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52
22화
용(龍)은 여러 동물을 합쳐 놓은 신비함의 상징이다.
머리는 낙타처럼 길쭉하고 사슴의 뿔을 달았으며, 토끼처럼 붉은 눈과 소의 귀를 가졌다. 또 목은 길어 뱀과 같고 호랑이의 발에 매처럼 날카로운 발톱을 지녔으니 그 흉포함이 여실하다.
생김부터 범상치 않으니 가진 힘은 더 말해 무엇 하랴. 너울 치듯 구름 사이를 움직이면 폭풍 같은 바람이 일고, 아가리를 벌려 울음 울면 뇌성과 함께 우레가 치니 과연 하늘에서 가장 강한 힘을 지녔다 할 만했다.
하나 태초에서 지금까지 흘러오는 중간쯤의 어느 때, 용에게도 정해진 시간이 있어 생이 다해 감에 칠룡자(七龍子)를 남겼다.
그중 황룡은 형제 중 가장 강한 힘을 지녔으며 호전적이었는데, 그 성격 탓이었는지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스스로의 힘에 도취되어 마성에 빠지고야 말았다. 신력을 잃어 금빛 찬연하던 비늘이 벗겨지고 검고 사악한 비늘이 돋아나 흑룡이 되었으니, 이에 분노한 당대의 옥황이 그를 소멸시키려 천군을 이끌고 나섰다.
죽음에 이른 흑룡은 근처에서 마력을 머금은 물건의 기운을 느끼게 되었고, 사력을 다해 스몄다. 당시의 귀모가 예물로 바친 지계의 신비한 광물, 신진철로 만든 봉이었다.
옥황은 흑룡을 빼낼 방법을 찾지 못해 분노했고, 결국 쇠봉 위에 만 가지 문양을 새겨 봉인해 버렸다.
음과 양의 힘을 동시에 지닌 선인에게 선택되지 않는 이상, 네놈은 절대로 세상에 나오지 못하리라!
청천벽력 같았던 옥황의 말은 풀리지 않는 저주와 같았다.
천계와 지계의 경계가 명확한데 어찌 음양의 힘을 동시에 지닌 선인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과연 억겁의 세월이 지나고 옥황이 몇 번이나 바뀌도록 봉인을 풀 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흑룡은 풀려나기를 포기했다.
그 긴 세월 없던 음양의 선인이 다시 세월이 흐른다고 나타날 리가 없다 여겨서였다.
그런데 그 기회가 거짓말처럼 찾아왔다. 양임과 동시에 음인 힘을 가진 선인의 손길이!
주인을 선택하고 나면 귀속되어 평생 복종해야 할 것이나, 흑룡은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좁디좁은 쇠몽둥이를 떠나 다시 세상에 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때마침 자신과 성격도 잘 맞는 놈이었다. 어찌나 호전적인지.
하나 그가 쓰는 것이 당장은 신력일 뿐이라 봉인이 풀리지 않았다. 봉인이 풀리자면 신력에 버금가는 마력이 필요했고, 그러기 전에는 그저 그저 그의 힘을 증폭해 주는 쇠몽둥이 신세에 불과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막대한 양의 마력이 쏟아져 들어오고 봉인이 풀렸다. 드디어 세상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비록 늘 깃들어야 했으나 봉인이 풀림과 함께 주인 된 자와 동화를 이루었으니 그의 눈으로 볼 수 있었고, 귀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첫 번째는 그저 봉인이 풀린 것이라 제힘을 내지 못했다.
망할 주인 놈이 평하길……. 뭐? 제법 쓸 만한 정도? 이런 빌어먹을 주인 놈!
얼토당토않은 평가에 천불이 일었지만 참았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아직 자신의 힘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그리 건방지게 평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적이었다. 주인이 머뭇거리는 것 같길래 열심히 충동질해 댔다. 어째서 그가 지계에 와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고작 마왕 놈 정도야 뭐.
싸우자! 이길 수 있다! 자신감을 가져라!
의지가 통해서였을까? 주인 놈이 맞설 각오를 하고 자신을 불렀다.
[여의, 진신을 드러내 적에 맞서라!]오냐, 보여 주마!
흑룡이 기다렸다는 듯이 현신했다. 다시는 그저 쓸 만한 정도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지만 네놈의 통제는 받지 않겠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쇠몽둥이, 아니 흑룡인지 알려 주는 것이다. 그러니 힘을 아낄 수 없지!
-크아아아!
요수를 처박은 채 뻗어 낸 진무의 손길을 따라 여의가 곧게 쏘아져 나가며 거대한 흑룡의 모습을 드러냈다.
콰직, 콰드드득!
광포함을 드러낸 여의는 거대한 아가리로 진무를 향해 다가서는 적을 모조리 물어뜯고, 날카로운 발톱을 폭풍처럼 휘둘러 적들을 갈가리 찢었다.
-쿠오오오오!
모처럼 전력을 다해 기분이 좋아서였을까? 거칠게 내지른 포효에 몰려온 먹구름이 낙뢰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꽈르르릉! 콰쾅!
“끄아아악!”
섬전이 내리꽂힌 곳마다 산산이 부서지고 불길이 치솟았다.
낙뢰에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지는 요와 귀들이 질러 대는 비명에 흑룡은 더욱 흉포하게 날뛰었다. 그러곤 그 크고 흉한 눈알을 굴려 진무를 자랑스럽게 쳐다봤다.
봤느냐, 주인 놈아? 이래도 그저 쓸 만한 정도라 말할 것……. 어?
예상과 달리 진무의 입가에 떠올라 있는 것은 고소(苦笑)였다.
어째서? 왜? 지금 내가 대단치 않다는 거냐?
여의는 진무를 보며 의아해하다, 문득 강대한 힘의 기운을 느끼고 고개를 홱 돌렸다.
-크아악!
순간 한눈을 판 대가는 컸다. 피할 틈도 없이 옆구리를 강타당해 땅에 처박힌 여의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자신을 때린 흉수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멍청한 것들! 고작 법구를 형상화시켜 만든 뱀 새끼 한 마리 당하지 못해 이 꼴들이란 말이냐!”
일격에 여의를 땅바닥에 처박은 협비가 도산옥의 귀와 요들을 향해 불같이 화를 토했다.
여의는 겨우 몸을 세우고 낮게 으르렁거리며 협비를 노려봤다.
뭣이 어째? 법구의 형상화? 뱀 새끼? 이런 대가리 피도 안 마른 새파란 마왕 새끼가 자신이 누군 줄 알고 그따위 망발이란 말인가?
비록 죄를 짓고 쇠봉에 갇혀 있었다곤 하지만, 자신은 태초의 용이 낳은 일곱 자식 중 하나인 황룡이다. 지계의 마왕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존재란 말이다.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저 시건방진 놈의 주둥이를 반드시 찢어 버릴 것이다.
의지를 다진 여의가 진무를 힐끗 쳐다봤다.
……해 봐.
팔짱을 낀 진무가 끼어들지 않겠다는 듯이 의지를 전해 왔다. 마치 자신을 시험하려는 듯한 모습에 여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마왕 놈이고 주인 놈이고 죄다 싸가지가…….
좋다. 이렇게 된 이상 가진 모든 힘을 보여 줄 것이다.
가가각!
네발로 땅을 밟고 몸을 세운 여의가 가득 들이켠 숨을 한 번에 토해 내며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크아아아아!
성난 외침이 가공할 마기와 함께 사방을 쩌렁쩌렁 울리자 폭풍이 휘몰아치고 검은 뇌전이 곳곳에 내리꽂혔다.
-크르르르…….
낮게 으르렁거리는 여의의 위협적인 모습에 도산옥 전역의 귀와 요, 망자들이 두려움에 질린 듯 벌벌 떨었다.
그래, 이것이지. 이것이 자신의 힘이다. 세상 모든 것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강대한 힘.
조금 전 저 마왕 놈에게 일격을 허용한 것은 그저 우연이었을 것이다. 모처럼 전력을 쏟아부으며 흥분한 탓에 방심을 한 게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지계의 마왕 놈, 네놈을 갈가리 찢어 나의 힘을 저 주인 놈에게 반드시 알려 줄 것이다.
크흐흡! 콰아아아!
다시 한차례 숨을 들이마신 여의가 아가리를 크게 벌리며 힘을 토했다.
콰우우우우!
응축된 마기가 거칠게 쏘아져 나갔고, 지나간 자리에 닿는 모든 것이 불태워 아스러진다. 땅이 불타고 터져 오른 대지가 쩍쩍 갈라져 솟구쳤다.
콰아아아아!
마력을 쏟아 낸 일격의 포효가 협비와 그 주변을 흔적도 없이 지워 버렸다.
-크르르.
힘을 쏟아부은 여파로 잠시 머뭇거린 여의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광경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마왕 놈, 아예 소멸되어 버렸구나. 봤느냐? 이것이 나의 힘…… 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여의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싸늘한 목소리.
“고작 위력만 강한 법구 따위로!”
눈이 휘둥그레져 고개를 쳐든 여의의 머리가 거친 타격에 바닥에 처박혔다.
콰아아앙!
-크아악!
턱이 부서지는 듯한 충격과 함께 여의가 비명을 내질렀다.
이런 빌어먹을! 이 내가 고작 마왕 놈에게!
머리끝까지 열이 뻗친 여의가 마구잡이로 마력을 토해 댔다. 매서운 전격에 땅이 녹아내리고 하늘이 불탔다.
하지만…….
쩌어어억!
퍼퍽! 콰직! 빠박!
막상 여의는 한없이 처맞고 있었다.
뿜어내는 마력이 땅을 녹이고 하늘을 불태워 도산옥을 폐허로 만들면 뭘 하나, 협비의 옷자락 하나 스치지 못하는데. 지극히 강하나, 맞지 않으니 의미가 없는 힘인 것이다.
제기랄, 제기랄!
처맞고, 또 처맞았다. 끝없이 땅바닥에 패대기쳐지는 고통 속에서 여의는 저도 모르게 진무를 쳐다봤다.
조소(嘲笑).
도와줄 생각도 없이 고통받는 자신을 한껏 비웃고 있었다.
……도와다오.
“…….”
결국 여의가 처음의 기세를 잃고 아련히 의지를 전해 오자 진무의 입술이 얇게 벌어졌다. 득의만만하게 새하얀 송곳니를 드러낸 그가 쇠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쯧, 돌아와.]쑤우욱!
그 한마디의 언령으로 여의는 진무의 쇠봉에 흡수되어 겨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사라진 여의로 인해 허공에 주먹질을 해 버린 협비가 언짢은 표정으로 진무를 바라봤다.
“흥, 왜? 계속해 보지 그러냐?”
“됐어. 이놈도 이제 알았을 테니까, 그저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말이지.”
“뭐?”
“그게…… 실은 나도 이런 놈이 여기에 들어가 있는지 몰랐거든. 한가락 하는 녀석이었던 모양인지 통제가 안 되더라고. 그럼 그냥 쓰레기라 내버려 둬 본 거야. 처맞아 봐야 알 것 같아서.”
“……?”
진무의 웃음에 협비는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들어가 있다니?
그럼 조금 전 흑룡이 마력을 통해 법구를 형상화하여 만들어 낸 것이 아니란 말인가?
하지만 그러한 의문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보다 진무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협비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되물었다.
“호오? 그럼 너는 가능하다 여기는 모양이지?”
“뭐, 얼추?”
“얼추?”
“그래. 얼추. 이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왠지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거든.”
진무가 여의를 느끼며 싱긋 웃자 협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오만방자한 놈.
귀모의 말로는 새로운 귀라고 했다. 정확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딱 그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힘만으로는 자신과 비슷하다 할 정도의 법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하나 고민해 무엇 할까? 그들은 도전자다. 정체가 무엇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귀모에게 지켜 보이겠다 했으니, 지키면 그만이다.
“이름이 무엇이냐?”
“진무.”
“진무…….”
“그래, 좀 전에 니가 싸운 뱀 새끼는 여의이고, 뒤에 있는 저놈은 청상이다. 나머진 알지?”
동료까지 차근차근 소개해 주는 진무의 친절함에 협비가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력도 부족한 놈이 자신을 상대로 저리 자신감 넘치는 태도라?
“굳이 많은 대화가 필요하진 않겠지. 오너라!”
“그러지.”
협비의 외침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붕붕붕!
힘차게 휘두른 여의의 끝을 잡고 길게 늘어뜨린 진무가 협비를 싸늘히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후우…….”
낮게 호흡하며 천천히 끌어 올린 마력이 여의에 스몄다.
우우우웅!
제멋대로 날뛰던 여의가 그 힘을 받아들이며 잘게 진동한다. 통제를 수긍한다는 의미였다. 진무는 제 뜻에 모든 것을 내맡긴 여의를 느끼며 씩 웃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이제야 제대로 여의와 공명하게 되었으니.
그리고 비로소 법구에 의해 증폭된 진무의 마력이 제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쿠우우우…….
마치 밥 지을 때 뚜껑을 날려 버릴 듯 솥 안에 가득 차는 김처럼 진무의 마력이 응축된다.
빠지직.
우레를 관장하는 용의 힘에 의해 증폭되었기에 진무의 몸에서 검은 뇌전이 피어올랐다. 완연한 흑색으로 물든 눈동자가 희번덕이며 협비를 향했다.
“……그럼 시작할까?”
“……!”
쿵!
내디딘 발에 힘이 실리고, 진무가 온 힘을 다해 여의를 뽑아내듯 휘둘렀다.
후아아악!
검은 빛줄기가 채찍처럼 휘어져 오자 협비가 기세 좋게 응했다.
“오냐! 네놈이 얼마나 하찮은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마!”
쩌어어엉!
강맹한 힘을 머금은 둘의 공격이 부딪치고, 이내 터져 나온 충격파에 그 주위가 폭풍에 휩쓸린 것처럼 아스러졌다.
까드득, 까드드드득.
진무가 쥔 여의와 협비의 팔뚝이 힘겨루기를 하듯 팽팽히 서로를 밀어 냈다.
“히, 힘이…… 굉장한데?”
“멍청한 놈! 내가 도산옥주 협비다!”
힘줄을 툭툭 불거지도록 용을 쓰는 진무의 모습에 협비가 팔에 힘을 더했다.
흑룡의 힘은 경시할 수 없었기에 피했으나, 진무의 힘은 아니다. 충분히 상대할 만큼 나약하다. 하니 짓눌러 버릴 생각이었다.
서서히 밀려 나가는 여의의 모습에 협비의 입가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번졌다.
그럼 그렇지. 이딴 놈에게 옥주 자리를 빼앗길 내가 아니지…… 어?
그 순간 갑자기 진무가 여의에 담긴 힘을 빼 버렸다.
힘의 균형이 강제로 무너져 기우뚱하는 협비의 모습에 진무가 싸늘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니 말, 그대로 돌려주마.”
“……?”
“가진 게 힘뿐인 멍청한 옥주 새끼야.”
“……뭐어?”
[여의, 지금이야. 꾸워!]콰르릉! 콰쾅!
갑자기 쏟아진 거대한 검은 뇌전이 협비의 몸을 강타했다.
“끄아아악!”
급작스러운 전격에 방비도 못 하고 직격당해 버린 협비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멍청한 새끼, 걸려들 줄 알았다. 하여간에 용이나 신이나 힘만 세면 최고인 줄 알지?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