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19
19화
“집이 어디니?”
“산인데…….”
“산?”
“네.”
“음, 화전을 일구나 보구나?”
“네.”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네.”
멍청한 질문이기는 했다.
아이가 그걸 알면 어찌 길을 잃었겠는가?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니?”
“어…… 모르겠어요. 그냥 걷기만 했는데…… 얼마 되진 않은 것 같은데…….”
“알았다. 내 찾아보마.”
자신 없다는 듯 우물거리는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운연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이의 걸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필시 가까운 산기슭에 화전이 있을 터다.
“가자.”
“…….”
운연은 품에 안은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약간만 속도를 높여 걸으며, 긴장하지 않도록 이것저것 물었다.
나이는 몇인지, 친한 친구는 있는지, 가족 중에서는 누굴 가장 좋아하는지…….
몇 번 묻고 답하는 사이 경계심이 가셨는지, 아이의 얼굴에 점차 해맑은 웃음이 떠올랐다.
어쩌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일지도…….
“들어 보니 한씨의 핏줄이라고 하던데?”
“네, 맞아요. 엄마 아빠도 그렇고, 옆집 아저씨도 그렇고, 다들 그렇대요. 한씨 성이 아니긴 하지만…….”
“그렇구나.”
“네. 그런데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다 그게 싫은가 봐요.”
“…….”
아이의 시무룩한 표정에 운연의 얼굴에도 씁쓸함이 어렸다.
아이의 부모와 같은 마을 사람들은 아마도 그때의 환란과 함께 중원으로 왔던 한씨의 백성들일 터.
섞이지 못한 것이다.
다스리는 이는 죄를 용서하고 그들 또한 백성으로 받아들였지만, 백성들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부랑자들조차 그런 경계심을 보인다면 그들의 삶은 보지 않아도 뻔할 것이다.
외면당하고, 배척당하고…….
하니 마을에서 떨어져 화전이나 일구며 모여 사는 것이다.
벌써 오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다들 태평성대를 말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환란 속에 있는 것인가?
한경홍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그로서는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는 일이었다.
동질감보다는 책임감에 가까웠다.
버렸다 한들 몸 안에 흐르는 피는 바꿀 수 없는 법이니까.
어쩌면 자신이 거부한다 해도 평생 마음속에 안고 가야 할 짐일지도 모르고…….
“…….”
가라앉은 기분으로 품 안의 아이를 내려다보던 그가 눈을 한 번 꽉 감았다 떴다.
무슨 고민인가?
이제는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다.
이미 끊어 버린 인연이 아니었던가?
그들에겐 그들의 삶이 있는데, 자신이 무어라고 관여한단 말인가?
그래, 아이만 돌려보내고 떠나자.
“어, 저기예요.”
“…….”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아이가 익숙한 풍경을 보았는지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산기슭에 만들어진 화전과 몇 채의 가옥. 생각했던 대로 작은 마을이었다.
“그래. 다 왔구나.”
운연이 웃으며 아이를 품에서 내려놓았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만 가 보거라.”
아이가 해맑게 손을 흔들고는 몸을 돌려 뛰어갔다.
웃으며 손을 마주 흔들어 답한 운연은 그 뒷모습을 한동안 응시하다,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래, 이것으로 되었다.
짧은 한숨으로 이유 모를 아쉬움을 달랜 그가 막 몸을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엄……!”
엄마를 부르며 뛰어가던 아이의 앞에 있던 집의 문이 열리고, 문밖으로 드러난 무언가가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
파하학!
“읍!”
눈을 부릅뜨고 곧장 몸을 날린 운연이 아이의 입을 틀어막고 곧바로 바닥을 굴러 모습을 숨겼다.
“뭐지? 분명 무슨 소리가 났는데?”
문을 열고 나온 것은 뱁새눈을 한 사내였다.
“무슨 소리가 났다고 그래?”
“아니 분명…….”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뒤져!”
“어…….”
뒤이어 웬 여인의 머리채를 움켜쥔 채 나온 털보가 말했다.
“젠장, 애새끼가 있는 게 확실해?”
“이년이 그랬잖아.”
털보가 머리채를 움켜쥔 여인을 거칠게 땅바닥에 던졌다.
“아악!”
“닥쳐, 이년아!”
퍼억!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진 여인의 몸에 털보의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염병할 년. 애가 있긴 어디 있다는 거야? 혹시 벌써 도망친 거 아냐?”
“아이만큼은 살려 달라고 빌었잖아. 일곱 살이랬다. 그런 꼬맹이가 도망치긴 어디 도망쳤겠어? 분명히 겁먹고 어딘가 숨었을 거야.”
둘의 대화에 아이를 안고 몸을 숨긴 운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런데 괜찮을까? 우리가 인신매매를 하고 있다는 걸 알면 사패천에서 그냥 두고 보지 않을 텐데…….”
“풉! 두고 보지 않으면?”
“…….”
“누가 한씨 놈들 잔당에게 관심이나 있기나 해?”
“그야 그렇지만…….”
“처음에나 그랬지, 지금은 아무도 관심 없어. 이것들이 길 가다 뒈져도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세상이야.”
“…….”
“뭐, 그 덕에 돈 버는 우리만 신났지. 이놈들이 이렇게 마을과 떨어져서 화전이나 일구며 살아가니 얼마나 좋아? 계집은 창기로 팔고, 사내놈은 노예로 팔고…….”
“하긴.”
고개를 주억거린 털보가 일어나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여인에게 다가가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자, 빨리 불러 봐. 그 애새끼가 니 목소리 듣고 뛰어나오게.”
“…….”
털보의 말에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어찌 어미가 되어 제 자식을 사지로 끌어들이겠는가?
“이런 쌍!”
여인이 거부하자 털보가 그녀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며 윽박질렀다.
짜아악! 짜아아악!
“부르라고 이년아! 어서!”
“흐흑, 흑흑.”
흐느끼는 여인의 울음소리가 운연의 귀를 파고들었다.
한씨를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세상이었나? 그런 태평성대였던 것인가?
그들에게만 허용되는…… 누군가에게는 지옥인 그런…….
허망하고 허탈한 마음에 순간 운연의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엄마아아!”
“……!”
입을 단단히 틀어막고 있던 손이 풀린 틈을 타 아이가 뛰어나가 버렸다.
“찾았네. 이 애새끼!”
뱁새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사람을 이렇게 고생을 시켜?”
퍼어억! 텅! 쿠당탕!
발길질 소리와 아이가 날아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향아아!”
자식의 고통에 가슴이 미어지는 어미의 외침이 들렸다.
다급히 고개를 돌린 운연의 눈에 어디서 힘이 솟았는지 머리채를 휘어잡은 털보의 손을 뿌리치고 아이를 향해 뛰는 여인이 보였다.
“향아, 향아.”
부딪힌 충격에 숨조차 토하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어 대는 아이를 안은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정신없이 보듬는다.
“이런 쌍년이! 미쳤나!”
퍼억! 퍽퍽퍽!
이어지는 매질 소리.
털보는 인정사정없었다.
마구잡이로 발길질을 해 댔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로 여인을 후려쳤다.
그럼에도 여인은 아이가 한 대라도 맞을세라 몸을 웅크린 채 요지부동이었다.
모성(母性)인 것이다.
제 목숨을 버리더라도 아이를 지키고 싶은 그런 어미의 마음.
“쯧쯧, 승질하고는……. 적당히 좀 해. 그러다 상품 가치 떨어지면…… 어? 어어?”
그들과 약간 떨어진 곳에 있던 뱁새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리려다, 의아한 광경에 입을 벌렸다.
“누구……?”
언제 나타난 것일까?
여인을 짓밟아 대던 털보의 뒤편에 선 낯선 사내, 운연의 검게 물든 눈동자가 흑요석처럼 빛나는가 싶더니, 그가 내지른 주먹이 털보의 머리를 거칠게 강타했다.
쩌어어억!
“어헉!”
그 순간 사라져 버렸다.
여인을 짓밟던 털보의 머리가, 주먹 한 방에 산산이 터져 나간 것이다.
“어…… 어어…….”
솟구치는 피를 보며 말을 잃고 어, 어 소리만 반복하던 뱁새눈의 앞에, 악귀가 달빛 가득한 세상에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살아갈 가치조차 없는 짐승.”
“…….”
감정 한 올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숨이 턱 막힌 뱁새눈이 부들부들 떨었다.
“묻자. 이들이 너희에게 무슨 잘못을 지었더냐?”
“으…….”
그 심연처럼 칙칙한 검은 눈동자가 주는 공포에 뱁새눈은 답조차 하지 못하고 신음했다.
“그저 가축 같더냐? 네놈들이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유린할 수 있는?”
“우, 우리는…….”
“그래, 답을 들어 무엇 할까? 이미 보았고, 들었음인데…….”
“…….”
운연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뱁새눈의 가랑이가 축축해졌다.
그리고 이내 퍼지는 지릿한 냄새.
참아 내지 못한 공포에 자신도 모르게 실례를 해 버린 것이다.
“으으…….”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몸을 하고도 뱁새눈은 열심히 다리를 버둥거리며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도망가고 싶으냐?”
“…….”
“어디 마음대로 해 봐.”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운연이 그대로 사내의 무릎을 짓밟아 버렸다.
빠드드득.
“끄아아아!”
소름 끼치는 비명이 터져 나왔으나, 운연은 멈추지 않았다.
* * *
“이런 쌍! 주천에 보낸 새끼들은 왜 이렇게 늦어?”
“그러게요. 본원(本原)에서 나오신 분이 벌써 한참이나 기다리고 계신데…….”
“이 새끼들이 빠져 가지고…….”
이리처럼 야비하게 생긴 사내가 짜증스럽게 바닥에 침을 뱉었다.
흡골귀(吸骨鬼) 조율강.
과거 야금당의 한 개 지부를 맡았던 자로, 삼문협의 뒷골목에 사는 이들이라면 웬만큼 그의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한 자였다.
그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그 명호처럼 불쌍한 이들의 뼛골까지 빨아먹는 악당인 탓이었다.
야금당 시절 각종 인신매매와 노동 착취 등의 악업을 일삼던 그는 진무에 의해 야금당이 무너진 후 도망치듯 몸을 숨겼다.
사패천에 잡혔다가는 뼈마디가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다행히 죽은 듯이 지낸 덕에 사방을 들쑤시고 다니는 하오문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하나 제 버릇 개 주겠는가?
세상이 평화로워지고 통제가 약해지자 옛 생각이 난 그는 과거의 인연들을 모아 작은 단체를 조직했다.
비사당(飛蛇黨).
이름은 번듯하나, 한다는 짓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단숨에 성세를 구가하자면 나쁜 짓보다 좋은 것이 없으니까.
예전처럼 불쌍한 이들에게 들러붙어 고혈을 빨던 그에게, 중원 전역을 무대로 은밀한 장사를 하는 시합원(市合原)에서 제의가 들어왔다.
그들이 원한 것은 납치였다.
야금당 시절 주로 해 왔던 일이지만, 후환이 두려워 처음에는 거절했다.
하지만 그때와는 목표부터가 달랐다.
그들이 원한 것은 오 년 전 환란 때 궁이라는 이름으로 중원에 들어왔던, 한씨 놈을 왕처럼 따랐던 힘없는 백성들이었다.
비록 젊은 황제는 그들을 포용했으나, 천하를 경영한다는 것이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인가?
보살핌을 받게 된 이들보다 보살핌을 받지 못한 이들이 훨씬 많은 실정이었다.
그들은 한씨를 따랐다는 꼬리표를 달고 배척받았으며, 쫓겨 다녀야 했다.
진무와 그를 추종하던 무리들에 의해 수괴는 죽었으나, 후처리가 제대로 되지 못한 것이다.
뭐, 조율강으로서는 아주 잘된 일이었다.
그들이 제일 잘하는 일로 큰돈을 벌 수 있었고, 뒤탈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때부터 비사당은 숨어 사는 이들을 악착같이 찾아냈고, 대부분 화적을 일구거나 사회에서 동떨어진 곳에서 숨죽여 살아가는 그들을 납치했다.
오늘은 그 상납이 있는 날이었다.
섬서성 북부를 돌면서 납치해 온 인원이 도합 구십여덟 명.
이제 주천 인근으로 보냈던 수하들이 둘만 더 데려와도 백을 채우는 것이다.
원체 많은 수를 납치해 바치다 보니, 본원에서 제법 높은 직위에 있는 행수가 비사당에 와 있는 참이었다.
그런데 그 두 명이 아직이었다.
백 명을 채워야 가축처럼 가두어 놓은 노예들을 보여 드리며 치하를 받을 것인데…….
“당주님!”
“뭐? 왜!”
“본원의 행수께서 찾으십니다.”
“뭐?”
“시간이 오래 걸리니 술이나 한잔하자고…….”
“아, 그래? 알았다. 속히 후원으로 뫼시거라. 내 금방 가마.”
“예!”
수하에게 명을 내린 조율강이 멀리 정문을 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난 후원에 가서 본원에서 오신 분을 접대할 것이다. 너는 주천에서 잡아 온 놈들을 지체 말고 우리에 처넣은 뒤 내게 알리거라.”
“알겠습니다, 당주님.”
수하가 물러나자마자 조율강은 허겁지겁 후원으로 향했다.
잘 접대해야 한다.
대충 눈치를 보니 자신이 혁혁한 공(?)을 세운 대가로 본원에 자리 하나 내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흐흐흐, 본원이다, 본원이야. 이제 이 지긋지긋한 주천을 떠나서 큰물로 가는 게야.”
조율강은 자신에게 펼쳐질 꽃길을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뛰어갔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비사당 뒷문에서 주천으로 간 무인들이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남하성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할…… 대체 뭘 하느라 여태 안 오는 거람.
연회가 파하도록 도착하지 않으면 당주가 한바탕 난리를 칠 것인데.
“늦네, 벌써 자정이…… 어?”
투덜거리던 남하성의 눈에 무언가 보였다.
드르륵, 드르륵.
말과 옥차(獄車).
주천 쪽으로 내보냈던 이들이 납치한 이들을 데리고 이제야 도착한 모양이었다.
“어휴, 이 자식들이 뭘 하다가 이리…… 뭘…….”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던 남하성이 고개를 삐딱하게 꺾는다.
납치한 사람들로 가득해야 할 옥차가 왜 휑하니 비어 있단 말인가?
푸르륵, 푸륵.
말이 투레질 소리를 내며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남하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 위에서 덜렁덜렁 흔들리는 다리 두 짝.
더욱이 피로 칠갑을 한 채 긴 나무에 꿰여 말 위에 위태로이 고정된 몸은…….
“시, 시체?!”
기겁한 남하성이 외치자 뒷문을 함께 지키고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검을 움켜쥐었다.
슈우욱!
빠가가각!
“……!”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에 급히 고개를 돌린 남하성의 눈에 옆에 있던 무인의 머리가 터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설마!
슛! 슈슈슈슛! 빡, 빠바박!
뭐라 외칠 새도 없이 같이 있던 무인들의 머리가 연달아 터져 나갔다.
“이런 젠장! 저…….”
남하성이 서둘러 몸을 물리며 경고성을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턱!
“읍!”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그의 입을 틀어쥐며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쉬이…….”
“……?”
“밤에 시끄럽게 소리 지르면 안 되지.”
“…….”
이런 미친놈이 그게 무슨 개소리…….
남하성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 꺾였고, 이내 바닥에 벗어 둔 옷처럼 허물어졌으니까.
털썩.
“…….”
머리가 터져 버린 시체들, 목이 꺾여 버린 비사당 총관 남하성.
시신 밭이 된 그곳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시신들을 스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운연이 서 있었다.
휘이잉.
한 줄기 밤바람이 폐부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운연은 감정 하나 담기지 않은 눈으로 문 안쪽 세상을 바라보았다.
불빛, 왁자지껄 즐겁게 떠들어 대는 목소리…….
웃고 있구나.
뭐가 그리도 즐겁더냐?
어금니를 한차례 세차게 갈곤, 운연은 천천히 말에게 다가가 마차와 연결된 줄을 풀어냈다.
“이제 그만 가거라. 굳이 여기 있다가 너보다도 못한 것들의 피를 보지 말고.”
철썩.
그가 가볍게 엉덩이를 내리치자 마차에서 분리된 말이 힘차게 달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말이 사라진 방향을 한참 바라보던 운연이 천천히 뒷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부모의 복수를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나의 몹쓸 아비로 인해 고통받았고, 지금도 죄 없이 짐승보다 못한 놈들에게 핍박받는 내 동족은 구해야겠다.
파아앙!
주먹을 움켜쥐는 순간 운연, 아니 한경홍의 신형이 폭사하듯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