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44
14화
청상의 불안한 눈빛에도 진무는 차근차근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었다.
“더 아는 거 있어?”
“예?”
“귀나 요의 능력이라든가, 혹은 그 강함이라든가…….”
“제가 아는 건 그게 단데요?”
“다야?”
“예. 고작 나찰귀인 제가 뭘 얼마나 알겠습니까?”
“흐흠…… 하긴. 그럼 됐네.”
이생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일어났다.
돼? 뭐가 돼?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생의 눈에 어느새 진무의 손에 잡혀 있는 황금빛 봉이 비쳤다.
뭐지? 설마 주위에 적이?
이생이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휙휙 돌렸다.
하지만 조용하다. 의심 가는 곳을 몇 번이고 쳐다봤지만 아무것도 없다.
그럼 대체 왜?
그러다 이생은 진무의 시선이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
이생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진무가 친절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혹시 제가 도주했다는 이유로 형벌을 내리시려는 겁니까?”
“응?”
“역시 그렇군요. 대사충에게서 구해 주실 때부터 이미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대사충의 뱃속보다야 몽둥이에 맞는 형벌이 낫겠지요.”
“…….”
체념한 듯 말하며 한숨을 내쉬는 이생의 모습에 진무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벌? 무슨 형벌?”
“예? 형벌이 아닙니까? 그럼 왜 갑자기 눈을 그리 흉흉히 뜨고 몽둥이를?”
“넌 유일한 목격자야.”
“……목격…… 예?”
“우린 들키면 안 되거든.”
“…….”
진무가 씨익 웃자 이생은 더욱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들키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
“잠깐 고민하긴 했는데, 역시 알 거 다 알아낸 마당에 목격자를 남겨 두면 곤란할 것 같아. 사실 따지고 보면 너도 나쁜 놈이었던 거잖아.”
“…….”
“그러니까 죽음을 달게 받아라.”
“……예에?”
진무가 사형 선고를 내리며 살벌한 표정으로 다가왔지만, 이상하게도 이생의 눈에 어린 것은 놀람이 아니라 어이없음이었다.
“그게 뭔 개뼉다구 같은 소립니까?”
“응?”
“죽이다니요?”
“…….”
“요에 오르신 분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농담 아닌데?”
“…….”
진무가 눈살을 찌푸렸고, 청상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바닥에서 자충을 꺼냈다. 이생은 그 모습을 보며 다시금 멍하니 물었다.
“말이 됩니까?”
“뭐?”
“내 참, 농담 맞구만, 뭘.”
“어어?”
이생의 반응에 도리어 진무가 당황하고 말았다.
뭐야? 죽인다는데 왜 이렇게 당당해? 마땅히 살려 달라고 울며 빌어야 하는 거 아니야? 뭐 이런 죽음에 초탈한 듯한 지계 놈이 있지? 혹시 한번 죽어 봤던 놈이라 그런가?
“이보세요. 이름이 어찌 되는지 모르지만, 지계에는 죽음이 없다는 것을 몰라요? 아무리 요에 오르셨다고 해도 그렇지, 형벌이면 모를까 죽음을 어떻게 내립니까?”
“으응? 그게 무슨 소리냐?”
“예?”
“무슨 소리냐니까?”
“…….”
진무의 다그침에 이생의 머리가 아예 어깨에 붙을 듯이 꺾였다.
“예에? 정말 몰라서…… 그러시는 건가요?”
“그러니까 묻는 거 아냐!”
“…….”
정말 모른다고? 그럴 수가 있는 건가?
이생은 눈을 끔벅거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혹시 요로 환생하셨어요?”
“응?”
“아니, 황당하긴 하지만 지계의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모르시니까 묻는 거 아닙니까? 그게 가장 기본인데……. 흔하디흔한 망자나 아귀들도 아는 걸 요가 모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
이생의 말에 진무가 눈을 끔벅였다.
환생? 하긴 했지. 아주 오래전에…….
그런데 잠깐만, 뭘 더 아는 모양인데? 일단 좀 더 들어 봐야 하나?
“야!”
“예?”
“상세하게 설명해 봐. 지계에 죽음이 없다는 게 뭔 말이야?”
“……허! 이거 원…… 진짜 모르는 겁니까?”
“그러니까 묻지.”
“뭐 이런 황당한 요가 다 있지? 거기! 판관도 몰라요?”
휙 쳐다보자 판관이 민망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인다. 이생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대체 뭐야, 이 새끼들? 니들 요 맞냐? 판관 맞아?
“하아, 정말 황당하네. 막 죽은 망자나 아귀도 아니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물으시니 설명은 해 드리지요. 이 지계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타살도 자살도 안 되지요.”
“…….”
“생각해 보세요. 지계에 있는 것들이 전부 죄 많은 망자인데, 죽어 버리면 죄를 물을 수 있겠어요?”
“아!”
“그래서 못 죽습니다. 대신 고통은 그대로지요. 그래야 형벌이니까.”
“음…… 그렇구나. 형벌을 받기 위해 불사의 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구나.”
“암요. 그런 거지요.”
“흠…….”
진무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계의 인간들이 꿈에도 소원하는 불사(不死)의 경지. 등선한 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부여되는 그런 권능이 지계의 죄인들에게는 저주나 다름없다는 거다.
뭐, 끔찍하긴 하군. 형벌을 받기 위한 불사라니…….
“판관 이상급은 몰라도요. 망자나 아귀, 저희 괴들에게 죽음이라는 건요? 정말 꿈과 희망과도 같은 거라구요. 매일 죽고 싶은 삶을 살아야 하니까.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스럽게 재가 되어도 다시 깨어나면 멀쩡하단 말이죠. 그럼 또 불구덩이로 들어가야 하고……. 이건 뭐 고통이 익숙해지지도 않아요. 도산옥은 어떤 줄 아세요? 매일 몸이 썰려 나갑니다. 아시겠어요? 운이 좋아서 괴라도 되지 못하면 수십, 수백, 수천 년 동안이나 그 고통 속에서 사는 겁니다. 그게 일상이라구요! 시팔, 죄를 뉘우치기는 그냥 독기만 가득 쌓여요! 알아요?”
“…….”
으음, 그래. 그런 정도면 정말 죽는 게 꿈과 희망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럼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냐?”
“있기야 하죠.”
“있어?”
“귀모님이나, 그 권능을 부여받은 육계마왕님께 소멸되는 거죠.”
“아!”
“하지만 그게 어디 쉽습니까? 정말이지 지계가 놀랄 정도로 큰 공을 세우지 않으면 그런 축복은 내려지지도 않아요. 또 그런 큰 공을 세웠는데 왜 죽습니까? 그 정도 되면 지계에서도 이놈 저놈 마음대로 괴롭히며 떵떵거리는데…….”
“그것도 그러네.”
“정말 답답하네요. 대체 어떻게 이걸 모를 수가 있죠? 요의 경지는 딱지치기해서 땄습니까?”
“…….”
진무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생을 째려봤다.
모를 수도 있지, 이 자식아! 그리고 너 지금 너무 선을 넘는다? 좀 안다고 무시해? 어?
“그런데 말이야. 천계로 넘어온 괴들은 소멸되지 않아?”
“소멸되죠.”
“…….”
“신력은 마력과 상극이니까요. 그래서 저도 천계로 가는 틈을 찾고 있었던 거구요.”
“응? 틈을 찾고 있었다고?”
“예. 천계로 넘어가기만 하면 신력을 가진 이에게 죽을 수 있을 테니까.”
이생의 말에 진무가 피식 웃었다.
죽고 살고의 문제가 아니다.
옥황의 말에 따르면 천계로 넘어오는 수많은 괴가 틈을 통해 온 것이라 했다.
다분히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침투시켰다는 소리였고, 눈앞에 있는 이생 따위는 상대도 안 될 만큼 강한 녀석이 수두룩 빽빽하다.
즉, 이생과 같은 일반 괴들은 모르는 통로가 있다는 소리다. 가령 귀모가 직접 열어 괴들을 쏟아붓는 통로라든가…….
뭐, 하지만 굳이 아무것도 모르는 이생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어쨌든, 죽는 게 소원이라면 굳이 천계로 갈 필요는 없겠네.”
진무가 갑자기 일어나 여의를 들어 올리자 이생이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
“뭐가 필요 없어요? 쇠봉은 또 왜요? 죽지도 않는 저를 때리시게요?”
이생의 말투에 무시가 가득했지만, 진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 목 빼.”
“예?”
“소멸시켜 줄게. 니가 그렇게 희망하는 대로.”
“거참, 귓구멍이 처막히셨나? 안 된다니까요?”
“돼. 난 신선이거든.”
“아! 그렇다면야…… 예?”
해맑게 웃는 진무의 말에 이생이 답하다 말고 눈을 끔벅였다.
뭔가 대화 중에 이상한 게 끼어든 느낌이었다. 방금 뭐랬지?
“시, 신선요?”
“어. 그중에서도 제법 격 있는 상선.”
“아……. 그럼 저 양반도?”
“신선이지.”
“아…… 가 아니라 신선이 왜?”
“비밀 임무 때문에 잠입했어. 니가 찾고 있던 그 틈으로.”
“아! 그럼 저는 진짜로?”
“응, 죽는 거지.”
진무가 힘껏 움켜쥔 여의를 높이 들어 올렸다.
“축복 간다, 목 빼.”
“…….”
멍하니 진무를 쳐다보던 이생이 순간 버럭 외쳤다.
“잠까안!”
“……?”
“잠깐만요. 진짜 신선 맞아요? 신력이 안 느껴지는데?”
“변환했거든.”
“변환요?”
“그래.”
“지금 신력 대신 마력을…….”
“어.”
“그게 가능한 일이었나요?”
“남들은 안 되는데 나는 돼. 청상도 그렇고.”
“…….”
“흠, 좋아. 많은 걸 설명해 줬으니까 특별히 보여 줄게. 지계에서 처음 죽이는 놈도 기념할 겸. 나는 마음씨 착한 상선이니까.”
마음씨…… 그렇게 안 보이던데?
이생이 의문을 품건 말건, 진무는 곧바로 자신의 기운을 바꿨다.
후우욱!
순간 검었던 쇠봉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 찬연한 성스러운 기운의 청량감에 이생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무슨 이런 공포스러운 기운이…….
진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스러운 신력에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그리고 곧이어 엄청난 고통이 닥쳤다.
“끄으으…….”
진무가 제 목을 양손으로 움켜쥐며 고통스러워하는 이생에게 천천히 여의를 겨눴다.
“편하게 보내 줄게. 이제 그만 죽어.”
“자, 잠까…… 끄억, 끄어억.”
“…….”
손을 뻗어 버둥거리는 이생의 말에 여의를 내리며 신력을 소멸시킨 진무가 눈살을 찌푸렸다.
새끼, 죽기 전이라고 할 말 더럽게 많은 모양이네.
“왜! 뭐? 시간 없으니까 빨리 말해.”
“허헉, 허억…….”
이생은 가쁜 숨을 고르며 진무를 바라봤다.
지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이상하다 했더니, 진짜 신선일 줄이야…….
“요, 아니 상선님.”
“……?”
“정말로 임무를 위해 천지간의 틈을 넘어오신 겁니까?”
“어.”
“비밀 임무 때문에요?”
“맞아.”
“……!”
맞단다.
정말로 신선이란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한 임무를 끝내고 돌아갈 방법이 있단 말이 아닌가?
“그, 그럼! 제가 돕겠습니다.”
“뭐?”
“대신, 저를 그 틈을 통해 천계로 데려가 주십시오.”
“……뭐어?”
“부탁드립니다. 분명 제가 쓰일 곳이 있을 겁니다.”
“지랄하네. 그래서 뭐? 날 도우면 천계로 가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아닙니다. 죽기 위해섭니다.”
“죽어?”
“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여기서 죽으나 저기서 죽으나 뭔 상관이라고?”
“환생할 수 없으니까요.”
“응?”
“천계에서 소멸된 괴는 모든 죄를 용서받고 환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계에서 소멸되면…… 그걸로 끝입니다.”
“……싫어.”
“예?”
“너 나쁜 놈이었을 거 아냐.”
“…….”
이봐요, 상선 나으리. 이렇게까지 단칼에 거절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생은 바싹 마르는 입술을 혀로 축이며 머리를 굴렸다.
틈을 찾아 천계로 가려던 이유가 뭔가. 다 환생을 위함이다.
실패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눈앞에 상선이라는 놈이 떡하니 나타난 마당에 이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그럼 어쩌시려구요?”
“뭐가 어째?”
“등록도 안 된 요가 돌아다니면 의심받지 않을 것 같습니까?”
“…….”
“당장에야 옥주도 판관도 없지만! 그들이 돌아오면 무조건 걸립니다.”
“음…….”
그 말에 진무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견 타당성이 있다.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했고…….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응?”
“제가 신분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니가?”
“암요! 이래 봬도 도산옥에 갇힌 망자와 아귀들을 관리하는 도산옥 등록소 소속의 나찰귀입니다!”
진무가 관심을 보이자 이생이 다급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신분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마음 놓고 지계에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그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도록!”
“도망쳤다며?”
“예.”
“돌아가도 괜찮은 거냐?”
“물론입니다. 제가 도망친 건 아무도 모릅니다.”
“……너, 거짓말이면 죽는다.”
“암요! 암요!”
“흠, 좋아. 믿어 보지.”
진무의 허락에 이생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는데, 청상이 대뜸 반대하고 나섰다.
“사숙! 그게 무슨 소립니까? 설마 지계 놈의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안 믿어.”
“……예?”
“안 믿지만, 도움은 될 거 같아.”
“하지만 만약 저놈이 배신하기라도 하면?”
“…….”
청상의 우려에 진무는 씩 웃었다.
배신한다고 해도 뭔 상관인가? 품속에 옥황이 준 귀환옥이 있는데, 여차하면 튀면 그만이지.
“저기, 상선님? 그런데 무슨 임무인지 물어도 될까요?”
“임무? 음…… 그건 말해 줄 수 없고,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있지.”
“그게?”
이어지는 진무의 사악한 웃음에 이생도 청상도 궁금증을 드러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부터…… 내가 지계를 접수한다!”
“…….”
“…….”
멍하니 진무를 보던 청상과 이생이 동시에 외쳤다.
“이런 미친!”
“닥쳐! 이 미친 상선아!”
빡! 빠바박!
그러곤 곧바로 진무의 손에 들렸던 여의에 처맞고 바닥에 처박혔다.
이 새끼들이. 안 되긴 뭐가 안 돼? 내가 하면 하는 거지.
이미 맘먹은 이상! 지계는 내 거다, 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