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71
471화
아비규환(阿鼻叫喚).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참상.
대동의 북쪽 다섯 관문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 표현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갑작스럽게 퍼진 독.
새벽에 길어 온 우물물이 화근이었다.
물을 마신 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독에 중독되어 쓰러졌다.
아직 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다소 느슨했던 대동 북쪽의 다섯 관문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들이 나타났다.
아직 한 달은 더 있어야 도착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밝아 오는 하늘과 함께 멀리 산자락에서 나타난 붉은 점들이 모이고 모여 해일처럼 밀어닥쳤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구파의 무인들은 그들을 막아섰다.
그러나 하나씩 베어 가는 중에서야 깨달았다.
공격해 온 이들은 무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러 노인과 아이, 여인들까지 섞인 그들 모두는 홀린 듯 주문과도 같은 말들을 중얼거리며 방어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차마 살수를 펼칠 수 없었던 구파의 무인들은 주먹과 발로 그들을 제압하려 했으나, 쓰러졌다 싶으면 곧장 다시 일어나 달려드니 결국 서서히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폭발이 일어났다.
제게로 달려드는 어린아이를 본 무인이 머뭇거리는 순간, 아이가 들고 온 물통이 눈앞에서 터진 것이다.
갈가리 찢어지며 산화해 버린 아이와 함께 일대가 쑥대밭이 되었다.
순식간에 사방이 폭사한 무인들의 시신으로 가득 찼다.
독이 일으킨 혼란에 폭약으로 인한 혼란이 덧씌워지고, 끝내 무인들이 형성했던 진이 무너지는 순간 공격의 형태가 바뀌었다.
힘없는 일반 백성으로 구성되었던 이들의 틈새를 뚫고 정련된 무인들이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혼비백산한 상태에서 그들을 맞이한 무인들이 검에 꿰뚫리고 잘려 쓰러지기 시작했다.
적들의 파상공세에 방어진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통제 불능의 상황이 사방으로 번졌다.
* * *
까아아앙!
“정신들 차려라! 물러나선 안 된다!”
대동 북쪽 다섯 방어진 중 하나, 화산파가 방어진을 형성한 곳.
화산의 장로 태을이 무인들을 쉼 없이 독려했지만, 이 엄청난 혼란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었다.
피해가 막심했고, 사기는 꺾인 지 오래였다.
“사형! 안 되겠습니다. 흩어집시다. 이대로 가다가는 매화검진이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각자가 매화검진의 구심점이 되어 진을 다시 펼쳐야 합니다!”
“옳은 말이네. 서두르세!”
태상의 말에 태을이 고개를 끄덕이고 진의 핵심을 향해 흩어지려 몸을 날렸다.
그러나 태을이 마지막으로 몸을 날리려는 순간, 이전과 다른 검격이 섬전처럼 날아왔다.
쐐애애액! 따아아앙!
“크윽!”
검을 잡은 손아귀가 찢어질 듯 강한 충격이었다.
비틀거리며 밀려나던 태을은, 이번에는 자세를 바로잡을 틈도 없이 허리를 젖혀야 했다.
슈가가각!
또 하나의 월도가 태을의 얼굴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화산의 장로로 그 무위가 모자라지 않았던 태을조차 중심을 잃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태을을 향해 수없이 많은 월도가 사방에서 떨어져 내려왔다.
“사형!”
피할 틈도 없을 만큼 위급한 상황에 태룡이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따아아앙!
“큭!”
절체절명의 순간, 태을의 목숨을 구한 것은 어디선가 날아온 검이었다.
월도를 든 무인들을 모조리 잘라 내 버린 검에 의해 겨우 목숨을 건진 태을과 화산의 장로들이 검이 날아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잡스러운 종자들이…….”
주위의 대기가 일그러질 정도로 막대한 투기를 발산하며 다가오는 여인.
검혜 벽운영.
그녀가 서슬이 퍼런 눈빛으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독과 폭약이 만들어 낸 참혹한 광경에 그녀의 두 눈에 핏발이 솟았다.
슈아아악!
그녀의 등장과 동시에 태을을 공격했던 월도의 무인들이 다시금 벽운영을 향해 공격을 집중했다.
그 모습을 본 검혜가 코끝을 와락 찡그리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으드득.
전신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기운과 더불어 올올이 허공으로 치솟는 그녀의 머리카락.
지닌 모든 공력을 단번에 개방해 버린 그녀가 두 손을 가슴께로 모았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금빛 서기가 그 영역을 확장하고, 합장했던 손이 좌우로 활짝 펼쳐져 나뉘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은 넷, 넷은 다시 여덟으로…….
순식간에 불어난 손의 잔영이 그녀의 등 뒤에 광배처럼 밝게 빛나는 순간, 검혜가 한차례 감았던 눈을 뜨며 온 힘을 끌어모아 앞으로 뻗어 내었다.
강기를 머금은 천 개의 손이 그녀의 눈앞에 자리한 모든 공간을 채웠다.
일검에 천 마리 새의 날개를 날랐다는 비검 천수관음이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쿠아아아아, 스거거걱!
깡! 까가가강!
풀, 나무, 바위…… 그리고 붉은 두건을 쓴 적들까지.
그녀의 눈앞에 있었던 모든 것들이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조각조각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절대의 이름이 아깝지 않은 한 수.
검이 지나간 곳에는 흥건히 뿌려진 피와 육편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못했다.
단 한 수에 전장의 판도를 뒤집어 버리는 그녀의 신위에 모두가 행동을 멈추었다.
지금껏 화산의 제자들을 밀어붙이며 유린했던 붉은 두건의 무인들도 차마 그녀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쓸모없는 것들……. 비켜라!”
“……?”
“하하, 이거 참…… 과연이라고 해야 하나?”
멈춰선 적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백색 건을 이마에 두른 거구의 사내가 참마도라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거대한 월도를 어깨에 걸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이전에 화산의 장로를 공격했던 월도 무인들의 수장인 듯싶었다.
“선발대로 보내길래 짜증이 났었는데 이런 거물을 만날 줄이야. 대궁주께 감사의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야.”
“네놈은?”
“월도의 무향.”
“무향?”
“그래, 네년의 목을 베어 공적을 쌓을 사람이지.”
자신을 무향이라 밝힌 백건의 사내가 벽운영을 향해 비릿하게 웃으며 월도를 바닥에 늘어뜨렸다.
털컥.
“큽.”
둔중한 무게에 어울리는 거친 소리가 울려 퍼지자 화산의 제자들이 답답한 신음을 토했다.
월도에 기운을 담아 음공을 사용한 것이다.
“어쨌든 다행이군. 방어진은 대충 무너진 것 같고, 너만 죽이면 대동의 길목은 확보될 테니까.”
“…….”
사내의 이죽거림에 벽운영의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천수천안이라는 그녀의 기민한 감각이 그녀에게 경고해 오고 있었다.
이자는 강하다.
대체 궁은 얼마나 많은 고수를 길러 낸 것인가?
월도의 사내에게 집중하면 이길 수는 있을 것 같았으나 다음이 문제였다.
이미 극심하게 피해를 입은 이들을 많은 수의 적들로부터 보호할 수가 없었다.
또한 저들에게 뚫리면 운암이 대피시키는 중인 피난민들이 모조리 학살당할 터.
고뇌에 휩싸인 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마교의 대지에서 자신을 구했던 진무가 떠올랐다.
진무여, 그대라면 이 상황에 어찌했을 것 같은가?
하지만 이내 웃음이 나왔다.
물어 뭐 하겠는가. 아마 단숨에 적을 쓸어 버리고 모두를 구했겠지.
애초에 그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
자신은 자신의 방식대로 나아가야 한다.
결정을 내리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벽운영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돌아보지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태을.”
“……?”
“그대의 목, 사람들을 위해 걸어 줄 수 있겠는가?”
“예?”
벽운영의 말에 태을이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우리는 적의 계책에 당하여 패배하였네.”
“……!”
“물러나야 마땅하나 지켜야 할 목숨이 너무도 많구먼.”
“…….”
벽운영의 말에 태을이 참담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상자들, 중독 증세를 보이는 자들…….
함께 온 화산의 제자들이 반도 채 남지 않았다.
화산이 그러할진대 대동의 북쪽 다섯 길목을 나누어 방비하는 이들의 상황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홀로 막고 싶네만 저들의 수가 너무나 많군.”
“…….”
목숨을 걸고 사람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 달라.
대놓고 희생을 요구하는 말에 태을은 불쾌해하는 대신 밝게 웃었다.
“어르신, 저희는 화산입니다.”
그의 산뜻한 대답에 검혜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화산의 제자.
도를 익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자 하는 그들의 이름을 앞세웠으니, 이는 곧 희생을 받아들이는 숭고한 결심이었다.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네.”
“예, 수가 많긴 하지요. 허나 한 사람이 열, 아니 백 정도만 맡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호기롭게 답한 태을이 검을 곧추세우고 주위를 향해 외쳤다.
“화산의 제자들은 들어라! 부상자들은 속히 이곳을 벗어나고 매화검객들은 일자 검진을 이루라! 우리는 화산의 도(道)로써 저 무도한 자들의 걸음을 막아 사람들이 물러날 시간을 벌 것이다!”
“예!”
화산의 검객들이 두 부류로 나뉘었다.
전투에 도움이 되지 못할 자들은 비탄에 젖은 표정으로 후미로 물러났고, 싸울 수 있는 자들은 벽운영의 옆으로 일자 진을 형성하며 검을 들었다.
“큭큭큭, 이것들 봐라.”
“……?”
거구의 사내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막아 보겠다고?”
우우웅!
사내가 월도를 들더니 순식간에 기운을 주입해 횡으로 그었다.
슈가가가각!
“……!”
횡격이 만들어 낸 반월형의 강기가 물러나는 화산의 제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멈추었던 홍건의 무인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순간 얼굴을 찡그린 벽운영이 지면을 박찼다.
탁!
가벼운 발걸음에 그녀의 신형이 얼음길을 밟은 듯이 쭉 미끄러져 반월의 강기 아래를 지나 추월했다.
끼기긱, 따아아앙!
역으로 잡은 검이 수직으로 솟구쳐 오르고 강기의 방향을 틀었다.
스걱, 콰아아앙!
비틀려 솟구친 강기가 아름드리 거목의 상단에 부딪혀 폭발하고, 조각나 쏟아지는 나무의 잔해 아래 선 벽운영이 가진바 모든 기운을 끌어 올렸다.
우우우웅!
그녀의 몸에서 황금빛 서기가 일어나 회오리처럼 주위를 휘돌았다.
뻗어 낸 손안에서 검이 원을 그리며 휘돌고, 하나의 궤적이 나뉘어 수십 수백의 잔영을 만들었다.
휘리릭! 쿠우우웅!
궤적을 멈춘 곳에 수백의 검의 잔영이 일렬로 늘어서더니, 곧장 내리꽂히는 검과 함께 일제히 바닥을 꿰뚫었다.
쫘자자자작!
사방에서 시작된 균열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뻗어 나가자 위화감을 느낀 사내가 수하들을 버린 채 즉시 뒤로 몸을 빼었다.
“피, 피해라!”
하지만 벽운영의 공격이 누군가의 외침보다 빨랐다.
갈라진 균열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과 동시에 대지에서 송곳 같은 기운이 솟구쳐 그 위를 지나는 이를 모조리 꿰뚫었다.
퍽퍼퍼퍽! 퍽퍽!
그리고 사라진 서기의 중심에 벽운영이 꼿꼿하게 몸을 세운다.
수많은 시신 가운데 홀로 고고하게 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그녀의 모습은 장엄하고도 경건하였다.
그녀는 서늘한 눈빛으로 마주한 적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나는 검혜니라. 검을 깨달은 자이며 지킬 때 가장 빛을 발하는 이다.”
휘릭!
검이 다시금 휘돌아 그녀의 손에 바로 잡히고.
“불자의 한 사람으로 어찌 세상의 어지럽히는 무리에게 사정을 두겠느냐? 하나의 죽음으로 열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능히 나찰이요, 야차가 되어 너희를 멸하리라.”
스아아악!
벽운영의 눈동자를 밝히던 금빛 서기가 사그라들고, 붉은빛 살기가 자리했다.
일체의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살육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그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홍건의 무리가 주춤주춤 물러났다.
꾸우우…….
자세를 낮춘 벽운영이 지면을 힘껏 짓밟았다.
움푹 패는 대지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고.
파아앙!
벽운영의 신형이 적을 향해 빛처럼 쏘아져 나아갔다.
“화산의 제자들은 적을 멸하라!”
“와아아!”
함성을 지르며 벽운영의 뒤를 쫓아 달려오는 화산의 도사들을 보며 거구의 사내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월도를 휘둘러간다.
이어 홍건의 무인들이 개미떼처럼 달려들어 화산의 무인들과 다시 뒤섞이니, 막기 위한 자들과 뚫기 위한 자들의 난전(亂戰)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