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47
17화
지계의 영혼들은 완전한 소멸을 당하지 않는 이상 항상 부활한다.
그것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혼이든, 괴든, 요든 모두에게 적용되는 불변의 법칙과도 같은 것이다.
물론 이승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불에 달구어 지져지고, 온몸이 갈가리 찢기고, 펄펄 끓는 물에 녹아내리고……. 온갖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죽게 되고, 다시 고통받기 위해서 살아나는 것이다.
하나 죽은 자리는 달라도 깨어나는 자리는 계별로 정해져 있다. 그래야 혼령 관리가 편하기 때문이다.
도산옥의 경우는 회천(回川)이다. 말 그대로 돌아오는 강이지만 강이라기보다는 커다란 소(沼)에 가까운. 부글부글 끓어 대는 진흙탕 위의 거품이 터진 자리에서 되살아난 망자들이 튀어나온다.
아무도 묻지 않는다. 왜 죽었는지, 또는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었는지.
어차피 되살아난 망자들이 가야 할 곳이야 뻔하지 않은가? 그들이 고통받던 형벌장이다.
해서 회천을 지키는 관리자인 괴들의 역할은 되살아난 망자들의 혼적을 확인하고 분류해서 각 형벌장으로 인솔하는 괴들에게 인계하는 것이 전부이다.
짐승, 즉 수괴(獸怪)의 일종으로 소와 같은 형상을 한 고두뢰도 회천을 관리하는 괴 중 하나였다.
늘 그랬듯, 오늘도 그는 회천의 밖에 앉아 터진 거품에서 튀어나와 이끌린 듯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혼령들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데 늘 그렇지 않은 일을 목격하는 바람에 처음으로 의문이라는 것이 생기고 말았다.
“무우, 이생?”
분명 그였다. 비록 자신과는 다른 인괴였으나 꽤 오랜 인연에 친해진…… 그런데 그가 왜 회천에?
설마 죽기라도 했……을 리는 없다. 그는 괴다. 윗전에 밉보여서 뒈졌다면 모를까, 형벌을 받지 않는 그가 죽을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와중에 윗전들은 전부 귀모님의 부름에 도산옥 밖으로 나가 있지 않던가?
궁금하다. 물어봐야겠다.
“무-우! 이생! 이새앵!”
“……?”
이제 막 깨어나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채 홀린 듯 이끌려 회천 밖으로 나서던 이생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지옥 소 새끼?”
“그래! 나다, 나야! 무우, 무우!”
“…….”
짐승의 특성을 타고나는 수괴 아니랄까 봐 말끝마다 울음소리를 연발하는 고두뢰의 모습에 이생의 혼미했던 정신이 벌떡 깨어났다.
“윽!”
갑자기 기억이 돌아온 탓일까? 이생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고 비틀거렸다.
“괜찮냐무?”
“……으음.”
“대체 왜 죽었냐무?”
“아, 그게…….”
자신을 부축해 편안히 앉힌 고두뢰의 물음에 이생의 말문이 턱 하고 멈췄다.
지계에서 도망치기 위해 도산옥 밖 황무지에서 틈을 찾다가 진무를 만났다. 그리고 검수를 헤치고 나아가는 모습을 따라 했다가 갈가리 찢겨 죽었다.
……라는 내용이었지만, 답할 수 있을 리가 있겠는가?
“어쩌다가…….”
“어쩌……다가? 그러니까 뭘 어쩌다 그랬냐무우?”
“…….”
이생은 그의 시선을 피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커다랗고 동그란 눈망울로 물어 오는 고두뢰의 질문에 하마터면 상세하게 설명해 줄 뻔했다.
눈깔이 쓸데없이 순박해서는…….
고두뢰가 자신과 친한 사이기는 하지만, 다른 놈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괜히 소문이라도 나면 도망치려 했다는 죄로 괴의 직위를 박탈당해 형벌장으로 끌려가기밖에 더 하겠는가?
“말해보라무! 왜 죽었냐니무?”
“…….”
커다란 소 대가리를 들이밀며 순박하게 묻는 고두뢰의 얼굴을 밀어 낸 이생이 벌떡 일어났다.
지금은 이 소 대가리를 상대하고 있을 틈이 없다. 진무와 청상, 검수림을 뚫고 오고 있을 그들을 위한 신분도 위조하지 않은 상황에서 걸리면 곤란해진다. 서둘러 그들의 신분을 깨달음을 얻은 괴, 혹은 그 이상으로 만들어 놓아야만 했다.
다행히 판관들까지 자리를 비운 시점이라 도산옥 등록소에서 위조 신분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저 혼령첩에 이름과 그들이 이승에서 가졌던 신분을 적어 주면 그만이었다.
……설마 벌써 도착한 것은 아니겠지?
“이생! 이생 말해 보라무!”
“닥치고 좀 비켜, 이 자식아! 나 바빠!”
“바빠? 그래도 설명을 좀 해 봐라무!”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무?”
“그래, 나중에 해 줄게. 지금은 좀 바빠, 내가 급히 나가 봐야 하거든.”
“어딜무?”
“있어! 그런 게!”
“……무우?”
고두뢰를 힘껏 밀어 낸 이생이 바쁜 걸음으로 회천에서 한참을 멀어졌다.
서둘러야 한다. 회천에서 도산옥 등록소까지는 이천 리나 된다.
먼 거리지만, 방법은 있다. 되살아난 혼령들을 인솔하는 괴들에게 부탁하면 된다. 그 오랜 세월 도산옥의 괴로 살면서 친해진 놈들이 고두뢰뿐만은 아니니까.
허겁지겁 인솔 장소로 달려온 이생이 고개를 휙휙 돌리며 자신이 아는 얼굴을 찾았다.
자신과 같은 인괴…….
“있다!”
한 인물을 발견한 이생이 황급히 달려갔다.
이생이 찾은 인물은 도산옥의 혼령 중에서도 가장 빨리 괴가 된 인물 중 하나였다. 뿐인가? 괴가 되자마자 판관급에 오르더니, 곧바로 요까지 올라갔다.
그러다가 한순간 실수를 하고 말았다. 지계의 요괴로서 장래가 기대된다면서 직접 불러다가 칭찬하는 도산옥주 협비를 앞에다 두고…… 욕을 했다.
처음엔 과연 요괴라 할 만큼 수준급 욕이라 칭찬하던 협비였지만, 그 수준이 상상을 초월하는 바람에 더는 참지 못했다.
그리고 힘을 모두 빼앗겨 버린 그는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괴가 되고 말았다. 회천의 망자들을 인솔하는, 보잘것없는 괴.
“이보게! 총아!”
“……?”
마치 성장하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외형을 한 인괴 총아(聰兒)가 이생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어? 이생이네? 근데 니가 왜 거기서 나오냐? 뭐, 뒈지기라도 했어?”
“아, 그게…….”
“됐다, 뒈지거나 말거나 내 알 바 아니지. 근데 왜 불렀냐? 바쁘니까 용건만 간단히 해라. 아가리 확 찢어 버리기 전에.”
“…….”
역시 오늘도 입이 험하다. 욕 때문에 괴생이 망가져 놓고…….
“자네, 부탈장(膚脫場)으로 가는 게지?”
“당연하지.”
부탈장은 칼날로 죽을 때까지 살갗을 얇게 벗기는 형벌장으로, 이생이 속한 도산옥 등록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나 지금 좀 데려다주게.”
“…….”
대뜸 부탁하며 간곡한 표정을 짓는 이생을 무심히 바라보던 총아가 코웃음을 쳤다.
“염병하고 있네. 내가 왜? 뭐 하러?”
“부탁이다, 제발! 내 운명이 걸린 일이야.”
“까고 있네. 뒈진 놈이 뭔 놈의 운명이야? 그냥 걸어가.”
“걸어? 이천 리를?”
“그럼 뛰든가, 이 새끼야.”
“그래,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지금 내가 몹시 바쁘다네. 지금 즉시 등록소로 가야 한단 말이야.”
“지이랄. 난 뭐 한가해 보이냐? 이게 어디서 지 생각만 하고 처씨불여? 꺼져! 바빠! 귀찮고!”
“…….”
총아가 이생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육시랄 놈 같으니…….
마음 같아서는 멱살이라도 쥐고 흔들고 싶었지만, 이생은 지금 그의 도움이 절실했다. 반드시 그를 설득해야만 하고, 그러자면 그가 원하는 무언가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데…….
“틈!”
“……?”
잠시 고민하던 이생이 외친 한마디에 총아의 고개가 홱 되돌아왔다.
“뭐?”
“내가…… 찾았어!”
“저, 정말 찾았다고?”
“그래. 비록…… 셋 중 하나지만.”
“……!”
투덜거리듯 중얼거린 말에 총아의 얼굴이 흥분으로 상기됐다.
괴라면 모두가 꿈꾸는 틈. 누군가는 소멸을 위해, 또 누군가는 천계로 가기 위해……. 총아는 후자였다. 그에겐 반드시 천계로 가야 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요에 올랐을 때 알게 된 사실.
합비가 분명히 말했다. 그 때문에 그에게 참을 수 없는 욕설을 내뱉기도 했고.
“진짜 찾은 거 확실하냐?”
“그래. 근데 셋 중…….”
“아까 들었어! 어쨌든 그 셋 중 하나는 맞는다는 거잖아!”
“어…….”
“좋아! 그럼 됐어!”
“응?”
“가자! 데려다주마.”
“어어? 인솔할 망자들이 아직 덜 온 거…… 으아아악!”
총아의 말에 의아해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이생은 갑자기 훅 끌려가는 느낌에 비명을 내질렀다.
그들은 망자들과 함께 단번에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에 한 가지 권능을 부여받는다.
일명 인솔자의 걸음.
걸음마다 백 리씩 이동하는 그 속도를 이생이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마음의 준비도 안 했는데.
……어쨌든, 총아의 도움으로 이생은 단숨에 부탈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부탈장은 살갗을 벗기는 형벌을 시행하는 곳이다. 당연히 죄 많은 망자들이 내지르는 끄아아아, 혹은 으아아아 따위의 비명이 귀를 쩌렁쩌렁 울려야만 하는데……. 소리는커녕, 어째 망자들은 물론이고 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다들 어딜 간 거지?”
총아 역시 같은 생각을 했는지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보게, 총아.”
“…….”
“뭔가 이상한 거 맞지? 그치?”
“음, 그래. 아무래도 나가 봐야겠다.”
“응.”
총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생이 그 뒤를 따라 부탈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빠가각!
하지만 비명이 아니었다.
콰드드득! 쾅! 콰쾅!
무언가 박살이 나는 소리와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생의 얼굴이 죽은 중에도 하얗게 탈색됐다.
서, 설마…… 아니겠지? 정말 아니겠지? 아니, 아니어야만 한다. 절대로!
이생이 움직인 것과 총아가 움직인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리고 부탈장을 벗어난 그들이 발견한 것은…….
“크하하하! 전부 덤벼라, 이 새끼들아! 크하하하!”
“…….”
광소를 터트리며 거무튀튀한 봉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고 있는 요 한 마리와.
“사숙, 이쪽은 제가 맡겠습니다. 뻗어라! 자충!”
길이가 구만리처럼 늘어날 듯한 검으로 괴들을 미친 듯이 꿰고 잘라 대는 또 다른 요 놈.
진무와 청상이었다.
“크핫핫핫!”
이생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졌다.
앙천대소하는 진무의 발아래 괴들의 시신이 가득하다. 봉에 처맞고 죽은 놈들, 검에 썰려 나간 놈들…….
소멸하지 않겠지만 죽은 건 확실하다. 아마 지금쯤 회천에 있는 고두뢰 놈이 놀라서 그 순박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겠지.
그리고 묻겠지, 왜 죽었냐무? 하고…….
씨발, 그나저나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아직 등록도 못 했는데…….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지금 도산옥에 판관급 이상의 괴나 요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일단 진무와 청상을 그럴듯한 괴나 요로 등록부터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누군가 말하지 않던가? 늦었다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이보게, 총아! 나 먼저…… 응?”
작별을 고하려던 이생이 말을 멈추고 총아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이 새낀 갑자기 왜 울지? 아주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그리고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진무였다.
“이, 이보게, 총아. 자네 왜 우는……?”
이생의 물음과 동시에 총아가 온 힘을 토해 낸 듯한 목소리로 울음과 함께 외쳤다.
“으흐어엉! 천주니임! 접니다! 저 황신이 여기 있습니다!”
“……?”
귀 밝을 총, 아이 아.
괴가 되면서 귀 밝은 아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총아는, 바로 황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