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95
495화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 상처 입은 이의 울부짖음과 죽어 가는 이의 단말마는 난전(亂戰)의 치열함에 묻혔다.
몰려드는 적들을 막아선 중원 무림인들의 수는 미약했으나, 사력을 다하는 그들의 의지는 전장을 뒤흔들었다.
한 사람이 서넛씩이나 되는 적들을 베어 내었고, 그러다가도 수많은 칼에 내몰려 죽어 갔다.
공격한 자는 악착같았고, 지키는 이들에게 물러섬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붉은 기, 붉은 기가 올랐습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난전을 펼치던 중원 무인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훌쩍 거리를 벌렸다.
붉은 기.
황군의 방어선에 배치된 화포에 탄이 장전되었다는 신호였다.
“쏴라!”
군의 장수가 악을 쓰며 외치자 홰가 닿은 심지가 타들어 가고, 잠시 후 화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슈우우, 콰아아앙!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든 포탄이 벽력성과 함께 폭발하자 물러나는 중원무인들을 개미 떼처럼 뭉쳐 뒤쫓아 온 홍건들이 여지없이 터져 나갔다.
곧이어 방어선에 세워진 수많은 푸른 깃발.
물러나던 무인들이 방향을 틀어 포탄을 얻어맞아 혼란에 빠진 적진을 향해 다시 뛰어들었다.
기마에 비견될 만큼 빠른 경공술을 익힌 무인들이 적들의 선두를 저지해 시간을 벌면,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포가 불을 토해 적들을 무너뜨린다.
무림인들이 참가하면서 새롭게 세워진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이제껏 파상공세를 펼치며 군문의 방어선을 뚫어 냈던 궁의 진격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무인 중 가장 빛을 발하는 이들은 무당의 도사들이었다.
고작 여섯밖에 되지 않았으나 가장 앞선 곳에서 적들을 맞아 싸우는 그들의 선기는 적들을 참하는 학살자의 검이 되어 휘둘러졌다.
면장의 폭음이 사방을 아우르고, 태극의 검이 초식을 그려 낼 때마다 적들의 시신이 곳곳이 쌓였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 청상이 있었다.
북부에 배치되지 않았던 무인들 중 유일하게 강의 경지에 오른 청상.
그가 펼쳐 내는 유운은 한가로운 구름이 아니라 잔혹한 철퇴였다.
강기화 된 푸른빛 선기가 전장에 내려앉을 때마다 사방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
“무당을 뒤따르라!”
“반드시 적을 막아야 한다.”
“이곳이 뚫리면 자금성이 위험하다!”
명현을 따르는 명자 배의 무당 장로들과 무당지검 청상.
그들이 전장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전장을 종횡무진하며 검을 휘두르는 청상과 무당 도사들의 활약에 고무된 중원 무인들이 사력을 다했다.
그리고 매서운 눈동자 하나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궁주 한무화.
살짝 찌푸려진 그의 얼굴에 드러난 것은 명백한 언짢음이었다.
마지막 방어선.
그곳만 뚫으면 자금성까지 남은 거리는 고작해야 삼백 리였다.
하루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
한데 갑자기 등장한 중원 무인들에 의해 걸음이 지체되었다.
이름난 고수들도 아니고, 이곳저곳에서 중원을 수호하겠다며 뭉친 떨거지들에 의해서.
더욱이 내내 밀리기만 했던 군이 갑자기 사기가 올랐다.
모두 저 도사 놈들 때문이었다.
무당…….
갈가리 찢어 놓아도 시원치 않을 그 이름.
백 년 전 청무라는 놈이 주씨의 주구가 되어 자신들의 조상을 내쫓았던 것처럼, 또다시 자신들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 선 약관의 도사.
“이제 막 성강을 이룬 핏덩이 따위가…….”
분노가 스민 나지막한 한마디와 함께 한무화가 청상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가벼운 한 걸음이었으나, 행해진 것은 궁신탄영(弓身彈影)을 방불케 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휘릭, 후아악!
동시에 비틀듯이 당겼던 손이 거대한 기운을 머금고 뻗어 나갔다.
“……!”
적들을 베어 내던 청상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존재감을 향해 재빨리 검 면을 세워 몸을 틀었다.
쩌어어엉!
강렬한 일격에 검이 안쪽으로 휘어지고, 청상의 몸이 세차게 튕겨 나가 처박혔다.
“크윽!”
“청상!”
인근에서 싸우던 명공이 걱정스럽게 외치며 재빨리 몸을 날려 다가왔다.
“날파리…….”
한쪽 눈을 살짝 일그러뜨린 한무화가 파리 쫓듯 손을 휘젓자 폭풍 같은 기운이 명공을 덮쳤다.
퍼어엉!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밀려나 버린 명공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우웩!”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몸 내부가 진탕되어 피가 울컥 솟구쳤다.
“명공!”
명현과 무당의 장로들이 주저앉은 명공의 주위를 둘러싸 그를 보호하며 적들을 베었다.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전의 중심.
무당의 장로들은 쉼 없이 검을 휘두르는 중에도 검극을 세운 채 오만한 표정으로 선 한무화를 노려보았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적들의 수괴 대궁주라는 자가 분명했다.
절대로 그가 방어선을 향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간신히 막고 있는 방어선이다. 아직 붉은 기가 오르지 못했으니 화포가 준비될 때까지 어떻게든 그의 발걸음을 막아야만 했다.
“사제들은 태극검진(太極劍陣)을 펼쳐 적을 가두어라!”
“예!”
머뭇거림 없는 명현의 명에 명공을 제외한 네 명의 장로가 한무화의 주변에 원형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궁주님!”
뒤늦게 흑건을 쓴 무인들이 나타났지만, 한무화가 손을 들어 그들의 행동을 막았다.
“이곳은 내버려 두고, 다른 곳을 도우라.”
“예!”
즉각적인 대답과 함께 흑건의 무인들이 주변으로 펼쳐져 다시금 난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한무화가 명현을 바라보며 뒷짐을 졌다.
“무당…… 너희와의 인연이 어찌 이토록 질기단 말이냐?”
“…….”
“좋다. 어디 한번 해 보아라.”
명현은 이를 악물었다.
대궁주라는 인물은 이 난전 중에도 한없이 여유로웠다.
수장이 된 자가 수하들이 수없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 어찌 저런 웃음을 보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들의 죽음 따윈 상관도 없다는 것일까?
오랫동안 정심을 수련한 명현조차도 가슴이 불길이 일었으나, 대처는 냉정했다.
휘둘려서는 안 된다.
그는 강하다.
강의 경지에 오른 청상을 고작 일격으로 밀어 버릴 정도로.
하지만 무당 최강의 검진이라 불리는 태극검진이다.
비록 수가 모자라 소태극밖에 이루지 못할지라도 그를 잠시 가둘 수는 있을 것이다.
“개진(開陣)!”
검진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무당의 장로들이 한무화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점차 빨라지고, 잔상이 겹쳐지듯 연결되어 마치 고속으로 회전하는 수레바퀴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공격이 시작되었다.
양쪽에서 동시에 중심을 향해 쏘아져 들어온 두 개의 공격.
“흥, 위력도 없는 이까짓 연환 공격 따위!”
따당!
한무화의 양손이 펼쳐져 쏘아진 검극을 때렸다.
슈가각!
검을 막아 낸 한무화가 공격해 온 이들을 쫓을 틈도 없이 또 다른 두 개의 검이 다른 방향에서 쏘아져 들어왔다.
따아앙!
튕겨 낸 검이 원으로 돌아가고, 곧장 새로운 공격이 시작된다.
“……!”
검진을 우습게 여겼던 한무화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검에 실린 기운 하나하나는 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공격이 축적될수록 검진이 눌러 오는 압력이 강해졌다.
뿐만 아니라 고속으로 회전하는 원의 어느 곳에서 공격이 날아올지 예측이 되지 않고, 공격과 공격 간의 간격이 갈수록 좁아진다.
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연결된 무한의 공격.
무극을 지향하는 태극검진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한무화는 마치 회오리의 중심에 갇혀 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각.
“……?”
옷자락이 잘리고 피부에 생채기가 생겼다.
다섯이 동시에 가해 오는 공격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우습기 짝이 없는 실력으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만들다니.
자존심이 상했다.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이 감히 자신에게…….
슈아악!
순서가 있기는 했으나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빠르게 다가오는 다섯 개의 검극.
한무화는 분노 어린 눈으로 그 검극을 주시했다.
짓누를 것이다.
나는 과거 너희에게 유린당했던 나의 조상들과 다르다.
네놈들이 자랑스럽게 펼친 이 검진을 짓눌러, 너희가 가진 힘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알게 해 줄 것이다.
“하압!”
한무화가 기합성과 함께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가 온 힘을 다해 당기며 내리눌렀다.
쿠우우우.
순간 검진이 짜부라지듯이 짓눌렸다.
하늘이 무너진다.
초식과 속도에서는 능히 한무화를 압도할 정도로 뛰어난 태극검진이었으나, 힘이 문제였다.
진을 이룬 무인 다섯의 힘이 합해졌음에도 그에게 미치지 못한 것이다.
“모, 모두 피하게!”
명현의 빠른 판단에 무당의 장로들이 다급히 원에서 탈출했다.
콰아아앙!
하지만 지면을 강타하며 생긴 기의 폭발이 너무 빨랐고, 그 충격파의 범위가 너무 거대했다.
“크으윽!”
충격파에 빗맞은 명현이 바닥에 처박혀 뒹굴었다.
억지로 몸을 세워 바라본 사제들의 모습 또한 자신과 다르지 않았다.
먼지투성이가 된 그들의 입가에 실처럼 흘러내리는 피.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리고 충격파의 중심에 오연히 선 한무화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으르렁거렸다.
“한 놈씩 차근히 짓이겨 주마.”
“…….”
한무화가 당장에 그의 명줄을 끊을 사신처럼 손을 뻗으며 걸음을 내디뎠다.
“붉은 기다! 속히 물러나라!”
때마침 전장을 울리는 목소리에 중원의 무인들이 썰물처럼 방어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심지에 불이 붙었을 테니 곧 화포가 쏘아질 것이다.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다들 움직임이 느려졌다.
이대로는 화포는커녕 대궁주의 손길조차 피할 수 없으리라.
명현이 아련한 눈길로 자신의 사제들을 바라보았다.
시간을 벌어 주어야 한다. 그들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것이 사형 된 자의 도리이자, 무당의 장문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이었다.
“붉은 기다! 모두 물러나라!”
누군가의 외침에 명현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모두 방어진으로 물러나게!”
“……!”
고함과 함께 명현이 자신이 가진 모든 내력을 끌어내 한무화를 향해 검과 함께 쏘아져 나갔다.
“장문인!”
고함성을 듣고 물러나려던 무당의 장로들이 다시금 몸을 돌렸다.
어찌하여 뛰어든단 말인가?
그곳에 죽음이 있음이 확실한데.
하지만 그들이 막을 새도 없이 명현은 한무화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쐐애액!
명현은 그 순간 동귀어진을 결심했다.
적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사제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아까의 기세는 어디로 간 것이냐? 겨우 한다는 것이 목숨을 버리는 것인가?”
“……!”
“네놈이 아무리 용을 쓴들 닿을 것 같더냐! 이란격석(以卵擊石)이나 다름없는 그런 무모함으로!”
놈이 자신의 노림수를 알고 있다.
하지만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때리는 것처럼 무모하고 무의미한 일이라도 상관없다.
내력이 모자란다면 원정지기라도 끌어 올릴 것이며, 닿지 않는다면 그의 손에 몸이 꿰뚫리는 한이 있어도 검을 뻗을 것이다.
슈아악!
한무화가 다가오는 명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무자비한 힘으로 존재 자체를 소멸시켜 버릴 생각이었다.
우우우웅!
거칠게 뽑혀 올라온 강기가 장심에 어리어 명현을 향해 발출되려던 그 순간.
“……?”
날 선 예리함이 주는 섬뜩함에 한무화가 고개를 돌렸다.
슈우우우!
섬전처럼 날아드는 검.
피하기는 늦었다.
그 안에 실린 힘이 예사롭지 않음을 깨달은 한무화가 명현에게로 향했던 손을 재빨리 비틀었다.
떠어어어엉!
두 개의 강기가 부딪혀 폭발했다.
너무 가까웠기 때문일까?
걸음이 밀리지는 않았으나 고스란히 폭발의 충격파를 뒤집어써 버린 한무화의 몸이 출렁거렸다.
그리고…….
푸욱!
한무화가 찡그린 눈으로 자신의 복부를 바라보았다.
“…….”
부러진 검 조각?
한무화가 고개를 들어 올린다.
강기를 사용하던 약관의 도사가 자신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설마 먼저 날린 검은 지금을 위한 허수였던가?
“죽어라!”
“…….”
찰나의 틈이 생긴 순간 명현의 검극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다섯으로도 자신의 일 초를 버티지 못한 것들이.
미간을 깊이 찌푸린 한무화의 눈에서 매서운 안광이 토해졌다.
너무 적당히 상대했다.
눈에 보인 것을 토끼라 여겼기에 너무 방심한 것이다.
순간 한무화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슈우우!
순식간에 유형화된 적색 강기가 살아 있는 송곳처럼 명현을 찔러 들어갔다.
“안 돼!”
명현을 구하려 상대의 눈을 속이는 무당의 암기술, 폐목환을 사용한 청상이 안타깝게 외쳤다.
눈앞에서 명현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폐목환을 사용함과 동시에 힘껏 내달렸으나 아직 닿지 못했다.
한스러웠다.
사숙, 저는 어찌 이리도 무능하단 말입니까?
무당지검의 이름을 물려받은 자가 위기에 처한 장문인을 눈앞에 두고도 구하지 못하다니요.
강기를 날릴 수도 없었다.
이제 막 강을 깨달았기에 검이라는 매개체가 없다면 사용할 수가 없었다.
문득 청상의 시선이 한무화의 곁에 튕겨 나가 바닥을 뒹구는 자신의 검에 닿았다.
검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되었을 것인데.
구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 원통함이 집념이 되어 검에 닿았다.
그리고 한순간 기적이 벌어졌다.
똑똑히 보였다.
검이 움직이는 것을.
슈아악! 푸욱!
“……이, 망할.”
한무화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자신의 허벅지를 뚫고 올라온 검.
“이기어검이라고?”
예측하지 못한 공격에 한무화는 허를 찔리고 말았다.
구하고자 하는 청상의 의지가 닿아 스스로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흐트러졌다.
한무화의 몸이 순간적으로 기우뚱했고, 흔들려 버린 적강이 명현의 어깻죽지를 꿰뚫었다.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청상이 명현의 몸을 안고 땅바닥을 굴렀다.
“이런 개 같은 것들이!”
청상의 검에 상처를 입어 무릎을 꿇은 한무화가 청상과 명현을 향해 공격하려는 순간, 쏘아진 포탄이 전장의 전역에 쏟아져 내렸다.
슈우우우, 쾅! 콰쾅!
사방이 터져 나갔다.
대지가 폭발하고, 폭발에 휩쓸린 궁의 무인들이 갈가리 찢겼다.
그리고 그 자욱한 먼지 속, 허벅지에 박혔던 부러진 검을 뽑아 든 한무화가 사력을 다해 도주하는 청상과 명현, 그리고 중원 무림인들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정말로 화가 나게 만드는구나.”
하지만 폐목환에 당한 복부의 상처도 그러하거니와 허벅지가 너무 깊이 꿰뚫린 탓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으드득.
한무화는 방어진 안으로 사라지는 중원의 무인들을 끝까지 노려보며 어금니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