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36
6화
띠링.
아름다운 칠현금 소리가 너른 공간에 잔잔히 흐른다.
그 음률에 맞춰 하얀빛 껍질을 가진 나무들이 능수버들처럼 그 가지를 늘어뜨린 채 하늘거리고, 칠보(七寶)로 장식된 바닥은 볕에 저마다 찬연히 빛난다.
띠리링.
음률이 이어지고, 바람에 날린 분홍빛 꽃은 바닥에 떨어졌다가 눈 녹듯 사라진다. 창공이 곧 천장이라 탁 트인 그곳을 향해 날아온 새들의 지저귐은 음률에 자연스레 어우러져 운치를 더했다.
자미원, 혹은 천상궁(天上宮).
하늘 위에 하늘이 존재한다 하여 이름 붙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
두 그루 나무가 있는 정원이 고작인, 작다면 작은 곳이지만 그 안에서는 세상 전부를 바라볼 수 있다.
신이라 불리는 이들의 수좌이며 만물의 운명을 주재하는 자, 옥황(玉皇)이 바로 그곳의 주인이다.
차라락.
옥빛 면류관을 쓴 옥황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천상궁 정원의 나무 그늘에 기대앉아 여가를 즐겼다.
따랑.
칠현금에 이어 비파 소리가 울리자 문 없는 그곳에 공간이 열리고 청옥 소반에 그릇 하나를 받쳐 든 아이, 소경이 나타났다.
“오!”
그 모습을 본 옥황이 기다렸다는 듯 벌떡 몸을 일으키며 들뜬 탄성을 터트렸다.
“어서 가져오너라!”
“예.”
옥황의 재촉에 소경이 작게 한숨 쉬며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그사이에도 옥황의 눈은 청옥 소반 위 그릇에 담긴 음식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 사나흘 굶은 젖먹이도 아니고 어찌 그리 보채는지…….
하지만 어쩌랴? 상대는 지고한 옥황인 것을.
잘게 간 부드러운 빙설 위에 붉디붉은 적빙과의 과즙을 올린 그것은 서왕모의 선도(仙桃)와 함께 옥황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소경이 다가오자 옥황이 침을 꿀꺽 삼키며 옆에 있던 선녀를 채근했다.
“어서 다오! 어서!”
“예.”
꽃망울 터지듯 살포시 웃은 선녀가 은수저로 빙설을 한 숟갈 떠 옥황의 입으로 가져갔다.
떠어어엉!
“…….”
이게 무슨 소릴까? 칠현금이나 비파에서는 저런 소리가 날 리 없는데.
그리고 옅은 진동까지……. 혹 천둥이라도 치는 것일까?
하지만 그보다는 제때 먹지 않으면 녹아서 제맛을 느낄 수 없는 눈앞의 음식이 중요했다. 옥황은 다시금 입을 활짝 벌려 선녀의 숟가락을 맞이했다.
자, 다시…… 아.
떠어어엉!
“…….”
이전보다 훨씬 더 선명한 소리와 함께 천상궁이 잘게 떨렸다.
툭.
“어? 어어? 이…….”
진동이 조금 강했을까? 선녀의 숟가락에 얹혀 있었던 빙설이 바닥에 떨어졌다.
“…….”
비명에 간 한 숟갈의 빙설을 본 옥황의 크게 뜬 눈에 슬픔이 가득 차올랐다. 그 슬픔이 짜증으로 변하고, 다시 분노로 변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쿠르르릉.
그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 것일까? 천상궁의 하늘이 삽시간에 비틀리고, 검은 구름이 포악하게 몰려들었다.
“대체 누가…….”
“옥황이시여.”
의문을 다 표하기도 전에 천상궁 하늘의 한 곳이 열리며 백금갑을 입은 젊은 장수가 나타나 옥황의 발 앞에 엎드렸다.
칠성신군(七星神君).
하늘의 중심인 북두의 가장 가까운 곳에 칠성이 위치하듯, 자미원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키는 호위신장이었다.
“대체 누가 소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냐!”
옥황이 바닥에서 녹아 없어지는 아까운 빙설에 시선을 고정한 채 호통치자, 칠성신군이 즉시 답했다.
“천시원에 난리가 났습니다.”
“천시원? 그곳에서 왜?”
“그게 북방칠수의 두장군이…….”
“북방, 두장군? 진무?”
“예.”
옥황이 대번에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두장군 진무. 그 이름을 어찌 모를까?
근래 천계에서 가장 유명한 장수를 꼽으라면 누구나 그를 꼽을 것이다.
최연소! 최단기!
신선에서 상선의 경지로 오른 것이 그러했고, 군병의 신분에서 천계 대장군 중 하나가 된 것도 딱 만 년밖에 안 걸렸다. 아직 신력을 증폭시키는 법보(法寶)조차 없이.
일각에서는 그가 법보를 가지게 된다면 상제급의 힘에 필적할 거라는 예상도 있었다. 그 때문인지 신선들 사이에선 자신이 그에게 어떤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말들도 많았다.
하지만, 현 천계의 네 방위를 지키는 수호군 중 북방칠수가 가장 든든하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한다. 진무가 지계에서 넘어오는 괴(怪)들을 닥치는 대로, 남김없이 소멸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공적만큼이나 사고를 쳐 가면서…….
“그놈이 왜 또!”
진무를 떠올린 옥황의 얼굴이 더 일그러질 수 없을 만큼 일그러졌다.
등선하자마자 자신의 혈족인 선별관 은천을 줘 패서 소멸시킬 뻔하질 않나, 두장군에 오르자마자 북방칠수의 장군들을 죄 때려치우게 하질 않나.
게다가 자리가 비면 전부 저 같은 놈들로 채워 놓았다.
빌어먹을 놈들이 상제급 선인을 봐도 인사를 안 하고……. 싸가지 없는 놈들.
하지만 다들 제 임무만큼은 똑 부러지게 하고 있어서 꾸짖을 수도 없었다.
한데 그렇게 한동안 조용했던 놈이, 상선이자 두장군씩이나 되는 놈이 어째서 천시원에 가서 소란을 피우고 지랄이란 말인가?
“진무 그놈이 대체 왜!”
그간의 맘고생으로 쌓인 게 많은 옥황이 빽 소리를 지르자, 칠성신군이 난감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것이……. 천시원의 귀천령 둘을 당장 등선시키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등선? 대체 그놈들이 누군데!?”
“하계에서 스승으로 모셨던 자와 사질로 데리고 있었던 자라고 합니다.”
“뭣이 어째? 이런 미친 상선 놈이! 아무리 만 년밖에 안 살았다고 해도 그렇지, 여태 하늘의 이치도 모른단 말인가! 이미 귀천령이 된 자를 어찌 등선을 시켜!”
“…….”
“그래서? 자네는 대체 뭘 하는가? 당장 군병을 보내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을 제압해 내 앞에 꿇리지 않고!”
옥황이 펄펄 뛰며 명을 내렸지만, 칠성신군은 더욱 난감해할 뿐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가!”
“옥황이시여, 이미 오성군(五星君)과 삼원군(三原君)을 보냈습니다. 다만…….”
“다만?”
“……모두 당했습니다.”
“뭐, 뭣이?”
옥황은 순간 황당함에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오성신군과 삼원신군은 칠성신군의 휘하에서 자미원을 지키는 장수로, 둘 다 상선에 오른 지 한참이나 된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패했다고? 천계에서 손에 꼽히는 힘을 지닌 그들이?
“진무, 그놈이 벌써 그렇게 강해졌다고?”
“신력은 아직 부족하나, 전투 능력은 저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게 무슨 소린가! 자네가 상제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렇지, 어찌 법보도 없는 놈이 자네와 필적해?”
“그에게 법보가 있었다면 저는 이미 진작에…….”
“…….”
칠성신군이 말끝을 흐리며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옥황은 눈을 씰룩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힐끗 쳐다보니 소경이 가져온 빙설은 이미 다 녹아 버린 뒤였다.
빌어먹을, 저게 얼마나 귀한 건데……. 적빙과가 열리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당장! 잡아 오게! 외부에 나가 있는 이랑이고 나타고 전부 부르게! 아니, 자네가 직접 가게!”
“그러려고 했으나…….”
“했으나! 뭐!? 뭔 말이 그렇게 많아!”
“그게……. 두장군이 볼모로 잡고 있는 이가 있어서.”
“볼모오?”
“예.”
“그게 누군가!”
“선별관 은천입니다.”
“……뭐?”
“그분께서 어찌 그곳에 계셨던 것인지는 모르나, 진무가 그분을 볼모로 잡고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분의 소멸은 물론 천시원까지 부숴 버리겠다고…….”
“이, 이…… 이…… 이 미친 진무 놈이!”
“이런 말씀까지 드리기는 송구하나, 옥황께서 직접 가 보셔야…….”
“…….”
천계를 다스리는 옥황이었으나, 이 순간만큼은 지계의 요괴보다 더 흉악한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자! 내 이놈을 그냥!”
* * *
천시원, 귀천한 영들이 환생의 때를 기다리며 기억을 흘려보내는 평화로운 도시.
그런데 지금 그 도시의 평화가 깨지고, 탄생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런 쌍! 당장 등선시키란 말이야!”
선별관 은천의 모가지를 움켜쥐고 길길이 날뛰며 난동을 피우는 진무 때문이었다.
“지, 진정하게 두장군! 일단 말로, 말로 하세.”
“닥쳐! 말로 해서 안 되니까 이러는 거 아니냐고!”
천시원의 최고 책임자인 사견(蛇遣) 상선이 어떻게든 진무의 노기부터 잠재우려 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자미원에서 달려온 신군병들은 처참하게 박살이 나 버린 지 오래였고, 호기롭게 나섰던 오성군과 삼원군은 지금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그를 더 자극했다가는 천시원이 정말로 박살이 날지도 몰랐다. 사견은 일단 인근 귀천령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신군병들의 포위망을 한참이나 뒤로 물렸다.
“두장군, 저희에게 이러셔도 방법이 없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이미 공과의 판결이 끝난 귀천령들입니다.”
“판결이고 나발이고, 난 그딴 거 모르니까 알아서들 해.”
“두장군!”
“이런 쌍! 확! 모조리 불 싸질러 줘?”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사견은 정말이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저 미친 상선 놈을 어찌 진정시킨단 말인가?
“어? 장군?”
“……?”
그때, 사견의 뒤편에서 새하얀 갑주를 걸친 덩치 큰 장수 하나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그를 알아본 순간, 사견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 기분을 느꼈다.
우장군 백양(白羊). 거력을 타고나 북방칠수 중 두장군 다음으로 높은 직위에 있는 인물이었다.
“우장군! 잘 오셨소! 정말 잘 오셨어! 제발 두장군 좀 말려 주시오.”
사견이 뛸 듯이 기쁜 얼굴로 애원하자 백양이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이게 대체 뭔 일이래?”
“두장군께서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시면서…….”
“흠, 됐습니다.”
“……?”
“내 직접 물어보면 되지, 뭐.”
“오!”
백양이 사견의 말을 막고는 진무에게 다가갔다.
사견으로서는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아무리 미친 상선이어도 믿고 따르는 제 수하의 말은 듣지 않겠는가?
“대장!”
“어? 백양? 북방에 있어야 할 니가 여기 왜 있어?”
“저야 뭐, 북방이 워낙 한산해서…… 그런데 대장이 천시원에는 어쩐 일입니까? 이 소란은 또 뭐고요?”
“등선시킬 귀천령이 있어서.”
“등선요? 천시원에 들어온 귀천령을요?”
“어.”
“허! 그런 이치에도 맞지 않는 일을…….”
“잔소리할 거면 꺼져. 막으려면 덤비든가. 난 옥황 멱살이라도 잡고 무조건 등선시켜야겠으니까.”
“하여간 성질하곤, 그 귀천령이 대체 누군데요?”
“하계에서 내 스승님이셨던 분이랑 사질.”
“……흐음.”
진무의 말에 백양이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산뜻하게 말했다.
“그럼 뭐, 등선해야겠네.”
“…….”
고민도 없었다.
대번에 한편이 되어 버린 백양이 자신의 법보인 양날 도끼를 꺼내며 흉흉한 눈빛을 드러냈다.
“야! 넌 왜 끼고 지랄이야?”
“지랄이라니요? 수하가 대장 따르겠다는데 뭐 잘못됐습니까?”
“이 자식이? 잘못하면 소멸당할 수도 있어.”
“까짓거, 어차피 대장 아니었으면 벌써 요괴들한테 소멸당했을 목숨인걸요.”
“이런 미친놈.”
짜증스레 퉁을 놨지만, 그의 도움이 언짢지는 않았다.
과거 요괴들에게 공격당해 소멸당할 위기에 처했던 백양. 모두가 포기했던 상황에 홀로 요괴들 사이로 뛰어들어 구한 것을 계기로 우장군이 되어서도 자신에게 충성을 보여 온 이.
솔직히 좀 든든했다.
“그런데 혼자 괜찮으시겠어요? 다른 애들도 부를까요?”
“됐어, 이건 내 일이니까. 너도 그만 가!”
“이걸 보고 어떻게 가요? 자미원에서 이 사실을 알고 가만 있을 것 같아요? 옥황은 꽤 무섭다고요.”
“상관없어, 씨발. 내가 죽든 은천이 죽든, 아니면 천시원이 박살 나든지 하겠지.”
“크크, 정말 대책이 없으시다니까.”
백양이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는 모습에 진무의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청상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기, 사숙?”
“왜?”
“정말 이래도 돼요?”
“뭐가?”
“신선이 인질극 같은 걸 해도…….”
“…….”
청상의 걱정에 진무가 피식 웃었다.
인질극이면 안 되지. 신선이 사람을 괴롭혀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이건 괜찮다.
인(人)질극이 아니라 신(神)질극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