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13
13화
타닥. 타다닥.
깊은 밤.
나무를 밑동까지 깨끗하게 잘라 만든 인위적인 공터 중앙에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모닥불 부근에는 나무를 가로로 잘라 만든 커다란 탁자와, 좀 더 작은 나무로 만든 의자 네 개가 있었다.
슥슥. 삭삭. 우두둑.
그 옆에서는 황신과 아이들이 숙달된 동작으로 움막을 짓고 있었다.
끼이익.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튼튼하고 견고한 데다, 각출이 열었다 닫으며 점검하는 문까지 빈틈없이 꼭 들어맞았다.
중원 각지의 산천을 여행하며 야영하는 취미를 가진 자라면 아마 감격해 눈물이라도 흘리지 않을까?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것만 같은 이 완벽한 야영장을 보면.
고즈넉한 분위기하며, 주위 경관과의 완벽한 조화하며…….
이 모든 것이 진무의 명령 한마디에 탄생한 것이었다.
그놈의 송곳니질이 뭐라고 셋이서 장인 정신 발휘해 가면서…….
뿐인가?
그사이에 아랫마을로 뛰어가 술도 두 동이나 사 왔고, 조심스럽게 거처를 옮기던(?) 큼지막한 멧돼지 가족도 잡아 왔다.
개천주가 속 편하게 노닥거리는 모닥불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놈이 바로 멧돼지 가족의 가장 녀석이었다.
불쌍한 놈…….
자신들만 오지 않았더라도 대대손손 새끼 쳐 가며 열 살, 스무 살까지 장수하며 살았을 것인데.
끼이이…… 턱.
막 문을 점검하던 각출이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지붕의 마무리 작업을 하던 황신과 소동보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형님들?”
“왜?”
“굳이 이렇게 집까지 필요한 거면 그냥 만산채를 써도 되지 않았을까요?”
“…….”
“근처잖아요.”
각출의 말에 황신과 소동보가 바삐 놀리던 손을 멈췄다.
만산채.
바로 옆 봉우리에다, 오랫동안 비바람을 견뎌 온 것이 분명한 번듯하고 튼튼한 집…….
“…….”
“…….”
“…….”
셋은 한참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모닥불을 쬐며 늘어지게 하품하는 진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무슨 뜻이 있지 않으실까?”
“그, 그렇겠죠?”
“그럴……걸?”
죽어도 나서서 물어보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 즉각적인 합의 도출!
맞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었고, 어디 한 군데 부러지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그저 지금까지의 고생이 안 했어도 될 개고생이었다는 것을 새삼 자각하고 싶지 않았고…….
그간 호위며 전령이랍시고 줄기차게 까랄 때마다 깐 거, 몇 번 더해진다고 뭐 대수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셋의 생각은 동일했다.
……망할 개천주.
“다 끝났냐?”
“예! 마무리 중입니다!”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건지 진무가 귀신같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황신이 재빨리 손을 놀리며 대답했다.
“뭐 이리 오래 걸려?”
“이, 이제 울타리만 치면 끝납니다, 천주님.”
“울타리?”
“예!”
“뭐 하러 그런 쓸데없는 걸 만들어?”
“…….”
진무의 짜증에 황신이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야이 씨, 이 빌어먹을 개천주가 등선에 미쳐서 오 년을 구르더니 기어이 기억력 먼저 올려 보냈나?
붕어냐? 닭대가리야?
니가 아까 만들라면서요!
장소가 필요하다 그래서 자신들이 아는 최강의 절초로 나무를 땅 높이까지 베어 치우고, 충허암처럼 집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집도 지었다.
그러곤 뭐?
흐흠, 울타리가 있으면 제법 멋들어질 것 같은데에?
그래서 개방, 살막, 하오문이 자랑하는 쾌속의 경공까지 발휘해서 온산을 뛰어다니며 싸릿대란 싸릿대는 모조리 꺾어 왔는데!
쓸데없다는 소리를 지껄여?
황신과 아이들이 쌍심지를 돋우며 진무를 노려보는데, 그가 심드렁히 말했다.
“대충 하고 내려와. 고기 탄다. 타면 맛없어.”
그러더니 모닥불 위에서 익어 가는 멧돼지를 보며 눈살을 팍…….
“예! 천주님!”
“지금 갑니다.”
“울타리는 필요 없죠. 암요! 저기 숲이 다 울타리나 마찬가진데. 괜한 짓이구말구요.”
황신과 아이들이 저마다 제가 아는 한 가장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모닥불을 향해 뛰어갔다.
무서워서가 아니다.
고기가 타면 안 돼서 그런 거다. 탄 거 먹으면 병나니까…… 알겠냐?
모닥불로 모여든 황신과 아이들은 수년간 해 온 본연의 임무를 수행했다.
각출은 진무의 잔이 비기 무섭게 채우고, 소동보는 불길이 조금이라도 사그라질라치면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휙휙 더한다.
물론 멧돼지의 풍미를 더해 굽는 것은 황신 몫이었다.
형이라서 솔선수범을 하느냐고?
어려서부터 음식 만드는 데 취미가 있고 남을 배불리 먹이는 일에 무한한 만족을 느끼냐고?
아니다.
진무가 젤루 좋아한다.
다질 때는 타구봉법을 익힌 각출이, 구울 때는 양념 잘 치는 황신이, 얇게 썰 때는 살막의 살인술을 익힌 소동보가 하는 것을…….
지금은 때마침 황신의 차례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먹음직스러운 고기를 앞에 둔 넷이 모여 즐거운 만찬을 즐겼다.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갈수록 얼근하니 취기가 올랐지만, 굳이 걷어 내지 않아도 되는 평화의 시절이 아닌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불그스름한 얼굴을 한 채 낄낄 먹고 마시며 그 순간을 즐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모두가 입을 다물고 모닥불에 집중했다.
불이라는 녀석이 가진 특성 때문일까?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유롭게 날름거리는 불길을 바라보고 있자니, 기분이 멍해져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나저나 오랜만이네요. 이런 여유는…….”
“그러게.”
한동안 이어진 침묵을 깬 황신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등선하는 방법을 찾는답시고 지난 오 년간 사방팔방을 정신없이 들쑤시고 다녔으니까.
“그런데요, 천주님.”
“응?”
“대체 저 녀석에게 그렇게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가 뭡니까? 묵룡기를 익혀서입니까?”
“…….”
술기운을 빌려 용기를 낸 황신의 질문에 진무가 모닥불 옆을 힐끗 쳐다봤다.
양손을 곱게 배에 모으고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인물.
각출의 천하무구에 두들겨 맞고 반나절째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운연이었다.
“글쎄……. 좀 의아했다고나 할까?”
“뭐가요?”
“묵룡기를 얻었다면 필시 화산의 금룡협이었을 거 아니냐?”
“그렇겠죠.”
“그런데 그게 없어진 지 한참 되었단 말이야.”
“흠…… 그렇지요. 화산에서 그 벽면을 부숴 버렸으니.”
“그래. 무풍개의 말로는 따로 필사도 해 두지 않았다 했어.”
나지막이 이어지는 말에 황신은 물론 각출과 소동보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좀 의심스럽긴 했다.
화산 금룡협에 있었다는 묵룡동.
진무가 발견하였다 알려진 시기로부터 화산에서 아예 없애 버리기까지 고작해야 이 년이었다.
그때가 진무가 은거하고 얼마 뒤이니, 그곳이 없어진 지 오 년은 되었단 소리다.
하물며 악의를 가진 이가 들어가선 안 된다는 이유로 내내 매화검수들이 금룡협을 지키지 않았던가?
그럼 방치된 적이 거의 없다는 뜻인데…….
“어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요? 저 녀석, 무당에 오기 전까지 운남에서만 살았다고 했는데, 대체 금룡협에는 언제…….”
운연에 대해 조사했던 소동보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원화관에서 입도 수련을 받을 때도 한 오지게 퍼먹은 표정을 하고 ‘운남에서 여기까지 흘러온 썰 푼다.’라며 아무도 안 궁금해하는 과거를 줄줄 읊었다던가?
“흐흠, 확실히 뭔가 좀 구린 게 있어 보이는 녀석이군요.”
“과연 천주님이십니다. 저희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역시…….”
황신과 아이들이 저마다 감탄하며 진심과 가식이 골고루 버무려진 눈빛으로 진무를 우러러보았다.
그러다 황신이 또 불쑥 물었다.
“한데 천주님?”
“뭐?”
“하나만 더 여쭈어도 될까요?”
“말해 봐.”
“그럼 표주는 왜 내보내신 겁니까? 저 녀석에 대해 궁금하시면 무당 안에서도 충분히 가능했을 텐데요.”
“뭐? 니가 누구냐며 다짜고짜 패기라도 하라고?”
“…….”
황신이 네! 바로 그겁니다! 하는 눈빛으로 진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건 안 되지. 내가 누구냐?”
“……?”
황신과 아이들의 머리에 둥둥 떠오른 커다란 물음표에 진무가 혀를 끌끌 차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들아. 내가 이제 오룡궁주다.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데 어찌 막 입도한 제자를 불러다 개 패듯이 패 가면서 문초를 한단 말이냐?”
“……그, 그렇죠, 체면…….”
그걸 아는 인간이 그동안은 잘도 줘 팼구나.
하지만 이해가 안 가기는 매한가지다.
애초에 오룡궁이 어떤 곳인가?
일명 등선로라 불리며, 수련을 위한 구타는 곧 가르침이라는 말이 궁훈(宮訓)처럼 굳어진 곳이다.
줘 팬다고 해도 체면 손해 볼 일 하나 없거니와, 개천주가 팬다는데 뒈질 날 받아 둔 놈 아니고서야 누가 타박을 하……겠냐 싶지만.
역시 말하지 말자.
“생각해 봐라. 묵룡기를 배운 놈이다. 과정은 몹시 의심스럽지만, 따지고 보면 내게 사제나 다름없는 놈 아니겠어?”
“뭐…… 생각하기 따라서는 그렇겠네요.”
“당연히 사형 따라 무당 밖으로 나와야지. 선량한 도문에 잡스럽기 짝이 없는 사기를 풍기고 다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고.”
“아……. 흠.”
진무의 상세한 설명에도 황신은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근데요.”
“뭐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죄송합니다.”
“휴, 됐다. 뭔데?”
“이미 표주를 나온 마당에 굳이 이런 번거로운 일까지 꾸미신 이유는 또 뭔지 궁금해서요. 그냥 저희에게 맡기셨어도 저놈 과거 캐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텐데…….”
“…….”
슬슬 따지고 드는 투에 진무가 얼굴을 찌푸리자 흠칫한 각출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아, 아이구, 형님. 어찌 천주님의 높은 뜻을 모르시고 자꾸만 귀찮게 하시는 겁니까?”
“…….”
그가 보기에 지금 진무의 표정은 십 할로 언짢음이다.
하긴, 따지는 투 이전에 질문이 집요할 정도로 많긴 했다.
개천주가 어떤 인간이던가?
자신이 원하면 뭐든 하는 인간이다.
다들 구국 어쩌고 하고 있지만, 자신들은 알지 않는가. 개천주는 하늘이 실수로 만들어 버린 재앙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인간이 젤 싫어하는 게 뭐다?
자신의 뜻에 토를 다는 짓, 즉 지금 황신이 저지르고 있는 짓이다.
잘못하면 황신이 또 엉망진창으로 혼날지도 모른다 생각한 각출이 아무 말이나 주워섬겼다.
“이건 인성 평가였던 겁니다, 인성 평가.”
“인성…… 뭐?”
“생각해 보십시오. 도사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품성이 무엇입니까?”
“……?”
“애민정신(愛民精神)!”
“아!”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마음!”
“아아!”
확신에 찬 각출의 말에 황신과 소동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탄성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힘을 가졌다 하여 힘없는 아이,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을 개천주가 좀 싫어했는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껏 기세가 오른 각출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때 이후로도 산적질을 다시 시작한 만산채 놈들 보셨지요?”
“…….”
“그들에게도 교훈을 주신 겁니다.”
“오오…….”
황신과 소동보가 큰 깨달음을 얻은 듯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다시는 산적질을 하지 않겠다면서 부랴부랴 짐을 싸던 모습을!
“어부지리! 일석이조! 님보뽕따!”
집중해서 듣던 황신과 소동보가 마지막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은 알겠는데…… 님이 뭐? 뽕이 어째?
대체 뭘 줄인 거야? 니가 무슨 운암이냐?
“하여간! 천주님께선 저놈의 인성을 평가할 겸, 산적들까지 계도하셨다 이 말이지요!”
“흠, 난 그것도 모르고…….”
각출의 말에 황신이 그제야 의문이 풀린 듯 환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천주님. 제가 높으신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만……. 여장이 생각보다 서러웠던 모양입니다.”
“…….”
진무는 멀뚱한 표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황신을 쳐다보았다.
이것들이 아까까지 고기며 술이며 실컷 잘 처먹어 놓고 갑자기 왜 이래?
애민? 정의? 계도가 뭐 어째?
뭔 놈의 오해를 지들끼리 알아서 첩첩이 쌓고 지랄이란 말인가?
이건 그냥 그간에 즐기지 못했던 일종의 취미 생활이다.
그리고 표주를 내보낸 건 당세령과 그녀의 사주를 받은 사부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수로 사부님을 구워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만날 때마다 잔소리가 한 바가지였다.
십계도 없어졌으니 혼례를 치르라고?
등선이 목표인 나한테 뭔 개떡 같은 소릴…….
만에 하나 등선할 방법을 찾았는데, 동정을 지키지 못했다고 선계에서 안 받아 주면 어쩐단 말인가?
해서 내보냈다. 그 둘과 떨어지려고.
마지막으로 소화산으로 경로를 바꿔 놓은 것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지극히 그냥.
산적들을 끌어들이고 황신을 여장까지 시켜 가며 싸움을 붙인 건…… 순전히 재미 충족이고.
뭐 그런 것 있지 않은가? 황신이 멧돼지 고기에 뿌려 댄 양념 같은 거.
어쨌든, 다시 말해 오 년간 잃어버렸던 재미 좀 찾겠다고 머리 굴리다 나온 충동적인 생각이었을 뿐이다.
와 보니 만산채도 있고…… 그래서 또 겸사겸사…….
하지만, 뭔가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 여기는 셋의 표정을 보니 절대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허허, 녀석들. 내 깊은 뜻을 알았다면 되었다.”
“아아!”
“역시!”
“천주님…….”
모두가 당장에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득도한 도사처럼 일어나 먼 산을 쳐다보는 진무를 우러러보았다.
“허허, 녀석들.”
너털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으로 막간 사기극의 대미를 장식한 진무가 문득 시선을 돌리다…….
“…….”
“…….”
막 깨어나 멍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운연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리고 지나간 말 한마디가 퍼뜩 그의 뇌리를 스치는 순간, 진무의 얼굴이 득도한 도사의 모습에서 방금 사람 여럿 보내고 온 악랄한 살인귀처럼 변했다.
아, 그러고 보니 반나절 전에 뭐라고 하셨더라?
간악이 뭐?
비열이가 어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