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93
493화
탁, 또르르르.
“……?”
별안간 하늘에서 날아온 검에 반으로 쪼개져 버린 홍건의 무인.
동시에 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원통형 물체의 정체를 알아챈 능서현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폭약이라니.
그것이 터졌다면?
“놈들 사이에 뿔피리에 조종당하는 놈들이 있다!”
“……!”
어느새 내려선 진무가 일휘를 뽑아 들고 홍건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럼 방금 곳곳에서 들려온 폭발음이?”
“그래.”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상공에서 보지 못했다면 아마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난데없는 폭발음에 우왕좌왕하다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콰아앙! 쾅!
그 사이에도 사방에서 쉼 없이 일어나는 폭발에 능서현이 미간을 찡그렸다.
아비규환.
분지 안의 상황이 지옥의 단면처럼 변해 가고 있음에도 손쓸 도리가 없었다.
“젠장.”
진무의 짜증이 극에 달했다.
흑살서의 독이 외곽에서부터 퍼지고 있는 상황.
중독된 자들을 죽인다고 해도 확산을 지연시킬 뿐, 해소할 수는 없다.
무인들은 점차 안쪽으로 뭉칠 수밖에 없었고, 그곳엔 뿔피리에 조종당한 이들이 곳곳에서 폭약을 터트리고 있었다.
내우외환(內憂外患).
안팎에서 조여 오는 살진이었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어찌해야 하는가?
“진무 도장!”
진무가 한참을 고민하는 와중에 철지량이 다가왔다.
“큰일일세. 이대로 가다가는…….”
오랜 경험이 축적된 철지량마저도 쉽사리 해결 방안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노닥거리며 해결 방안을 논의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이대로 시간만 버티고 있다가는 폭약에 버틸 수 있는 진무와 강기의 무인 몇몇을 비롯하고는 전부 죽게 될 터였다.
모두를 살리려면…….
진무는 다급한 눈길로 분지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사방에서 폭발에 휩싸여 갈가리 찢기고, 중독되어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죽어 가는 궁의 무인들.
그리고 자신을 따라온 철검단과, 철지량과 함께 온 용봉관의 무인들.
그래, 모두를 살릴 순 없다.
한계를 인정해야만 한다.
단번에 절벽 위에서 뿔피리를 잠재울 만한 능력은 없으니, 필요한 사람만 살린다.
그들에게 생의 길을 열어 주는 방법은 단 하나.
독이 퍼지고, 폭약이 터지는 이곳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러자면 통로가 필요한데…….
진무의 시선이 분지를 둘러싼 외벽으로 향했다.
무너진 입구.
그리고 오목하게 파여 오른다는 생각마저 하지 못하게 만드는 돌산.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뿐이다.
“검성 어른.”
“말씀하시게.”
“해독약 얼마나 있으십니까?”
“개인당 하나쯤은 있을 것이네.”
“좋네요. 하면 몇 개 챙기셔서 이기어검으로 돌산 위의 적들을 최대한 많이 처리해 주십시오.”
“음, 알겠네.”
진무의 결연한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었음일까?
철지량은 반문 없이 용봉관의 무인들에게서 해독약을 건네받고 인근의 적을 향해 이기어검을 날리기 시작했다.
“우명, 서현!”
“예!”
“너희는 철검단과 용봉관의 무인들을 이끌고 독의 확산을 저지함과 동시에 뒤편의 적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라.”
“……예, 예?”
진무의 명령에 능서현과 천우명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버리라고?
대궁주라는 놈에게 버려진 저들의 죽음을 외면하라는 것인가?
“반문은 허락지 않는다. 나는 명령을 내렸고, 너희는 따르기만 하면 된다.”
“…….”
차갑다.
지금의 그는 평소의 천주가 아니었다.
능서현은 어렴풋이 진무를 안다.
때론 탐욕스럽고, 또 때로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감추고 있으나, 누구보다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구타가 생활화되어 있으나 누구보다 수하들을 아끼는 수장이었다.
강한 자들에게는 더없이 강하지만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해 빠진 인물.
겉모습은 파락호인지 몰라도 그 속은 천생 도사였다.
그것이 자신이 본 진무였다.
그런 그가 냉혹하게 적들을 외면하라 말하고 있었다.
“주군, 하지만…….”
“반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했다.”
“…….”
“명심해라. 우리는 세상의 구원자도 뭣도 아니다. 이익을 좇아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무인일 뿐이다. 값싼 동정심에 흔들리지 마라. 저들은 그저 우리의 것을 빼앗기 위해 찾아온 적이다. 우린 우리 것과 우리의 곁에 있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사실만 명심해라.”
“……알겠습니다.”
능서현이 인상을 찌푸린 채로 마지못해 답했다.
마교인 주제에 동정심에 휘둘리다니…… 어느새 물들어 버린 것인가?
하지만 냉정해야 했다.
버릴 때는 확실히 버려야 자신의 품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무의미하게 죽어 가는 궁의 무인들의 모습이 안타깝긴 했으나, 그것이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철검단과 용봉관의 무인들은 들어라! 이 열 횡진을 펼친다. 후열은 독의 확산을 막고, 전열은 궁의 무인들이 다가서지 못하도록 하라!”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동정심을 애써 외면한 천우명의 명이 떨어졌다.
사방에서 일어나는 폭발과 독에 궁의 피해가 점점 더 확산되는 사이, 진무는 서둘러 달려 무너진 돌산의 입구에 도착했다.
망할 놈들. 폭약을 얼마나 사용한 건가?
정말 사정없이 무너졌다.
이전에 입구였다는 티가 조금 날 뿐, 평범한 산과 진배없었다.
검으로 산봉우리에 있는 바위를 벤 적도 있었고, 태극을 이룬 이후에 폭포를 역류시켜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완벽하게 다른 문제였다.
이것은 산이다.
그것도 가장 아래쪽.
가장 두꺼운 면을 가진 그런 산인 것이다.
하지만 우공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산을 옮기려 든 것처럼,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제는 당장 해내야 한다는 것이지.
뚫을 수 있을까?
“…….”
문득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참, 이 마당에 이딴 고민으로 주저하고 있다니.
뚫을 수 있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을 틈이 없다. 지금은 무조건 뚫어야만 한다.
그리고 내가 문으로 다닌 적이 있던가?
닫힌 문은 부쉈고, 탄탄히 세워진 성벽은 무너뜨리면 그만이다.
이까짓 돌산?
시도해 본 적은 없지만 뚫어 버리면 그만 아닌가?
인간이 못 할 것 같다고?
잊고 있었고 자랑 같아서 의식적으로 부정해 왔지만, 사실 누가 자신을 인간으로 보겠는가?
한 번의 죽음에서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던 저승사자의 손을 뿌리쳤고, 누군가는 바라 마지않는 등선을 발로 차고 돌아온 자신이다.
사람이 아닌 반선(半仙).
그것이 지금의 자신이 아니던가?
못할 게 없다.
네놈들이 만들어 놓은 이 함정.
모두를 말살하려 한 이 개 같은 전략, 똑똑히 보았다.
대궁주, 내 반드시 이곳에서 빠져나가 네놈을 찾아갈 것이다.
“후우…….”
진무는 두 발을 어깨너비로 벌린 뒤, 찬찬히 호흡을 고르며 가만히 손을 뻗어 돌에 가져다 댔다.
양의를 넘어 태극을 이룬 이후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태극이 가진 완전한 힘.
북리도천조차 그 힘을 쓰지 않고 이겼다.
하여 완전히 펼쳐 냈을 때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이제 쓸 것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사용해 가로막은 이 산을 허물어, 모두에게 살길을 열어 줄 것이다.
진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느꼈다.
무너진 돌 틈 사이로 미약하게 새어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손끝에 닿은 바위의 차가움을 온몸에 담았다.
“후우…….”
내쉰 숨이 바람에 뒤섞이며 바위틈을 통과해 그 너머에 닿고, 들이마신 숨이 주변에 있는 사물의 기운을 끌어들여 자신의 기운과 동화한다.
묵룡과 뒤섞인 선기는 태극을 이루어 격렬히 솟구치는 대신 은은히 사지 백해에 스며들었다.
끝을 모르고 커지는 기운을 따라 단전이 점차 확장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진무의 몸 전체가 단전이 되어 그 모든 기운을 온전히 머금었다.
열린 귓가에 박동하는 심장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세차게 귓전을 두드리던 그 소리가 느려지고 또 느려져 어느새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적막이 찾아왔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가운데 기감이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세상이 무(無)로 돌아간 듯, 끝 모를 어둠 속에 홀로 존재하던 중에 한 줄기 빛이 나타나 형체를 이루니, 곧 진무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의 몸에서부터 퍼져 나간 빛이 점차 그 영역을 넓히며 주위를 환히 밝혔다.
보인다.
주변의 모든 것이 눈이 아닌 그의 마음속에 세세하게 그려졌다.
이윽고 그의 마음속에 세상이 담기는 순간, 태극을 이룬 이후인지 아니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지만 진무는 또 하나의 경지를 향해 발을 들였다.
고요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 관조(觀照)의 영역.
시각의 영역을 뛰어넘어 버린 지금, 진무는 심안(心眼)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선이 바위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진무는 그들이 만나 점을 이룬 곳에 손을 뻗었다.
신기함과 호기심이다.
선악의 경계가 없는 아이처럼 장난스럽고 집요한 손길이 닿자, 소스라치게 놀란 바위가 마치 살아 있는 듯 경악성을 토했다.
빠각.
균열.
따로 기운을 일으키지 않았음인데, 바위에 금이 가더니 힘없이 갈라졌다.
차분한 가운데 진무의 입가가 옅은 호선을 그렸다.
태극. 이것이 태극이구나.
그것은 일찍이 만물을 이루는 근원이자 태초의 씨앗.
음양이 그곳에서 나왔으며, 오행이 그에서 발원하여 세상 만물을 이루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기분과 광경이 너무도 흥겹다.
흥분이 차올라 덩실거리며 신명 나게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었다.
세상에 오직 나만이 겪어 본 세상이리라.
다른 이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지 못할 그곳에 홀로 있으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진무에게는 마치 억겁과도 같은 긴 시간이었으나, 남들이 보기에 진무는 그저 바위에 가만히 손을 얹고 서 있을 뿐이었다.
“대체 뭘 하시려고…… 설마 저걸 부수시려는……?”
독의 확산을 저지하느라 한참이나 떨어져 버린 천우명이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자신이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진무라고 해도 이번엔 심했다.
산을 허물어 길을 뚫으려 하다니.
“주군을…… 믿어 봅시다.”
“……?”
능서현의 말에 천우명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또 친한 척이다.
언제부터 지가 천주님 수하였다고?
“누가 뭐래? 처음부터 믿고 있었어. 그러니까 네 앞이나 잘 막아!”
천우명이 퉁퉁거리는 순간, 진무가 움직였다.
빠르지 않았다.
강맹하지도 않았다.
그저 바위를 향해 가볍게 손을 뻗었다.
그런데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것처럼, 수면에 파랑이 이는 것처럼.
그리고 닿았다.
쩌저적. 쩌적.
“저, 저…….”
천우명의 눈과 입이 점점 더 벌어졌다.
비단 그만이 아닌, 근처에 있던 이들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진무가 있던 절벽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균열.
돌산에 균열이 번졌다.
한없이 가벼웠던 손길이 바위에 선명한 장인을 남기고, 사방으로 뻗어 나간 균열에 이어 퍼석거리며 부서지는 순간.
드드드드, 콰아아앙!
산이 터져 나갔다.
그리고 길이 났다.
아주 거대하게 뚫린 통로에서 세찬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 맙소사…….”
그 외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설마하니 산을 터트려 버릴 줄이야.
모두가 아연히 그를 주시했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일을 해낸 진무는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안쪽을 향해 씨익 웃었다.
씨발. 장난 아니네, 이거…….
그리곤 허물어지듯이 쓰러졌다.
“천주님!”
천우명이 진무를 향해 다급히 뛰어갔다.
진무처럼 만독불침은 아니었으나, 천우명에겐 절벽 근처에 자욱한 독은 중요하지 않았다.
걸린다 해도 해독약이 있으니 큰 상관은 없었다.
* * *
“으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진무가 작은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흐릿했던 시야가 점차 맑아지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걱정스러운 얼굴들이 하나씩 선명해졌다.
“천주님!”
“……우명?”
“휴…… 진짜 돌아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상황은?”
“다들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철지량이 용봉관, 철검단과 함께 절벽 위에 있던 잡것들을 처리하러 갔습니다.”
“다행이군. 궁 쪽은?”
“……많지는 않지만, 꽤 살았습니다. 다들 천주님이 깨어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기다리고 있다고?
진무는 씁쓸하게 웃었다.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그들이라고 모르지 않을 것이다.
오갈 데 없는 인생이 되어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을 테니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지.
“얼마나 지났지?”
“만 하루를 누워 계셨습니다.”
“음…….”
하긴 산을 터트려 버릴 정도로 강력한 힘이니 몸이 못 버텼을 만도 했다.
태극의 힘.
어쩌면 신선이라는 자들의 전유물이기에 인간의 몸에는 허락하지 않은 것인가?
그래도 다행이었다.
쓰고 나서 하루를 꼬박 누웠을 정도로 위험한 힘이었지만, 많은 사람을 살렸다고 하니까.
진무는 천천히 기운을 돌려 보았다.
내상은 없다.
몸에 특별한 이상도 없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진무는 분지를 향해 걸어갔다.
가득히 몰려 있던 궁의 무인들이 진무의 다가서자 쭈뼛거리며 좌우로 물러났다.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진무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통로를 지나 분지 안의 전경을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목불인견의 참상.
너무 많은 이가 죽었지만, 추모할 시간은 없다.
망할 영감탱이의 빌어먹을 야욕으로 인해서 지금도 많은 이들이 죽고 있을 것이다.
이젠 전쟁을 끝내야 했다.
펄럭!
진무가 굳은 얼굴로 장삼을 휘날리며 몸을 세차게 돌렸다.
“가자, 하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