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46
16화
후두둑! 콰아앙!
스거걱!
진무가 여의를 휘둘러 알차게 구긴 검수를 청상이 마무리하며 걸은 지 한참. 진무는 혀를 내둘렀다.
정말 우라지게 넓다. 한나절이나 길을 뚫고서야 겨우 그 끝자락에 도달하다니.
“청상, 저기가 도산옥인 모양이다.”
“예.”
진무의 손짓에 청상이 힐끗 빼곡하게 겹친 검수들의 가지 사이로 보이는 풍경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산옥(刀山獄). 이생의 말에 따르면 육계의 하나이자 마왕 협비가 옥주로 있는 곳.
가지 사이로 살짝 보이는 풍경이 고작임에도 정말 넓었다. 천계 삼원의 하나로, 무려 네 곳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천시원보다도 훨씬 더 커 보이지 않는가? 고작 육계 중 하나일 뿐인데…….
그 규모에 놀라다, 진무는 이내 피식 웃었다.
“하긴, 죄지은 놈이 좀 많겠어?”
원래 이승이라는 곳은 착한 놈보다 나쁜 놈들이 훨씬 더 많다. 나쁜 놈이 열 명이면 착한 놈은 한 명? 아마 그 정도도 많이 쳐 준 것일 테지. 그 많고 많은 죄업을 쌓은 놈들을 수용하자면 당연히 천시원보다 클 수밖에.
그리고 도산옥이라는 곳은 이승에서 폭력을 일삼은 죄인들을 긁어모아 가두어 두고 형벌을 내리는 곳이라지 않던가? 그 말인즉슨…….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란 뜻이지, 크흐흐.”
폭력!
그 얼마나 가슴 떨리게 하는 말인지!
폭력적인 놈들을 조질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검수들도 만만치 않았다. 최후의 방어선이라는 듯 이전보다 훨씬 더 촘촘하고 강력하게 공격해 왔다.
“빌어먹을! 거치적대지 말고 비키라고, 이 나무 새끼들아!”
“…….”
어째서인지 콧김까지 씩씩 뿜어 대며 흥분하는 진무의 모습에 청상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째서 또 저러실까? 목소리에는 분명 신경질이 잔뜩인데, 표정만 보면 너무도 신난 것 같지 않은가? 또 무슨 생각을 하시기에…….
하지만 결론은 금방 나왔다. 무슨 생각이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비록 방법이 정상적이지는 않았으나, 사숙이 옳지 않은 방향으로 걷는 것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저 그 길이 편하도록 돕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사숙.”
“…….”
“제가 앞서겠습니다.”
“니가?”
“예.”
청상의 말에 진무가 힐끗 그의 손에 들린 자충을 쳐다봤다.
귀모의 검이라 그런가? 분명 자신보다 신력이 낮은 청상인데, 자충을 통해 마력으로 변환된 뒤로는 그 끝을 가늠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비록 다시 재생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의로 구기는 것이 고작이던 검수들을 모조리 잘라 놓았을 정도이니…….
“좋아! 가거라! 청상! 네게 한번 맡겨 보마!”
“예!”
청상이 앞으로 나섰다. 검수림을 곧게 헤쳐 나오는 내내 진무의 뒤를 지키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자신감은 한껏 차오른 상태였다.
진무의 뒤를 쫓았기에 자충이 가진 힘을 아직 마음껏 써 보지도 못했다. 또한 본시 도사였음에도 악(惡)을 행하는 자를 참함에 머뭇거려 본 적이 없다. 독하디독한 악인에게 인정이 다 무슨 말인가?
계도보다는 멸하는 것. 그것이 도사로서 청상이 가진 품성이자 생전에 진무에게 배운 하나의 진리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물론 무조건 죄를 물어서는 안 된다. 죄를 지은 이유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여긴 지계. 이곳에 있는 놈들은 죄업이 쌓이고 쌓인 악인들이다. 즉, 이유 없이 죽거나 고통받아도 상관없는 놈들만 있다는 소리다.
또한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검수림은 그러한 죄인들을 무자비하게 막아서는 벽. 그딴 거 베는데 무슨 생각이라는 것을 하겠는가?
당당히 진무의 앞으로 나선 청상이 눈을 부릅뜨고 자충을 겨눴다.
“자충.”
나지막한 목소리에 서린 감정에 자충이 붉은빛을 토하며 거대한 참마도의 형상으로 변했다.
역시 귀물이다. 항시 피를 갈구하는 듯 포악한 느낌이 좀 걸리지만, 주인 된 자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있지 않은가? 또한 형상이 바뀌어도 무게는 그대로이니 거칠 것이 없었다.
“후흡!”
청상이 양손으로 움켜쥔 자충을 뒤편으로 길게 늘어뜨렸다.
꾸우우…….
자세를 낮추며 힘껏 밟은 발이 대지를 짓누르고, 굽힌 다리 근육이 팽팽히 차오르며 힘이 쌓였다.
차르륵, 차르르륵!
청상이 뿜어내는 힘 때문이었을까? 검수들이 긴장한 것처럼 서로의 몸을 날카롭게 비비며 틈을 살폈다.
그리고 잠시 간의 대치 끝에 공격할 준비를 마친 검수들이 청상을 향해 일제히 쏘아져 들어왔다.
쐐애애액!
날카롭게 끝을 세운 검수들이 사방에서 쏘아져 들어오는 모습은 마치 극의에 이른 당가의 만천화우 같았다. 보이는 모든 곳을 가득 메운 그것이 두 사람의 몸을 꿰뚫으려는 찰나, 진무는 싱긋 웃었다.
청상이 무얼 하려는지 알겠다.
당연했다. 어찌 알아보지 못할까? 지금 청상이 펼치려는 것은 생전에 자신이 단 일검의 기예로 변화시켜 둔 무당의 검공, 구혼탈백인데.
“가랏! 청상!”
진무가 우렁차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청상의 두 눈동자가 자충의 기운과 동화해 석양보다 짙은 적광을 토했다.
“하아압!”
팔뚝에 돋아 오른 힘줄이 터져 나갈 듯 툭툭 불거지고, 지면을 밟은 발에 힘이 실렸다.
쿠드드득! 쩌저정!
대지에 새겨진 족적과 함께 자충이 거대한 원을 그렸다.
후우우웅!
그리고 자충이 멈췄을 때, 진무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봤다.
“대단하네. 역시 귀모의 검인가?”
지긋지긋한 검수의 숲 안에 이토록 거대한 원형의 공간이 생겨나다니……. 황당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지만, 오래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망할 검수가 벌써 재생되고 있었으니까.
“청상!”
“예!”
외친 순간 청상은 이미 달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다음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파앙!
진무와 청상이 한 줄기 섬광처럼 완연히 모습을 드러낸 도산옥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검수림이 그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재생에 박차를 가했지만 소용없었다. 둘은 이미 도산옥의 입구에 다다라 있었다.
* * *
거대한 칼날의 성채 도산옥.
그 앞을 지키고 있던 두 마리의 괴는 눈앞에서 갑자기 증발하듯 썰려 나간 검수림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거, 검수림이……. 그리고 저건 또 뭐란 말인가? 새하얀 섬광처럼 날아오는…… 두 개의 물체?
“……!”
서, 설마 저 무시무시한 검수림을 뚫고 왔다고?
너무 당황한 터라 반응조차 못 하고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사이 청상과 진무가 그들의 눈앞에 들이닥쳤다.
“……호오.”
물끄러미 문지기로 보이는 괴들을 바라보던 진무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한 놈은 눈깔이 세 개가 달린 도깨비에다 또 한 놈은 개 대가리라.
검수림에 꼬치가 된 이생은 그래도 사람의 모습이었는데, 괴라고 다 같은 모습을 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누구?”
“…….”
그래도 사람 말을 하는지라 정확히 알아듣겠다. 괴의 물음에 여의를 역소환한 진무가 씩 웃었다.
“나? 진무.”
“진…… 누구?”
“…….”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에 도깨비 형상의 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무는 가만히 기다렸다.
새끼가 뭘 그리 궁금한 게 많아서 꼬치꼬치 캐묻고 지랄인가 싶지만, 문지기이니 신분 확인을 안 할 수는 없겠지.
도깨비 괴가 멍청하게 굴고 있자,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개 대가리 괴가 나섰다.
검수림을 뚫고 온 자들이 아닌가? 당연히 자신들 따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 요나 그 이상이 분명하다. 그러니 일단 공손히 대할 수밖에.
“누, 누구신지요?”
“진무라니까?”
“그런 이름은 들은 적이…….”
“됐고. 듣자니 이곳에선 센 놈이 제일이라던데, 맞냐?”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됐네.”
“예?”
개 대가리 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진무가 청상을 불렀다.
“청상아.”
“예.”
“굳이 아랫것들까지 내가 상대할 필요는 없겠지?”
“그야 물론…….”
“신분 확인이 뭐가 필요하겠어? 이런 곳에선 힘이 곧 신분이지. 안 그래?”
“흠, 그런 것 같네요.”
“좋아, 그럼 일단 조져. 그 검은 너무 위험하니까 쓰지 말고.”
“예.”
진무의 말에 청상이 반문 한번 없이 깍지 낀 손을 우두둑거리며 문지기를 향해 다가갔다.
자못 살벌한 기세에 두 문지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연히 황당할 수밖에. 아무리 무도하고 무자비한 지계라지만, 말인즉 그냥 패겠다는 뜻이 아닌가?
“딱 대! 이 새끼들아!”
“……!”
청상이 험한 말과 함께 갑자기 속도를 더해 파고들며 주먹을 날렸다.
퍼어억! 퍽퍽! 퍽퍽퍽!
“끄아아악!”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냥 팬다. 와중에 잘 팬다, 이유도 없이.
진무의 눈이 흥미로 반짝였다.
청상이 원래 저런 성격이었나? 산적이나 수적과 싸울 때 눈이 돌아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렇게 주먹부터 나가는 놈은 아닌데……. 뭔가 굉장히 달라졌네. 포악하고, 잔인하고…… 눈빛마저 시뻘건 게.
퍽 생경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러지 못하리란 법도 없었다. 이승에서 백육십 년이나 산 놈이 아닌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만 백수십 년이니 그간 성격이 변했을 수도 있겠지.
결론을 내리고 나니 눈앞에서 벌어지는 수준 높은 구타와 흥겹게 비명을 지르는 문지기 괴들의 모습이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자고로 상황이 변하면 사람도 변할 줄 알아야 하는 게지. 잘한다, 내 새끼.
“쿠에엑! 꽤에에엑!”
“어딜 도망가! 이 새끼들아! 니들은 오늘 죽었어!”
“…….”
괴성을 질러 대며 도망가는 괴들을 악착같이 짓밟는 청상의 잔혹함에 진무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청상 이 악랄한 녀석. 누가 보면 도사가 아니라 뒷골목 무뢰배 중에서 상 무뢰배라 해도 믿겠구나. 아니, 어엿한 지계의 마귀라고 해도 믿겠어!
진무의 열렬한 응원 속에서 청상이 문지기들을 얼마나 두들겼을까?
“이게 무슨 일이냐!”
소란을 들었는지 문지기 대장쯤 되어 보이는 놈이 제 부하들을 이끌고 달려오고 있었다.
허, 그놈 참 거대한 것이, 산중에 사는 불곰 같구나.
“청상아.”
“헉헉, 예! 사숙!”
“그만 멈추어라.”
이쯤이면 충분했다. 문 지키는 개를 때렸더니 주인 놈이 나왔지 않은가?
적을 섬멸해야 할 때는 성벽째로 뚫고 단번에 그 중심까지 파고들어 대가리부터 조지는 것이 좋지만, 자신들의 이름을 알릴 때는 그 입구부터 조지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
“예.”
문지기 괴 두 마리를 걸레처럼 짓밟은 청상이 여전히 흉흉한 눈빛으로 씩씩거리며 물러났다.
불곰(?)과 다가오는 한 떼의 괴를 보며 진무가 진한 미소와 함께 송곳니를 드러냈다.
“자, 비로소 막이 올랐으니 본격적으로 지계를 접수해 볼까? 주인이 자리를 비운 도산옥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