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
5화
따아악!
“…….”
진허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비어 버린 손.
바닥에 떨어진 검.
아릿한 충격이 전해지는 신문혈.
‘허! 이런 일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놀람과 당혹스러움에 순간 움직임마저 멎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비록 낭심과 눈, 겨드랑이와 같은 치졸한 곳을 노렸다고는 하지만, 검로(劍路)에 변화를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진무가 해냈다.
일대제자가 된 지 고작 일 년밖에 되지 않은 진무가.
진허는 고지식해도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허! 내가 지다니.’
승부는 끝났다.
비록 순수한 초식의 겨룸이었으나 진 것은 진 것이다.
진허는 진무에게 진 것을 쪽팔려 하기보다는 사제의 성장에 감탄하고 있었다.
못 본 새 당시 일대제자 중 가장 뛰어나다 알려졌던 도사 명진의 뒤를 이어 가고 있지 않은가.
대견하고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진무…….”
벅차오르는 희열에 칭찬의 말을 건네려는 순간, 단단하게 움켜쥔 주먹과 사악한 진무의 표정이 날아들었다.
분명히 승부는 끝났는……데.
‘승부도 안 났는데. 이 새끼가 뭐 하는 짓이지?’
진허의 승부는 끝이었으나 진무의 승부는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였다.
쩌억!
둔탁한 충격이 진허의 얼굴을 파고들었다.
신음을 낼 겨를도 없었다.
쩍! 쩍! 쩍!
연거푸 짓쳐들어오는 주먹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진무는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기 시작하는 사제의 성장(?)에 진허는 끝내 정신을 놓아 버렸다.
‘허, 조옿타! 역시 손맛은 도사지. 바로 이 맛이야! 이 짜릿함!’
모처럼 만에 느낀 희열에 그동안 명진에게 억압(?)받아 온 진무는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했고.
곤죽이 되어 땅바닥에 처박히는 진허를 지켜보는 청우는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하지만 눈동자에 떠오른 것은 경악이 아니라 존경심이었다.
진자 배의 막내.
충허암에만 있었던 탓에 문파에 알려지지 않았던 진무가 무당칠자 중 하나인 진허를 때려눕혔다.
그것도 아주 무자비하게.
“야, 뭐 하냐?”
“예?”
진무가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던 청우를 불렀다.
“정동궁 의실로 옮겨.”
정동궁(淨東宮)은 무당 팔궁 중 하나로, 약당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예? 예!”
청우가 급히 정신을 잃은 진허를 들쳐 업고 달렸다.
진무는 멀어지는 청우와 진허를 바라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진허를 이겼다.
정동궁 의실로 옮겼으니 당연히 소문이 날 테고, 청우의 입을 탄다면 거기에 살까지 넉넉히 붙을 것이다.
대제자가 되기 위한 경쟁.
드디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아무리 도가라고 해도 무림 문파였다.
무림에 딴 게 있을 리가 있나.
강하면 장땡이다.
이대로 무당칠자를 모조리 꺾어 일대제자 중에서 가장 강해진다면?
‘흐흐흐, 양의심공! 반드시 익혀 주겠다.’
진무의 꿈이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 * *
“그 진무가 진허를 이겼단 말인가?”
원화관을 맡고 있는 장로 명선(明善)의 말에 장문인 명현(明賢)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허!”
좌중의 장로들 사이에서 놀람이 터져 나오고, 웅성거림이 빠르게 퍼졌다.
진허가 누구던가?
비록 막내라고는 하나 일대제자들로 구성된 무당칠자(武當七者)의 한 사람이었다.
“그게 말이…….”
“그렇지요? 저도 그런 줄 알고 진허를 불러 물어보려 했지요.”
“…….”
“그런데 올 만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아침께의 소란이라 아직 내용을 상세하게 듣지 못했던 명현과 장로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아주 곤죽이 되었습니다.”
“…….”
“너무 심하게 맞아서.”
“맞아? 진허가? 진무에게?”
“예. 반나절이 지나도록 깨어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진무를 불러 혼을 내야 마땅함인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
명현은 혹시나 명선이 아침에 뭘 잘못 처먹고 자신에게 농을 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그렇다고 하기엔 그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진무가 일대제자가 되어 명진에게 가르침을 받은 게 고작해야 일 년일세.”
“그게 저도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진허를 업고 온 청자 배의 아이에게 물어보니 진무가 사용한 것이 신문십삼검이었답니다.”
“신문십삼검?”
“예.”
“허! 갈수록.”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신문십삼검은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기 위한 것이지 강한 상대와 전력으로 싸우기 위한 검공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한 가지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이상해? 뭐가?”
“검공을 변형시켰다는군요.”
“변형했다? 신문십삼공을?”
“예.”
“어찌?”
“그것까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하도 어이가 없어서.”
명현이 말문이 막혀 명선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진짭니다.”
“…….”
너무나도 진정성으로 충만한 명선의 표정에 조금 당황스러워진 명현이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흠, 흠. 명진이 가르친 건가?”
“그럴 수 있겠군요.”
“하긴, 그때 이후로 명진이 무당의 검공에 불만이 많았지 않습니까?”
“맞아요. 허울을 버리고 실리를 취해야 한다고요.”
명현의 물음에 장로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도 그리 생각했는데…… 진무가 칠성권도 변형해서 가르쳐 주었다고.”
“응? 칠성권을?”
“예. 진무가요. 그것도 본인이 가진 체형에 맞춰서.”
“하핫, 농담도…….”
“그렇지요?”
명선의 표정에 조금 자신이 없어졌다.
자신이 뱉은 말이지만 도대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무공을 변형시키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 자소궁 대전에 모여 있는 장로들이라면 초식을 시기적절하게 쪼개고 붙이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대제자들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런 경지는 무공에 대한 핵심적인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헛헛, 청자 배 아이의 배움이 적어 과장을 했던 모양일세.”
“그렇겠죠? 하지만 진허의 상태가 하도…….”
명선의 말투에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하긴 자신도 영 믿을 수가 없기는 했다.
그러나.
“어쨌든 진허가 진무에게 진 것은 사실입니다. 곤죽이 된 것도 사실이구요.”
“거참…….”
사제가 사형을 이겼다면 그 성취를 칭찬해야 마땅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형제를 상하게 했다면 응당 벌을 주거나 훈계를 내려야 하는 바.
문제는 피의자가 진무였고, 피해자가 진허라는 사실이다.
누가 봐도 반대여야 할 일인데…….
“일단 진허가 깨어나지 않고 있다 하니 진무의 입장도 들어 봐야겠지.”
“옳은 말입니다. 서둘러 진무를 부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명선의 말에 명현이 잠시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음, 아닐세. 근자에 청양상단과의 일로 바빠 명진을 찾지 못했지. 이참에 내일 일찍 사제를 보러 가야겠네.”
“그게 낫겠군요. 명진이 진무에게 어떤 가르침을 내렸는지도 궁금하고요.”
“옳네. 그럼 내일 아침에 다들 가 보도록 하세.”
“예.”
* * *
진허와 매우 작은(?) 다툼이 있었던 다음 날.
또 왔다. 망할 돼지 같은 청우가.
여느 날과는 달리 이대제자들이 조식 전 운기 수련을 하고 있어야 할 시간임에도 찾아왔다.
아침을 먹기도 전에, 짐까지 잔뜩 싸 들고.
“휴, 넌 대체 왜 또 왔냐?”
진무가 한숨을 내쉬며 묻자 청우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오늘부터 원화관에서 충허암으로 소속이 바뀌었습니다. 사숙.”
“뭐? 왜? 누가? 어째서?”
이런 쓸모없는 걸!
“진허 사숙께서 진무 사숙님께 앞으로 많이 배우라고.”
“…….”
이런 미친놈이! 이런 짐 덩어리를 던지다니. 덜 맞은 건가? 내 당장 찾아가서 이놈을!
진무가 주먹을 움켜쥐며 부르르 떠는 사이에 명진이 문을 열고 말했다.
“진무야.”
“예. 스승님.”
“내가 허락하였다.”
“아, 그러셨…… 예?”
진무가 수긍하듯 대답하려다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쳐다보자 명진이 환하게…… 아니, 뭘 처웃고 있어.
“지난밤에 진허가 찾아와 부탁하길래 내가 그리하라 하였다.”
진허, 이 자식이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에 순진한 스승을 꼬드겼구나.
“앞으로 네가 많이 가르치거라.”
“예…… 에?”
공손하게 대답하던 진무가 더욱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부님, 제자는 아직 제자를 들일 실력이나 준비도 되지 않았습니다.”
진무가 항변하듯 말했다.
“녀석, 누가 제자를 들이라더냐? 단지 내 진허에게 사정 이야기는 들었다. 너의 재능을 의심하였거늘. 벌써 진허를 이길 정도로 성장하였더냐? 허허, 실로 하늘이 내린 무재로구나. 무당의 홍복이다.”
명진이 아는 것을 보니 소문이 나긴 한 모양이었다.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아, 그게…….”
“되었다. 되었어. 과정 또한 들었음이다. 만류귀종이라 하였다. 비록 정도를 벗어났다 하여도 이 스승은 제자의 성취가 기쁘기만 하구나.”
“…….”
대꾸할 말을 잃은 진무에게서 시선을 거둔 명진이 청우를 바라보았다.
“청우야.”
“예. 사조님.”
“앞으로 열심히 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오냐. 헛헛.”
이것들이 왜 갑자기 짝짜꿍이야! 뭘 열심히 해! 그리고 누가 대답하래!
진무가 차마 스승은 째려보지 못하고 청우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청우는 그저 그것이 자신의 다짐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한 눈빛이라 여기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단단하게 먹었다.
그리고.
“진무야.”
“……예.”
“밥 먹자. 허기가 지는구나.”
이런 식충이 스승 같으니!
하지만 이번에도 본능적으로 공손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예.”
아, 망할 놈의 기억.
젠장, 될 대로 되라지.
명진이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진무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사숙. 사조님의 조반은 어찌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앞으론 제가 하겠습니다.”
“…….”
진무는 청우를 초점 잃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투실투실한 얼굴에 휘어진 실눈과 입꼬리가 양쪽으로 올라간 웃음. 해맑긴 참 해맑다.
“야.”
“예, 사숙!”
진무가 최대한 얼굴을 위협적으로 찡그리며 청우의 두툼한 어깨에 손을 올렸다.
“스승님의 명으로 너를 받아들이기는 하겠는데.”
“예!”
“첫째, 난 네 스승이 아니다.”
“…….”
“둘째, 앞으로 뭐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
“대답 안 해?”
“……예.”
“마지막 셋째, 앞으로 수련하는데 지난번처럼 우와! 이야! 호오! 이딴 감탄사 뱉지 마라.”
“…….”
“이 세 가지만 지키면 돼. 그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알겠지? 그리고 방금 내가 했던 말 어길 때마다 죽일…… 수는 없고, 뒈질 정도로 맞는다고 생각해라.”
“……아, 알겠습니다.”
청우가 살짝 기죽은 듯한 얼굴로 대답을 했다.
“좋아. 그럼 이제 다녀와.”
“어딜?”
“닭 잡으러.”
“예? 닭을? 설마 드시려는 건 아니죠? 육식은 선기를 수련하는데 방해된다 하여 본문에서 금하고.”
뻐억!
곧장 내질러진 주먹이 투실하게 오른 청우의 옆구리에 파고들었다.
“꺼억!”
비계가 단단히 보호하고 있었지만 엄청난 고통에 청우의 눈이 살집을 뚫고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분명히 말했다. 뒈질 정도로 맞는다고.”
청우가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로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처음이니까 이 정도로만 하지. 이제 갔다 와.”
청우가 알아들은 표정을 하자 진무가 만족스럽게 그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저……어. 그런데. 사숙.”
“뭐!”
“닭을 어디서 잡아 와야……?”
“…….”
진무는 대답 대신 얼굴 가득히 미소를 머금고 주먹을 들어 올렸다.
“히익! 갑니다, 가요! 쏜살같이 다녀오겠습니다!”
청우가 무당의 독문경공인 제운종(梯雲縱)을 펼쳐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닭을 잡으러 간 사이 진무는 솥에 물을 담고 불을 지폈다.
그러고 보니 청우가 있으면 이것저것 심부름을 보낼 녀석이 있어서 편하기는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자식은 왜 이렇게 안 와? 스승님 배고프실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