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51
451화
“들어가시지요.”
“…….”
딸깍 소리와 함께 열린 통로 한쪽으로 비켜난 위정필이 양손으로 공손히 입구를 가리켰다.
진무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통로를 주시했다.
아직 위정필을 온전히 믿지 못한다.
무엇보다 방 안에 비밀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새끼 이거 혹시 기관 장치 같은 것을 숨겨 두고 나를 가둬 보려는 건가?
“제 답은 저 안에 있습니다.”
“…….”
그렇게 웃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는데.
아예 아가리를 좌우로 길게 찢어 놓아야 하나? 평생 친절해 보이게?
아니, 그나저나 이쯤 왔으면 그냥 속 시원하게 말해 주지.
쓸데없이 사람 긴장하게 만들고 지…….
“설마하니 제가 기관 장치 같은 것을 숨겨 두었다고 생각하십니까?”
“…….”
독심술 익혔냐?
“……흥, 그까짓 게 있다 한들 내게 무슨 위협이 된다고.”
진무는 보란 듯이 걸음을 옮겨 비밀 통로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그래. 그까짓 기관 장치, 구야자 정도 되는 명장이 만든 게 아니면 지금의 자신에게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
자신만만하게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진무의 뒤를 위정필이 따라붙었다.
흐음, 좋아. 같이 죽자는 생각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딱 붙어서 올 리 없지.
좌우지간, 그럼 대체 뭐지?
점점 커지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진무가 빠르게 걸어 계단의 끝에 다다르자, 제법 그럴싸하게 꾸며진 공동 하나가 나타났다.
“저쪽입니다.”
“…….”
위정필의 손짓을 따라 방향을 틀었던 진무는 보게 되었다.
“대태감, 자네인가?”
“…….”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좌정한 소년…… 소녀언?
이딴 걸 비밀이라고?
설마 이 노인네, 진짜로 악취미를……?
진무가 한쪽 눈을 일그러뜨리며 다시 위정필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그가 납작 엎드리더니…….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태자? 저 앙상한 소년이?
위정필이 조아리다 못해 처박은 고개를 들어 올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걸 보면 농담은 아닌 것 같은데…….
도무지 믿겨야 믿지, 이걸.
“손님을 모셔 온 것인가?”
“…….”
“그대는 누구지?”
위정필에게서 시선을 뗀 진무가 소년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앙상한 외양에 지친 듯한 표정, 그리고 퀭한 눈동자.
하지만 그 눈에 담긴 정광이 예사롭지 않았다.
“저, 정말 태자라고?”
“…….”
사고 기능이 정지해 버린 듯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무리 진무라고 해도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흐음…… 혹, 그대가 진무라는 도사인가?”
뭐라고 답해야 하지?
만약 이 소년이 진짜 태자라면 어찌해야 하는 거지?
위정필의 옆에 함께 엎드려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가?
진무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멀뚱멀뚱하게 서 있자 위정필이 대신하여 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그가 바로 중원 무림계를 통일한 진무라는 도사입니다.”
“그렇군. 한데 생각했던 느낌과는 다르군. 나는 뭔가 당당하고 힘이 넘치는 인물일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그대는 범인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군. 아니지, 진정으로 강한 자는 때로 범인처럼 보인다 했으니 지금의 모습이야말로 당연한 것인가.”
“…….”
다소 실망한 듯한 태자의 품평에 진무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바로 했다.
너무 놀라서 그랬다.
상식적으로 귀비의 한쪽 팔이라 여겼던 위정필이 태자를 감추고 있을 거라 생각이나 했겠냐?
다른 곳도 아니고 자신의 거처에다가 말이야.
아무리 등잔 밑이 제일 어둡다고 하지만 이건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진짜…… 태자라고?”
“그렇습니다. 이분께서 바로 현 황실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으신 적통이시며…….”
뒷말은 안 들렸다.
진짜 태자가 맞단다. 위정필이 꼭꼭 숨겨 두고 있었단다.
하, 이런 앙큼한 노인네 같으니.
그래서 귀비에게 협조를 한 거야? 아니, 척을 한 거야?
내게 이런 답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쓸 수 없는 전음까지 해 가면서 목숨을 걸었단 말이지?
진무의 입가에 떠오른 음흉한 미소가 점점 더 진해지던 그때.
“진무…… 도장? 괜찮으십니까?”
“…….”
이놈아, 괜찮기만 하겠느냐?
내가 지금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심정이다.
“대태감.”
“……예?”
“태자 전하.”
“……?”
“이렇게 넋을 놓고 있을 시간이 없군요.”
갑자기 진무의 입에서 하염없이 부드러운 공대가 나왔다.
아니, 이때까지 넋은 진무 도장 당신만…….
“연락이 끊어진 지 한참일 테니 서창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추가로 감시자를 보낼 것입니다.”
“그, 그건…….”
옳은 말이다.
지금 서창이 들이닥치면 좋지 못했다.
“서둘러 나가시지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하지만…….”
위정필이 말을 이으려다 말고 멈칫했다.
그가 태자를 숨긴 이유는 목숨을 살리기 위함도 있었으나, 영왕이나 귀비를 포함한 다른 누구에게도 이용당하게 하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직…… 도장의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답…… 아!”
진무가 위정필의 말에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집요한 노인네 같으니. 이 마당에 그게 중요하냐?
그리고 내가 태자를 이용해서 한몫 단단히 챙기고 싶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 있겠어?
대화는 나중에 하자. 나중에 천천히 해도 늦지 않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간 다음에.
“한 가지만 약속드리지요.”
“……?”
“태자 전하는 이 순간부터 제가 보호할 것입니다. 전 무림을 동원해서 금군과 일전을 벌이는 한이 있어도.”
“……!”
내내 떨치지 못했던 불안이 단숨에 희열로 바뀌기 충분한 말이었다.
위정필은 귀비의 암수로부터 태자를 보호할 힘이 없었다.
하지만 진무는 다르다. 중원 최강의 무인 아닌가.
소문에 의하면 일만의 군세에 비견될 정도로 강하다 했다.
비단 혼자뿐이겠는가?
명이 떨어지면 정사마의 무림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하지 않던가?
이 나라에서 영왕과 귀비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자였다.
그 때문에 모두가 그를 손에 넣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지 않았던가?
답은 충분히 되었다.
그가 가진 속뜻이 무엇이건 간에, 본인의 입으로 지키겠다 했으니 태자의 안전은 보장된 것이다.
“아……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그간의 말 못 할 고충을 떠올린 탓인지, 위정필은 눈에 차오른 습막을 이기지 못하고 이내 눈물을 쏟았다.
감격하기는…… 그럴 시간이 없다니까.
일단 나가자꾸나. 내가 너희를 지켜 주겠노라.
“전하, 일단 나가시지요.”
“나간다고? 이곳을?”
“암요, 암요.”
“…….”
위정필이 늙은 몸으로 부축하며 채근하자, 태자는 그의 손길에 이끌려 일어나며 물끄러미 자신이 기거했던 공동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얼마의 시간을 보냈던가?
일 년? 아니면 이 년?
자신을 죽이려는 귀비의 칼날을 피해 숨었고, 이용하려는 숙부의 그늘에서 겨우 벗어났다.
하지만 옳은 일인가?
다시 그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판치는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이.
자신의 존재로 또다시 피바람이 불지도 모른다.
쉽게 발을 떼지 못하고 꼼지락거리기만 하는 태자의 모습에 진무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태자라고는 하나 아직은 열다섯 소년이 아닌가.
망설여질 만도 하지.
“무례를 용서하시길.”
“무스…….”
진무의 손끝이 가볍게 스치자 태자가 말하다 말고 풀썩 쓰러졌다.
“진무 도장! 이게 무슨 짓이오! 감히 전하의 몸에!”
“그럼 언제까지 기다릴 거요? 마음을 완전히 정할 때까지? 이미 서창에서 오고 있을 텐데? 턱도 없는 소리.”
“…….”
“잠깐 잠든 것뿐이니 걱정 말고 따르시오.”
위정필은 그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맡기기로 한 이상 따를 수밖에.
진무가 데려가려는 곳이 어디든 이 습한 곳보다야 쾌적할 것이고, 탐욕스러운 자들 곁보다야 마음이 편하지 않겠는가?
위정필은 태자를 업고 계단을 오르는 진무의 뒤를 따랐다.
하여 보지 못했다.
진무의 입이 친절함을 넘어 기괴하게 느껴질 만큼 좌우로 찢어져 있음을.
화양아,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냐? 난 정말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구나.
왕직의 손목을 댕강 잘라 당가에 보냈으니 죽은 황자들이 남긴 흔적을 살펴본 그들이 지금쯤 독의 정체도 밝혀내었을 것이다.
와중에 왕직을 심문하고 있는 것이 당세령이란다.
그 또라이는 아마도 왕직의 머리에 있는 자질구레한 일들까지 긁어낼 것이다.
심지어, 심지어!
우양진을 가짜 태자로 만들어 가면서 소란을 만들고 뒤로 하오문에 수만금을 내려 진짜를 찾게 하였는데, 진짜가 날 찾다 못해 내 등에 떡하니 업혀 있구나.
이게 뭘 뜻하는지 알겠니?
너를 잡아 처넣을 올무는 물론 튼튼한 감옥까지 완성되었다는 소리란다.
넌 외통수에 걸렸다는 이야기지.
밖으로 나온 진무는 곧장 외목을 불러들였다.
“천주님, 그…… 아니 그분은?”
“묻지 마. 다친다.”
“…….”
진무가 손가락 하나를 입으로 가져가자 외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허! 얻다 손을 대?”
“……예?”
천주에게 소년을 업는 수고를 끼칠 수 없다 여겨 넘겨받으려 손을 내민 외목은 진무의 살벌한 눈빛에 목을 움츠렸다.
어딜 감히 그 더러운 손을 대려 한단 말이냐?
태자다. 태자.
귀비를 옭아맬 올무이며, 장차 황궁을 내 손에 바쳐 지금까지의 투자금을 수십 배로 부풀려 줄 귀한 녀석이다.
“외목,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
“며, 명하십시오.”
“너희는 지금부터 위정필의 집을 털러 온 강도다.”
“예? 그게 무슨?”
별안간 강도 행세라니.
천주가 또 무엇을 꾸미기에 이런 음흉한 표정을 짓는 것일까?
외목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지만 이미 진무의 비열한 머리는 핑핑 돌아가는 중이었다.
“이전 감시자들의 보고가 끊어졌으니 서창의 감시자들이 증원될 것이다.”
“…….”
“너희는 대태감과 비슷한 체구를 가진 시체를 구해 서창 무인들을 피해 도망쳐라. 충분히 시간을 끌다가 순천부 외곽을 벗어나면 곧바로 자취를 감추도록.”
“알겠습니다.”
천주가 무엇을 꾸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군병들이 빼곡하게 지키는 성벽을 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명이 내려진 터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잡히면 안 돼. 흔적을 남겨서도 안 된다. 강도가 돈을 노리고 들어와 위정필을 납치해 간 것처럼 보여야 해.”
“음, 저들의 눈을 속여 우리가 이곳에 왔음을 감추시려는 뜻이군요? 염려 마십시오.”
대답을 마친 외목이 은위단을 불러들여 돈이 될 만한 것은 모조리 챙기고, 장원을 적당히 어지럽히며 강도가 든 것으로 위장했다.
* * *
잠시 후, 한 떼의 야행인이 위정필의 사가에 도착했다.
“이, 이런!”
싸움이 벌어진 것처럼 부서진 정원의 장식들과 여기저기 널린 시체들.
“조장님, 저기!”
“…….”
수하의 외침에 수좌로 보이는 자가 고개를 쳐들었다.
전각의 문짝이 부서져 있었고, 그 안쪽에는 누군가 뒤진 듯한 흔적이 선명했다.
“이런 젠장! 대태감을 찾아라!”
“예!”
명이 떨어지고 야행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저쪽이다! 놈들이 도망친다!”
외침이 들려왔다.
담을 넘어 어둠 속으로 도주하는 자들의 뒷모습이 수좌의 눈동자에 그려졌다.
그리고 축 늘어진 누군가가 그들의 손에 잡힌 모습도.
“대태감이다. 대태감이 납치당했다! 놓쳐서는 안 된다!”
수좌의 외침에 야행인들이 일제히 불의한 무리들을 뒤쫓아 위정필의 장원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모두가 사라지고 조용해진 그곳에 진무와 위정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멍청한 새끼들.
서창의 관원이라는 놈들이 고작 유인책 하나 알아내지 못하다니.
어쨌든 이걸로 되었다.
자, 화양아. 이제 움직여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