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34
4화
해탈자도 마찬가지지만 등선자들이 천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바로 이곳 등록 관리소이다. 여기서 등록 신고를 마쳐야만 비로소 천계인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은빛 기와로 덮인 안내소를 지키던 천군병 중 하나가 막 구름 타고 도착한 진무를 쳐다보고는 헙 소리와 함께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 천군병이 꽤 상급자였는지, 그를 따라 뒤의 다른 천군병들도 부동자세를 취했다.
“두, 두장군을 뵙습니다!”
“어, 쉬어.”
“옙!”
군기, 아니 천기가 바짝 든 그 모습에 진무가 손을 휙 저어 인사를 대신했다.
“북방 수호에 연일 힘쓰시는 두장군께서 등록 관리소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신입 등선자 안내 때문에.”
“신입 등선자 안내요? ……두장군께서요?”
“왜? 뭐가 잘못됐냐?”
“아, 아닙니다! 두장군님처럼 높으신 분께서 하실 일이 아닌지라.”
진무가 슬쩍 째려보자, 천군병이 급히 손사래를 치며 길을 비켰다.
“들어가십시오! 안에 연락을 취해 놓겠습니다!”
“어, 그래. 수고.”
“옙! 감사합니다!”
진무가 신입 등선자와 함께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자, 천군병이 고함치듯 인사를 하고 다시금 부동자세를 취했다.
“……휴우.”
둘이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지고 나서야 짤막한 한숨을 쉬며 자세를 푸는 천군병의 모습에 옆에 있던 이가 슬쩍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십니까? 누구시길래 그리 긴장하십니까?”
“……개차반.”
“예?”
“자네, 배치받은 지는 얼마 안 됐어도 북방의 그 또라이 패선(覇仙)에 대해선 들어 봤지?”
“아! 그 부임 첫날 북방수호군을 모조리 개 패듯이 패 버렸다는…… 그럼 저자가?”
“맞아. 그때 그 사건으로, 앞길이 보장되어 있던 북방칠수가 전원 사직했지. 그리고 옥황상제님의 먼 친척이시자 고위급 선별관 중 한 분이신 은천(殷川) 소멸 미수 사건도 저 또라이의 작품이야.”
“허헉! 정말입니까? 전 그분께 귀천당했는데…… 그분이 옥황상제님의 친척이셨다니. 잠깐만, 그런데 그런 분을 그냥 팼다구요? 소멸 직전까지?”
“어. 어마어마한 또라이시지. 옥황님의 혈연이고 뭐고 가리지 않는다고.”
“…….”
“자네도 항시 조심해. 우리 같은 수문장들에게는 경계 대상 일 호니까. 재수 없이 밉보였다가는 그냥 닥치고 소멸이야.”
“그, 그렇군요.”
상급자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천군병이 한참 전에 등록 관리소로 들어간 진무를 떠올리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 *
“기억했어?”
“예, 확실하게 외웠습니다.”
“그래, 한 자라도 틀리면 안 돼. 등록 관리소를 관리하시는 분이 과거에 무당파의 초대 시조이시거든.”
“예에?”
“들어 봤지? 현현자(玄玄子)라고.”
“현현…… 허헉! 호, 혹시 존함이 삼 자 봉 자 되시는 그분 말입니까?”
“어. 이곳에선 보화(葆和)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시지. 곧 상제의 반열에 오르실 거라고 소문이 파다해.”
“…….”
“망할 청무 조사. 진작 좀 말해 주지. 나도 그걸 모르고 대들었다가 흠씬 두들겨 맞았다니까?”
“…….”
청상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무당의 위엄이 정말이지 대단하지 않은가?
청무 조사님은 사계산 장춘곡의 주인이며, 진무 사숙은 천계 북방을 수호하는 장군이시다. 거기에다 등록 관리소의 초대 조사님은 이제 곧 신의 반열에 드실지도 모른단다.
대대로 무림을 수도 없이 구한 것도 모자라 등선해서까지 다들 한자리 꿰차고 계시다니, 감격스러움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아아, 찬란하도다, 무당……!
두고 봐라. 나 청상! 존경하는 선사님들처럼 천계에서 반드시 한자리해 먹을 것이다!
백육십 년이 다 무엇이냐! 자랑스러운 무당의 선인으로서 천육백 년은 더 도를 닦을 것이다!
“야, 나오신다.”
“……!”
청상이 감격에 젖어 속으로 포부를 다지던 그때, 진무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신호를 줬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높다란 단 위의 탁자로 걸어 나오는, 크다 못해 거대해 보이기까지 하는 풍채의 노신선이 보였다.
인자한 얼굴에 어딘가 모르게 고집이 느껴지는 입매……. 장삼봉이다. 그림에서나 뵙던 초대 조사님, 장삼봉이 확실했다.
청상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
“두장군 진무가 보화선인을 뵙습니다.”
“엥? 니가 웬일이냐?”
“핫핫! 모처럼 선배님도 뵐 겸, 또 하계에서 인연이 있던 녀석이 등선해서 안내도 할 겸 왔습니다.”
“호오, 그래? 거참 별일이구나. 너 같은 개망나니에게도 그리 깊은 인연이 있다니.”
“…….”
보화가 눈을 샐쭉하게 뜨고 진무를 째려본다. 청상은 더욱 긴장했다.
아니, 아무리 무당의 초대 조사이시고 상제에 오르실 분이라고 해도 사숙에게 개망나니라니? 사숙께서 참을 리가…….
꿀꺽.
목울대를 크게 움직여 침을 삼킨 청상이 진무를 살피려 고개를 슬쩍 돌렸다.
“핫핫! 그러게 말입니다.”
“…….”
참았다? 참았다고? 저, 저 개망나니 사숙이?
그냥 참은 것도 아니다. 무려 웃어넘겼다. 손끝에 생채기만 나도 죽일 듯이 행패를 부렸던 저 사숙이…….
그때 청상은 생각했다. 과연 초대 조사님. 보통 분이 아니시구나.
“그래, 어떤 놈이길래 북방 수호에 여념이 없어서 하늘 같은 선배가 술 처먹으러 오라고 해도 들은 체 만 체 하는 놈을 안내역으로 삼았을꼬?”
“…….”
보화가 힐끗 쳐다보는 게 느껴지자 어깨가 절로 움츠러든다. 청상이 연신 마른침을 삼키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데, 옆에서 진무가 쾌활하게 답했다.
“무당입니다.”
“응? 무당?”
“예, 제가 아끼던 사질이었죠.”
“아! 안 그래도 청무 놈이 무당에서 등선이 기대되는 놈이 있다더니…… 저놈이 그놈인 게로구나?”
“아, 이미 들으셨습니까?”
“들었지. 근데 니놈 때도 장래가 주목된다고 들었었거든?”
“하, 하하하……. 저랑은 좀 다른 놈입니다.”
“그래야겠지. 니놈 같으면 천계가 또 한바탕 난리가 날 것 아니냐. 알지? 만 년 전에 니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 아하하.”
보화가 째려보자 진무가 머쓱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었다.
두 번이나 참았다. 화도 한번 안 내고…….
진무의 그런 모습을 난생처음 본 청상으로서는 긴장하다 못해 몸이 돌처럼 굳어 버릴 지경이었다.
젊었을 적 진무 사숙의 주먹 앞에서 많이 느꼈던,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나서는 처음 느끼는 지릴 것 같은 이 기분.
사숙이 참아야 할 만큼 무서운 분께…… 내가 실수라도 한다면…….
“그래, 어디 보자……. 허, 그놈 참 오래도 살았네. 요새는 의술이 발달해서 수명이 크게 늘었다더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백육십이나 먹고 등선했다라.”
“…….”
보화가 탁자에 펼친 책자를 뒤적거려 청상의 기록을 찾아내곤 흥미로운 눈빛을 발했다.
“오! 제법 똘똘한 놈이구나. 스물에 진무 저놈을 만난 게 삶에 가장 큰 오점이었어.”
“하, 하하. 보화 님, 그쯤 하시죠.”
“왜? 한번 엉겨 볼라고?”
진무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입술을 씰룩거리자, 보화가 한쪽 눈썹을 삐뚜름하게 올리고 쳐다봤다.
“설마요? 그냥 민망해서 그렇죠.”
“……!”
또…… 참았다.
청상은 얼빠진 눈으로 진무를 쳐다봤다. 정말이지 저 사숙이 세 번까지 참다니, 상상해 본 적조차 없는 모습이었다.
“뭐, 좋다. 요샌 니놈도 정신을 차렸는지 잘하고 있는 모양이니……. 어디 한번 신고시켜 봐, 무당 도사답게.”
“예!”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한 진무가 청상의 옆구리를 툭 쳤다.
“예?”
상황 파악이 덜 된 청상이 눈만 동그랗게 뜨고 진무를 쳐다봤다.
“뭐 해? 신고해야지. 아까 가르쳐 준 대로.”
“아! 예!”
퍼뜩 정신을 차린 청상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목소리로 외쳤다.
“신고합니다! 초임 선인 청상은 천력 십억 십이만 오천이백삼십이 년부로 하계에서 천계로 혼이 귀속됨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
청상이 목이 찢어져라 핏대까지 세우며 신고를 끝냈지만, 보화에게서는 이렇다 할 대답이 없었다.
뭐지? 뭐야? 뭔가 틀렸나? 분명 사숙이 알려 주신 대로 똑똑히 말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다 맞게 했는데,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기만 한다. 청상의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
혹, 내가 실수를 한 거라면? ……그렇다면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저 사숙조차도 지극하고 공손하게 대하는 상선이신데……. 그게 아니더라도 저분은 무당의 초대 조사님이시지 않은가?
청상이 꼼짝도 하지 못하고 눈알만 굴리는데,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드디어 보화가 입을 열었다.
“거참 이상하단 말이야. 어찌 이런 똑 부러진 놈이 저 개망나니랑 어울려 다녔지?”
“보화 님! 거 좀 그만하시라니까요? 기껏 맘잡고 잘살고 있구만.”
“흥! 제 버릇 개 줄까? 내 봐서는 니놈은 평생 그 버릇 못 고친다.”
“에이 씨, 진짜!”
“어쭈? 상선이라는 놈이 욕을 해?”
“제 입으로 제가 하는데 왜요!”
“이게 뒈지려고? 내가 왜 여태 등록 관리소에 있는지 몰라? 니놈 사고 친 거 무마하느라 그랬잖아!”
“누가 도와달랬어요?”
“이런 망할 자식이! 기껏 무당이라고 도와줬더니!”
결국 네 번째까진 참을 수 없었는지, 진무와 보화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하아, 내가 실수한 건 없었구나.
긴장이 탁 풀려 축 늘어지려는 자세를 수습하며, 청상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망할 자식, 내 앞으로도 똑똑히 지켜볼 테니까 그리 알아!”
“흥! 그러시든가요!”
“이 자식이! 어디서 송곳니를 드러내고 지랄이야?”
홱 고개를 돌리며 코웃음 치는 진무의 모습에 보화가 보고 있던 서책을 던질 듯 움켜쥐었다.
“던지려면 던져 보시죠. 이제 막 등선한 까마득한 무당 후배 앞에서.”
“이……! 하아, 내가 너 때문에 하루하루 늙는다, 늙어.”
움켜쥔 서책을 놓고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보화가 청상을 바라봤다. 진무를 볼 때와는 다르게 사뭇 온화하고 부드러운 눈빛이었다.
“청상.”
“예엡!”
“허허, 긴장치 말거라. 등선하여 속세에서의 연이 모두 끊어졌다고는 하나, 어디 기억이 그러하겠느냐? 무당의 먼 후대라 하니, 내 너에게 작은 선물을 줄 것이다.”
“…….”
“본시 선인의 진로는 등록을 마친 후에 따로 관장하는 곳을 찾아가 정해야 마땅하나, 너는 내 직권으로 처리를 해 주마. 혹 원하는 보직이 있더냐?”
“저는…….”
보화의 물음에 청상이 진무를 슬쩍 쳐다봤다.
“사숙과 함께이고 싶습니다.”
“으응? 누구랑? 저 개망나니랑?”
“예, 제가 생전에 흠모했던 분입니다. 등선하였으나 여전히 함께하고 싶습니다.”
“허! 허허허. 오늘은 참으로 별일이 많구나. 좋다, 네 뜻이 그러하니 내 책임지고 처리해 주마. 더불어 외양도 저놈과 함께였던 그때로 바꿔 주지.”
보화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서책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의 필법에 무언가 조화가 있었던 것인지, 붓이 글을 맺는 순간 진한 진동음과 함께 청상의 몸에서 밝은 빛이 뿜어졌다.
그리고 그 빛이 점차 옅어지며 드러나는 청상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걸치고 있던 무당 도포 대신 은은하게 칠흑빛으로 빛나는 갑주를 입고 있었고, 겉모습 또한 진무와 함께했던 한창때의 나이로 돌아가 있었다.
“자, 하계에 지녔던 힘을 선계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저놈이 알아서 가르쳐 줄 터이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보화가 청상을 보며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청상선인. 너는 이제 북방칠수 예하의 군병이 되었다. 앞으로 천계 수호를 위해 항시 힘쓰라.”
“예!”
변해 버린 제 모습을 신기해하며 이리저리 살펴보던 청상이 보화의 말에 고개를 들고 기분 좋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걸로 또다시 진무와 함께하게 된 것이다.
“그나저나 진무 너는, 앞으로 해야 할 일까지 내가 대신 처리해 주었으니 시간이 남을 텐데 어쩔 테냐? 간만에 나랑 술이라도 한잔할 테냐?”
“…….”
보화의 말에 진무가 잠시 고민하다가 미리 생각해 둔 것을 물었다.
“안 그래도 보화 님께 여쭐 것이 있었습니다.”
“내게?”
“예. 하계의 시간으로 대략 백 년 전쯤, 제게는 사질인 녀석이 귀천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혹 찾을 수 있을까요?”
“음, 등선했다면야 찾을 수 있지. 이름이 무엇이더냐?”
“청우입니다.”
“청우라…….”
보화가 서책을 다시 뒤적거렸다.
“청우는 없는데? 무당에서 온 놈은 너 다음이 저놈이다.”
“음, 역시 그랬군요. 하면 귀인의 신분으로 천시원에서 살고 있겠군요.”
“악행을 하지 않은 도사로 죽었다면 그랬겠지.”
“혹, 천시원의 기록도 찾을 수 있으십니까?”
진무의 물음에 보화가 고개를 저었다.
“권한 밖이다.”
“음, 그렇군요.”
“왜? 직접 가서 찾아보려고?”
“예, 그 녀석도 인연이 깊은지라.”
“쯧쯧, 북방을 수호하는 장군 놈이 잘하는 짓이다. 개인적인 일이나 처리하러 다니고.”
“…….”
혀를 찬 보화가 품을 뒤지더니 보패(寶貝) 하나를 꺼내 진무에게 던졌다.
“이건?”
“천시원 등록 관리소의 책임자가 하계 시절에 나랑 인연이 있는 놈이다. 그러니 그 패를 보여 주면 너를 도와줄 게다.”
“감사합니다. 역시 무당이시라 출신이 땡기시는군요?”
패를 꼭 쥐고서 진무가 해맑게 웃자, 보화가 혀를 끌끌 찼다.
“이놈아, 내가 너 예뻐서 그러겠니? 니가 사고 칠까 봐 그런다. 혹시나 그쪽에서 안 알려 준다고 하면 또 개행패를 부릴까 봐.”
“제가 또 언제 그랬다고…….”
“종종! 왕왕! 비일비재!”
“…….”
“휴우, 아무튼 되었다. 술은 다음으로 미룰 테니 그만 가 보거라. 천시원의 귀인들은 수명이 정해져 있지 않더냐? 지난 백 년간 선계의 시간이 빨랐으니 벌써 소멸했을지도 모를 일. 서둘러 찾아야 할 게야.”
“예, 그럼 나중에 신선주를 들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말이나 못 하면……. 상천에 오를 날이 머잖았으니, 오려면 그전에 와.”
“예.”
“대답만 잘해요, 아주. 거기 청상이도 잘 가거라.”
진무는 씩 웃곤 투덜거리는 보화에게 공손히 인사한 뒤, 청상과 함께 등록 관리소를 빠져나갔다.
다음 행선지야 뻔했다. 청우를 찾기 위해 천시원으로 가 볼 참이었다.
한편, 등록 관리소 안에선 진무를 향한 보화의 걱정이 가득 피어올랐다.
“흠, 미리 연락이라도 해 놔야 하나? 저놈 이번에 사고 치면 옥황께서 정말 크게 화를 내실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