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68
468화
진무와 청상의 비무는 무당산에 기거하는 모든 이들의 입에 온종일 오르내렸다.
무슨 이야기든 결론은 하나였다.
이래서 다들 우리 진무 우리 진무 하는구나.
그리고 이틀이 지난 다음부터 무당파에 기현상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수련시켜 주십시오!”
해가 뜨기도 전이었다.
첫닭이 홰를 치지도 않았고, 주위는 사물을 겨우 분간할 수 있을 만큼 어슴푸레했다.
졸린 눈 간신히 비비며 나왔던 게 언제였냐는 듯, 그 이른 시간에 오룡궁의 이대와 삼대가 충허암의 공터를 발 디딜 틈 없이 메웠다.
심지어 다른 궁의 제자들까지 기웃거리며 줄을 이으니 정말이지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대체 왜 기상 훈련을 생략하시는 겁니까? 그제도 어제도 거르셨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전 이틀째 밤을 새워 아침만 기다렸습니다.”
“때려 주십시오! 아니, 맞지 않으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맨바닥에 무릎을 꿇은 제자들이 초옥을 향해 한목소리로 애원했다.
“비로소 높으신 뜻을 깨달았습니다. 저희에게 시련을 내리셔서 극복할 수 있는가를 시험해 옥석을 가리고자 하셨음을.”
“극한까지 몰아붙여 스스로 깨닫도록 하신 깊은 뜻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발!”
진무의 본심을 제멋대로 해석한 외침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비무 이전을 생각하면 촌극도 이런 촌극이 없었으나 한편으로는 당연했다.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보았고, 들었다.
무당산 정상에 자욱하게 드리웠던 푸른빛 선기.
그리고 장문인과 장로들, 일대제자들 전원이 같은 말을 했다.
한계까지 내몰린 청상이 깨달음을 얻어 강을 이루었다고.
이는 이대와 삼대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욕쟁이 황신, 뼈다귀 각출, 탈골 전문가 능서현까지.
대체 어째서 자신들에게 그런 불합리한 고통을 준단 말인가?
하지만 이제야 모두가 깨달았다.
무릇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하였다.
고통 없이 달콤함을 얻을 수는 없는 법.
후에 들어 보니 청상과 청우는 무려 삼 년이라는 세월을 따라다녔다고 했다.
아니, 무려가 아니지. 고작 삼 년이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 만에 청상이 지고한 경지인 강의 환희를 맛봤겠는가.
다 그 지옥 같은 수련을 끈질기게 버틴 결과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청상은 어쨌거나 원래도 기량이 뛰어났으니까 그렇게 된 거라고 치자.
더 중요한 건 청우다.
이대제자 중에서도 가장 둔하고 모자랐던 그가, 삼 년 만에 탄기의 극한에 이르러 일대제자들 몇몇과 어깨를 나란히 할 실력이 된 것이다.
그 누구보다 떨어지던 청우가. 자타공인 똥멍청이 청우가.
실로 뼈아픈 실책이었다.
삼 년, 아니 일 년이라도 어떻게든 참고 버텼어야 했건만, 채 한 달을 참지 못한 것이다.
진무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쏟아 내기 바빴으니 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얼마나 인내심이 부족하였는지.
그들은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해서 이 꼭두새벽에 모인 것이다.
깊이 사죄하고, 다시 수련을 시켜 주시라 애원하기 위해.
하지만 아무리 목 놓아 외쳐도 충허암의 초옥에서는 답이 없었다.
오직 당세령만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
정말이지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충허암에 기거한 이후 가장 먼저 일어나 명진의 아침을 준비하는 그녀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참을 수 없는 방해였다.
“하아, 이것들이 대체 뭔 짓거리를…….”
이제 요리를 해야 하는데.
망할 놈들이 자신의 영역까지 밀고 들어와서 진을 친 바람에 볶아야 할 고기는 자르지도 못했고, 당근이나 겨우 썰다 말았다.
“저희에게 청상이나 청우처럼 시련을 내려 주십시오!”
“사랑의 매를 달게 받겠습니다.”
“…….”
특히나 청우, 청상과 동배인 이대제자들의 애원.
당세령에게 그들의 모습은 너무도 한심해 보였다.
보는 눈이 없어도 유분수지.
아직 다들 어려서 그런가?
수련을 받으면 전부 청상이나 청우처럼 될 줄 아는 모양이었다.
니들이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걔들은 그냥 천재야.
물론 청우는…… 청상과는 다른 의미로 천재다.
몸 천재, 아니 뚝심 천재.
물론 진무의 가르침이 있기도 했으나, 천성적인 우직함이 만들어 낸 노력이 지금의 청우를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고작 니들 따위가.
한 달을 못 버텨서 곡소리를 낼 정도로 나약한 것들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아침 준비를 방해한다고?
“수련시켜 주십시오!”
“…….”
재차 간곡하게 외치는 그들의 모습에 당세령이 혀를 찼다.
반성이고 자시고 백날 외쳐 봐야 헛짓거리였다.
명진을 비롯해 진무와 그 나머지가 지금 충허암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이들이 오기 한참 전에 장문인을 만나기 위해 자소궁으로 출발했다.
아마도 떠나겠다고 하러 간 것이리라.
그리고 지금껏 그래 왔듯이 자신을 떼 놓을 생각일 터다.
하지만 상관없다.
진무가 가든 말든 이제부턴 무당에 머물 생각이었다.
황신이 곁에 있으니 진무를 찾으려면 못 찾을 일도 없고, 무엇보다 이제 목표는 명진이었다.
홀로 돌아올 명진에게 대접할 아침 준비를 방해하는 이 하찮은 것들을 마음 같아서는 모조리 줘 패서 돌려보내고 싶지만…….
그녀가 아무리 또라이라고 해도 남의 문파 제자들을 마음대로 죽사발을 낼 수는 없었다.
“저기요.”
“……?”
“지금 다들 없거든요? 그러니까 그만 돌아들 가시죠.”
당세령의 말에 제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자고 있는 게 아니라 아예 없다고? 어쩐지 목놓아 외쳤건만 답이 너무 없더라니……. 그럼 아침 수련은?
“아침나절에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그때 다시 오세요.”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한 당세령이 억지 미소까지 지으며 예의를 갖추었다.
와 봐야 이미 떠나고 난 뒤라 소용없겠지만…….
“그럼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
누군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당세령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툭 불거졌다.
하지만 그녀는 한 번 더 참았다.
“저기요. 제가 밥을 해야 하거든요?”
“방해되지 않도록 비켜나 있겠습니다. 오늘 아침은 반드시 죄를 청하고 맞아야…… 아니 수련을 받아야겠습니다.”
“…….”
그녀의 관자놀이에 두 번째 힘줄이 불거지고, 한쪽 눈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것들이 못 맞아 죽은 귀신에 씌었나. 뭘 이렇게까지 질척거리는 거야?
그래, 그렇게까지 수련을 하고 싶다 이거지?
“……저기요. 그럼 제가 대신 수련을 시켜 드릴 테니까, 일단 그걸로 만족하고 돌아가실래요?”
“……소저께서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당세령을 쳐다보던 제자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스쳤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의 수련은 모두가 진무와 함께 온 이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눈앞의 당가 여인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렇다는 것은?
그녀 역시 자신들에게 시련을 내려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에 생각이 미치자 제자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꿩 대신 닭.
비록 이 자리에 진무는 없으나 무슨 노력이라도 해야만 했다.
자신들에게 실망한 진무의 마음을 돌릴 수만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누군가의 선창에 이어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치자 당세령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
좋아, 좋아.
니들이 말하는 수련은 모르겠고, 밥을 지으려면 나는 니들을 좀 치워야겠으니.
“지금부터 벌어지는 상황…… 아니 수련은 모두가 스스로 원한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그리고 두말없이 돌아가야 합니다. 알겠죠?”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
당세령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잔혹하게 변했다.
죽이면 안 되니까 식칼은 놓고, 국자면 충분하다.
하물며 사방에 암기로 쓸 것마저 가득하지 않은가?
“좋아요. 그럼 알아서들 잘 피해 보시길.”
“……예?”
괴악하게 좌우로 찢어지는 당세령의 입꼬리에 가장 앞쪽에 있던 이대제자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그녀가 세차게 뻗어 낸 손길에 무언가 섬전처럼 날아와 꽂혔다.
슈아아악! 퍼어억!
“꽤액!”
콧등을 가격하며 부스러지는…… 파?
그런데 처맞은 제자가 괴성을 토하며 튕겨 나갔다.
파앗!
허공으로 솟구친 당세령이 손가락 사이사이 움켜쥔 당근 채를 비처럼 뿌렸다.
슈슈슛! 퍼퍼퍽!
절정에 이른 당가의 암기술이 채소를 도구 삼아 펼쳐지자 피하지 못하고 얻어맞은 제자들이 이곳저곳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했다.
“내가 분명히! 꺼지라고 했지, 이 새끼들아!”
“……!”
슈가가각! 퍽! 콰직, 콰지지직!
채소에 얻어맞고 우수수 쓰러지는 제자들의 모습에 한 이대가 힘껏 외쳤다.
“버텨라! 이 모두가 수련이다! 이겨 내야만 한다!”
“알겠습니다!”
“…….”
별…….
그래, 이건 니들이 원한 거야.
수련, 아니 매 맞는 데 미친 것들아.
어디 몸에 좋은 야채로 건강하게 처맞아 봐라. 내 가진 모든 힘을 다해서 너희를 오늘 아침상 재료로 삼을 것이다!
“오홋홋홋! 전부 뒈져 버려라!”
당세령의 째지는 웃음소리를 타고 사방으로 흩날리는 각종 채소와 국자가 춤을 추니, 이윽고 충허암은 온통 무당 제자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들의 머릿속에 욕쟁이 황신, 탈골 전문가 능서현, 뼈다귀 각출에 이어 요리왕 당세령의 이름이 각인되었다.
언젠가 그들에게 달콤함을 느끼게 해 줄 시련의 하나로…….
* * *
“벌써 간단 말이냐?”
“예.”
“아니, 좀 더 머물지 않고…….”
“시간이 많지 않아서요.”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찾아온 진무의 통보에 명현과 장로들이 아쉬움을 표했다.
그들은 요 며칠간의 변화에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지난 한 달이 온전히 진무에 대한 불평불만이었다면, 청상과의 비무 이후에 쏟아지는 것은 끝없는 찬사였다.
더욱이 그 분위기가 곳곳으로 퍼져 무당산에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련 열풍이 불고 있다지 않던가?
“말씀드린 대로 이 녀석을 무당지검으로 공표해 주십시오.”
“……후우, 알겠느니라.”
명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보았으니 더 뭐라 말할 수가 있겠는가?
또한, 그 역시 진무를 무당의 이름에 가둔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고 있었다.
진무는 이미 무당 제자를 넘어 사패천주며 마교의 교주가 아니던가?
그를 무당에 잡아 두는 것은 그저 놓치고 싶지 않다는 추악한 욕심임을, 이제는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
“이번에 무당은 참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전 무림이 궁을 막기 위해 나섰거늘.”
“그래서 누굴 보내실 겁니까?”
“…….”
“장문인과 장로들이 나서려고요? 아니면 다음 대의 장문인이 되실 진명 사형을 보내시렵니까? 그도 아니면 무당칠자라 불리는 단 일곱 명의 일대제자? 장문인, 무당은 아직 약합니다.”
“……하지만…….”
“과거를 반복하려 하십니까?”
“……음.”
진무가 과거를 들먹이자 모두가 침음성을 흘렸다.
사패천주 혁련무강에 의해 무너진 무당이 그토록 오래 침체되었던 것은 무당을 이끌어 나가야 할 주력들 대부분이 모두 당시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무당에 대단하다 할 만한 고수는 각 궁의 주인인 장로들과 무당칠자라 불리는 일대제자 일곱이 고작이었다.
실력 좋은 이대를 합한다고 해도 그 수가 오십을 넘지 못했다.
“무림, 그리고 천하에 벌어지는 환란은 지금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역사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이번만큼은 발을 빼십시오.”
“……하나 우리가 발을 빼면 모두가 손가락질할 것이다.”
“…….”
명현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가 손가락질해요?”
“뭐?”
“제가 갑니다.”
“……?”
“제가 무당지검의 이름으로 참가할 것입니다. 마지막이긴 하겠지만…….”
“……!”
대수롭지 않은 한마디에 모두의 가슴에 벅찬 감동이 차올랐다.
비록 단 일인이었으나 진무의 이름은 무당, 아니 정무맹 전체와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이미 천하제일인이 아닌가?
그런 그가 다른 무엇도 아닌 무당의 도사로서 전쟁에 나설 것을 천명한 것이다.
“아…….”
모두가 목이 메어 무어라 말을 뱉어 내지 못했다.
“청상.”
“예, 사숙.”
진무의 강요에 의해 백룡의를 입은 청상이 공손히 엎드려 답했다.
“백룡의가 나보다 더 잘 어울리는구나. 원래 네 것이었던 것처럼.”
“…….”
“내 이름과 무당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몇 배나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청상의 대답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따스하게 말했다.
“내가 없는 동안 무당을 지켜야 한다.”
“…….”
청상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완전히 떠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없는 동안이라 했으니 분명 다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몇 번이나 떨어져 본 적이 있었음에도 청상은 괜스레 마음이 먹먹했다.
“스승님.”
진무가 명진을 바라보았다.
“가려느냐?”
“예.”
“당 소저가 준비한 아침이라도 먹고 가거라.”
“…….”
이놈의 스승이 무슨 그런 흉악한 언사를 입에 담는단 말인가?
새벽에 온 이유 중 하나는 일찍 떠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당세령을 떼 놓고 와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또 따라붙으면 귀찮기만 하니까.
“아닙니다. 머물면 떠나기 싫어질 듯합니다.”
차분한 표정 뒤로 본심을 숨긴 진무가 칼같이 고개를 저었다.
“……음, 알았다. 하나 한 가지만 명심하거라.”
“말씀하십시오.”
“어떤 모습이라 해도, 또 어떤 상황에 있다 하여도 넌 무당의 도사이자 나의 제자니라. 언제든 돌아와 쉬거라. 나는 언제나 충허암에 있느니.”
명진의 말에 진무가 은은한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당연한 말씀을요.”
그 말을 끝으로 진무는 자소궁을 나왔다.
그 뒤를 따른 것은 개인 호위를 자처하는 황신과 각출, 그리고 능서현 세 사람이었다.
“출발한다. 북쪽으로.”
“예!”
제운종을 발휘해 구름을 밟듯이 허공을 날아 떠나는 진무를 자소궁에 모였던 무당의 수뇌들이 배웅했다.
명진은 흐뭇함으로, 명현과 장로들은 자랑스러움으로.
그리고, 청상과 청우는 열과 성을 다해 공손히 절을 올렸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