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1
51화
청화대주 모익상.
그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진궁과도 승부를 점칠 수 없을 만큼 강한, 단강구 제갈분가의 최고수 중의 한 명.
그가 어째서 이 많은 무인들을 이끌고 나타났단 말인가?
더욱이 그들의 모습은 마치 일해상단을 포위하고 있는 형세였다.
누가 봐도 그 의도가 명확하다.
무력시위.
숫자를 동원한 압박.
“하, 이것들 봐라?”
진무가 눈을 세모로 뜨고 나서자 모익상이 힐끗 쳐다보며 싱글거렸다.
“흠, 이분께선?”
“본파의 일대제자 진무요.”
진궁의 대답에 모익상이 환하게 웃었다.
“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지난번 공사척 일당을 몰아내고, 연을 맺은 청양상단의 뒤통수를 쳐서 밀수로 엮으셨다지요? 근래에는 하찮은 수적 패거리 하나도 토벌하셨고요. 참 대단하십니다.”
“…….”
뭐? 뒤통수?
하찮은 수적 토벌?
이런 어린놈의 실눈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진궁만 없었다면 실실 쪼개고 있는 아가리와 함께 얇게 휘어진 눈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
진무가 주먹을 움켜쥐고 나서려 하자 진궁의 그의 손을 잡았다.
“놔요.”
짜증이 묻어나는 외침에 진궁이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기다리거라.”
기다려?
상대가 대놓고 도발을 해 온 마당에 또 절차 타령이나 하자고?
뭐, 그래. 절차 좋지.
살아온 세월이 모익상이나 진궁의 두 배가 넘는 진무가 그 중요성을 모를까?
하지만, 사패천주였던 시절에도 자신을 향해 도발해 온 놈을 봐준 적이 없었다.
절차고 나발이고, 힘도 없는 것들이 숫자만 믿고 와서 자신을 압박하려 하다니. 당장에라도 모익상이라는 녀석의 모가지를 뽑아서 제갈세가로 쳐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청화대주. 그런데 지금 이 행동은 어떤 뜻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매섭게 노려보는 진무와는 달리 진궁은 너무도 차분하게 물었다.
“어떤 뜻이냐니요?”
“제 눈에는 지금 귀가에서 우리 무당을 상대로 무력시위라도 하려는 생각으로 보입니다만.”
“무력시위라니,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십니까?”
“섭섭하다?”
“우리는 그저 본가의 무인들이 혹여 과한 고초를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온 것뿐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진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혹시 또 모르지 않소. 포로를 넘겨주지 않고 문을 닫아걸었으니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무당에서 무슨 짓을 할지.”
“감히 우리 무당을 어찌 보고 그따위 말을. 습격은 제갈가에서 먼저 해 오지 않았소.”
“이보시오. 청운검룡.”
“…….”
“사건의 정황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아오.”
이 새끼가 진짜.
진무는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꼭지가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다.
진무의 몸에서 확 피어오른 투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자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검을 잡으며 진한 기세를 뿜었다.
일촉즉발의 상태.
일단 모익상이라는 놈의 입을 찢어 놓고 시작해 볼까?
그런데.
“진무야.”
“뭐요?”
“이 일은 사형을 믿고 맡기거라.”
“…….”
웬일로 화를 내지 않고 부드럽고 진중하게 말해 온다.
“너는 무당의 검으로서의 충분히 역할을 다했다. 하나 지금은 문파와 문파 간의 문제가 되었으니 우진궁의 실무자인 나에게 맡기거라. 네 사형이 그리 미덥지 않은 사람은 아니니.”
“…….”
진궁의 은근한 어조에 진무가 모익상을 매섭게 노려보다가 기운을 풀고 물러났다.
마음에 영 안 들었지만, 진궁이 그렇게까지 나왔는데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너, 실눈 새끼. 두고 보자.
진무 역시 알고 있다. 상대가 교묘한 말로 마치 자신들이 포로들을 은폐하여 무언가를 꾸미는 것처럼 유도하고 있다는 것을.
누가 제갈세가 소속 아니랄까 봐 무인이라는 새끼가 독사 같은 혓바닥으로 협잡질이나 하다니.
하지만 대놓고 칼부림부터 시작하는 사파와는 달리 정파는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누가 먼저 칼을 뽑았느냐?
그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검을 뽑아서는 이로울 것이 전혀 없었다. 칼을 뽑는 순간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싸움이 되니까.
설사 무당에 잘못이 없다고 해도 상대에게 유리한 고지를 내어 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되면 정말로 자신들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모양새가 되기 십상이었다.
“진무 도장께선 어려서 그런지 참으로 성격이 불같으시오.”
“…….”
모익상이 진무의 화를 돋워 보려는 듯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진궁에게 맡기기로 결정한 이상, 싸늘해진 진무의 마음에는 더 이상 불이 붙지 않았다.
“맞아. 도사치고는 불같은 성격이지. 그래도 난 누구처럼 혼자 오면 혹시나 처맞을까 봐 겁먹어서 애새끼들 줄줄이 달고 다니지는 않아.”
물러날 때 물러나더라도 상대가 도발한 만큼은 돌려줘야 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모익상의 눈이 매서워지고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뭐, 이 작아서 눈깔도 잘 안 보이는 새끼야.
“청화대주.”
“뭐요?”
진궁의 부름에 답하는 모익상은 얼굴만큼이나 말투가 매서워져 있었다.
“나는 무당의 제자요. 없는 사실은 만들지 않소.”
“물론 이름 높은 청운검룡께서 없는 사실을 만들진 않으시겠지.”
“…….”
“하지만 가문의 무인들을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우리 세가의 입장도 이해해 주기 바라오.”
진궁은 능글맞게 웃는 모익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우진궁.
무당의 대외 협력의 임무를 담당하고 있는 궁의 실무자인 진궁이었다.
비록 제갈과는 달리 협잡하지 않고 오롯이 정도(正導)를 지키며 일을 처리해 왔으나, 대화를 유리하게 만드는 방법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침착해야 한다.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상황은 아직 자신들에게 훨씬 더 유리하다.
“옳은 말이오. 아직 사건 정황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았지.”
“…….”
“한데 말이오. 귀공과 제갈분가의 가주께선 아직 사태 파악이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뭐요?”
“일해상단에 잡혀 있는 자들이 제갈세가뿐이라 생각하시오?”
진궁의 한마디에 모익상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지금 이곳에는 단강구 개방지부의 오결제자인 철골개도 함께 있소.”
“철골? 개, 개방이라고?”
모익상이 굳었던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철골개는 개방 단강지부를 대표하는 고수였다.
분타주 바로 아래의 지위. 그런데 그가 어째서 이곳에 있단 말인가?
모익상의 반응을 보며 진궁의 옆에 있던 진무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진궁, 제법이다.
고리타분한 도사 놈인 줄 알았더니 상황을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안다.
굳이 윽박지르고 위협하는 것 없이, 차분히 사실을 조목조목 짚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대화에서 승기를 잡아 오지 않았는가.
흠, 괜히 우진궁의 실무자는 아닌 모양이네.
진무는 시시각각으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모익상을 보며 고소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이 진궁은 한번 문 상대의 목덜미를 쉽게 놓아 주지 않았다.
“여위강은 이미 실토를 했고, 그 사실을 무당만 들은 것이 아니라 철골개도 함께 들었소.”
물론 그런 적 없다.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는 사실.
그렇다고 딱히 진궁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실토를 했다고 했지, 무엇을 실토했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그저 제갈세가라는 사실만 인정했을 뿐이다.
‘이, 이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튀어나오자 모익상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디 무력시위를 할 테면 해 보시오. 그러고 보니 이참에 지난번 이성상단이 수로 이용권을 어찌 빼앗아 갔는지도 한번 따져 봐야겠군.”
결정타다.
지금 상황에서는 잘못을 한 쪽이 도리어 힘으로 상대를 위협한 꼴이 되었으니 명분마저 잃었다.
“나는 무당의 제자로서 제갈세가가 핍박을 가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똑똑히 밝히겠소.”
모익상의 표정이 재미있다.
웃고 있던 실눈이 커졌지만, 눈동자의 상하가 잘려 보이니 더욱 이상하게 생겨 보이는 얼굴이 되었다.
“그럼 후에 봅시다.”
진궁이 싸늘하게 먼저 몸을 돌리고, 진무는 모익상에게 비웃음을 날리며 그 뒤를 따랐다.
쾅!
일해상단의 문이 세차게 닫히고.
“거, 사형. 좀 합디다.”
진무의 말에 진궁이 빙긋이 웃으며 큼지막한 손으로 진무의 머리를 쓸었다.
“녀석, 그만 들어가거라.”
“…….”
이놈 자식이 칭찬 좀 해 줬더니 어디 어른 머리를.
그래도 뭐,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 * *
무력시위가 시작된 지 이틀이 지났다.
일해상단의 문이 활짝 열리고 각 파의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전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우진궁주 명충이 중심을 잡자 무당의 제자들은 도인으로서의 면모를 여과 없이 뿜어내었고, 가주를 위시한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날 선 기세를 뿜어내었다.
단지 단강구 개방지파의 분타주 용선개만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좌불안석이었다.
“자, 그럼 어디 말씀들을 해 보시지요?”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져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와중에 명충이 무릎을 꿇고 앉은 철골개와 여위강을 보며 말했다.
“왜들 말씀이 없으십니까? 분타주께서 먼저 말씀해 보시지요.”
“저, 그건…….”
용선개는 차마 그들이 일해상단을 감시한 이유를 말할 수가 없었다.
“개방에서 우리 진무를 노렸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아, 아니 그건 아닙니다.”
“그럼 어째서 복면을 쓰고 공격을 하신 겁니까?”
“…….”
용선개는 또다시 한숨만 내쉬었다.
그로서는 차마 행적이 은밀해야 하는 양소방의 명령 때문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거참, 하면 제갈분가주께선 어떠시오? 어찌 암천대가 진무를 노렸습니까?”
“노린 적 없소. 오히려 귀파의 제자들이 우리 제자들을 핍박한 것이오.”
“핍박이요?”
“그렇소.”
용선개와는 달리 제갈무린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대답했다.
뭐가 저리도 당당하단 말인가?
뒤에 있던 진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제갈무린을 바라보았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되레 피해자인 척을 해?
“제갈분가주.”
명충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제갈무린을 노려보았지만.
“왜요? 내 말이 틀렸소?”
“뭐요?”
“그럼 어디 한번 물어보지요.”
“…….”
제갈무린이 고개를 돌려 여위강을 바라보았다.
“너희가 일해상단의 담을 넘었더냐?”
“아닙니다. 가주.”
“넘지 않았다?”
“예.”
그렇겠지. 넘기도 전에 개방의 무인들과 싸우고 있었으니.
“그럼 너희가 먼저 진무 도장을 공격했느냐?”
“아닙니다.”
“하면 누구와 싸웠느냐?”
“개방입니다. 그 사실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너희의 싸움에 진무 도장이 끼어들었단 말이냐?”
“……예. 뭐.”
“그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이렷다?”
“예.”
여위강의 말이 끝나자 제갈무린이 이번엔 철골개를 바라보았다.
“철골개는 어떠시오? 위강의 말에 거짓이 있소?”
“그건…… 없습니다.”
철골개의 대답에 제갈무린이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보시오. 우리 세가의 무인들은 그저 단강구를 순찰하던 중에 일해상단 주위에 숨어 있는 개방을 발견했고, 그들을 의심스럽게 여겨 싸운 것뿐이오. 그런 세가의 무인들을 공격했으니 잘못은 오히려 진무 도장에게 있소.”
“거참 재미있는 말이구려. 한밤중에 복면을 쓰고 순찰을 했다? 그것도 우리 무당이 기거하는 일해상단 근처를?”
“그렇소. 단강구는 우리 제갈의 영역이니 순찰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소.”
대놓고 단강구가 자신들의 영역임을 피력한다. 더욱이.
“그리고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나는 이 자리에 사과를 하러 온 것이 아니오.”
“뭐라?”
“순찰 중인 본가의 무인들을 공격한 진무 도장에게 사과를 받으러 온 것이오.”
순간 좌중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