안 되는 것이다.
차라리 순순히 잡힌 뒤에 니들이 좋아하는 절차와 법도를 들먹이면서 귀비의 도움을 기다렸어야지.
하지만 못된 일이나 꾸미던 놈들이 별수 있겠는가.
일이 실패하는 즉시 도주하려고 기를 쓰기 마련이니 머리가 굳어 차분하게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놈, 감히 영왕과 결탁해서 우리를 속이다니!”
“영왕? 이젠 그냥 대놓고 반말이네?”
진무가 비아냥거리며 턱을 살짝 쳐들고 왕직을 깔아 보았다.
“비리에 상관 모독죄 추가.”
“네놈…….”
“거참 말을 해도…… 상관 모독죄 한 번 더 추가.”
“…….”
장난기 어린 조소에 왕직의 눈동자에 시퍼런 살기가 어렸다.
놈의 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말발 이전에 상대는 무림 최강의 고수. 정사마를 홀로 발아래 꿇린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인임에는 분명하다. 무의 경지를 놓고 보자면 일초지적이나 될까?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금의 진무는 오롯이 자신의 무공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지근거리에 영왕을 두고 기운을 함부로 끌어 올렸다가는 영왕이 다칠 위험이 있으니까.
기회는 한 번.
놈을 영왕과 더욱 가까이 둠으로써 행동을 제약하고, 방심하는 틈을 노려 일격에 끝낸다.
스윽.
왕직이 진무를 노려보며 미끄러지듯이 천천히 위치를 바꾸었다.
“…….”
진무는 다가서다 말고 왕직이 하는 양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렇게까지 멍청할 일인가?
영왕을 노리는 척이든 영왕이 나와 일직선이 되는 틈을 노려 시야를 차단한 채 공격하려는 수작이든 노림수가 너무 빤하다.
물론 이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이고, 나 또한 즐겨 쓰던 방법이긴 하다만 사람을 봐 가면서 써야지.
싸움에 있어서 비열한 수를 사용하는 것에는 천하제일을 넘어 고금제일을 논하는 내게 쓰다니.
그나저나 그 정도로는 턱도 없다, 이놈아.
말을 걸어서 시선도 좀 분산시키고, 비틀거리는 연기로 방심을 불러내기도 하고 그래야지.
“…….”
대체 언제까지 어깨춤을…… 아니 나를 기다리게 할 것이냐?
무슨 달팽이 이사 가는 것도 아니고. 해진다. 좀 빨리 움직여라.
너 때문에 생각만 자꾸 많아지지 않냐?
보다 보니 답답하기 짝이 없는 것이…….
그나저나 저 민달팽이 자식을 어찌한다.
수를 다 읽었으니 미리 차단을 해 버려야 하나?
아니, 그럴 순 없지.
일단 희망을 슬쩍 던져 주고 나서, 무참히 짓밟아 더 큰 절망을 줘야겠다.
진무의 생각이 한참이나 이어지고 나서야 왕직이 목표한 위치에 도달했다.
정말 오래 기다렸다.
어디, 이제 희망을 주러 가 볼까?
“네놈이 어디로 움직이든 간에 도망칠 방법은 없어.”
“…….”
진무는 일부러 몇 걸음 내디뎌 영왕과 거리를 좁혀 주었다.
“……!”
눈에 훤하게 드러나는 왕직의 표정은 이제 한심하기까지 했다.
적에게 다 들킬 정도로 기쁜 눈빛이라니, 쯧.
그리고 드디어 진무의 몸이 영왕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차압!”
“…….”
여기로구나, 니가 노린 위치가.
왕직이 지면을 힘차게 밟으며 섬전처럼 쏘아져 들어옴과 동시에 서창의 무인들이 일제히 각자의 도주로를 찾아 외부를 향해 달렸다.
잔챙이들이야 천우명을 비롯한 진무의 수하들이 도주로를 지키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슈아악!
“…….”
어? 이놈 움직임이 생각보다 빠른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의 손톱이 진무의 눈동자 가득 들어찼다.
찌이익!
몸을 비틀었음에도 가슴팍을 스친 손톱에 옷자락이 찢겨 나갔다.
태극을 깨달은 이후로 기의 흐름이 훤히 보이는 진무였음에도 찰나의 움직임을 놓친 것이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였다.
찢어진 옷자락이 나풀거리고 가슴에 생채기가 난 정도.
진무는 틀었던 몸을 되돌리며 힘차게 주먹을 휘둘렀다.
후웅! 쩌어어억!
“크아악!”
주먹에 맞은 왕직이 뛰어가다 빨랫줄에 걸린 것처럼 회전해 바닥에 처박혔다.
“크으윽!”
왕직은 재빨리 몸을 튕겨 진무의 간격에서 벗어났다.
“…….”
주먹에 맞은 충격에다 땅바닥에 처박힌 충격까지 더해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와중에도 미친 듯이 양손을 휘저어 허공을 찢어발기는 모양새가 애처롭기까지 했다.
이야. 지랄도 저만하면 개지랄일세.
무공만 따지자면 엄청 많이 양보해서 능서현 정도?
경공의 속도가 조금 놀랍기는 하지만, 그냥 놀라운 것이 전부였다.
이런 놈이랑 싸워야 한다니.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다.
북리도천과 싸울 때까지가 좋았는데…… 괜히 태극을 이뤘나?
“크크크.”
“…….”
이게 처맞고 머리에 이상이 생겼나? 왜 웃지?
처맞고 턱이 작살나 입가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웃는 왕직을 물끄러미 보던 진무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놈, 방심했구나.”
“……?”
방심? 내가?
처맞은 건 넌데?
“네놈 가슴의 그 상처.”
“……?”
왕직의 말에 진무가 그의 손톱이 스친 자신의 가슴께를 내려다보았다.
아주 약간이긴 하지만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하긴, 이 정도 상처를 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워할 일이긴 하지.
근데 어째 저 눈빛이며 미소며…… 고작 그 정도에 만족하는 것 같지는 않고. 뭔가 다른 게 있나?
“크크크, 나는 네놈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야 다들 아는 사실이고.
“하지만 네놈도 곧 죽을 것이다.”
“……?”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뭐 예고 살인 이런 거야? 니가 무슨 저승차사냐?
“궁금한 표정이니 죽기 전에 알려 주마.”
“…….”
왕직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자랑하듯이 자신의 손톱을 진무를 향해 드러내 보였다.
“흑살서(黑殺鼠)의 독.”
“흑살서?”
쥐라는 말인데…….
그런 독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들었다.
“큭큭, 말해 준다고 해서 네놈 따위가 알 리 없지. 일반적인 독과는 그 성향이 완전히 다르니까.”
“…….”
“나는 오랫동안 손톱에 그 독성을 스미게 했다.”
“……!”
왕직이 말하는 바를 깨달은 진무가 눈을 부릅떴다.
낭패다.
진무가 유일하게 취약한 부분이 바로 독이었다.
놈이 준비하고 있었던 것은 치명적인 일격이 아니라 고작 스치기만 해도 될 만큼의 작은 상처였던 것이다.
진무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왕직이 핏물을 한없이 게우면서도 짙게 웃었다.
“쓰기에 따라 만성의 효과를 보이기도 하나, 네놈의 몸에 스민 것은 급성 독이다.”
“……!”
“칠공에서 피를 토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맨 처음 느껴지는 것은 현기증.”
비틀.
그러고 보니 갑자기 어지러운 게, 중독된 것이 확실한 모양이었다.
젠장, 실력 차가 커서 방심하고 말았다.
고작 이딴 놈에게 이 내가…….
“두 번째로 찾아오는 것이 고열을 동반한 오한 전율(惡寒戰慄).”
“…….”
고열과 오한 전율?
열이 나거나 추워서 몸이 떨리……지는 않는데?
“세 번째로 찾아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객담(喀痰).”
“…….”
기침과 가래……도 안 나온다.
여전히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긴 한데, 가만히 기다려도 그가 말하는 증세 중 현기증을 제외한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흐음.”
생각해 보자.
놈이 저리도 자신할 정도라면 분명 흑살서의 독이라는 것이 스치기만 해도 중독되는 맹독임은 확실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설적으로다 개 같은 경지인 환골탈태를 겪었지.
그러니 몸에 아무런 증상도 없다면……?
맞네. 그거네.
만독불침.
하긴 그 지랄 맞은 고통을 견뎠으니 이 정도는 당연히 보상으로 받을 만하지.
따로 실험해 보지 않았기에 몰랐을 뿐, 환골탈태와 더불어 이룬 것이 분명했다.
세상 그 어떤 독에도 침범받지 않는다는 또 다른 전설적인 경지, 만독불침(萬毒不侵)을.
“크크크, 어떠냐? 느껴지느냐? 네놈은 죽음을 향해…….”
“뭐라는 거야? 이 병신이.”
“…….”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아서 깜짝 놀랐네.”
비틀거리는가 싶었던 진무가 갑자기 몸을 꼿꼿하게 펴자 왕직이 입을 딱 벌렸다.
어, 어떻게? 설마 공격이 얕았나?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이미 수많은 실험을 통해 그 효과가 검증되기도 했거니와, 무공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버틸 수 있는 종류의 독이 아니었다.
전 사패천주 혁련무강을 죽인 독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었다.
“야!”
“……?”
“뭘 당황하고 지랄이야? 이 몸이 그까짓 독에 당할 줄 알았어?”
“설마…… 설마 만독불침…….”
그래, 놀랍지?
그럴 만도 해. 나도 당하고 나서야 알았으니까.
어쨌거나 친절한 설명 참으로 고맙다.
현기증, 고열과 오한 전율, 객담까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병의 증세와 동일하지 않은가?
죽어 간 황자들이 보였다는 증세와도 같고.
그렇다는 것은…… 네놈들이 독을 쓴 게 확실하다는 뜻이지.
안 그래도 심증은 있고 물증이 없어서 한참이나 고심했는데.
당가를 부를 필요도 없었네.
고맙다, 이 새끼야. 독 이름까지 친절하게 알려 줘서.
“서창 제독 왕직.”
“…….”
뚜두둑, 뚜둑.
손가락 관절을 풀며 다가오는 진무의 모습에 믿었던 마지막 한 수가 수포로 돌아간 왕직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아, 아니지. 이 마당에 서창 제독은 무슨. 단강구 청부업자 고월이라고 불러야 하나?”
“……네, 네놈! 그걸 어찌?”
“멍청한 놈이 하나 있거든. 원래 기억력이 짐승보다도 떨어지는 녀석인데 목숨을 건 첫 상대라서 똑똑히 기억했던 모양이야.”
“……!”
“자, 꽤 길었지? 이리 와, 이 궁의 끄나풀 새끼야.”
“네놈이 어떻게 그걸?”
진무의 말에 왕직은 너무도 놀라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다.
영왕과의 결탁 정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끝이다.
궁지에 몰린 것도 모자라 처음부터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니.
무슨 수를 써도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왕직은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끌어 올렸다.
어차피 죽을 거, 길동무라도 데려간다.
“죽어라!”
“……?”
하지만 노린 것은 진무가 아니었다.
영왕?
원래라면 저딴 놈이 죽든가 말든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다.
지금이야 당장에 필요해서 이용하고 있으나 어차피 나중에는 귀비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가로막을 적이니까.
그래, 그런 식이면 차라리 니가 먼저 처리해 주는 것이 낫기도 하겠지. 그 독을 머금은 손톱으로 찌르면 뒈질 게 뻔하니까.
하지만 지금의 영왕은 증인. 마땅히 살려서 증언하게 해야 한다.
슈아악!
왕직이 영왕을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손톱을 찔러넣었으나…….
쓔우우웅- 서걱!
푸학!
쏜살같이 날아온 일휘의 날카로운 궤적에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손목째로 잘려 버렸다.
“끄아아악!”
잘린 손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왕직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앞을 가로막은 진무의 눈동자가 새까맣게 반들거렸다.
자, 증거로 사용할 손목은 확보했고.
비리에 상관 모독, 황실 종친의 목숨을 노린 죄까지 포함하여…… 니놈은 사형이다.
우우우웅!
거칠게 내리밟은 진각과 함께 진무의 손이 모처럼 검은 빛으로 물들었다.
들어는 봤냐?
묵룡혼원공 박투술, 흑룡난무!
맞아 죽는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게 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