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89
489화
본진의 중심.
천막의 주변에는 건장한 체구를 가진 무인들이 진을 이룬 채 흉흉한 기세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천력의 수하들이었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접근한 황신이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휘 천막을 바라보며 귀를 쫑긋거렸다.
들리지 않는다.
이 거리에서 들리지 않는다는 건, 지휘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외부에서 듣지 못하게 기막을 쳤다는 뜻.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전장의 지휘소니까.
대체로 지휘소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는 농이라 할지라도 전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밖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기막을 치는 것이 당연했다.
때로는 외부에서 호위하는 무인들이 펼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수장이 직접 기막을 펼치는 경우도 있었다.
쳇, 그래도 인간적으로다가 하루쯤은 까먹기도 하고 그래야지.
황신은 고민에 빠졌다.
고수들이 펼치는 기감은 제삼의 눈이라 불린다.
경지마다 범위가 제각각이기는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노출될 위험이 큰 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들어야 한다.
이는 정보를 캐는 자들 특유의 참기 힘든 호기심이었다.
어쩌면 그 안에서 전세를 뒤집을 만큼 중요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결국 그는 은신자로서의 본능을 택했다.
제발, 혹여 있을지 모를 대궁주라는 놈이 천주님만큼 뛰어난 기감을 가지지 않았기를 기원하면서.
결국, 황신은 위험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외곽에 깔린 잔챙이들의 이목은 속였다.
이제 천막, 저 얇은 천 하나.
그곳이 경계다.
상대의 기감 안이자 내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온 신경을 곧추세운 황신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상대의 기감에 자신의 기운을 동화시켰다.
침을 바른 손가락으로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내부를 살피듯, 한없이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동화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안의 분위기도 살펴야 했고, 상대의 기감에서 미세한 변화가 느껴지자마자 도망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했다.
긴장감에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주의를 기울여 드디어 천막의 기감에 살짝 파고들자 내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완전히 뚫지는 못한 탓에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고 웅웅거렸지만, 내용을 알아야 했기에 점점 더 신경을 곤두세웠다.
거친 쇳소리를 내는 것은 막 돌아온 천력이었고, 나머지는 본진에 남은 이들의 수뇌인 듯했다.
천력의 말투는 호통에 가깝고 그 외의 목소리는 난감함이 역력하니 한 귀에도 상하가 느껴졌다.
그런데 어째서 천력이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일까?
황신은 그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집중했다.
* * *
“하면 어째서 나에게 복귀를 명하신 것인가!”
“그건 저희도…….”
천력의 호통에 홍건을 이끄는 수좌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어물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다만, 맹부 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라는 명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맹부가 온다고?”
“예.”
“…….”
천력의 얼굴에 서린 의아함이 짙어졌다.
맹부는 월도가 죽은 이후 대동의 전선에 합류했다고 들었다.
중원과의 격전지 중 가장 치열한 그곳에서 수장이나 다름없는 맹부를 빼서 본진으로 복귀시키다니?
천력이 명을 받고 돌아왔을 때, 냉산에 남은 것은 홍건 일부와 궁을 따라나선 백성들뿐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신 게지? 본진의 핵심 전력만을 움직여 적의 심장부인 자금성을 치실 생각이면 가용한 모든 전력을 투입해야 할 것인데, 맹부와 나를 본진에 남기시다니…….”
해소되지 않는 의문에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던 천력이 별안간 입을 다물었다.
뭐지? 이 느낌? 언제부터?
지휘소였기에 으레 기막을 펼쳤던 것인데, 이질적인 느낌이 그의 신경을 거슬렀다.
마치 이빨에 뭐가 낀 것처럼 신경이 쓰이는?
천력이 기운을 증폭함과 동시에 천막의 한쪽을 향해 벼락같이 손을 휘저었다.
피윳!
순간적으로 일으킨 비침 모양의 강기가 천막을 뚫고 쏘아져 나갔다.
“하압!”
동시에 그 뒤를 따른 천력이 주먹에 기운을 가득히 응축시켰다가 뻗었다.
퍼어어엉!
그 가공할 힘에 천막이 힘없이 무너지고 외부의 전경이 드러났다.
무너진 천막에서 뛰쳐나온 천력이 매서운 눈동자로 주위를 살폈다.
갑작스러운 폭발에 놀라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홍건들이 보였다.
“천력 님, 어찌……?”
“…….”
영문을 몰라 하는 수뇌들의 표정에 천력이 한참을 노려보다 잔뜩 끌어 올렸던 기세를 흩고 고개를 두어 번 돌렸다.
“너무 예민했나?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착각인 모양이었다.
천력은 자신이 무너뜨린 천막을 쳐다보며 투덜거렸다.
“젠장, 애꿎은 천막만 부쉈군. 뭐 하나? 빨리 지휘소를 새로 지어라. 쉬지 않고 달려와 피곤하니 맹부가 올 때까지 쉬어야겠다!”
“예? 예!”
그의 짜증에 수뇌들이 급히 홍건들을 향해 명을 내렸다.
“가서 새 천막을 가져오라!”
“예!”
열댓 명의 홍건들이 지휘소 천막을 새로 짓기 위해 짐을 쌓아 둔 곳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시펄, 쓸데없이 왜 부수고 지랄이야.”
“어허, 이 사람아. 말조심하게. 천력 저놈, 성격이 어디 보통인가? 밉보였다가 태질을 당해 죽은 이가 한 수레도 넘네.”
“젠장…… 망할 놈들. 언제까지 저놈들의 등살에 시달려야 하는지.”
“참게. 곧 대궁주께서 중원을 점령하시면 우리에게도 좋은 세상이 열리지 않겠나?”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구먼.”
“머지않을 게야. 벌써 대동을 지났을 테니 며칠 안으로 하북에 당도하시지 않겠는가?”
“휴우…… 그 전에 전투에 나간 이들처럼 뒈지지나 않았으면 좋겠구먼.”
“격전지에 참가한 놈들이야 파리 목숨이지만 후위에 남은 우리에게 뭐 별일이야 있겠는가? 조금만 있으면 기름진 땅에서 중원 놈들을 노예로 부리며 살 수 있을 게야.”
두런두런 험담과 기대감을 주고받으며 천막을 꺼내던 홍건 중 하나가 문득 일행 중 한 사내를 쳐다보았다.
왜소한 체격에 곱상한 외모를 가진 소년?
자신들과 차림은 같은데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내부를 지키는 홍건들은 꽤 실력이 출중한 무인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대충 얼굴을 다 아는데…….
“너 누구냐?”
“예?”
홍건의 의문 섞인 시선이 멀뚱히 반문하는 소년의 옆구리에 닿았다.
옷 위로 점점 더 번지는…… 피?
“어? 이봐, 너 그 옆구리.”
푹.
의문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목에서 느껴지는 찌릿함에 사내가 두 손으로 부여잡고, 동료들이 경악하는 순간 왜소한 소년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컥.”
모두가 동일한 운명을 맞았다.
가장 먼저 목이 꿰뚫린 사내를 시작으로 모두가 바닥에 털썩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들 틈에 서서 비수에 묻은 피를 떨어내는 앳된 사내는 다름 아닌 황신이었다.
털썩.
“크으…….”
홍건들을 모두 죽이고 한쪽 무릎을 꿇은 황신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조금 전의 상황.
하마터면 걸릴 뻔했다.
너무 놀라운 내용에 아주 잠시 은신이 깨진 것이 화근이었다.
하지만 찰나였는데, 그걸 놓치지 않고 위치를 찾아내 공격을 날릴 줄이야.
망할 새끼, 기감도 좋지.
역시 강기의 무인인가?
몸을 물리는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놈의 주먹에 머리가 으깨질 뻔했다.
이런 실력으로 천주님께 내가 황신이니 뭐니 으스대다니. 속으로 얼마나 비웃으셨을까.
첫 번째 강기 비수에 복부를 관통당해 버린 황신은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홍건들의 틈에 숨어들어 기척을 지웠다.
다행히 천력이라는 놈은 자신을 찾지 못했다.
도주했다면 추격을 받았을 것이나 밤이기도 했고, 설마하니 홍건들 사이에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지금부터였다.
내력이 바닥을 드러냈고, 상처가 너무 심각했다.
또한 몸에서 피 냄새를 지울 수가 없게 되었으니 은신도 텄다.
후각 좋은 놈들이 있으면 발각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서둘러 이 소식을 전해야 했다.
놈들이 하북을 향해 이미 병력을 움직였고, 이곳에 있는 것은 천력의 무향이 이끄는 천력대와 대략 일만이 조금 넘는 홍건.
나머진 죄 힘없는 백성들뿐이었다.
그리고 이미 북쪽 방어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중원 삼세와 황군이 그들을 막는 사이 대궁주라는 놈이 하북의 측면을 치려는 것이다.
속히 천주에게 알려 중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황신은 잠시 자신이 죽인 시신들을 바라보았다.
숨기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었다.
어차피 천막을 가지러 온 놈들이 사라진 것을 곧 알게 될 터였고, 그렇게 되면 누군가 숨어들었다는 것 또한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 있는 곳은 적진의 한가운데.
천주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는 대략 십여 리.
일단 은신으로 중심부를 벗어난 뒤, 모든 내력을 쏟아부어 달린다.
곧 날이 밝는다.
약속했던 시간을 어겨 천주가 자신을 구하러 오게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핵심 전력이 빠져나갔다고는 하지만 적들의 수는 일만에 달한다.
아무리 진무와 능서현, 천우명이 함께 이끄는 철검단이라고 해도 삼백이 채 되지 않는 수로 싸우는 것은 지나치게 무모했다.
스륵.
결심을 굳힌 황신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얼마 뒤.
“어?”
천막을 가지러 갔던 이들을 찾아 나선 홍건이 시신들을 발견했다.
“이, 이런 젠장! 적이다!”
어둠을 가르고 퍼지는 다급한 외침에 사방에서 호각성이 울려 퍼졌다.
* * *
“주군!”
능서현이 황신이 돌아올 때까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잠을 청하던 진무를 급히 깨웠다.
“어? 왜?”
숙면에 들기 직전이었던 진무가 눈을 비비다 말고 황급히 분지 안을 살폈다.
능서현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다.
그들이 위치한 곳과 가까운 데서 보이는 변화.
곳곳에서 꺼졌던 홰가 다시 올라 주변을 밝히고, 잠에서 깬 적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어디론가로 몰려갔다.
숙영지 내부에서 발생하는 변화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의 변화는 좋지 않았다.
일단 적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고, 가까이 보이는 분지의 통로에 병력들이 빠르게 배치되고 있었다.
통로에 병력이 증원된다면?
외부의 적을 막기 위함이거나 혹은 내부의 적의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한 것.
결론은 뻔했다. 황신이 걸린 것이다.
망할 녀석, 그렇게 주의를 주었건만.
“서현, 철검단을 깨워. 돌입한다.”
“예? 하지만 적들의 수가…….”
“무슨 걱정인진 안다. 하지만 황신을 내버려 둘 순 없다.”
“…….”
“우명에게 전해. 황신을 구출한다. 곧장 동측의 입구로 돌입해 적을 부수라고 해. 황신이라면 우리의 모습은 보지 못해도 소리는 들을 거야. 구하는 즉시 분지를 빠져나온다.”
“알겠습니다.”
빠르게 명을 내리고 어금니를 힘껏 깨무는 진무의 모습에 능서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산을 빠르게 뛰어 내려갔다.
그사이 진무는 분지를 유심히 살폈다.
젠장, 내가 황신도 아니고.
밤이다.
시력이 허락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적들의 움직임만으로는 황신의 위치를 정확히 잡아낼 수가 없었다.
그럼 결론은 하나.
직접 미끼가 되어서 황신에게로 쏠린 관심을 죄 끌어오는 수밖에.
철검단에게 동측의 입구를 막도록 명했으니 그들이 수월하게 움직이도록 적을 몰자면…… 반대쪽은 너무 멀고…… 그럼?
“저기로군.”
진무는 한 곳을 향해 눈빛을 빛내곤, 곧장 분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사람이 조그마해 보일 정도로 위험한 높이.
안쪽으로 파인 절벽이라 발 디딜 곳을 찾기가 어려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태극을 이룬 이후의 진무였다.
이젠 비석서의 옷 같은 것 없이도 이 정도 높이는 충분히 가능했다.
도움닫기를 통해 뛰어오른 힘이 다하자 진무의 몸이 자유 낙하를 시작했다.
몸을 곤(丨) 자로 세워 바람의 저항을 줄이자 속도가 배가되었다.
쐐애애액!
진무의 몸이 쏘아진 화살, 아니 섬전처럼 지면을 향해 급강하를 시작했다.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얼굴에 부딪히고, 피부가 찢겨 나갈 듯 밀려났다.
땅바닥이 순식간에 가까워지고, 사람의 형체가 손안에 잡힐 정도의 크기가 되었을 때.
슈우우웅!
그가 이기어검을 운용하자 일휘가 검집을 빠져나와 그의 곁에 나란히 몸을 세웠다.
일휘, 신세 좀 지자.
일휘를 발치로 보내고 내력으로 힘껏 끌어당긴 진무가 검신을 힘껏 밟았다.
쿠우욱.
떨어지는 속도에 진무의 무게가 더해지자 일휘의 검신이 짓밟은 발을 중심으로 당겨진 활대처럼 휘었다.
콰콰콰콰.
급격하게 줄어드는 속도에 대기에서 거친 마찰음이 일었다.
별안간 하늘에서 들려온 소음에 지상에 있던 이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투우우웅!
등 굽었던 일휘가 빠르게 펴지며 골이 잔뜩 난 듯한 검명을 울려 댔다.
진무는 그 힘을 이용해 방향을 꺾어 날아가며 손안에 검은빛이 도는 강기를 응축시켰다.
콰아아앙!
지면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박아 넣은 주먹에 폭발이 일어나 적들을 집어삼켰다.
드드드드.
깊숙하게 틀어박힌 강기가 그 내부에서 지면을 뒤흔들자 균열이 사방으로 거미줄처럼 뻗어 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두 번째 폭발이 분지를 뒤흔들었다.
콰아아아앙!
역시 이렇게 적이 가득한 곳에서 대놓고 소란을 피울 때는 이거지.
묵룡혼원공, 대지창파.
일격으로 반경 삼십여 장을 초토화시킨 진무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사방에서 몰려들기 시작한 적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서들 오너라.
모두가 한결같이 머리에 시뻘건 두건을 두르고 있으니 대가리가 터져도 피가 나는지 모르겠구나.
황신 녀석을 구하기 위해서 내 친히 미끼가 되어 너희의 대가리를 모조리 깨 줄 것이다.
진무의 입술이 슬쩍 벌어졌다.
새하얀 송곳니가 오랜만에 적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귀수, 용이 쉬어 가는 둥지라고 했겠다?”
진무의 눈동자가 까맣게 물들고, 두 주먹에 어둠보다 진한 흑빛 강기가 어렸다.
“하압!”
콰아아앙!
포악한 묵룡 한 마리가 날뛰기 시작했다.
황신이라는 새끼 용을 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무단으로 둥지를 점거한 이들을 응징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