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21
21화
“다, 당신이 어찌…….”
빠악!
겨우 고개를 들어 자신의 옆에 쪼그려 앉은 진무를 알아본 운연의 뒤통수에 또다시 손바닥이 작렬했다.
“사조, 이 새끼야. 사조!”
“사, 사……조.”
빠악!
시킨 대로 했는데도 또 맞은 운연이 반사적으로 눈에 힘을 주자 진무가 새하얀 송곳니를 드러내며 눈을 부라렸다.
“님이라는 글자는 팔아먹었냐?”
“…….”
“야리길 어딜 야려? 눈에 힘 안 빼? 이걸 확!”
“…….”
흉포하기 그지없었던 어린 묵룡은 간데없었다. 진무의 친절하고 살벌한 경고에 운연의 눈동자가 냅다 내리깔렸다.
그런데 어째서 그가 이곳에 있단 말인가? 지금쯤 술에 찌들어 있어야 하는데…….
“멍청한 표정 짓지 마라. 처음부터 네 녀석 뒤를 따라왔으니까.”
“뒤, 뒤를? 처음……요?”
“포목점에서 옷 뽀릴 때부터 비사당에 쳐들어와서 되지도 않은 지렁이 꿈틀거림을 선보인 지금까지.”
“…….”
지, 지렁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말이 좀…….
“근데 정식으로 도명을 받은 새끼가 도둑질이나 하고 말이야. 누가 그러래, 어? 너 때문에 무당 평판 떨어지면 책임질 거야?”
“……?”
“생각은 오지게 없어 가지고. 그렇게 날뛰다가 잡혀 온 사람들이 다치면 니가 책임질래? 조질 때 조지더라도 사람들부터 구해야 할 거 아니야, 사람들부터.”
“……!”
진무의 폭풍 같은 나무람에 운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근데 포목점에서부터라면…… 서, 설마. 다 보았다고?
하면 자신의 이름과 정체를 알았단 말인가?
“뭐, 니놈 모자란 거야 차차 가르치면 될 것이고.”
“……?”
운연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 준 진무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런데…….
“허헙!”
“큽!”
갑자기 곳곳에서 신음이 터져 나오며, 비사당에 있던 이들 중 태반이 얼굴을 찡그렸다.
앉았다 일어나는 단순한 동작에 불과했으나, 그 차이는 실로 놀라웠다.
마치 거악이 일어나 그 그늘로 세상을 뒤덮는 듯한 존재감과…….
하늘이 통째로 내려앉은 듯 온몸이 짜부라드는 압박감이 운연을 제외한 모두를 덮쳤다.
“새끼들이 쫄기는, 아직 아무것도 안 했구만.”
“…….”
사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만 태극을 이룬 이후 현재 진무의 경지는…… 딱히 어떤 말로도 표현이 되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심검(心劍), 혹은 마음이 가면 몸은 물론 주변의 기운마저 따라간다는 심행추현(心行追顯)이라고 해야 할까?
그가 딱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그가 느끼는 감정, 품은 마음에 따라 그 주변 대기의 밀도부터가 달라지고 있었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그의 목소리에 지금의 비사당은 한없이 무겁고 갑갑했다.
“쯧, 맹랑한 새끼들이란 말이야.”
혀 차는 목소리가 모두의 귀에 때려 박히듯 파고들었다.
“내가 분명히 하지 말라고 누차 경고를 했는데 말이지. 겁대가리를 어디 저어-멀리 내다 버리기라도 한 건지…….”
“으으으.”
가벼이 옮긴 발이 땅을 짓밟을 때마다 비사당에 있는 이들의 자세가 연습이나 한 것처럼 똑같이 낮아졌다.
예외는 없었다.
운연을 그토록 거만하게 유린하려 했던 강기의 고수 이역근조차도 버티지 못하고 이를 악물 지경이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이역근이 어찌 알아보지 못하겠는가? 그뿐 아니라 중원에 사는 모두가 눈앞에 나타난 인물을 아는데.
그 이름 하나로 모든 것이 정의되는 자, 진무.
한데 그가 한씨의 혈족인 한경홍을 아는 체하는 거지? 와중에 저렇게 친근한 듯 굴면서?
이역근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관무불침, 민무불침. 무림은 관과 서로 관여치 아니하고, 백성의 삶에 간섭하지 아니한다.
그가 세운 두 가지를 어긴 뒤의 후폭풍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하다.
개차반이란 말로도 모자란 성정 또한 알려질 대로 알려졌고…… 하니 절대로 대항해서는 안 된다.
한경홍과 진무가 나눈 대화로 미루어 이미 비사당이 사람들을 납치해 오는 과정을 보았을 터였다.
그들이 손댄 것이 한씨의 잔당이었다고 해도 이미 그가 세운 뜻을 무시한 것이다.
민가를 침범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틀린 상황이니, 비사당에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고 위기를 모면해야 했다.
그 뒤는 자신의 뒷배에 있는 이가 알아서 해 줄 테니까.
“시합원 본원 행수 이역근이 구국의 영웅이신 진무 도장을 뵙습니다.”
생각을 정리한 이역근이 자신의 곁을 지나는 진무를 향해 다급하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
걸음을 멈춘 진무가 한쪽 눈가를 찡그리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생소하실지도 모르겠으나 저희 시합원은 관이 한씨의 잔당 중 현 황제에게 불손한 뜻을 가진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만든 곳입니다.”
“…….”
“무엇을 보셨는지는 모르나 저희는 오직 관의 뜻을 받아 무림 세력과 연계하였기에 그 과정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제가 나선 것은 지난 환란의 수괴의 핏줄인 한경홍이 이 자리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혹여 오해가 있다면…….”
이역근은 연거푸 ‘관(官)’이라는 글자와 ‘한경홍’이라는 이름에 힘을 주었다.
설마하니 본인이 무너뜨린 단체의 후인을 잡았다는데 별말이야 하겠는가? 특히나 관까지 거론했으니…….
“…….”
그런데 어째 자신의 주위가 어두워진다는 느낌에 이역근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진무, 그가 무릎 꿇은 이역근의 바로 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 저 주먹은 왜?
그가 의아해하며 진무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주먹이 힘차게 내리꽂혔다.
빠가가가각!
후려친 주먹이 이역근의 머리를 거칠게 강타한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머리를 때려 맞은 이역근의 몸이 땅바닥에 처박혔다가 크게 튀어 올랐다.
강기의 무인이 뭔 소용이란 말인가? 상대가 진무인데.
철퍼덕.
고작 한 방의 주먹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널브러져 움직이지 않는 그를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진무가 투덜거렸다.
“드럽게 쫑알거리네, 묻지도 않은 걸.”
“…….”
짜증 섞인 그의 한마디에 비사당에 있던 이들은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
하나 누구도 도망칠 수 없었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해야 맞았다.
이역근을 주먹 한 방으로 때려눕힌 진무가 서늘한 눈빛으로 모두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주님.”
“…….”
“사람들은 안전합니다. 일단은 동보에게 그들을 지키고 있으라 했습니다.”
어느 틈엔가 진무의 뒤에 뼈다귀를 든 거지와 앳된 얼굴의 소년이 홀연히 나타났다.
운연을 쫓다 향이라는 소년이 습격받은 순간부터 진무의 명으로 흉수들을 쫓아 미리 비사당에 도착해 사람들을 구한 각출과 황신이었다.
“비사당은 어찌하죠? 죄 엮어서 관에 넘길까요?”
황신의 물음에 진무가 들으라는 듯 혀를 찼다.
“관의 옥사가 짐승 우리냐?”
“예?”
“거긴 사람만 가두는 곳이야.”
“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들개들 따윌 가둬서 뭐 해? 그냥 조용하게 처리해. 난 수련 때려치우고 도망친 운연이 녀석과 대화 좀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내뱉으며 몸을 돌려 운연에게 다가가는 진무의 뒤에 대고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편 황신이 손에 쥔 비수를 천천히 핥았다.
들개, 혹은 짐승.
한씨의 잔당을 납치해 가는 그 순간을 보았을 때부터 이미 그들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다.
힘이 있으나 그 힘으로 약자를 병탄(倂呑)하고, 인간의 모습이나 도리를 저버린 것들에게 내려질 처분은 한 가지뿐이다.
“사, 살려…….”
셋의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깨달았기 때문일까?
겁에 질린 비사당 무인 하나가 용케도 그 무지막지한 압력을 뿌리치고 움직였다.
사람이 극한에 이르면 뭐든 할 수 있다더니…….
그러나 고작 한 발자국이었다.
퓻!
“……끅.”
발을 떼는 순간 칙칙한 비수가 그 목을 뚫고 나왔다.
“쉿, 소리 내지 마. 대화 나누신다잖아.”
발소리조차 나지 않았는데 어느새 그의 뒤에서 황신이 웃고 있었다.
털썩.
순식간에 목에 구멍이 뚫려 버린 무인은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목구멍을 타고 넘어온 핏물을 울컥울컥 뿜어내다 쓰러졌다.
“야, 출.”
“예, 형님.”
“……조용하게 대가리만 깨.”
“아무렴요.”
황신의 나지막한 말에 각출이 토왕의 왕골을 힘껏 움켜쥐고 몸을 날렸다.
빠가각! 빠바박!
“…….”
저 새끼가 말하기가 무섭게 시끄럽게 구네.
한심하다는 듯 각출을 흘기던 황신이 혹여 진무가 눈이라도 찡그릴까 재빨리 비수를 들고 움직였다.
얼마 가지 않아 비사당의 장원에 있던 무인들은 도망치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채로 머리가 터지고, 목이 꿰뚫려 쓰러졌다.
운연은 무릎을 꿇은 채 경악한 표정으로 눈앞의 고요한 살변을 지켜보았다.
“뭔 얼빠진 표정을 짓고 그래? 짐승 사냥 처음 봐?”
“…….”
어느새 다가온 진무의 말에 운연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어째서…….
“나, 나는…….”
따악!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운연이 더듬거리자 진무가 냅다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운연이 또다시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진무를 쳐다보았다.
“망할 자식이 쉬라고 내버려 뒀더니 토껴? 힘이 남아돌지, 아주?”
“……예?”
“그리고 이 새끼야, 누가 저딴 잡놈한테 처맞고 다니래?”
“…….”
“토끼 새끼도 아니고, 간을 꺼내 놓고 다니냐? 어?”
“…….”
운연은 인상을 잔뜩 쓰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진무를 한동안 멍하니 쳐다보았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자신의 이름도 들었을 텐데. 자신의 신분이 모조리 가짜라는 사실도, 지금까지 거짓말을 했다는 것도 알았을 텐데 어째서?
한차례 이를 꽉 깨문 운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미 들었을 것이 아니오? 나, 나는…… 운연도 야율성도 아닌 한경홍이오.”
“…….”
“한무화의 사생아로 태어나…….”
빠아악!
“큭!”
말을 끝까지 잇기도 전에 진무가 또다시 그의 뒤통수를 후렸다.
“수련 이야길 하는데 왜 딴소리하고 지랄이야?”
“……에?”
“이 사조께서 야단치고 있잖아.”
“…….”
“니가 한경홍이든 주경홍이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럼 뭐가 달라져?”
“그, 그게 무슨?”
“구름 운(雲)! 이을 연(緣)!”
“…….”
“도명을 받은 순간 그게 니 이름이야, 알겠어?”
“…….”
제가 들은 말을 채 이해하지 못한 운연이 멀뚱한 표정을 짓자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머저리 같은 표정하고는. 이 새낀 대체 입관을 누가 시킨 거야? 어떤 새끼야, 그런 사소한 것조차 설명 안 해 준 새끼가? 진허 사형이냐? 아님 진혜 그놈이야?”
“……예에?”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운연이 멍하니 눈만 깜박였다.
“이런 쌍, 장문인부터 장로들까지 일렬로 세워 놓고 주리를 틀어야 하나. 내 분명히 오룡궁으로 올 무인은 도적에 올릴 이름 하나와 나이면 충분하다고 일렀는데……. 야, 너 진짜 못 들었어?”
“…….”
듣긴 했다.
무려 오 년이나 되는 시간을 새로운 신분을 만들기 위해 허비하고 난 다음 입도한 날에.
산문의 제자도 그랬고, 원화관주도 그랬고, 오룡궁에서도 그랬다.
너무 관심 없어 하길래 스스로 떠들고 다니기까지 했다. 운남에서 온 야율성이라고.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게 하려고 일부러 이것저것 먼저 말하고 다닌 건데…….
“…….”
머리가 텅 비는 기분이었다.
난 대체 이제까지 뭘 한 거란 말인가? 뭘 위한 오 년이었던 거지?
아니, 그 전에 잠깐만 있어 봐.
“그럼 그때 어째서 팬 겁니까?”
“뭐?”
“소화산에서 제 내력을 캐기 위해서…….”
“누가?”
“예?”
“따로 알아보라고는 했지만, 그건 니 내력이 수상해서가 아니라 무슨 수로 묵룡기를 익혔는지가 궁금해서야.”
“…….”
“나 참, 새파란 놈 내력 따위 알아서 뭐에 쓴다고.”
그러고 보니 소화산에서 그가 자신에 대해 물을 때, 운남에서 왔니 야율성이니 하는 내력에 대해서는 대충 넘기는 눈치였다.
그럼 맞은 이유는 그냥 기억 상실인 척해서……?
수련하며 화산으로 끌려가게 된 건 묵룡기 습득 과정을 확인하려고……?
“정녕, 정녕 아무렇지도 않으신 겁니까? 제가 수련을 받고 강해져서 후에 당…… 아니, 사조님의 목숨을 노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예?”
그래서라니? 그래서라니!
사람이 목숨을 노린다는데 화라도 좀 내라! 인상이라도 좀 구기든가!
아님 송곳니라…… 아니야, 그건 너무 무서우니까 말고.
“운연아,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니가 돼먹지 못할 놈이었으면 벌써 죽었어.”
“…….”
그 해맑은 웃음에 어울리지 않게, 운연의 등줄기에는 소름이 쫙 돋아 올랐다.
해맑다는 단어의 정의가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른가?
해맑은데 왜 무서워?
“그런데 니가? 나를? 뭐 어째? 목숨을 노려?”
“…….”
“풉.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이 새끼야. 고작 모기만 한 실력으로 피나 빨 수 있으면 고작인 게 무슨 위협이 된다고.”
“…….”
이젠 뇌가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뭐 이런 인간……. 아, 인간이 아니었구나.
그동안 괴물을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려고 했던 거구나.
“운연아.”
“…….”
“딴 건 둘째 치더라도 일단 수련 중에 도망간 벌은 받아야겠지?”
“……예에? 설마 제 신분을 알고도 여전히 가르치려는 겁니까?”
“니가 뭘 착각한 모양인데. 내가 수련을 시키기로 마음먹은 이상, 네 의지와는 상관없단다. 살려면 무조건 배워야 하는 거야.”
“……!”
그날, 운연은 한경홍이라서가 아니라 수련받다 도망쳤다는 이유로 곤죽으로 변해야 했다.
도사 신분으로 포목점에서 몰래 옷을 훔쳤다는 죄목까지 얹힌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