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76
476화
멀리 황신이 씩 웃으며 송곳을 짧게 휘둘러 피를 떨치는 모습이 보였다.
잔인한 놈 같으니.
그래도 당하는 놈조차 모르게 목에 구멍 뚫는 데는 저만한 놈이 없지.
그럼 각출은?
진무가 고개를 돌리자, 피가 뚝뚝 흐르는 뼈다귀를 들고 다가오는 각출이 보였다.
“천주님, 생포해 왔습니다.”
“…….”
참으로 장하구나, 이 빌어먹는 새끼야.
쥐새끼 잡았다고 자랑스러워하는 집고양이처럼 뿌듯하게 웃지 말고 입 닫으렴.
그 싯누런 이를 확 다 뽑아 버리기 전에.
진무는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인상을 확 구기며 각출이 끌고 온 척후를 살폈다.
대가리가 터져 피가 철철 흐르고 몸을 축 늘어뜨린 것이 온몸에 뼈란 뼈는 모조리 으스러진 것 같았다.
분명 생포하라고 했는데.
말귀가 어두운가? 아니면 말뜻을 모르는 걸까?
숨만 겨우 붙어서 할딱거리는 저걸 어떻게 심문하라고…….
하아, 내 탓이다.
앞으로는 설명을 아주 상세하게 해 주고 보내야지.
지금은 이놈을 패는 것보다 절벽 아래 있는 놈들을 처리하는 것이 더 시급하기도 하고.
“황신.”
“……?”
“척후가 더 있을지 모른다. 주변을 돌면서 죄 처리해.”
진무의 명령에 황신이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사라졌다.
“저는요?”
기대에 찬 눈동자에 한숨을 푹 내쉰 진무가 무성의하게 손을 내저었다.
“……너도 가.”
쉬이이이…… 는 젠장할.
바람 소리만 잘 내면 무얼 하나.
그래, 이 마당에 뭔 놈의 생포고, 뭔 놈의 심문이겠니.
그냥 뼈다귀 휘둘러 전부 북망산으로 보내거라.
각출까지 보낸 진무가 절벽의 끝에 납작 붙어 은밀하게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살폈다.
대규모의 야영지.
북쪽에서 만난 첫 번째 적이다.
천막의 숫자로 유추했을 때 대충 이천여 명 정도?
역시 놈들은 하북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적생의 말처럼 성동격서 혹은 조호이산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겨우 이 정도 병력을 두진 않았을 터.
필시 인근에 이와 비슷한 규모의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 보자……. 철검단보다 여섯 배나 많은 숫자도 숫자지만 꾸려놓은 야영지의 배치가 신경 쓰이는데…….
이런 경우…….
이런 경우에는…….
젠장, 역시 고민해 봐야 머리만 아프다.
이럴 게 아니라 원려더러 보라고 해야지.
무턱대고 부수는 것이면 몰라도, 머리 굴리는 것은 저놈이 나나 우명이 놈보다 나으니까.
그러라고 과거에 줘 패 가면서 전술 공부를 시켜 놓기도 했고.
그동안 까먹지 않았을 것이다.
맞아 가며 배운 지식이 뼛속에 깊이 새겨져 있을 테니 적생까지는 아니어도 전황을 읽어 내는 것쯤은 할 수 있으리라.
“원려!”
진무가 뒤를 향해 손짓하자 모원려가 피풍의를 뒤집어쓴 채 배를 바닥에 붙이고 열심히 기어왔다.
슥슥슥.
“…….”
척후도 다 죽였겠다, 그냥 몸 대충 숨겨 가면서 자세 낮추고 뛰어올 일이지 저게 뭔…….
진무가 상황도 잊고 한없이 한심한 표정으로 그 꼴을 감상하는데, 천우명은 그렇다 치고 능서현까지 어설픈 포복으로 엉금엉금 오기 시작했다.
믿었던 능서현마저…….
철검단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쓰는 중인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것까지 따라 하지는 말라고!
나중에 황신에게 기본적인 은신술이라도 가르치라고 해야겠다 다짐하며, 진무는 어느새 제 옆에 자리 잡은 모원려에게 물었다.
“어때?”
“흠…….”
모원려가 조금 전의 진무처럼 눈을 빼꼼히 내밀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래를 살폈다.
“정(井)자 진을 반복한 진법입니다.”
“그게 뭔데?”
순수하기 짝이 없는 질문에 모원려는 잠시 진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흠, 천주님께선 선대 천주님처럼 전술에 약하신 모양이군요.”
“…….”
그냥 들어 넘길 수 없는 말에 진무가 주먹을 힘껏 쥐고 들어 올렸다.
우리 원려가 안 본 사이에 쓸데없는 감상평이 늘었구나?
지도 처맞고 눈 퉁퉁 붓도록 울어 가면서 육도삼략을 강제로 외워서 이해한 주제에…….
“크흠흠, 정진은 병력을 우물처럼 배치해 중심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저런 식으로 정(井)자의 형태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중심으로 갈수록 강한 무인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진무의 살벌한 눈빛에 모원려가 물을 쏟아붓듯 와르르 설명을 내뱉었다.
새끼……. 일단 봐준다만 언젠간 반드시 조지리라.
“안쪽으로 갈수록 강하다?”
“예. 저런 진형이라면 대개 그렇다고 책에 쓰여 있었습니다.”
“흐음.”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며 웅얼대는 말에 진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쓸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손을 멈췄다.
뭐 이론과 실전은 다른 법이긴 하다만 어쨌든 안으로 갈수록 강하다, 이거지.
그럼 반대로 말하면 외곽일수록 약하다는 거고.
“……이런 개새끼들. 대궁주라는 놈에게 못된 것만 처배웠네.”
“예?”
“결국, 외곽에 있는 방어진은 유사시 내부의 핵심 전력을 지키기 위한 방패막이라는 소리잖아?”
“그건…… 예. 통상 그렇지요.”
“망할 새끼들. 대체 부하들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좋아, 어쨌든 그렇단 말이지?”
진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원려가 파악한 적의 진형을 다시 전체적으로 훑었다.
절벽을 등진 형세.
꽤 높은 지형이라 웬만큼 경공이 뛰어나지 않고서는 내려가는 것도 올라오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빠져나갈 곳은 절벽의 반대편인 북쪽.
자, 그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접한 곳에 추가 전력이 있을 확률이 높으니 지원이 오기 전에 몰살시켜 버리고 흔적 없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적은 수로 놈들 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었다.
“대응책은?”
“……음, 아무래도 적들의 도주로를 끊고 그 중심을 공격해 와해시키는 방법을 쓰는 것이.”
모원려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처럼 대장간을 열어야겠군.”
“어? 어떻게 그 전략을?”
모원려가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옆에서 천우명이 감탄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모처럼 직접 망치질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
뭐지? 둘이 말이 통한다고?
심지어 멍청하기 짝이 없는 천우명이 금세 알아듣고 답하는 모습에 모원려의 눈이 더욱 커졌다.
대장간 전략.
소수로 다수를 상대하는 전투, 특히 급습에서 빛을 발하는 이 전략은 전대 천주가 직접 고안해 철검단에게 가르친 것이었다.
과거 직접 당한 제갈협진마저도 혀를 내둘렀을 정도니 그 뛰어남이야 증명되고도 남음이었다.
단점은 혁련무강이나 천우명이 없을 때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저어…… 주군, 대장간은 뭐고 망치질은 또 무슨?”
진무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 중 능서현이 대표로 조심스레 물었다.
“있어. 오직 내가 있을 때 철검단이 쓸 수 있는 전술.”
“예?”
능서현이 재차 묻자 진무를 대신해서 천우명이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대장간 몰라?”
“……그야.”
“대장간에서 주로 하는 게 뭐야?”
“……쇠를 제련하는.”
“그래. 모루에 대고 망치질하는 거지.”
“…….”
그걸 몰라서 물었겠냐?
능서현이 더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듯 눈을 빛냈지만, 설명은 딱 거기까지였다.
“천 단주, 좀 더 상세하게 설명을 좀…….”
“…….”
능서현이 재차 물어도 천우명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마교의 인물이라 전략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 해서?
그럴 리가.
애초에 논리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서였다.
“원려.”
“예?”
“우명과 서현을 뒤따를 망치를 준비해라. 모루는 네가 직접 이끌고, 될 수 있으면 적을 포위할 정도로 넓게 구성한다.”
“그럼 망치는 두 개입니까?”
“아니, 나까지 셋. 세 번째 망치는 나 혼자다.”
“……알겠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능서현이랑 천우명을 합친 것보다 강한 것이 지금의 천준데.
“놈들이 척후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 공격을 감행해야 한다. 떨거지들은 필요 없다. 목표는 놈들의 핵심 전력이다. 놈들이 청할 지원병이 도착하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내야 하니 모루가 준비되는 즉시 망치질을 시작한다.”
“…….”
한참을 듣고 있던 모원려는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렸다.
전대 천주가 만든 대장간 전략을 아는 것만도 놀라운데, 뭐가 이리 상세하단 말인가?
돌아가신 선대 천주님께 전술 강의를 들었을 리는 없고…… 혹시 단주님께서?
순간 떠오르는 가능성에 그가 고개를 홱 돌려 천우명을 쳐다보았다.
……가르칠 만한 능력이 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 도대체?
“뭐 하고 있어? 속전속결로 끝내겠다는 말 못 들었어?”
“……아, 아닙니다. 속히 준비하겠습니다!”
진무의 나지막한 일갈에 모원려가 급히 몸을 숨기고 있는 본대를 향해 뛰어갔다.
* * *
“척후의 연락이 끊어져?”
“그렇습니다. 일단 확인을 위해 몇을 절벽 위로 올려 보냈습니다.”
“…….”
수하의 명령에 깡마른 사내가 매서운 눈빛으로 절벽 위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 번들거리는 살기도 살기였지만,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르고 구부정한 체구가 그를 한층 기괴하게 보이게 했다.
응조(鷹爪)의 무향.
검성에게 죽은 무향의 이름이 월도인 것처럼, 그들에게 따로 정해진 이름은 없었다. 그저 사용하는 무공이 곧 이름이었다.
어쨌거나 응조는 궁의 주력 중 하나를 이끌고 하북에 대한 공격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다섯 무향 중 하나였다.
그의 눈빛이 닿은 절벽은 조용했다.
딱히 무슨 변화의 조짐도 보이지 않았고, 맞닿은 하늘엔 늘 그랬듯 구름이 여유롭게 흐르고 있었다.
“나태한 놈들…… 아무리 명령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해도 그렇지, 척후라는 놈들이 정기 연락을 빼먹을 정도로 정신을 놓고 있어?”
“…….”
“당장 잡아들여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목을 잘라 본을 보여라.”
“알겠습니다.”
응조의 명령에 수하가 급히 뛰어갔다.
수하가 사라지고도 한동안 절벽을 살폈지만 별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한 응조가 고개를 돌리려던 그때였다.
콰아아앙!
별안간 북쪽에서 거센 충돌음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응조가 눈을 크게 뜨자마자 수하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외쳤다.
“적습입니다! 적이 나타났습니다!”
“……!”
적이라고?
조짐이라곤 전혀 없었다.
피난민들과 함께 하북으로 스며든 세작들에게서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일순간 사고를 정지시켰지만, 응조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어떤 놈들인지 모르지만, 멍청한 짓을 하는구나.
자신들이 등진 거대한 절벽은 천혜의 방어막. 웬만한 경공을 가지지 않은 자는 절대로 내려올 수 없다.
어떻게 척후의 눈에 걸리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필시 적은 우회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응조는 자신이 병력을 배치한 진법을 믿고 있었다.
“관서(關鋤)! 적의 규모가 파악되지 않았으니 인접한 아군에게 상황을 알려라!”
“예!”
“사마곽(司馬钁)! 절벽을 등지고 파진(波陣)으로 진형을 바꾼다.”
“예!”
명을 받은 부관들이 빠르게 뛰어갔다.
중심을 방어하는 정진이 사방을 방어하는 것이라면, 병력을 일렬로 늘어세워 물결처럼 쌓는 파진은 눈앞의 적에 대해 방어력을 극대화한 진법.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으나 상관없다.
아무리 공격해도 적은 외곽의 쓸모없는 병력만 소모시킬 수 있을 뿐 그 내부는 절대로 뚫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된 공격에 지치는 순간, 놈들은 지옥을 보게 되리라.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응조대에 의해서…….
* * *
“주군, 적이 진형을 바꾸었습니다.”
“…….”
능서현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보고 있었다.
모원려가 다섯 개의 대를 이끌고 우회해서 적의 도주로를 차단했다.
놈들이 진형을 바꾼 것은 외부의 병력으로 막으며 공격해 온 이들이 지치기를 기다리려는 수작이겠지.
그렇다는 것은 적의 수장이 제법 전술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놈들은 대부분 전술만 믿고 제 생각이 무조건 옳다 여기는 실수를 하게 된다.
지금의 상황.
놈들이 전방에 나타난 적에만 신경 써서 진형을 바꾸었다면 절벽이 자신들의 방어막이라고 믿고 있겠지.
이 정도 절벽이라면 대규모의 병력으로는 절대로 뛰어 내려갈 수가 없다.
어지간한 경공을 가지지 않고는 내려가다가 뒈질 테니까.
하지만 웬만한 경공……일 경우에나 그렇다.
대장간 전략에 있어 모루의 역할은 공격이 아니라 버티기다.
적이 도주하지 못하도록 길을 차단하는 것.
애초에 삼백의 수로 이천이 넘을지도 모르는 적과 정면 승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다.
진짜 공격은 쇠를 때리는 망치에 있다.
모원려가 선발해 진무의 뒤편에 선 자들이 그들이다.
단번에 적을 뚫어 낼 수 있을 만큼 강한 무력과 절벽을 뛰어 내려가 공격을 할 수 있는 뛰어난 경공을 가진 극소수의 무인.
그런 소수로 적진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일견 미친 짓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진무, 천우명, 능서현이라는 절대의 무인이라면 그 미친 짓을 충분히 현실로 바꿀 수 있었다.
“크흐흐, 진형을 바꾸기 시작했다면 쇠가 달궈졌다는 말이나 다름없지.”
절벽 아래의 진형 변화를 주시하던 진무가 마치 전장을 진두지휘하는 제갈량처럼 소매를 펄럭이며 적진의 한 곳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전방으로 전력이 움직이면서 약해진 중심의 좌측이었다.
“우명, 가서 조져!”
“흐흐 맡겨 주십시오, 천주님!”
명을 받은 천우명과 그 뒤를 따르는 무인들이 일제히 절벽을 향해 몸을 던졌다.
가거라, 나의 망치들이여.
달아오른 쇠를 미친 듯이 두들겨, 놈들이 믿고 있는 저따위 방어진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알려 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