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74
474화
모두가 영문도 모른 채 회의에 소집되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시지요?”
“……나는 그냥 판만 엎었는데 갑자기.”
천우명의 대답에 모두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뭐요? 무슨 판이요?”
“……장기판.”
“…….”
적생이 물음에 일제히 고개를 돌렸던 이들이 천우명의 멍청한 표정에 다 같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양반에게 무슨 기대 같은 걸…… 됐다, 됐어.
그런데 장기판이라니.
이 시국에 장기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신 걸까?
해이해진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모두를 소집해 일침을 날리시려고?
하지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철검단 전원의 소집.
기강을 바로잡는 정도의 일에 굳이 방어선에 투입된 무인대를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회의를 소집한 이유를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던 수뇌부들이 심각하게 의견을 나눌 때쯤, 진무가 밝은 얼굴로 회의장에 들어섰다.
“다들 앉아.”
“예.”
진무가 상석에 앉자 적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주님, 어찌 수뇌부 회의를?”
“해결책을 찾았다.”
“예?”
진무의 미소에 적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해결책을 찾았다고?
“놈들의 의도를 못 찾겠지?”
“예.”
“이게 우회인 것 같기도 하고, 성동격서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성동격서라 하기에는 너무 노림수가 빤히 보여서…… 하지만 다른 것을 노릴 수도 있으니…….”
적생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됐어. 이제 상관없어.”
“예? 그게 무슨?”
아리송한 진무의 말에 의아해하던 적생이 언뜻 떠오른 생각에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혹, 하북을 비우는 척 유인해서 저들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하시는 겁니까?”
“땡! 그건 너어-무 정석이지. 니 말대로 빤히 보이는 수 아니냐?”
“…….”
나름대로 확신을 가진 짐작이 틀려 버렸다.
그럼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적생의 의문이 가중되는 가운데, 진무가 비열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
“지금 우리의 문제가 뭐냐?”
“……문제요?”
“그래.”
“적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요?”
“맞아. 그리고 오직 방어할 생각만 하고 있다는 것이지.”
“그야…….”
“그래. 뭐, 그럴 수밖에 없지. 제갈 얌생이 놈도 그 때문에 다른 연락을 해 오지 않은 것일 테니까.”
“…….”
“아마 지금쯤 적의 공격에서 대동을 지켜 내느라 생각할 겨를도 없겠지만 말이야.”
도대체 천주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들을 불러다 놓고 선문답 같은 이야기나 할 사람도 아닌데.
“그런데 말이야. 이대로 방어진을 고수한 채 놈들의 의도 파악에만 몰두하고 있으면 계속해서 휘둘릴 수밖에 없어.”
“그렇습니다. 그사이 공격받은 곳의 피해는 점점 늘어만 갈 테지요. 애꿎은 백성만 밀어 넣고 있으니 실질적인 전력 손해도 크지 않을 겁니다.”
적생이 진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해서!”
“…….”
“지금부터 우리 사패천은 전략을 전면 수정한다.”
“예? 어떤?”
“놈들에게 돌발 상황을 만들어 줘야지.”
“돌발…… 예?”
진무의 말을 되뇌며 영문 모를 표정을 짓던 적생이 무슨 생각을 떠올린 것인지 사색이 되어 중얼거렸다.
“설마 지금 철검단을 소집한 것이 방어선을 비워 적을 유인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처, 천주님!”
“…….”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니 대충 눈치를 챈 모양이구만, 뭘 또 입 아프게 묻는단 말인가?
뭐, 굳이 확인받고 싶은 거면 말해 주마.
“지금부터는 방어가 아니라 적극적인 공세로 전환한다.”
“……!”
진무의 말에 제 추측을 확인한 적생은 물론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전략…… 아니 생각해서는 안 되는 미친 짓이었다.
적에 대한 확실한 것도 드러나지 않은 마당에 공격이라니?
“천주님, 그건 너무나 무모하고 위험한 생각입니다!”
“뭐가?”
“전략에 이르기를 적이 적으면 평원에서 싸우고, 비슷하면 함정으로 유인하여 싸우며, 많으면 진을 구성하여 싸우라 했습니다. 하물며 현재 적의 수는 각 방어진에 배치된 중원 무인의 세 배가 넘을 수도 있습니다. 응당 자리를 지키고 농성을 해야 합니다!”
적생이 전략의 기본을 설파하며 진무의 뜻을 꺾으려 했다.
“재고하셔야 합니다. 저 역시 공격을 감행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들의 수로 봤을 때, 이리 적은 병력을 데리고 공격하는 건 어림도 없습니다.”
진무의 표정이 영 시큰둥하자 흥분한 적생의 말이 점점 빨라졌다.
“또한 적을 와해시키자면 적진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서 대궁주라는 자를 잡아야 할 것인데…… 적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잘못하면 적진에 갇혀서 고립될 수도 있단 말입니다!”
진무는 적생을 빤히 쳐다보며 간단히 일축했다.
“알아.”
“아시면서 어째서 그런 무모한 생각을 하신단 말입니까? 대체 누구를 그 사지로 몰아넣으시려고요!”
“누구긴? 당연히 나지.”
“……이!”
이런 미친!
하마터면 불경스러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다.
대체 왜 매번 이딴 식이란 말인가?
여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 자각할 생각이 없나?
“천주님, 그건 아니 될 말씀입니다. 대궁주라는 자가 저들의 구심점이라면 주군께서도 중원 무림의 구심점입니다. 만약 주군께서 저들에게…….”
“됐어. 거기까지.”
“…….”
진무가 손을 들어 적생의 말을 끊었다.
“적진에 뛰어드는 게 위험하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반드시 내가 가야 해.”
반드시 가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
태자의 부탁처럼 그동안 핍박받았던 한씨 일족에게 화평을 제안하고 그들을 중원에 받아들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힘없는 이들을 감언이설로 속여 이용한 그 잡놈을 직접 만나 그 면상을 으깨 놓지 않으면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중원에 나를 대체할 무인은 없어.”
“…….”
정말 얄미울 정도의 자신감이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적생도 인정하고 있었다.
아니, 그가 천하제일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천주님!”
“일단 들어. 니 말처럼 무모하고 위험하긴 해도 적에게 휘둘리지 않고 이 전쟁을 가장 빠르게 끝낼 방법은 하나야. 방어가 아니라 공격으로 놈들의 구심점이나 다름없는 대궁주를 잡는 것이지.”
“…….”
옳다.
하지만 어째서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지 못한단 말인가?
대궁주가 그러하듯 진무가 무너진다면 중원 무림의 사기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바닥을 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전략 같은 복잡한 소리로 나를 설득하려는 거면 때려치워.”
“천주님, 제발…….”
도무지 먹혀들지 않는 설득에 적생이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했다.
“적생.”
“말씀하십시오.”
“난 전술은 잘 몰라. 하지만 도박에서 이기는 법은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아니 잠시 잊고 있었는데 천우명, 저 멍청이가 일깨워 주더군.”
“그게 무슨?”
“승부를 걸어 온 상대에게 이기자면 좋은 패를 들어야 하고, 많은 돈을 가져야 하며, 상대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기술을 익히고 있어야 한다.”
“…….”
“근데 그조차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서 돈을 다 잃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진무는 씩 웃으며 입을 다문 적생을 대신해 답했다.
“그 판을 엎어서 승부를 무위로 돌려 버리는 거야.”
“예? 그, 그런 비열한……!”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었으나 진무는 오히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비열하지. 하지만 전쟁이야. 어떻게든 이겨야 하고.”
“…….”
“놈들은 중원을 침공하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을 거야. 그러면서 놈들이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 원하는 방법에 우리를 끌어들이려 수많은 전략을 세웠겠지. 그러니 방어만 하다가는 휘둘리고 휘둘리다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거야.”
“…….”
“그러니까 공격한다. 놈들의 중심을 헤집고 부숴서 전략을 쓸 수 없게 깽판을 놓는 거야.”
깽판을 놓는다는 이유가 저렇게까지 논리정연할 일인가?
도무지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위험했다.
전략으로 따지면 뒤가 없는 하책 중의 하책인 것이다.
적생은 사패천의 총군사로서 수장을 위험으로 내모는 전략 따위는 절대로 용인할 수 없었다.
“저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가장 옳은 방법이며, 이 전쟁을 가장 빠르게 끝낼 방법이라 할지라도…….”
“적생.”
“…….”
꿋꿋이 말을 이어 나가던 적생은 진무의 스산한 목소리에 뒷말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내가 지금 너한테 찬성 따위를 바라고 말한 것 같아?”
“…….”
잔잔한 목소리 너머로 느껴지는 섬뜩함에 적생이 침을 꿀꺽이며 긴장했다.
“이건 부탁이 아니야. 명령이지.”
“…….”
결정적인 한마디에 적생이 힘 빠진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제기랄, 명령이라는데 무슨 말을 더 한단 말인가?
저놈의 천주는 뭘 결정했다 하면 얼마나 고집불통처럼 밀어붙이는지.
“좋습니다. 하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그에 합당한 전략을 세울 때까지만 시간을…….”
“아니, 시간이 부족해. 철검단이 소집되는 대로 떠난다.”
“……하, 하지만 고작 삼백도 되지 않는 철검단 하나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
부족해?
진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적생. 지금 니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나를 위한 걱정이나 공격 전략이 아니라 나와 철검단이 빠진 하북 방어선의 공백을 어찌 메꾸는가 하는 거야.”
“…….”
적생이 대답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밖에서 모원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주님! 철검단 소집이 완료되었습니다.”
“…….”
적생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모르겠다. 이젠 막을 수가 없다.
진무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명세찬과 소약벽에게 명했다.
“세찬, 약벽.”
“예, 천주님.”
“적생을 도와서 하북을 철저하게 방어해라.”
“알겠습니다.”
“우명! 나가자.”
“예!”
진무가 회의장을 나서고, 힘없이 일어난 적생을 필두로 모두가 그의 출정을 배웅하듯 따라나섰다.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말발굽 소리는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릴 뿐이니까.
전투 준비를 마친 철검단을 향해 진무가 짓궂게 웃었다.
“다들 각오 단단히 해.”
“예! 천주님!”
“가자!”
한목소리의 외침이 사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수백의 무인들이 북쪽을 향해 달려 나갔다.
“하아…….”
순식간에 멀어져 버린 그들의 뒷모습에 적생이 넋 나간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군사.”
“……?”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게요.”
명세찬이 적생의 어깨를 치며 웃었다.
“지금의 철검단은 그대가 아는 것보다 배, 아니 수십 배는 강할 테니.”
“……예?”
멍하니 되묻는 말에도 명세찬은 그저 웃기만 했다.
적생은 철검단의 진짜 위력을 모른다.
과거 진무가 혁련무강이었던 시절 정무맹, 마교에 비해 고수의 수가 부족한 사패천을 위해 만든 무인대가 바로 철검단이었다.
진무가 직접 선발해 가르치고, 그와 함께 수많은 사선을 넘어온 철검단.
천우명이 이끌 때도 모자람 없이 강하지만, 가장 빛을 발할 때는 바로 진무가 선두에 섰을 때였다.
그리고 저 진무라면 충분히 전세를 뒤엎어 놓을 것이다.
그가 괜히 사패천주였겠는가?
귀찮아서 안 하기 때문이지, 마음먹고 깽판을 치기 시작하면 세상천지에 막을 자가 없는 인물이 바로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