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66
466화
“사숙…… 아무래도 이건 좀.”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거야.”
“…….”
청상은 자신에게 닥친 이 난데없는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자신에게 무당지검의 이름을 인계하겠다고 한 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비무를 해서 모두에게 실력을 보이란다.
사문에 자신의 실력을 보여 주는 것이 뭐가 어렵겠는가?
사숙의 명이라면 가진 모든 무공을 온종일이라도 펼쳐 보일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상대였다.
사형제들로 가득 찬 연무장의 중심.
스르릉.
찬란하게 반짝이는 검신을 뽑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사숙 진무였다.
아니, 왜 본인이 직접 상대한단 말인가?
검으로서는 태극혜검에 이기어검까지 깨닫고, 양의심공을 대성해서 마교 교주 북리도천을 무지막지하게 줘 팰 만큼이나 강한 사람이.
청우도 있고, 일대제자들도 있는데 왜 굳이 직접 나선단 말인가?
급이 다른데, 급이.
“사숙, 이건 말이 안 됩니다.”
“뭐가?”
“왜 하필 사숙인데요?”
거의 울먹이는 투였다.
진무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무슨 그렇게 뻔한 질문을 하고 있어?”
“…….”
“나를 이어 무당지검이 될 너를 내가 아니면 누가 시험한단 말이냐?”
뻔하다니! 뻔하다니!
아니, 애초에 누가 무당지검이 되고 싶다고 했나요?
당사자와 논의 한마디도 없이 사숙께서 막 던진 말이잖아요!
항변할 수만 있다면 그리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
더욱이 진무가 손에 쥔 일휘에 시퍼런 강기가 넘실거리고 있었고, 눈동자에는 날 선 살기마저 어려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최선을 다해야 할 거야.”
“…….”
최선 좋아하시네…….
그런다고 사숙에게 생채기나 낼 수 있으면 고민도 안 합니다.
차라리 패요, 그냥.
평소처럼 패시라고요.
청상은 차라리 지금 상황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청상아.”
“……?”
진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청상을 불렀다.
[니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어.]나 참, 누가 보면 진짜로 좋아서 웃는 줄 알겠…… 그런데 전음?
반드시 알아야 할 것?
[이 사숙이 오늘 반드시 너에게 무당지검의 이름을 넘겨야겠거든?]“…….”
[그런데 만약에 니가 제 실력을 발휘 못 해서 모두가 실망하면 이 사숙이 어찌 되겠니?]전음이 계속될수록 청상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로 생각할 거야. 되게 슬프겠지. 슬프면 화가 날 거고. 화가 나면 어떻게든 해소하려 하겠지? 해소하려면 패…… 아니 아마 죽이지 않을까?]“…….”
어째서 슬프다 말고 죽는 걸로 결론이 나요, 이 죽일 놈의 사숙아.
우리가 무슨 불공대천의 원수도 아닌데 이 무슨 가혹한 결말이냐고요.
젠장. 전음이니 귀를 틀어막아 봐야 소용도 없고…….
“자, 그럼 모두가 기다리시니 시작하자꾸나!”
파아앙!
진무가 지면을 밟음과 동시에 청상에게 쏘아져 들어왔다.
잔상을 남기며 날아드는 검의 궤적, 그 안에 담긴 무지막지한 힘과…… 살기.
아, 이 사숙께서 진심이네.
청상의 등 뒤로 식은땀이 쭉 흘렀다.
정말이지 봐줄 생각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잖아……?
황급히 뒷걸음질 치던 청상이 어느 순간 검의 손잡이를 잡더니, 빠르게 뽑아 휘둘렀다.
까아아앙!
“크윽!”
몸이 한참 뒤로 밀리고 부딪힌 충격에 손아귀가 찢어지는 것 같았으나 자세를 가다듬을, 아니 숨 돌릴 틈조차 없었다.
이미 진무가 눈을 희번덕이며 다리를 베려 하고 있었다.
인정사정없는 공격에 청상은 처음으로 진무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씨바아알! 망할 사숙 같으니!
물론 속으로였다.
막았던 검을 쥔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은데, 튕겨 나갔던 진무의 검이 곧장 호선을 그리며 심장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숨 쉴 틈조차 없는 연환 공격을 막아 내기 급급했던 청상은 급기야 연무장의 끝까지 밀려 났다.
파캉! 스걱!
명검 일휘와 부딪힌 청상의 검이 이가 나감과 동시에 그의 몸에도 상처가 새겨지고 피가 튀어 올랐다.
“크윽!”
바닥에 긴 족적을 남기며 다시금 뒤로 밀려 난 청상이 급히 검을 들어 다음 수에 대비하려는데…….
“이놈, 청상!”
“……?”
예상했던 공격 대신 호통이 날아왔다.
“네가 지금 내게 검술 지도를 받는 것이냐!”
“…….”
“이 자리는 지금 새로운 무당지검이 될 네가 모두에게 실력을 보이는 자리다. 어찌 그같이 부끄러운 모습으로 이 사숙의 얼굴에 먹칠을 하려 한단 말이냐!”
“…….”
“유운이 가진 부드러움은 엿이라도 바꿔 먹은 게냐! 어찌 힘으로만 막으려 해?”
황망하게 고개를 쳐든 청상을 향해 검을 등 뒤로 잡은 채 멈춰선 진무가 호된 질책을 내렸다.
마치 가르침을 내리는 사부처럼 근엄한 얼굴에, 목소리까지 진중하게 쫙 깔고서.
하지만 청상의 얼굴이 공손할 리 만무했다.
아니, 대관절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애초에 무당지검을 인계하니 마니 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다시 검을 들어라. 그리고 모두에게 제대로 보이거라!”
“…….”
청상이 억울해하거나 말거나, 진무는 무당산 전체가 울리도록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물론 잠시나마 청상에게 기대했던 무당 사람들의 얼굴에 실망감이 어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휴, 사숙.”
“왜? 뭐?”
자리에서 일어난 청상이 이 빠진 자신의 검을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절대로 고집을 꺾지 않으실 거죠?”
“…….”
“정말 너무하시네요. 원하지도 않는 길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청상이 옷자락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곤 검을 꾹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것이 사숙께서 제게 바라는 길이라면 그게 시련일지라도…….”
“…….”
“마땅히 걸어가겠습니다.”
마침내 청상의 눈빛에 주저함이 사라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무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진즉에 그럴 것이지.
저놈은 항상 저게 문제다.
예의 바르고, 예의 바르며, 예의 바르기만 하지.
예의가 밥 먹여 주냐?
“자, 그럼 이제 진짜로 해볼까? 나의 자랑스러운 사질 녀석아!”
검이 곧게 쏘아져 나오고, 진무의 몸이 그 그림자에 스며든다.
검에 어린 푸른 선기가 한 마리 용의 형상이 되어 포악한 질주를 시작했다.
“…….”
청룡의 아가리가 잔혹한 이빨을 드러내며 단번에 청상을 집어삼킬 듯 벌어지는 순간, 발을 뗀 청상의 몸이 가볍게 뒤로 튕겼다.
유운(流雲), 흐르는 구름.
물이 그러하듯 구름 역시 형태를 이루지 않는다.
보이는 모양은 그저 바람이 이끄는 대로 뭉쳐진 모양일 뿐.
청상의 손안에서 부드럽게 휘돈 검이 청룡의 머리를 둥글게 감쌌다가 가볍게 밀어 냈다.
스르륵, 땅!
막지 않고 보듬으니 부딪힘에서 일어난 소음은 극히 작았고, 청상의 몸이 힘없이 밀려났다.
목표를 잃어버린 청룡의 아가리가 허공을 베어 물자 진무의 입가에 떠올랐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래,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그래야 보는 이들도 즐거울 게 아닌가?
하지만 진무는 보는 이들에게 긴장과 희열을 교대로 느끼게 해 줄 생각 따윈 없었다.
봐주지 않는다.
전력은 아니지만 감당할 수 있는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숟가락을 쥐여 준 것은 자신이었으나, 떠먹는 것은 청상이어야만 했으니까.
쿵!
청상이 있던 자리에 도달한 진무의 일보가 지면을 거칠게 밟았다.
파아앙!
굽혔던 무릎이 펴지는 순간 또 한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
멀어지는 구름을 뒤쫓아 그 중심을 꿰뚫으려는 듯 솟구쳐 오르자 일순 청상의 검이 흩어졌다.
하나 그것은 진무의 공격 때문이 아니었다. 본디 유운검법이 가진 성질이 그러했다.
상대가 강할수록 그 힘을 이용한다.
유유자적하게 흐르는 구름처럼 자연스럽게 이어 나가다, 결정적인 순간에 적의 허점을 찾는 것이야말로 유운검법의 본질이었다.
“허!”
“저럴 수가!”
뒤쫓는 진무와 달아나는 청상의 모습에 지켜보는 이들의 얼굴에 경탄이 어린다.
이전의 실망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둘의 비무는 승부가 아니라 구름과 용이 어우러지며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비록 그 경지가 달라 실린 공력과 예리함에서 차이가 났을지언정 검술로만 보면 백중지세에 가까운 실력이었다.
“청상이 저렇게나 검에 대한 깨달음이 높다니.”
누군가의 감탄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취릿, 따아앙!
그사이 흩어졌다 모인 구름이 용과 부딪히며 이전보다 강한 공명음을 냈다.
수백의 검격이 연무장을 가득 채우고, 쪼개지고 갈라진 기의 파편들이 튕겨 나와 아스라이 흩어졌다.
곳곳에 함성이 터졌다.
세상이 절대라 부르는 진무와 그 뒤를 쫓는 청상의 검은 모두의 얼굴에 희열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청상은 온전히 진무의 검에 어우러지지 못했다.
청상의 구름은 아직 작기만 했고, 진무의 용은 너무나 거대했으니까.
지금까지 버티는 것도 실은 진무가 적절하게 사정을 봐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상의 능력을 제대로 끌어내기 위해서.
“큽!”
결국 힘에서 밀린 청상이 신음과 함께 물러났다.
땅! 따당!
매 순간 청상은 사력을 다해 진무의 검에 대항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힘이 빠졌다.
연무장, 아니 무당의 정상은 오직 진무의 선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거대한 힘 앞에서 쉼 없이 노력했으나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경지의 차이.
청상이 죽었다 깨어난다고 해도 진무가 이룩한 깨달음과 그가 가진 망망대해 같은 내공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그래, 이만하면 잘 해냈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무를 상대로 나름대로 선전은 했지 않은가?
진무가 원했기에 마땅히 걸어가려 했으나, 역시 자신의 역량으로는 무모한 걸음이었다.
좌절이 마음이 이르니 검에 부드러움이 사라지고, 가벼움은 무거움으로 변해 둔탁해졌다.
“…….”
순간 진무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지금껏 잘 해내던 놈이 갑자기 무력해졌다.
투기가 사라지고, 무언가에 구속된 듯이 검이 답답해졌다.
이놈, 무슨 짓거리냐!
사숙, 제가 견딜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집니다.
닥쳐라. 더 해보지 않고 어찌 포기한단 말이냐?
더 해봐야 소용없는 일인 것을요.
맞부딪히는 검에 대화가 오간다.
하지만 대화가 길어질수록 진무는 화가 났고, 청상은 더욱 무기력해졌다.
멍청한 놈. 고작 이 정도로…….
죄송합니다, 사숙.
……그래? 그럼 정말로 죽이는 수밖에.
“……?”
검에 실린 기운이 싸늘하게 변하고 대화가 끊어졌다.
힘 빠진 청상을 바라보던 진무의 눈동자에 스산한 검은빛이 스치고, 살기가 폭풍처럼 터져 나왔다.
쩌어어엉!
튕겨 나간 청상이 바닥을 구르고 힘겹게 몸을 세워 진무를 바라보았다.
우우웅!
허공에 멈춘 진무의 몸에 치솟는 기운으로 인해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쿠르르르르.
하늘이 울린다.
진무가 만들어 낸 거대한 기운에 무당산이 통째로 뒤흔들렸다.
굳이 이렇게까지?
청상의 무위를 보여 주려는 마음은 알지만, 고작 비무가 아닌가?
너무 과열되었다.
“지, 진무야! 그만하면 되었다. 멈춰라!”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을 뿜어낸 진무의 모습에 경악한 명현과 장로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진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명진의 말도 듣지 않았다.
스가가각!
“……!”
검에 어린 선기가 용의 발톱처럼 변해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청상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머리가 멍해졌다.
사숙은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청사-앙!!”
“……?”
두려움에 뻣뻣해진 청상의 귓가로 진무의 외침이 파고들었다.
“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망치이나 구멍을 뚫는 것은 송곳이다!”
“…….”
“깨달아라! 그러지 못하면 죽는다.”
진무의 스산한 외침이 무당산을 강타했다.
하지만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막기에는 진무의 공격에 실린 기운이 너무 강하기도 하였거니와, 무엇보다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이미 발톱은 청상의 머리 위를 할퀴고 있었다.
그런데 절체절명의 순간, 진무의 목소리를 들은 청상은 이상하리만큼 주변이 고요해졌다고 생각했다.
멈춰 버린 시간에 홀로 존재하는 듯,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느릿하게 보였다.
다들 자신을 향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언가 외치고 있다.
그들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들어 보니, 진무가 뿜어낸 거대한 강기의 막이 자신을 덮어 오고 있었다.
어째서?
자신이 그의 뒤를 따라가지 못했기에?
이렇게나 노력해도 안 되는데?
무력하게 바라보는 사이에도 강기의 막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사숙께서 마지막에 뭐라 하셨지?
망치…… 송곳…… 힘을 한 점에?
……아!
자문을 거듭하던 청상이 답을 얻는 순간, 시간이 원래의 흐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거대한 강기의 막이 연무장을 강타하며 청상의 몸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누가 막을 새도 없이…….
콰아아아앙! 쫘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