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6
46화
단강제갈분가 대공자의 거처.
소청전.
와장창!
거처로 돌아온 제갈각은 방 안의 집기를 모조리 부숴 버렸다.
도무지 화가 풀리지 않았다.
이번 일의 실패로 인해 도리어 무당의 입지만 높여 준 꼴이 되었다.
그 때문에 가주인 제갈무린에게 한바탕 쓴소리를 들었고 동생인 제갈근마저.
“왜요? 잘나신 형님께서 뭐가 잘 안된 모양입니다.”
라며 흘러가듯 비웃었다.
특히나.
“진궁, 그 개자식.”
근엄한 표정으로 자신을 약 올리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진궁과 제갈각은 또래였으나 이름값이 달랐다.
진궁은 탄기를 깨달은 무당의 기재로서 중원 무림에 이름을 날렸으나, 지재(知材)로 이름 높은 제갈세가의 제갈각은 그다지 돋보이지 못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무림.
무공이 강한 진궁이 더 인정받는 것이 당연했다.
“망할! 하필이면 놈에게 그런 꼴을 보이다니.”
제갈각이 한참이나 소란을 피우고 앉았을 때.
“대공자, 일성입니다.”
“들어오라!”
정주로 사실을 확인하라 보낸 일성이 돌아와 자신이 조사한 바를 상세하게 보고했다.
“정말이었다고?”
“예. 강유의 말이 맞았습니다. 수적들의 공격을 막고 난 뒤, 천수채를 찾아가 잔당을 토벌했다고 합니다.”
천수채의 토벌.
정주 관아에서 그 사실을 인정했다.
오랫동안 제갈분가에서 하지 못한 일을 일개 상단이, 무당의 코흘리개 꼬마가 해낸 것이다.
‘젠장, 문제는 소문이군.’
세상 그 무엇보다 빠른 말.
이미 천수채 토벌에 관한 이야기가 단강구 상계에 퍼져 안줏거리가 되고 있었다.
제갈분가가 음모를 꾸몄다는 사실과 함께.
물론, 자신의 아비인 제갈무린이 알았으니 그리되게 둘 리는 없었다.
제갈분가의 치부와도 같은 일이니 가진 힘을 모두 써서 소문을 막을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깐일 뿐이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들의 입과 입을 통해 중원 전역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한데 두낙통이 이상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상한 말?”
“예. 진무라는 자가 탄기의 고수일지도 모른다고.”
“탄기? 하!”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두낙통을 잡았다고 하지만 약관의 도사였다.
곧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사파의 수적 놈이 개소리를 지껄인 것에 불과하다.
원래 사파라는 족속들이 제 실력을 부풀리기 좋아하지 않던가.
“자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겠지?”
“…….”
“말해 봐. 네 생각을 듣고 싶다.”
제갈각의 말에 일성이 잠시 고민하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
“확인한 바에 따르면 수적들은 그가 스스로 무당의 검이라 했다더군요.”
“무당의 검?”
“예. 지금은 비록 잊혀 가고 있으나 무당의 검이라는 말의 의미를 아시지 않습니까?”
무당의 검.
그것이 가진 의미.
그것은 무당의 대제자나 장문인이 가지는 의미와는 달랐다.
무당에서 가장 강한 이들에게 내려지는 상징적인 칭호였다.
대대로 ‘무당의 검’이라 불린 자들은 그 무공이 입신(入神)에 이르러 중원 무림을 울려 왔다.
“미쳤군. 치기를 넘어 미쳤어. 고작 약관에 이른 놈이 무당의 검이라고?”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일성은 웃지 않았다. 본인의 성격이기도 했으나 정말로 그리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확인이 필요하단 말이냐?”
“나쁠 것은 없을 듯합니다.”
“흐음.”
제갈각이 제 턱을 쓸며 일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일성, 동획.
평범한 무인이 아니었다.
제갈각의 먼 친척이기도 한 그를 옆에 둔 이유는 그저 남들보다 뛰어난 무공 때문이 아니었다.
세(勢)를 볼 줄 아는 눈.
훈련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드물게 나타나는 사람의 본성이자 감각이었다.
그의 말과 진심 어린 표정에 제갈각은 진무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진무.’
어찌 보면 모든 것이 그놈 때문이었다.
그놈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자신의 완벽했던 계획이 틀어져 버린 것이다.
만약 그가 정말로 탄기를 깨달았다면?
탄기에 이른 약관의 무인.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 상징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단번에 중원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안 그래도 호북의 주인 자리를 놓고 제갈세가와 오랫동안 수면 아래에서 다퉈 온 무당이 아니던가?
될성부른 싹은 진작에 밟아 놓는 것이 좋다.
후에 막강한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좋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네 판단이 그렇다면 두들겨 봐야지. 돌다리인지 나무다리인지.”
제갈각이 묘한 표정을 짓자 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성.”
“예. 대공자.”
“암천대주를 만나야겠다.”
“예?”
제갈각의 말에 무덤덤하기만 했던 일성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확인이 필요함을 말했을 뿐인데 암천대(暗天隊)라니.
“너무 과하십니다.”
암천대는 청화대와 더불어 가주의 직속 무인대였고, 그림자이자 은밀한 살수였다.
아무리 다음 대의 가주로 거론되는 제갈각이 그들과 교류를 하고는 있으나.
‘암천대를 움직이면 가주께서 아시게 될 터인데.’
일성의 미간이 찌푸려지자 제갈각이 피식 웃었다.
“만사 불여튼튼이다. 네 말대로 그놈이 무당의 검이라면 조금도 과하지 않다.”
일성은 제갈각의 말에 비웃음이 서려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또한, 아버님께서 아신다 해도 상관없다. 만약 탄기의 경지라면 미리 확인해야 함이 마땅하다.”
“알겠습니다. 암천대주를 부르겠습니다.”
* * *
다음 날 밤, 일해상단.
정주로 떠났던 상선이 돌아왔다.
무사히 상행을 마친 것도 모자라 수적까지 토벌했으니 일해상단은 잔칫집 같은 분위기였다.
정원에 수 개의 화로가 밝혀지고, 고생한 이들을 위한 연회가 열렸다.
그런데.
‘이 자식이 코빼기도 안 비춰?’
연회에 참석한 진무가 상단주 강유와 함께 따로 앉아 있는 진궁을 째려보았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
일해상단은 물론 인접 상단까지 나루에 나와 그들의 승전을 축하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진궁은 나오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였다.
무릎을 꿇고 사죄하기로 한 주제에 진무 일행이 일해상단에 도착하고 나서야.
“애썼다.”
그 한마디가 끝이었다.
그것도 근엄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주위에 사람들만 없었다면 당장에 대가리를 후려쳤을 것이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재주는 진무가 부렸는데 어째서 진궁이 상단주와 동석해서 감사를 받는단 말인가?
망할 도사 놈.
설마 업적까지 챙겨 가는 건 아니겠지?
진무가 진궁을 째려보고 있는 동안 청상과 청우는 남아 있었던 청강을 비롯한 이대제자들에게 영웅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진짜 대단했다니까? 와, 정말 그 다섯 명을 쓰러뜨리는데 숨이 막히는 줄 알았어.”
“다섯을 말입니까?”
“그래.”
청상의 말에 상황을 보지 못한 이대제자들이 침을 삼키며 집중했다.
“그러곤, 팍! 파팍! 이렇게 막!”
“이야!”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막 속이 다 통쾌하더라니까? 그 사악한 수채의 잔당들까지 토벌하시다니. 사숙께선 정말 우리 무당의 표본과도 같은 분이셔.”
청상이 말을 쉬지 않는다.
원래 저런 성격이었나?
좀 더 진중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뭐 그 덕에 이대제자들이 진무를 바라보는 눈빛에 존경이 잔뜩 어려 있었다.
좋아, 잘한다. 더 해라, 청상아!
그들과 함께 앉아 술을 마시고 있던 진무가 흐뭇해하며 진궁을 쳐다봤다.
자꾸 힐끗거리는 것이 자신이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못마땅해하는 것이 틀림없다.
술도 맘 편히 못 먹게 하다니. 속 좁은 놈 같으니.
진무는 남은 것을 빨리 먹고 주루나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진무의 생각과는 달리.
‘기특한 녀석.’
진궁은 상단주와 함께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온 신경은 진무에게 향해 있었다.
단지 체면 때문에 모른 척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속마음 같아서는 진무을 와락 끌어안고 잘했다 칭찬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사히 상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그저 어깨를 두들기며 애썼다는 한마디만 하고 말았다.
섭섭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쩌겠는가?
진궁은 사형으로서의 위엄을 지켜야만 했다.
너도나도 잘했다고 칭찬해 준다면 사람은 교만해질 수밖에 없다 여겼다.
그리고 사형은 사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길을 잡아 주는 사람이었다.
진궁은 그저 진무를 연신 힐끗거리며 흐뭇한 표정으로 치하를 대신했다.
‘하긴 진무의 무위라면.’
자신을 이겼을 때.
진무가 탄기의 경지에 이르지 않았을까 추측했던 것이 확신으로 다가왔다.
예의가 좀 없으면 어떠하단 말인가? 그저 성격이 거침없기 때문일 것이다.
고기? 술?
십계를 어긴 일이지만 오늘 같은 날은 눈감아 줄 수도 있었다.
어차피 육식에 대한 금기는 한시적으로 해한다는 장문인의 발표가 있었지 않은가?
단지.
꿀꺽, 꿀꺽.
좀…… 너무 많이 먹어서 그렇지.
술병째로 벌컥이며 마시는 모습에 자꾸 시선이 갔지만 진궁은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휴,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꼭 고쳐 주어야겠다.’
약관에 탄기에 이르렀다면 그 발전 속도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어쩌면 머지않아 의기의 경지에 오르고, 절대라 불리는 ‘강’까지 재현해 낼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사형께서도 금세 탄기에 오르는 것 아닙니까?”
응? 뭐?
갑작스러운 청우의 말에 진궁이 멀뚱거리는 표정으로 청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에이, 말도 안 돼.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현기에 오른 지 얼마나 됐다고.”
이것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진궁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러지 말고 저도 좀 가르쳐 주세요. 요즘 자꾸만 벽이 느껴진다니까요?”
“에이, 네가? 거짓말.”
“정말이에요.”
“아서라. 내가 보기엔 넌 아직 멀었어. 아마 말해 줘도 모를걸?”
청상의 말에 청강이 놀란 표정으로 묻는다.
“진짜 현기에 오른 거야?”
“예. 얼마 전에요.”
청우가 마치 제 일처럼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거짓말.”
“어? 정말인데?”
“…….”
“사형, 한번 보여 주세요.”
“아, 됐어. 부끄럽게시리.”
청상이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싫지는 않았던지, 부끄러운 듯 볼을 붉히며 일어나 자신의 검을 뽑아 바닥으로 늘어뜨렸다.
그리고.
“합!”
스르륵.
비록 ‘쑥’은 아니지만 청상이 기운을 주입하자 검 끝에서 푸른 선기가 희미하게 한 자 가까운 길이까지 늘어났다.
“와!”
이대제자들의 탄성이 터져 나오고, 진궁은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다.
진짜 검기라고?
‘맙소사. 도대체 명진 사숙께서 어떤 방법을 쓰셨길래.’
듣기로 전대의 일대제자 중 최고수였다 하는 명진이었다.
명현과 함께 장문인의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는.
그런데.
“진무 사숙께서 깨달음을 주셨어.”
지, 진무라고?
명진 사숙이 아니라?
청상의 말에 진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냥 딱 한 마디 하시는데 그 순간에 느껴지는 희열이……. 와, 진짜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니까요.”
“…….”
딱 한 마디.
그게 말로 되는 거였나?
말한다고 막 알아듣고 깨닫는 그런 거였다고?
진궁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쳐다보는데.
“어?”
진무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