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65
465화
자소궁의 대전이 발칵 뒤집혔다.
웅성거림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삼대제자들의 연이은 탈주로 이대제자들의 불만이 거세니 보여 주기식으로 부른 것일 뿐, 어디까지나 주의로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무당지검의 신분을 인계하겠다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아니 될 말이다!”
명현이 명진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러?
“무당지검은 무당의 얼굴이다. 한데 어찌 부족한 이대에게 그 이름을 인계할 수 있단 말이냐!”
“옳습니다. 계율에 어긋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무당지검은 그저 일반 제자가 아닙니다. 마땅히 그만한 공적을 세운 자만이 받을 수 있는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
진무는 장로들이 저마다 격한 반대를 토해 내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진무의 원래 목적은 무당지검의 인계와 더불어 그 자신의 파문이었다.
하지만 파문 어쩌고 했다가는 내공을 폐하네 사지근맥을 자르네 잔인한 소리를 남발할 것이라 생각했고, 무엇보다 스승의 마음에 상처가 될까 참은 것이다.
그런데 뭐? 안 돼?
우리 스승님께서는 내 의사를 존중하시겠다는데 니들이 왜 지랄들이냐?
이것들이 확 그냥.
일이 제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자 진무는 죄 목을 따 버릴까 고민했다.
하지만 진무에게 무당지검이라는 것은 합당한 힘을 가진 누군가에게 인계해도 상관없는, 그저 이름에 불과했으나 무당 도사들에게는 달랐다.
작금의 무당이 성세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지원금이 많아서도 아니고, 제자 수가 많아서도 아니었다.
일찍이 마교주 북리도천, 사패천주 혁련무강이 그랬듯 무당지검으로서의 진무가 그들의 긍지이자 자존심이 된 것이다.
“안 된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비록 후에 너의 이름을 이용했다는 평을 받게 된다 하여도 상관없다. 나는 장문인으로서 너의 결정을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
“…….”
딱 잘라 말하는 명현을 진무가 눈살을 찌푸리고 쳐다보았다.
뭐, 이해는 하겠다.
한 사람의 무인이 가지는 상징성.
일개 야인으로 존재할 때와 그들의 대표자로 있을 때의 이름은 분명 다르다.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이득이 실로 무궁무진하기에 도사이기 이전에 일파의 수장으로서 차마 승인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장문인, 그리고 모두들. 일단 진정하시고…….”
“자넨 아무 말도 말게! 어찌 자꾸만 진무를 감싸려 드는 게야!”
“…….”
좌중을 진정시키려던 명진이 되레 명현에게 호된 질책을 받았다.
“휴우…….”
침묵을 지키던 진무가 깊이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해도 물러설 생각은 없다.
이미 청상에게 넘겨주려 마음을 먹었으니까.
“장문인.”
“말하거라.”
감정이 격해진 탓인지 아까까지만 해도 한없이 부드러웠던 목소리가 사뭇 날카로웠다.
“제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청상에게 무당지검을 인계하려 한다 생각하십니까?”
“뭐?”
“멈춰 있는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앞선 이는 응당 뒤에 따라오는 이를 위하여 길을 열어 주어야 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네가 무당이 된 지 고작 삼 년이다.”
“삼 년씩이나 되었지요.”
“…….”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무당지검이라는 이름을 내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청상이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세인들은 제가 물러났다 하여 무당이 약화되었다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무당에 그만한 인재가 또 있다는 것에 놀라워하겠지요.”
“…….”
“자고로 큰 나무는 널리 그늘을 드리워 주위를 이롭게 하나, 아래에 있는 나무에게는 높이 뻗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일 뿐입니다.”
진무의 잔잔한 말이 명현과 장로들의 굳어진 생각에 돌처럼 던져졌다.
“능히 더 크게 자랄 수 있는 청상입니다. 당장에 능력이 모자란다 해도 큰 자리에 앉으면 마음껏 제 뜻을 펼칠 녀석입니다.”
“…….”
진무를 따라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청상이 부끄러움에 목을 움츠리며 눈치를 살폈다.
어깨 펴라. 이 자식아.
지금 이 사숙이 너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고 있지 않냐?
“하나 청상은 아직 어리니라.”
“…….”
명현의 말에 진무가 피식 웃는다.
“어리다니요. 청상은 오직 자신의 힘으로 용봉관의 수좌가 되었고, 궁을 상대하며 무당의 이름을 만방에 떨쳤습니다.”
진무의 목소리에 대전의 웅성거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또한, 생각이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다른 도사들과 달리 유연하고 자유롭지요.”
“……자유롭다?”
“암요. 황궁에서 있었던 일이 오직 제힘으로만 가능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
“그 모든 계획을 세운 것은 저도, 정무맹 대군사도 아닌 청상이었습니다.”
“뭐, 뭐라?”
진무의 말에 청상을 바라보던 장로들과 장문인의 눈이 동그래졌다.
심지어 청상마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진무를 쳐다보았다.
이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무림에는 감숙의 태자 사건부터 황궁에서 궁을 축출해 낸 계획까지 모두 대군사 제갈협진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가 아니라 청상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냐? 대군사가 아닌 청상이 계획을 세웠다니?”
“정말 답답하십니다.”
“…….”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모르십니까?”
진무의 말에 명현과 장로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정무맹 예하 문파들의 반발이 실로 거셌지요. 그런 와중에 한낱 무당의 이대제자가 세운 계획이라 하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대군사의 이름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런 내용이 감추어져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 청상입니다. 여느 도사처럼 고리타분한 생각으로는 절대로 그런 계획을 세울 수 없지요. 나서야 할 때를 잘 아는 녀석입니다.”
“…….”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그저 모두가 진무와 청상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아까 공적에 대해 말씀하셨지요? 지금은 어떠십니까? 누가 그보다 많은 공적을 세웠습니까? 지금의 일대제자들 중에, 아니 장로님들 중에 청상만큼 이름을 떨친 이가 있습니까?”
“그, 그건…….”
진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청상아, 사실이더냐?”
명현의 질문이 청상을 향했다.
“예? 아, 시작은 제가 맞긴 하지만…… 사숙께서…….”
“보십시오.”
“…….”
청상은 기초만 자신이 세우고 대부분의 계획은 아니었다 말하려다 진무가 끼어드는 바람에 말을 멈춰야만 했다.
“이 녀석이 이리 겸손하기까지 합니다. 지금도 제게 공을 돌리려 하지 않습니까.”
“…….”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탄하자 청상이 황당함에 눈만 깜박였다.
“허, 거참.”
하지만 진무의 말을 듣고 있는 명현과 장로들은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휴우…… 그래. 네 말이 맞다면 청상은 실로 뛰어나다 하겠다.”
호흡을 고르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명현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진무야. 무당지검의 이름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다.”
“…….”
진무는 담담하게 이어 나가는 명현의 말을 묵묵히 경청했다.
“청상의 지혜가 남보다 뛰어나며, 올곧게 바르니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는 무당지검의 이름을 이어받을 수도 있겠지.”
“…….”
“하나 아직 그 짐을 지기에는 어리고 약하니라. 무당지검에게 필요한 것은 전략에 밝은 군사의 자질도 아니고, 도사로서의 함양도 아니다. 무인으로서의 성취야.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아야 하며,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강력한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고집스럽기만 한 명현의 말에 진무가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거참 설득하기 더럽게 어렵네.
그래, 뭐, 거기까지도 이해한다.
무당의 검(劍).
그 이름을 받은 이에게 인성이 어떻고, 도력이 어떻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함이다.
진무의 파락호 같은 면에 대해 아는 이들은 다 안다.
다만 그가 만들어 낸 의로운 결과들이 말 한마디 할 수 없도록 덮어 버린 것에 불과했다.
사람 베는 검의 외양이 싸구려면 어떻고 고급지면 뭐 하겠는가? 날만 잘 서 있으면 그만이지.
해서 무당지검이 된 진무에게 무당의 보물인 태청신단까지 내주며 내력 증진을 돕지 않았던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도 감사하고 있었다.
“청상이 약관에 탄기의 경지를 이루었으니 성취가 모자란다 할 수는 없지만…….”
“예? 뭐요?”
“응?”
명현의 말에 진무가 그게 뭔 개소리냐는 듯 황당한 표정으로 명현의 말을 잘랐다.
청상이 탄기라고?
미친, 고작 그 정도로 알고 있었던 건가?
진무는 내심 기가 막혀 청상을 슬쩍 보았다.
저런 의뭉스러운 놈 같으니…… 설마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 실력을 보여 주지 않은 것이더냐?
“……저기요. 장문인?”
“……?”
“청상이 탄기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아니란 말이냐?”
당연히 아니지.
태극을 깨달은 이후 기의 흐름을 단순히 기감을 통해 느끼는 게 아니라 볼 수 있는 경지에까지 오른 진무였다.
당연히 청상이 드러내지 않고 갈무리하고 있는 기운도 볼 수 있었다.
단전에서 맥동하는 거대한 기와, 전신 세맥을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 흐름까지도.
“쟤, 의깁니다.”
“……의…… 뭐라고?”
“그것도 끄트머리에 다다라 곧 강의 경지에 이를지도 모르는.”
“……!”
툭 내뱉은 진무의 말에 싸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장문인은 물론이고 대전에 모인 이들 모두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눈 간수 잘해라, 이놈들아. 튀어나올라.
“의, 의기라고? 한계에 이른?”
“예.”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될 만도 하지.
진무야 다시 사는 인생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청상의 성취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고작 스물 조금 넘긴 나이에 강의 경지.
비록 그 길을 진무가 열어 주기는 했지만, 그 성취만 따지자면 태청신단에 자소단, 천산설묘 대장의 내단까지 취한 진무보다 훨씬 뛰어난 발전 속도였다.
일전에 한승의 손에 잡혔다가 청상의 도움으로 도주했던 대궁에게 듣기로 이기어검 비슷한 것까지 펼쳤다고 했으니…….
청상은 무당 암기술의 하나인 폐목환이라 했다지만 묘사한 바로는 이기어검의 초입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부러운 놈 같으니.
이건 뭐 사기에 가까운 천재성이 아니던가?
진무가 없었다면 무당지검이라는 이름은 청상이 가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단지 드러내지 않았기에 아무도 모를 뿐.
지금도 그저 부끄러운 듯이 제 뒷머리만 긁적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구나. 전에 보여 준 게 위강이었어. 난 또, 진짜 강기인 줄 알았네.”
“……!”
난데없이 흘러나온 청우의 중얼거림이 모두의 놀람을 더욱 증폭시켰다.
“저, 정말이란 말이냐?”
명현이 너무 놀란 나머지 떨리는 눈동자로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왜요? 보여 드릴까요? 뭐, 그러는 게 빠르겠네요. 믿기는 영 힘드실 테니까.”
“…….”
모두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진무를 멍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개중에는 지금까지 제가 들은 게 꿈인가 싶어 볼을 살짝 꼬집는 자도 있었다.
“청상.”
“예?”
“나가자.”
“…….”
진무가 대답도 듣지 않고 밖으로 나가자 청상이 어색한 표정으로 일어나 그 뒤를 따랐다.
“허, 대관절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이냐?”
진무 하나만으로도 족한 일이었다.
이후 돌아온 진명이 태극혜검을 선보였을 때는 가슴이 부풀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청상이 강의 경지에 오를지도 모르다니?
너무도 기쁜 나머지 기쁨을 채 표하지도 못한 이들이 진무와 청상의 뒤를 홀린 듯이 쫓아 연무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