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03
3화
어슴푸레하게 동이 튼 시각.
자기도 바쁠 시간에 연무장을 빽빽하게 메운 도사들이 양팔을 앞으로 쭉 뻗은 채 마보를 취하고 있었다.
한눈에도 무거워서 허리가 나갈 듯한 철구를 양 손목에 하나씩 매달고.
“기초 체력 단련이야말로 무인의 기본!”
청우의 우렁찬 외침과는 달리…….
“끄으으으…….”
땀을 비 오듯이 흘리고 지진이라도 난 듯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어 대는 도사들의 신음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물론 야율성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아침부터 흠씬 두들겨 맞은 야율성은 온몸이 퉁퉁 부은 채로 수련장에 끌려 나와 도사들의 수련에 합류했다.
이게 다 운현이라는 놈 때문이었다.
벼락 맞아 죽을 새끼. 설명을 안 해 주다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화산에 가면 매화의 뜻을 따르고 무당에 오면 태극의 도를 따라야 하는 법.
하지만 기대해라.
반드시 네놈에게 복수할 것이다.
내 무당의 가장 높은 곳에 서는 날 운현 네놈의 눈깔을 파내고 입과 사지를 찢어 들판에 조각조각…….
“끄으으…….”
젠장, 복수는 둘째 치고 터져 나오는 신음을 막을 수가 없다.
씨발, 이딴 게 수련이라니…….
씨발, 씨발!
대체 속으로 몇 번이나 욕을 해 댔는지 모른다.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았다 자부했건만, 이 무식하기 짝이 없는 철구 마보는 정말이지 참기 힘들었다.
“어허! 누가 짖는 소리를 내었느냐! 누가 내었어!”
“…….”
귀 어두운 노인네도 들을 정도로 큰 신음에 청우가 실눈을 매섭게 부라리자 도사들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자세를 고쳤다.
저 지독한 돼지 새끼.
저딴 얼굴만 푸짐하고 순박한 게 무림을 구한 영웅이라니.
저건 필시 도사가 아니라 지옥에서 올라온 돼지 탈을 쓴 악귀다.
내공 없이 오직 육체의 근력만으로 버티라고?
이 무슨 생기발랄한 개…… 아니 돼지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몰래 내공을 쓸 수도 없다.
아니, 못 쓴다고 하는 게 맞았다.
연무장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일각짜리 산공향 때문이었다.
“끄윽, 끄으으…….”
이딴 원시적인 게 수련이라니.
이건 그냥 고문이다.
괴롭힘이고…….
무당, 과연 듣던 대로 악랄하기 짝이 없구나.
하지만 참아야 한다.
어찌 큰 뜻을 품고 칼을 뽑았는데 무 하나 썰지 못하고 집어넣겠는가?
이겨 내지 못하면 도명조차 받지 못하고 쫓겨난다.
고작 한 달이 아니던가?
이 빌어먹을 수련 기간만 거치면 정식으로 무당 도사가 되어 진무가 익혔다는 양의심공을 익힐 수 있다.
그때…… 그때까지는…….
“커어…….”
털썩.
이를 악물고 버티던 야율성의 옆에 있던 도사가 더 버티지 못하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체력이 다한 모양이었다.
한데 이상했다.
함께 있던 도사들이 땅에 널브러진 채 불안한 눈빛으로 바들바들 떠는 도사를 도와주기는커녕, 애써 외면하며 더욱 악착같이 버티지 않는가.
대체 왜?
도사의 기본 함양은 이타심이 아니었나?
“운사안!”
“사, 사숙! 이, 이건 그냥 땀에 발이 미끄러진…….”
“산공향이 다 타지도 않았는데 쓰러져?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
“사수욱……. 제발…….”
“어허! 내 분명히 말하지 않았더냐? 이 수련은 전대 무당지검이셨던 진무 사숙께서 창안하신 것으로! 나와 내 사형이 이미 수차례 경험하여 효험을 본 것이다.”
“…….”
“나 때는 그러지 않았거늘, 나 때는! 밥만 떠먹여 주면 감사합니다, 하면서 종일도 버텼거늘!”
“…….”
이제 고작 스물다섯 먹은 청우가 노회한 무인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나 때는’을 강조하며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봉이 단번에 수많은 잔영을 만들며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빡! 빠바바박! 뻑! 쩍!
“크억! 크어억!”
소나기 같은 몽둥이찜질에 쓰러진 도사의 몸이 신명 나게 들썩거렸다.
역시 지옥 돼지. 흉돈악살.
용서도 자비도 없구나.
야율성은 그 잔혹한 구타 가락에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고쳤다.
쓰러지면 안 된다.
절대로, 죽더라도…….
“그마안! 여기까지! 잠시 휴식!”
“허어…….”
“크으…….”
산공향이 재가 되어 바람이 날릴 때쯤 들려온 휴식 선언에 도사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겨우 그거냐? 모자란 것들.
뭐, 이만큼 버틴 것도 용하긴 하다만, 나는 네놈들과 다르다.
저 지옥 돼지에게 지지 않을 것이다.
야율성은 이를 악물고 허물어지려는 사지에 힘을 가했다.
“허억, 허억…….”
눈동자에 핏발을 세우며 죽을 둥 살 둥 버티던 그가 기어이 주저앉은 것은 남들이 쓰러지고 무려 일각이나 더 지난 후였다.
이겼다.
후련하다.
먼저 수련을 받아 온 도사 놈들보다 일각이나 더 오래 버텼다는 뿌듯함과 자부심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호오? 제법인데?”
“…….”
“기특하다. 우리 사숙께서 말씀하시길,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끊임없는 노력이야말로 대성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하였지.”
갑자기 튀어나와 쪼그려 앉아 헤죽 웃는 청우의 모습을 본 야율성의 지친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아 올랐다.
웃어?
사람을 이 지경으로 괴롭히고 웃어?
두고 보자, 지옥 돼지.
네 이름도 운현과 나란히 살생부에 올릴 것이다.
그때 가서 땅을 치고 꿀꿀 울지나 마라.
“과, 과찬이십니다.”
속내야 어찌 됐든 야율성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포권을 취하고는, 힘겹게 웃으며 겸양을 부렸다.
“핫핫! 녀석, 우쭐할 만도 한데. 아주 좋은 자세다. 자, 휴식 끝!”
“휴…… 예? 뭐라고요?”
칭찬 직후 이어진 믿기 어려운 말에 야율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끔벅거렸다.
“뭐? 왜?”
“아니, 저는 이제 막 휴식을…….”
“무슨 소리야? 누가 그러래?”
“…….”
“휴식 시간은 정확히 일각이야. 다들 쉬는 거 못 봤어?”
“…….”
“칭찬은 칭찬이고, 수련은 짜인 계획대로 해야지. 어서 일어나! 다음 수련 시작이다.”
매몰차게 말하는 청우의 뒤로 일각 동안 쉬면서 기력을 회복한 도사들이 대열을 갖추고 섰다.
아…….
그런 거구나.
그래서 다들 휴식 선언 떨어지자마자 퍼질러졌구나.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쉬려고…….
야율성은 그제야 깨달았다.
잘난 척 버티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다음은 능선 구보다! 오늘은 특별히 자소궁까지 뛰어간다! 모두 모래주머니 장착!”
청우의 외침에 도사들이 한눈에도 묵직해서 발걸음도 옮기지 못할 듯한 모래주머니를 양 발목에 하나씩 묶었다.
“거기, 기특한 신입은 대열 마지막에서 뒤따르도록!”
“…….”
힘찬 목소리로 야율성의 위치를 정해 준 청우가 대열의 선두에 섰다.
“전체! 뛰어!”
“앗!”
“갓!”
두두두두두.
청우를 필두로 오룡궁의 도사들이 단체로 뛰기 시작했다.
역시나 내공은 쓰지 못했다.
산공향의 여파가 아직 남은 탓이었다.
일각은커녕 촌각도 쉬지 못한 몸으로, 야율성은 개처럼 혀를 빼물고 헥헥거리며 그들을 따라 달렸다.
씨부럴…… 무당…… 지옥 돼지…….
내 무당을 피로 물들이는 날, 반드시 네놈의 대가리를 잘라 고사를 …….
* * *
오룡궁의 수련은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철구를 달고 마보 수련, 모래주머니를 달고 자소궁까지 능선 구보.
설상가상으로 그 힘든 훈련을 시키고 아침이라며 내온 건 고작 천산설초인지 뭔지 하는 풀때기였다.
하도 맛있게들 처먹길래 혹시나 해서 따라 먹었지만 풀 맛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 새끼들, 사실은 다 토끼 새끼들인 거 아니야?
듣기로 무당 도사들은 육식과 술을 즐긴다고 했는데…….
소문이 잘못된 모양이었다.
좌우지간 입에 맞지 않아 풀때기조차 다 먹지 못한 야율성은 허기진 상태로 오전 수련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 고된 새벽 수련이 장난이었음을 대번에 깨달았다.
철구 달고 손가락 힘만으로 절벽을 올라야 했고, 하늘이 노랗게 보일 때까지 목검을 휘둘러야 했다.
오천 번까지는 어찌어찌 셌는데, 그 이후로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야율성은 속으로 절규했다.
뭐가 구국의 문파란 말이냐?
뭐가 산중의 고요한 도문이란 말이냐?
여긴 그냥 지옥이다.
돼지와 토끼 새끼들이 판치는 지옥!
영원할 것만 같던 오전 수련이 끝날 즈음, 야율성의 눈은 선기 대신 독기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대단한 새끼들.
고작 반나절 만에 이런 악감정을 품게 만들다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팔문금제를 해제하고 묵룡기로 저 돼지와 도사 놈들의 명줄을 끊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빠득, 빠드득.
그놈의 미래에게 또다시 발목이 잡힌 야율성은 이를 바득거리며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했다.
“오전 체력 단련 끝!”
“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사숙!”
“오냐.”
새벽 수련 때와 비슷하게 도사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졌다.
“녀석들. 내 기쁜 소식을 알려 주마.”
“……?”
청우의 말에 모두가 지친 기색으로 고개를 들었다.
“신입이 온 것을 기념해서 사형께서 오후에 있을 검진 수련을 취소하고 모처럼 충허암에서 연회를 베풀라 하셨다.”
“오오!”
수련에 지쳤던 도사들이 눈동자를 빛내며 침을 꼴깍거린다.
꼬르륵.
야율성 역시도 뱃속에서 터져 나온 허기의 외침에 기대감 어린 눈을 빛냈다.
연회라고?
설마 이놈들이 또 풀때기를 처먹이는 것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절대로 아닐 거야.
연회라 하면 최소한 술과 고기!
암, 반드시 고기일 것이다!
“자, 음식이 준비되었다는구나! 모두 충허암으로 이동한다!”
“예! 사숙!”
야율성은 극심한 피로와 허기에 전 몸을 냉큼 일으켜 도사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천하제일인이고 무당 피바다고 간에, 지금의 그는 오룡궁이라는 지옥 속 한 마리 아귀에 지나지 않았다.
뭐, 무리는 아니었다.
일단 허기부터 달래야 미래를 도모할 것 아닌가.
그런데…….
“야! 줄 제대로 안 서? 이런 씨팔, 오랜만에 왔더니 식당 군기 개판 난 거 보소. 거기! 누가 새치기하래!”
“…….”
이건 또 뭐란 말인가?
앞치마 두른 여인이 국자를 어깨에 걸치고 도문의 제자들에게 고래고래 쌍욕을 하고 있었다.
별, 보자 보자 하니까 이제는 부엌데기까지 신경 거슬리게 하네.
아니다, 참자.
아직은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다.
야율성은 속으로 수없이 되뇌며 참을 인을 수도 없이 새겼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그의 배식 차례가 오나 싶었는데…….
“야! 너 뭐야? 아직 니 차례 아냐, 뒤로 가.”
“…….”
국자가 그의 가슴을 툭툭 미는 것과 동시에 간당간당하던 그의 인내심도 툭 끊어졌다.
“……부엌데기 주제에 감히.”
그가 나지막이 내뱉은 순간 충허암 전역에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실눈을 부릅뜬 채 입을 떡 벌린 청우를 시작으로, 대동소이하게 차례로 얼어붙은 나머지 도사들…….
뭐, 뭐야?
다들 왜 그래?
굳이 입 밖으로 내려던 말은 아니긴 했지만, 설령 냈다 해도 이렇게 하나같이 놀라 자빠진 표정으로 날 바라볼 일…….
빠가가가각!
“커억!”
“어디 듣도 보도 못한 제자 새끼 주제에 감히 지 처먹을 밥 지어 주시는 분 중한 줄도 모르고 선을 넘어?!”
“…….”
“부엌데기? 부엌데기이? 잘 걸렸다, 이 쌍놈의 새끼. 어디 부엌데기한테 뒈져 봐라, 오늘!”
걸쭉한 욕설과 함께, 그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무언가가 대기를 가르며 쾌속하게 날아왔다.
당근, 파, 감자…….
“죽어, 이 새끼야! 죽어!”
퍽! 빠각! 퍽퍽퍽!
그로부터 약 반 시진.
야율성은 밥은커녕 풀때기조차 먹지 못하고 죽도록 처맞아야 했다.
무라는 이름을 가진 절세의 암기로.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어쩐지 아무도 말리지 않는 것이…….
왜 그래?
왜 그렇게 엮이면 엿 된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피해?
이 미친녀…… 부엌데기가 대체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