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42
12화
“다, 당신은 대체?”
“…….”
진무는 답하지 않고 모랫바닥을 쳐다보며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흠, 일단 피해야겠는데?”
“예?”
“좀 아플 거야.”
“……아프다니 그게 무슨…… 끄아악!”
짓궂은 미소를 동반한 그의 말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이생은 머리 가죽이 뜯겨 나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별안간 그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진무가 이생을 풀 뽑아내듯이 당기며 허공으로 뛰어올랐기 때문이었다.
“크아악! 이 빌어먹을 사람(?) 자식아!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냐!”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들이닥친 고통에 이생의 입에서 비명 섞인 욕설이 터져 나왔다. 당연했다. 아무리 죽지 않는 생을 부여받은 나찰귀라고 해도 고통을 느끼는 것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놀랐어?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뭐라고, 이 개…….”
웃음기 어린 말에 눈을 부라리던 이생이 섬찟한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봤다.
“……!”
그들이 서 있던 곳의 모래가 움푹 꺼지는 것과 동시에 지옥으로 가는 통로처럼 검은 빛줄기가 솟구쳤다.
쿠아아아! 터텁!
발밑에서 쩍 벌어졌다가 다물리는 거대한 아가리.
“대, 대사충?”
심지어 좀 전에 저 빌어먹을 자식에게 나가떨어진 놈도 아니었다. 또 다른 놈이 나타나 그들을 단번에 삼키려 한 것이다.
만약 뛰어오른 것이 늦었다면……. 이런 시부랄, 하마터면 먹잇감이 될 뻔했네.
이생은 마른침을 삼키며 진무를 올려다봤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머리채가 잡힌 고통보다는 안도감과 고마움이 먼저였다.
하지만 안도는 길지 않았다. 피했다 해서 위험이 사라진 것이 아니지 않은가?
-크르르르.
진무로 인해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헛배만 부른 꼴이 된 대사충이 길고 두꺼운 몸을 드러낸 채 검은 눈알을 번들거렸다. 화가 난 것이다.
허공에 있는 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입맛을 다시는 것을 보면 다시 공격할 생각인 것이 분명했다. 진무의 손을 양손으로 움켜잡아 최대한 고통을 줄이며, 이생은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대체 이놈, 아니 이분의 정체가?
확실히 사람……일 리가 없지. 어찌 사람이 허공에 떠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가만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도록 고통스럽고 무거운 지계의 공기 속에서.
나찰귀인 자신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오직 판관 이상급 대괴, 혹은 그 이상은 되어야 할 수 있었다.
그럼 판관? 하지만…… 도산옥에서는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어쭈, 요놈 봐라? 야려? 너 지금 날 먹잇감으로 여기는 거냐?”
“……?”
“야, 지계 놈.”
“예?”
“이름은 모르겠다만 하나 묻자.”
“무슨?”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어찌 되냐? 혹시 누가 잡으러 오고 그래?”
“……?”
왜, 왜 그걸 묻지? 옆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위압감으로 미루어 판관이 분명한데……. 허면 막 부임해 온 신임 판관?
염병할, 어쩐지 처음 보는 얼굴이라 했더니…… 그럼 결국 잡힌 건가?
하지만 차라리 그게 나았다. 대사충의 위액에 녹아내리는 것보다야 도산옥 판관들의 도마형이 덜 고통스러울 것이 아닌가?
“대답해 봐. 잡으러 와, 안 와?”
“……안 옵니다.”
진무의 물음에 이생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대답했다.
하긴, 초짜라면 모를 수도 있겠지. 대사충은 도산옥에서도 한참 떨어진 사막에만 살고 있으니까.
“그래?”
“예. 도산옥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지금은 옥주님과 판관님들이 모두 자리를 비우신 터라.”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이생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갑자기 손을 쭉 뻗어 펼쳤다.
후우웅!
“허헉!”
이생은 깜짝 놀랐다. 그의 손에서 갑자기 거무튀튀한 봉이 튀어나온 것이다.
진무는 봉을 쓸어 보며 씩 웃었다.
법보가 되었을 당시 금빛이었던 것이 변색된 것을 보면, 아마도 자신의 기운이 신력에서 마력으로 변한 것 때문인 듯했다.
물론, 이편이 훨씬 더 보기 좋았다.
그리고 그걸 본 이생은 진무가 신임 판관이라고 더욱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판관 맞네, 확실하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법구를 쓸 수 있을 리가 없…….
그런데 잠깐! 몽둥…… 아니, 법구를 왜 꺼냈지? 설마 대사충과 싸워 보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건……?
“지계의 모래 짐승 따위가 감히 나를 먹잇감으로 여겨? 싸가지 없이?”
“……!!”
진무가 한 손으로 붕붕 소리가 울리도록 봉을 휘두르자 이생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이런 미친! 싸우려는 게 맞잖아!
서둘러 말려야 한다. 대사충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분명한 저 초짜를!
“파, 판관님!”
“응?”
“설마 싸우시려는?”
“당연하지. 소란 피워도 암도 안 온다는데 저런 눈깔 보고 참을 수야 있나.”
“대사충인데요?”
“그게 뭐?”
“뭐냐니요? 아직 초짜…… 아니, 막 부임하셔서 모르시는 모양인데, 대사충은 사괴들 중에서도 최강에 속하는 놈들입니다.”
“호오, 그래?”
“암요! 괴, 아니 요(蟯)를 넘어 마(魔)를 이루신 상급 판관님들도 함부로 대적하지 못하는 놈들입니다. 껍질은 말도 못 하게 단단하고, 포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데다 무리 짓는 습성까지 있다고요!”
“오호! 그으래애?”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놈들을 죽일 수 있는 분은 육계마왕 중 한 분이시자 도산옥주이신 협비 님뿐입니다.”
“오!”
진무가 더욱더 눈을 반짝이기 시작한다. 이생은 증폭되는 불안감을 억누르며 그의 입을 쳐다봤다.
“그 말인즉, 저놈이 기준이란 말이지?”
“예?”
“아주 잘됐네.”
“……뭐, 뭐가 잘돼요?”
“소란을 피워도 아무도 오지 못한다며?”
“그건 그런데…….”
“좋아, 그럼 싸운다.”
“……!”
누구랑? 대사충이랑?
미쳤냐, 지계 물정도 모르는 초짜 판관 새끼야? 뒈지려면 혼자 뒈져라! 도망치자고 설득한 거잖아! 왜 전의를 불태우는 건데!
하지만 이생의 마음 따위와는 상관없이 진무는 이미 검은 봉, 여의를 휘두르며 대사충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물론, 이생의 머리카락을 꼭 움켜쥐고…….
“아아악! 머리! 머리 아프다고, 이 초짜 판관 새끼야아!”
이생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지만, 진무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대사충? 그딴 게 뭔진 모른다. 다만 지계 놈이 분명히 말했다. 강하다고. 육계마왕의 한 사람인 협비만이 처리할 수 있다고.
옥황이 말하길 그들 하나하나가 천계의 상제급에 비견될 만한 실력자라고 했다.
그러니 확인한다. 저 대사충이라는 모래 벌레를 이용해 지금 자신의 실력이 지계의 어느 선까지 통용될 수 있을지. 게다가 여의를 시험해 볼 좋은 기회이지 않은가?
-쿠아아아!
진무가 한 손엔 이생, 한 손엔 여의를 들고 날아오자 대사충이 당장에 둘을 집어삼킬 듯 입을 크게 벌리고 포효했다.
“이 새끼가! 오냐! 니 아가리가 얼마나 큰지 재 주마!”
진무가 대사충의 입을 향해 여의를 힘차게 뻗으며 외쳤다.
[크게 뻗어라!]구오오오!
동시에 삽시간에 거대해진 여의가 대사충의 아가리에 틀어박혔다.
콱! 빠드득!
대사충이 냅다 여의의 끝을 깨물었다.
까드드드드.
크기를 더하려는 여의와 꽉 다문 대사충의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가 사막을 뒤흔든다.
“칫!”
진무가 더욱 힘을 집어넣었지만, 여의는 더 이상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았다.
법구란 본시 사용자의 힘을 증폭시켜 대단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무한하지는 않다. 애초에 주인의 힘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즉, 지금 진무의 힘이 딱 거기까지라는 뜻이다. 여의를 각성시킨다면 또 달라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뭐, 좋아. 아직은 이 정도란 말이지?”
진무는 약간 실망한 듯 중얼거리며 여의를 당겼다.
“…….”
한데 빠지지 않았다.
-크르르.
때맞춰 대사충이 여의를 놓지 않으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이 새끼가? 너 지금 해보자는 거냐?”
작게 만들어 빼내면 그만이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뭔가 힘 싸움에서 꼬리를 말고 물러나는 것 같달까?
“야, 모래 벌레. 이거 장만한 지 얼마 안 된 새 거거든?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놔라.”
-크르르르.
선심 써서 경고도 했건만, 대사충은 여의를 놓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안 놔? 그으래? 근성 있네. 좋아, 그럼 어디 한번 버텨 보든가!”
힘차게 소리치는 진무의 모습에 대사충의 눈동자에 언뜻 불안감이 스치는 순간…….
“후라얍!”
거친 기합성과 함께 진무가 힘줄이 불끈 돋아 오른 팔뚝을 온 힘을 다해 들어 올렸다.
솨아아아!
그리고 그 순간 모래 속에 반쯤 파묻혔던 대사충의 거대한 몸뚱어리가 쑥 빠져나왔다. 밭에서 무 뽑혀 나오듯이.
-크륵?
졸지에 여의를 문 채 허공에 떠 버린 대사충이 당황 어린 눈빛으로 진무를 바라봤다.
“아니야, 막 불쌍한 눈빛으로 그렇게 보는 거 아니야.”
-크르륵?
“너 껍질이 그렇게 단단하다며? 내가 하계에서 너 같은 놈 두들겨 팬 적이 있지. 바로 이런 방법으로!”
후우우웅!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은 진무가 들어 올렸던 여의를 아래로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쓸데없는 근성으로 여의를 물고 있던 대사충이 모랫바닥에 거칠게 부딪히며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아무렴, 모래라도 그 속도면 아프겠지. 껍질이 아무리 단단해도 그 속살은 연할 테니까.
“멀었다! 이 빌어먹을 모래 벌레 자식아!”
슈아아악! 콰아앙!
기세 좋게 외치며, 진무는 여의를 물고 놓지 않는 대사충을 좌우로 번갈아 휘둘러 패대기치기 시작했다.
-쿠아아악!
결국, 대사충은 지계에 살면서 난생처음 겪는 고통에 입을 벌려 여의를 놓고 모래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
진무의 손아귀에 잡혀 생으로 머리 가죽이 뜯기는 아픔을 경험하던 이생은 눈을 화등잔처럼 크게 떴다.
뭐 이런 무지막지한 놈이 다 있어? 저 무시무시한 대사충이 도망을 가 버렸다고?
서, 설마 이놈……. 초짜 판관이 아니라…… 요급에 오르신 판관이셨나요?
“어쭈? 이것들 봐라?”
“……?”
여의를 작게 만들어 갈무리하던 진무가 별안간 눈썹을 역팔자로 만들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곧바로 드러났다.
-크르르르.
사방에서 대사충들이 쑥쑥 모래를 뚫고 나온다. 도망친 놈이 무리를 불러온 것이다. 이생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이건 안 된다. 머리끄덩이를 잡은 이 의문의 판관이 한 마리를 상대로 엄청난 위용을 보이긴 했지만, 무리를 상대로 이길 순 없다. 서둘러 도망쳐야 했다.
“파, 판관님! 어서…….”
“캬악! 퉤!”
“…….”
“이 새끼가 얍삽하게 처맞더니 친구를 불러왔다 이거지? 그럼 내가 쫄 거 같아?”
“…….”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
지금 이 상황이 화를 낼 일이냐? 한 마리가 아니라고! 무리라고 이 자식아!
하지만 이생이 현실을 깨우쳐 줄 틈도 없었다. 이생의 머리를 잡아당겨 휙 공중으로 던진 진무가 여의를 양손으로 잡았다.
“니들은 오늘 뒈졌어!”
슈아아악!
이생은 허공에 높이 뜬 채로 볼 수 있었다.
뿌각! 빠바바바박!
검은 궤적을 수없이 만들며 대사충 다섯 마리를 무자비하게 후드려 패는 진무의 모습을.
-쿠악! 퀘에에엑!
아, 대사충은 저렇게 우는구나…….
“어딜 도망가! 이 씨부럴 놈들아! 감히 날 먹으려고 해!? 죽어! 죽어어어!”
뿌가가각! 빠박! 빡!
-꾸에에에엑! 께엑!
진무가 흉포하게 날뛸수록 대사충들의 울음소리에 구슬픔이 더해졌다. 검은 궤적이 그려질 때마다 이젠 이생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무시무시하다. 대사충보다 무서운 판관님이셨구나. 나는 그런 무시무시한 분께…… 어?
이생이 무슨 생각에선지 흠칫 놀라며 눈을 끔벅였다.
잠깐만, 나도 혹시 도산옥을 도망쳤다는 이유로 저렇게 맞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