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38
8화
진무가 가느스름한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데도 옥황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었다.
“싫으냐? 그럼 할 수 없고. 더 할 말 없으면 돌아가거라.”
“아, 아니! 잠깐요! 누가 싫답니까? 고민할 시간은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놈, 네 마음에 의심이 가득한 것을…….”
“…….”
빌어먹을 옥황.
저리도 자연스럽게 마음을 읽어 버리니 뭔 말을, 아니 생각도 함부로 못 하겠다.
“진무야.”
“예?”
“욕은 하지 말거라.”
“……입 밖으론 안 꺼냈잖아요. 생각만 했습니다, 생각만.”
“생각도 하지 마. 기분 나빠, 니놈 욕은. 왠지 똥 묻은 개한테 겨 묻었다고 타박당하는 것 같아서.”
“쳇!”
진무가 입을 삐죽거렸다.
“이놈, 또!”
“…….”
옥황이 대번에 목침(木枕)을 들고 위협하자, 진무가 찔끔하며 목을 움츠렸다.
깜짝이야. 갑자기 목침은 또 어디서 나타난 거야?
“일단! 부탁부터 좀 들어 볼게요.”
“뭐라?”
“뭔진 알아야 저도 허락을 할지 말지 할 것 아닙니까?”
“호오? 나와 흥정을 해 보겠다?”
옥황이 실소를 흘리며 팔꿈치를 무릎에 얹고는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괴었다.
“흥정이라니, 그런 게 가능한가요?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전부 알고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을 앞에 두고?”
“……그럼 그 초점 없는 눈깔은 뭐냐?”
“…….”
“아무 생각도 안 품으려고 노력하는 꼬라지가 분명한데?”
“그럴 리가요? 오햅니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퉁명스레 답하는 중에도, 진무는 열심히 머릿속을 비우려 노력했다.
“큭!”
“…….”
“크핫핫핫!”
겉과 속이 최선을 다해 따로 노는 모양이 어지간히 웃겼는지 옥황이 홍소(哄笑)를 터트리고, 선녀들이 입을 가리고 어깨를 들썩였다.
“네놈은 참 재미나. 상선씩이나 된 놈이 어찌 하계의 인간들과 똑같은 습성을 가지고 있는 겐지.”
“피차일반입니다.”
“이놈아, 내가 니놈에게 맞춰 주는 게다.”
“그럼 계속 그러시든가요.”
“…….”
진무는 휘말려 좋을 것이 없다 여기며 꿋꿋이 노력했지만, 옥황이 그 머릿속의 비열함을 읽어 내지 못할 리 없었다.
하나 옥황은 진무에게 장단을 맞춰 주기로 했다.
모처럼 느끼는 즐거움이니 좀 관대해져 볼까.
“그놈 참, 본시 도박에서도 함부로 자신의 패를 보이지 않는다만, 특별히 이번만큼은 내 패부터 보여 주마.”
“…….”
옥황의 말에 진무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축융(祝融)이라는 놈이 있었다.”
“축융? 아, 그 불의 신이라는?”
“신이었지.”
“…….”
“하계의 원기가 집약되어 항시 맹렬하게 불꽃을 뿜던 화정(火井)에서 태어난 녀석인데, 이놈의 힘이 가히 하늘마저 태울 정도라. 해서 당시에 나와 귀모가 힘을 합하여 그 힘을 억눌렀지.”
“부부 싸움 하시기 전에요?”
“응?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아, 아닙니다.”
“…….”
생각해 보니 치부라면 치부일 수 있었다. 진무는 즉시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하나 이미 머릿속에 담은 생각을 옥황이 어찌 읽어 내지 못할까? 찬찬히 진무를 바라보던 옥황의 얼굴이 대번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런 미친놈들이 뭐가 어째? 내가 바람을 피워서 부부 싸움을 했고, 그 때문에 천계와 지계가 사이가 나빠져?”
“…….”
옥황이 고성을 지르자 순식간에 천상궁의 하늘이 마구 비틀리고, 우레와 함께 천둥 번개가 번쩍거렸다.
젠장, 쓸데없는 생각을 들켰네.
“아, 아니었나 보죠?”
“당연히 아니지!”
“…….”
“태초의 뜻을 이어 온 나를 어찌 보고!”
“그, 제가 그랬다는 게 아니고 소문이…….”
“허, 선인이라는 놈들이 어찌 하계의 인간들처럼 뒤에서 호박씨나 까고……. 으이구, 천계 꼴 잘 돌아간다, 잘 돌아가.”
“여러 가설 중에 하나였을 뿐입니다.”
“닥치거라, 이놈!”
“…….”
길길이 뛰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알고 있던 이야기는 뜬소문이었던 모양이다.
음, 그럼 천계와 지계는 왜 나누어지게 된 거지?
다시금 의문이 생겼지만, 지금 물어보면 왠지 목숨에 큰 이상이 생길 것만 같았다. 진무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진정하시고, 계속 설명해 주시죠.”
“후우, 오냐.”
옥황이 숨을 고르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말을 이어 갔다.
“어쨌든 축융 사태 때 나와 귀모는 놈이 가진 대부분을 빼앗아 세상에 흩뿌렸다.”
“…….”
“하지만 축융은 너무 강했다. 해서 소멸하고 난 뒤에 그 찌꺼기가 남았지.”
“음, 그렇군요.”
“당시 천계와 지계, 소문처럼 부부 싸움 때문이 아니라 나 이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
거, 생각보다 속이 좀 좁으시구만. 그걸 또 마음에 두고 있…….
“안 좁다.”
“죄삼다.”
“어쨌든, 잔재를 차지하기 위해 천계와 지계, 아니 나와 귀모는 수차례 충돌했었다.”
“아, 그럼 혹시 그때 부부 싸움을?”
“닥칠래? 주먹에 자꾸 힘 들어가거든?”
“죄삼다.”
옥황의 직설적인 위협에 진무가 집요하게 굴기를 관두고 다시 한번 사과했다.
“계속된 싸움이 쓸데없는 소모전임을 깨달은 우리는 결국 평화 협정을 맺었고, 축융의 잔재를 양측이 아닌 인계에 두고 살피기로 했다. 자연적으로 소멸될 때까지.”
“…….”
“아마 너도 이미 만나 봤으니 알 터이다.”
“만나요? 제가요?”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모와 옥황조차 두려워한 신의 잔재를 자신이 언제 만났단 말인가?
“그게 아니면 제가 언제 그런 분을?”
“그런 분은 아니고, 놈이다.”
“놈요?”
“그래.”
“…….”
“오래전이라 기억나지 않는 게냐?”
“그게…….”
“네놈이 하계에 있을 때, 놈은 청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청염이요?”
“그래.”
“……아!”
기억났다. 마교의 성화 청염(靑炎).
그게…… 신의 잔재였다고? 북리도천의 몸을 차지했던 그 잡불 놈이?
진무가 눈을 끔벅이며 묻자, 옥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기억하는 그 청염은 축융일 때의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저 소멸하지 않은 채로 다양한 모습을 하고 하계를 떠돌았지. 그러다 인간이 가진 오욕칠정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교라는 곳에서 화기(火氣)를 타고난 북리도천이라는 놈과 만나 그 몸을 차지한 게지.”
“…….”
“기억나지? 그때 니가 죽을 뻔한 거?”
“아, 그때!”
“그래, 하지만 말했듯 평화 협정을 맺었던 터라 손쓸 도리가 없었다. 내가 함부로 나섰다가는 지계와 또 한 번 전쟁이 일어났을 테니까.”
“…….”
말을 듣고 보니 점점 기억이 또렷해졌다. 당시 북리도천의 몸을 차지했던 잡불 놈과 싸우다 뜬금없이 태극과 묵룡혼원공의 요체를 깨달아 상단전이 열리지 않았던가?
그럼 그때 본 게……?
“꾸, 꿈이 아니었던 겁니까?”
“당연하지. 실은 그 싸움은 나도 지켜봤었다. 아마 귀모도 유심히 보고 있었겠지.”
“…….”
“그런데 니놈이 갑자기 태극의 요체를 깨닫고 등선을 해 버리려는 바람에 어찌나 진땀을 흘렸는지.”
옥황이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나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놈이 그때 엄청난 정신력을 발휘해서 등선을 거부하지 않았다면 육신을 얻은 청염 놈에 의해 하계가 한바탕 난리가 났을 게다.”
“…….”
“어쨌든, 그때 끝났다고 생각했지. 네가 소멸시켰다고 여겼거든.”
“아닙니까?”
“그래, 나도 얼마 전에 알았다. 청염이 지계에서 놈의 힘이 미약하게 느껴지더구나. 하지만 이내 사라져 버렸지. 아마 소멸되려던 찰나, 귀모가 손을 쓴 모양이야.”
“예?”
“놈을 지계로 데려간 것 같다.”
“……왜?”
“각성시키려는 것이겠지.”
“예?!”
“물론 다는 아닐 게다. 축융으로 각성해 버리면 귀모도 제어할 수 없을 테니까.”
“…….”
“다만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귀모가 평화 조약까지 어겨 가며 놈을 데려간 이유다.”
무덤덤한 옥황을 물끄러미 보던 진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그런데요. 저 혹시…… 저한테 시키실 일이라는 게?”
“확인해 보거라.”
“……뭘요?”
“청염이 진짜 지계에 있는 것이 맞는지.”
“…….”
너무 당연하게 말해서 대답할 기회를 놓쳐 버…….
“만약 그곳에 있는 게 확실하다면 그 즉시 내게 전하거라.”
“……전쟁이라도 벌이시게요?”
“귀모가 꾸미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지겠지.”
진무는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끼며 옥황을 응시했다.
전쟁? 그래, 필요하다면 해야지.
하지만 중요한 건 왜 자신을 선택했느냐였다.
“저기요? 옥황상제님?”
“왜?”
“그러니까 저보고 그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하라는 말씀은 아니죠?”
“어차피 갈 생각이지 않으냐? 지계의 기록에서 명진과 청우의 과를 지우기 위해.”
“…….”
이런 쌍! 그거랑 그거랑 같냐?
“같아.”
“멋대로 읽지 마!”
“응?”
“예?”
“뭘 어쩌라고?”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생각이 입으로…… 나온 게 아니라! 이봐요! 이건 아니잖습니까?”
“똑같다니까? 그냥 임무만 더해지는 거야.”
“귀모는 옥황상제님과 동등한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까?”
“어.”
“……허, 정말 대답 한번 시원시원하시네요.”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
옥황이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째 불안하더라니…….
아니 그런데 잠깐만,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면 직접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전쟁을 해서라도 청염이라는 놈을 빼앗아 오면 되는 거 아니냐고!
“안 돼.”
“왜요!”
“내가 나서면 귀모가 가만히 있겠느냐? 곧바로 전쟁이 날 것이다. 만에 하나 내가 잘못 느낀 것이라면 어찌하느냐?”
“실수도 하십니까?”
“신의 실수. 못 들어 봤냐?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뭔가 듣고 싶지 않은 인정이네요.”
“…….”
“그런데 제가 귀모에게 들키지 않고 지계로 갈 수는 있나요?”
“그래.”
“예? 가능해요?”
“몰랐냐?”
“알았겠어요?”
그런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듯 퉁명스레 대꾸하는 진무를 가만히 보던 옥황이 가볍게 혀를 찼다.
“쯧, 네놈이 등선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더냐?”
“태극?”
“옳지, 태극이다. 그로 인해서 네놈이 음양의 힘을 동시에 가진 특이한 힘을 가지게 된 게지. 그리고 네놈이 천계로 와서 두장군이 된 이유는 또 무엇이더냐?”
“……이유가 있었어요?”
“암,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네가 산신령 따위가 아니라 북방칠수를 선택하고 두장군까지 오른 것은 음양의 힘을 가진 신수, 현무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진무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 그랬나요?”
“몰랐냐?”
“당연히…….”
“하긴, 심은 씨앗이 어찌 모두 다 제대로 필까? 선택을 받았다 한들 오르지 못하는 놈들이 태반이었다. 네놈이 여기까지 오를 것은 나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
“아직 상선 정도라 모르겠지만, 네놈이 이대로 자라서 신력이 상제급에 오르면 현무의 힘이 발현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사방신(四方神) 중 하나가 되는 게지.”
“…….”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다만, 그것이 본시 네가 가진 운명이었다. 네놈이 묵룡혼원공을 익힌 것, 무당의 선기를 익힌 것, 그 두 힘을 합치는 양의심공을 익힌 것, 그리고 네놈의 이름이 진무인 것까지도.”
“예? 그게 왜?”
“진무는 본시 현천상제의 이름이자, 현무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음양의 힘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해서 들키지 않고 지계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신선이지.”
“아…….”
진무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뭐, 좋습니다, 좋아요. 그런데 왜 이제야 확인하시려는 건데요? 그 중요한 걸.”
“네가 나의 힘을 버틸 만큼 성장한 걸 알았으니까.”
“만 년이나 지나서요?”
“선대의 옥황들이 그러했듯 영겁을 살아온 내게 시간의 잣대를 댈 참이더냐?”
“…….”
……어쩐지 만 년이나 지난 걸 ‘얼마 전’이라고 표현하더라.
영겁이나 살아서 좋겠다, 이 쉐끼야!
“어허! 욕은…….”
“죄삼다. 오래 사시는 게 너무 부러워서 그만.”
진무의 발 빠른 사과에 째려보던 옥황이 픽 웃으며 말했다.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살아지는 일이더냐? 그것이 내 운명이다. 그러니 너도 그냥 팔자려니 생각해라.”
팔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러니까, 지금 당신 말은 원래 내 운명이 그렇다는 거잖아. 진무, 아니 혁련무강일 때부터 그렇게 정해진.
왠지…… 운명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것만 같잖아.
“그건 아니지. 운명을 타고났다 하여 모두가 같은 길을 걷지는 않는다. 선택이 있었고 노력이 동반되었기에 목표에 도달한 것이지.”
“…….”
자연스럽게 마음의 소리에 답하는 옥황을 향해 진무가 눈을 샐쭉하게 떴다.
“거, 남의 마음을 자꾸 읽고…… 그냥 혼자 말씀하실래요?”
“허허, 그 또한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서.”
“염병할…….”
한참을 고민하던 진무가 힘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거절하면요?”
“청우는 돼지로 환생하고, 명진은…… 어디 보자, 날파리 정도로 할까?”
“그걸 멋대로 정해도 되는 겁니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냐?”
“…….”
하늘의 왕.
제기랄…… 그 정도 힘은 있겠네.
좌우지간,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거절하면 스승님은 진짜 날파리가 될지도 모른다.
한참을 고민하고 고민하던 진무의 얼굴에 마침내 묘한 결의가 생겨나자 옥황이 빙긋 웃었다.
“잘 생각했다.”
“…….”
제발 내 입으로 말하게 해 줘, 응?
어쨌거나 답은 뻔했다. 눈을 찡그린 진무가 송곳니를 완연히 드러내며 말했다.
“이런 씨부럴! 까짓거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좋습니다! 어디 한번 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