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94
494화
제갈협진이 적들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하북으로 향하던 시점.
궁의 진격 경로에 있는 모든 무림 세력에 한 장의 전서가 날아들었다.
적든 많든 궁을 막아서게 해서, 조금이라도 이동을 지연시키려는 의도였다.
이는 명문 대파나 중소 방파를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경로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던 무당에도 전서가 날아들었다.
* * *
“해서 보내 달라는 말이더냐?”
“예.”
백룡의를 입은 청상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의 얼굴에 깊은 고심이 어렸다.
진무가 떠난 이후, 청상을 무당지검으로 임명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그때의 비무를 보았던 이들은 누구도 청상이 그 이름에 부족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성향만을 보자면 오히려 진무보다 더욱 무당지검에 어울리는 제자가 아니던가?
비록 이대였으나 모든 일을 행함에 정의감이 넘쳤고, 품성과 언사 또한 올곧고 정갈하니 누구보다 뛰어난 도사였다.
과거 화전민촌에서 화적들에게 부모를 잃고 구해졌던 소년.
복수심이 마음에 가득하여 재능을 가지고도 큰 도를 이루기 어렵다는 평가를 스스로 불식한 그는, 이제 늠름히 무당을 대표하는 도사가 된 것이다.
지금 장문인 명현이 주관하는 장로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청상 개인은 오룡궁의 이대제자이나 무당지검으로서의 그는 장문인, 장로들과 동등한 위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떠나고자 한다.
정무맹 대군사의 전서를 받고 곧장 채비를 챙겨 하북으로 보내 달라 청하고 있었다.
홀로라도 걷겠다, 그리 말하면서.
“사정이 여의치 않다 들었습니다.”
“…….”
“이미 대군사의 전서를 받은 황실에서 황군을 배치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선을 지킬 고수가 부족하다지요.”
“무풍개 어른과 백로, 검혜께서 그들의 뒤를 쫓고 있다.”
“뒤입니다.”
“앞은 군문의 장수들이 막고 있느니라.”
“아직 저들을 막을 만큼 많은 병력이 하북에 모이지 못했고, 군문의 장수들은 전쟁에 능한 자들이지 개인전에 강한 자들이 아닙니다.”
“…….”
“사패천이 북방을 공격당해 고수들을 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저들이 먼저 하북을 넘어 자금성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음.”
당당히 자신의 의사를 전하는 청상의 모습에 명현과 장로들이 깊이 침음했다.
모르지 않았다.
개방이 그들이 지난 자리를 뒤쫓으며 계속해서 연락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움직임은 기민하고 빨랐다.
하루의 절반, 낮 혹은 밤의 시간.
정무맹이 궁의 진격보다 뒤처진 거리였다.
만약 대궁주라는 자와 그에 상응할 정도로 강한 고수가 있어 군이 막지 못한다면?
하지만 명현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들이 계속 주저하자 청상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사숙께서 제게 강에 이르게 하여 무당지검의 이름을 계승하게 하심은 그저 산문에 앉아 도만 익히라 하신 뜻은 아닐 터입니다.”
“…….”
“힘을 가진 자에게는 언제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배웠습니다.”
“…….”
“사숙께서는 언제나 스스로 험난한 길을 자청하여 중원을 수호하셨습니다. 무당지검의 이름을 이은 저 역시 그리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하나 진무는 무당이 머무르기를 바랐다.”
“…….”
안다.
그가 떠나며 신신당부했던 말이니 어찌 모를까?
“그랬지요. 하나 아시지 않습니까? 그것은 그저 무당을 염려한 말씀입니다. 혹여 무당이 다칠까 우려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
“그렇다 하여 무당이 위급을 보고도 움츠리면 어찌 무당이라 하겠습니까?”
계율보다 앞서서 지켜 왔던 무당의 도(道).
그것을 논하는 말에 아무도 답할 말을 내놓지 못했다.
“청무 조사님, 그리고 진무 사숙님. 그분들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아니하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신 분입니다.”
청상의 목소리에 차츰 힘이 서렸다.
“무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욱 나아가야 하고 더욱 발전해야 합니다. 과거의 아픔을 또다시 겪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머무른다면 어찌 무당이라 하겠습니까? 무너지더라도 무당으로서 세상에 나아가야만 합니다.”
무너지더라도 무당으로서.
그 말이 사람들의 마음에 작은 불씨를 던졌다.
“무당은 누구 한 사람 때문에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강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무당이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허, 어허허허!”
청상의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명현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래, 이것이 도다.
모름지기 도라는 것은 세상 모든 곳에 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아니하며, 신분을 초월하는 것이 곧 도였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끝에 다다르며, 다다라 아스러진 것을 자양분 삼아 새로운 생명이 태동한다.
역사는 다른 듯하나 같은 모습으로 반복되며, 그 안에서 무궁히 발전한다.
그것이 자연의 도이며 세상의 이치다.
진무는 변화를 통해 재건을 말했고, 청상은 무당의 도로서 나아감을 말했다.
어느새 자란 것이다. 진무를 거름 삼아 자란 아이가, 자신만의 도를 통해 새롭게 나아가려 하는 것이다.
이제 막 약관을 넘어 버린 녀석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처지라니.
참으로 헛살았다. 오랜 세월 헛으로 도를 갈구했다.
무엇을 겁냈단 말인가?
무엇에 주저했단 말인가?
어찌하여 문파라는 울타리에 갇혀,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만 했단 말인가?
“무량수불…….”
나지막이 도호를 왼 명현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가거라.”
“……!”
명현의 말에 장로들은 물론 대전 안에 모인 일대제자들까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나, 네 주장처럼 혼자는 아니 되느니. 무당이 함께할 것이다.”
“자, 장문인.”
홀로 보내 달라 허락을 구했던 청상이 당황했다.
“어찌 그것이 너만의 도겠는가? 이는 네 말처럼 무당이 나아가야 할 도이니라.”
“…….”
“대제자 진명과 일대들은 들으라.”
“하명하십시오.”
“진명은 지금부터 장문 대리로 무당을 이끌 것이며, 각 궁의 실무인 일대들 또한 본산에 남아 이대를 가르치며 무당의 역사를 이어라.”
“장문인!”
“반문하지 말라. 이는 무당의 장문인으로서 내리는 명이니라.”
“…….”
“바야흐로 시대가 흐르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느니. 그대들은 다음의 역사를 준비하는 무당의 밑거름이 되어라.”
명현이 일어나자 무당의 도인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 명현이 장로들을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함께해 주겠는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
“허허, 살아 돌아온다면 지긋지긋한 장로일랑 때려치우고 원로원에 앉아서 뒷방 노인질이나 해야겠습니다.”
모두가 온화하게 웃으며 선선히 답하는 가운데 명현이 명진에게 시선을 두었다.
“자네는 남아 주게.”
“자, 장문인.”
“미안하네. 자네는 이미 한 번 스스로를 희생하여 무당을 구하였네.”
“…….”
“섭섭하다 여기지 말게. 지금의 자네가 많은 회복을 이루었다고 하나 아직 미약하네. 다른 이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음이야.”
직설적이고 객관적인 표현.
그것은 무시가 아니라 사실이니 기분을 살피려 둘러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았다.
“매정하다 말하지 말게.”
“…….”
어찌 매정하다 할 것인가?
그의 눈에 어린 마음이 여실히 느껴지는 것을.
“돌아오시는 날…… 오룡궁에서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허허, 좋은 술도 있어야 할 것이고, 질 좋은 고기 안주도 듬뿍일세.”
“…….”
명현이 명진의 어깨를 툭 치며 눈을 찡긋거렸다.
* * *
전쟁.
서로 간의 이해에서 발생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각종 수단을 동원해 상대를 침해하는 행위.
침략받은 자는 뺏기지 않으려 하고, 침략한 자는 어떻게든 빼앗으려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참혹하다.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이들이 목숨을 잃고, 무의미한 희생이 강요된다.
지금의 전쟁이 그러했다.
파죽지세로 돌진해 온 궁은 막아서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시체가 길가에 수북이 쌓이고, 흐르는 강은 피로 물들어 흘렀다.
쾅! 콰쾅!
하북성 소오태산(小五台山)에 세워진 방어진.
계곡을 이룬 지형을 이용해 몰려드는 적들을 막고자 꾸려진 그곳에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대해를 이루며 쇄도하는 적들을 향해 쏟아진 포탄이 사방에서 터져 나갔고, 곳곳에 비명이 넘쳐 났지만 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슈아아앙! 턱.
선두에 선 노인이 자신을 향해 날아온 포탄을 그대로 잡아 멈췄다.
콰아앙!
이내 포탄이 폭발하여 일대를 날려 버렸지만, 노인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폭발이 만든 먼지와 연기에 모습을 감추었던 그가 방어진을 향해 쾌속하게 쏘아졌다.
포신에 포탄을 집어넣고 심지에 불을 댕기던 군졸이 눈앞에 나타난 노인의 모습에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어, 언제?
분명 백 장은 넘어 보였는데?
그런데 노인의 행동이 그의 의아함을 더욱 증폭시켰다.
포신을 막은 노인의 손과 그의 얼굴에 지어진 잔혹한 미소.
치이이…….
이미 불이 붙어 버린 심지가 꽁지까지 타들어 갔다.
설마하니 피육으로 이루어진 손으로 포를 막겠다고?
어불성설이다.
어찌 인간의 힘으로 화포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노인은 군졸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콰아아앙!
성벽을 날려 버리는 강력한 포탄도 노인의 손을 뚫지 못했다.
화약을 가득히 머금은 포가 역으로 폭발하며 군병들이 만들어 놓은 방어진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크아악!”
폭발에 휩쓸린 이들이 저마다 다른 신체 부위를 잃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슈슈슛!
노인의 뒤로 흑건을 쓴 이들이 방어진에 뛰어들었다.
그들이 휘두른 잔혹한 검이 방어진을 휩쓸 때마다 피가 솟구쳤다.
함몰된 방어진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뒤이어 밀려든 적들이 군병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죽음, 그리고 또 죽음.
“퇴각하라! 서둘러 퇴각하라!”
전세가 기울었음을 깨달은 무장이 목놓아 외쳤지만, 이미 적들은 난입한 상황.
공허한 마지막 외침과 함께, 이내 그의 목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노인 한무화.
선두에서 전장을 무너뜨린 그가 살육이 자행되는 현장에서 뒷짐을 지고 멀리 군병들이 만들어 내는 방어진을 바라보았다.
“멍청한 것들, 고작 종잇조각을 엮어 어찌 나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비웃음을 머금은 그가 특정한 대상을 칭하지 않고 말했다.
“가거라. 자금성이 코앞이다! 닥치는 대로 죽여 저들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거라!”
한무화의 명령이 떨어지자 궁의 무인들이 다음의 방어선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들었다.
전술과 전략은 오직 한 가지, 전진뿐이었다.
황군이 방어선에 투입한 포는 위력은 강했으나, 상황에 따라 즉각적으로 진형을 변화하기에는 무거운 탓에 기습에 취약했다.
한무화와 그가 이끄는 흑건들이 화포와 궁수들의 진형을 무너뜨리고 나면, 곧바로 무인들이 학살을 자행했다.
그 과정에서 황군뿐 아니라 궁의 무인들도 수없이 죽어 나갔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시신을 짓밟고 계속해서 전진해 자금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황군이 소오태산에 만든 마지막 방어선에 도달했다.
멀리 평원 너머에 자금성이 보였다.
그리고 궁의 무인들 앞에 황군들이 아닌 또 다른 이들이 나타났다.
국난이 일어나면 언제나 앞서 도왔던 이들.
북부의 전선에 투입되지 않고 남아 있던 소림승, 무당의 도사, 제갈가의 학사를 비롯하여 갑주 하나 걸치지 않은 중소 방파의 무인들이.
“적들을 막아 군의 퇴각을 도우라!”
“와아아아!”
선두에 선 무림 명숙들의 외침에 무인들이 일제히 질주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앞장선 청상이 푸른 검강을 뿜어내며 질주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