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53
23화
협비의 몸에 뇌전을 때려 박은 진무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꽈광!
진무와 여의의 마력이 뒤섞여 힘이 증폭된 뇌전의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충격파로 인해 공간 자체에 균열이 생겨날 정도였다.
그리고 폭발이 만들어 낸 진공의 공간이 주변의 대기를 모조리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
소용돌이치는 바람을 따라 하늘의 구름이 나선 모양으로 휘돌고, 주변의 모든 것이 폭발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숙!”
“오지 마!”
“……예?”
“마왕이란 놈이 고작 이 정도로 끝날 리가 없지. 겨우 한 방 먹인 거야. 아마 정신이 번쩍 들었을걸?”
이제 열 받아서 제대로 날뛸 테고 말이야.
암, 당연히 그래 줘야지. 명색이 육계의 주인 중 하나인데 너무 약하면 재미없잖아? 안 그래, 협비?
휘이이…….
진무의 생각대로 폭발의 여운이 걷히자 이내 그 중심이 드러났다.
모든 것이 불타 버린 듯 검게 변한 대지 위 흉측한 잿더미 속에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오연히 선 협비.
조금도 기세가 줄지 않은 형형한 안광에 진무는 만족스럽다는 듯 씩 웃었다.
역시 멀쩡하네. 조금 전엔 인사였던 거 알지?
“자, 이제 진짜로 와 봐.”
“이런 빌어먹을 놈이…….”
여의를 휙휙 둘러 어깨에 걸친 진무가 빈손을 들어 까딱거리자, 자신을 무시한다 여긴 협비가 살기등등하게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오냐, 그리 원한다면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 주마.”
“…….”
“타훼(打毁).”
낮게 중얼거린 그의 손안에 마력이 휘몰아치듯 모였다가, 이내 거대한 무구의 형상으로 변했다. 한데 모양이 요상했다. 모양은 철편(鐵鞭: 쇠몽둥이)인데 사람만큼 컸다.
“……호오.”
저게 협비의 법구로구나.
그런데 생긴 모양도 그렇거니와 이름이 참 직관적이다.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때려 부수는 것에 특화된 무기라는 것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과연 현생의 폭력에 대한 죄를 묻는다는 도산옥의 주인답게 흉악하기 그지없는 무구였다.
하지만 무기의 모양이나 의미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콰득, 콰드득.
타훼를 꺼내는 순간 그의 힘이 무지막지하게 증폭된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의 주변에 있던 땅이 손대지 않았음에도 기괴하게 뒤틀려 솟구치기 시작하고, 아지랑이처럼 스멀거리며 피어나는 마력에 공간이 뒤틀린다.
뿐인가? 꽤 떨어져 있음에도 몸이 짓눌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협비의 마력에 대기가 몇 배나 무거워진 것이다.
“그놈 참, 섬찟섬찟하네.”
진무는 협비의 강함에 위축되기는커녕 호승심이 더해진 눈빛으로 환하게 웃었다.
“이놈아! 어서 오너라! 기다리다 목이 빠지겠다!”
“놈!”
진무의 도발에 협비가 거대한 철편을 힘껏 움켜쥐고 곧바로 바닥을 밟았다.
쿵!
“……!”
그 순간 진무의 눈이 커졌다.
슈우우우.
한 걸음 만에 협비가 바로 옆에서 나타난 것만 해도 경악스러운데, 동시에 타훼가 광풍을 일으키며 휘둘러진 것이다.
“흡!”
대경한 진무가 다급히 상반신을 뒤로 꺾자 타훼가 그의 가슴께를 쓸고 지나갔다.
쫘아아악!
“큭!”
맞은 것도 아닌데 절로 얼굴이 찡그려진다. 그저 근처를 스치는 것만으로도 옷자락이 찢기고 피부가 뜯겨 나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진무가 누군가. 산전수전에, 이젠 죽어서 공중전 경험까지 알차게 쌓은 투선(鬪仙) 두장군이다. 신력과 마력은 모자랄지언정, 전투 능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자부했다.
“합!”
기합성과 함께 몸을 젖힌 그대로 제비를 넘은 진무가 당긴 여의를 힘차게 뻗었다.
쉬이익!
따아앙!
하나 협비도 녹록하지 않았다. 쏘아지듯 날아온 여의를 쳐 냄과 동시에 곧바로 공격을 이었다.
빡! 빠바바박!
“…….”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이들은 그저 입만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뒤엉킨 희뿌연 빛살 같은 흔적뿐이었고, 들리는 것은 무언가 부딪히는 충돌음뿐이었다.
와중에 근처에는 다가갈 수도 없었다. 둘이 내뿜는 기운으로 인해 사방이 한층 폐허로 변하는 상황이다. 범위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소멸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지, 진무 님은 정말 굉장하군요. 육계의 주인 중 한 분인 협비 님과 막상막하라니…….”
이생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는데, 청상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부족하다. 사숙의 공격은 닿지 않으나, 협비의 공격은 스치고 있다.”
“예?”
“과연 육계의 마왕은 굉장하군. 저 사숙께서 고전하시다니…….”
“…….”
그 말에 이생이 황당한 듯 눈을 끔벅였다.
……저게 보여?
“음…… 그렇군. 천주님의 숨소리가 처음과 달리 거칠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지치실 테니 장기전으로 가면 위험하겠어.”
“…….”
옆에 있던 황신마저 귀를 쫑긋거리며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숨소리가 뭐 어째? 여기서 그게 들린다고? 총아, 아니 황신 너는 어째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데?
이생이 황당함에 입을 떡 벌린 채 둘을 번갈아 쳐다봤지만, 황신과 청상은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진무와 협비의 싸움에 집중했다.
“청상, 도와야 할까?”
“…….”
황신이 가늘게 뜬 눈을 매섭게 빛내며 혀로 입술을 쓸자 청상이 무심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너의 실력으론 접근과 동시에 소멸할 거다.”
“……음.”
무시가 가득한 말이었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힘을 뺏기고 강등된 자신이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 너라도?”
“아니, 원치 않으실 거다. 들리지 않는 거냐?”
“…….”
“웃고 계신다. 저 빌어먹을 송곳니를 드러낸 채로…….”
“아!”
약하게 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복잡한 표정을 한 청상의 말에 황신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거친 숨소리에 희열이 담겨 있었다. 와중에 송곳니를 드러냈다면?
“씨부럴, 더럽게 즐거우신 모양이네. 모처럼 본인이 밀릴 정도로 강한 상대를 만나서.”
“그래. 하지만…….”
청상은 말끝을 흐리며 제 손에 남겨진 붉은 화인을 바라봤다.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여차하면 끼어들어야 했다.
따아아앙!
그 순간 거친 충돌음과 함께 두 개의 빛 덩어리가 양쪽으로 갈라지며 선명한 형체를 드러냈다.
“하아, 하아…… 정말 우라지게 강하네.”
“……피차일반이다. 가진 마력은 분명 귀를 조금 넘어선 수준인데, 나를 상대로 이리 오랫동안 버티다니.”
진무와 협비는 서로에게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좋아, 그럼 좀 더 싸워 보지.”
“네놈이 가진 마력으로는 나를 어찌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 텐데?”
“물론! 그게 좀 아쉽긴 하지. 하지만 싸움이라는 게 가진 내공이나 마력, 혹은 신력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거든!”
“……웃기는 소리. 귀의 경지에 있는 놈이 마치 인간처럼 말하는구나.”
“인간이 어때서?”
“뭐?”
“신(神)이나 마(魔). 그런 초월자들의 눈에는 하찮아 보이겠지. 불안정하다 생각하니까. 하지만 인간은 그 불안정함을 노력으로 메꿔 온 존재다.”
“완벽을 넘을 순 없다.”
“그럴까? 그럼 보여 주마, 인간이 이룬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
진무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협비를 바라보며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들숨과 날숨이 반복되자, 이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래, 이 흥분. 손의 떨림…….
비슷한 때가 있었다. 화산에서 이기어검을 깨달았을 때, 검이 가진 뜻을 깨닫고 비로소 동화를 이루었을 때. 그때도 이랬다.
“후우…….”
자, 보여 주마. 여의를 통해 인간이 만들어 낸 창술의 가장 높은 경지를.
진무는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여의를 천천히 휘둘렀다.
봉은 모든 무기의 기본이자 원형이다. 하여 다양한 쓰임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그 기본은 결국 셋이다. 찌르고 베고 때린다.
밀어 내고 돌리는 방법도 쓰이긴 하지만, 결국엔 그 셋의 변형이다. 즉, 천지인에서 기초하여 가장 완벽한 원형인 삼재(三才)를 따르는 것이다.
불안정한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완벽한 무기의 쓰임.
휘이이이…….
여의가 진무의 손을 따라 천천히 휘돌며 원을 만들고, 그 원이 겹치며 빨라진다.
후우우우웅!
점차 거센 바람이 일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니 회오리와도 같았다.
탁!
그리고 멈췄다.
“……간다, 협비.”
“……!”
진무가 나지막이 말하며 여의를 뻗었다.
쉬이익!
발을 오므려 대지를 끌어 잡듯 디디고 창은 곧게 찌르니 이를 충(衝)이라 한다.
순간 쭉 늘어나며 위협적으로 날아오는 여의의 끄트머리를 본 협비가 비웃음을 머금은 채 타훼를 들어 막았다.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인데…….”
따아앙!
“큭!”
하나 충격의 정도가 이전과는 달랐다. 약간이기는 하지만 몸이 뒤로 밀린 것이다.
“이놈…….”
그리고 몸이 밀려 난 그 짧은 순간에 이미 진무는 근처에 다가와 온 힘을 다해 창대를 휘두르고 있었다.
떠어어엉!
산악을 뽑아 올리는 듯한 힘으로 휘둘러 때리니 이는 타(打)이다.
“크억!”
다시 타훼로 막은 협비는 이번에는 손이 잘게 떨릴 정도의 고통에 얼굴을 찡그려야 했다.
하마터면 타훼를 놓칠 뻔한 데다 물러난 거리가 늘어났다.
정확히 한 걸음…….
“이, 이놈…….”
하지만 이미 세 번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볍게 쥐어 빛보다 빠른 속도로 휘두르니 뭉툭한 봉이라 할지라도 날을 세운 듯 날카로워 자르지 못할 것이 없다. 이를 단(斷)이라 한다.
스걱!
“……!”
이번엔 막지 못했다. 아니,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순간적으로 진무의 손에 들렸던 봉이 사라지고, 협비는 얇게 베인 자신의 옷자락을 바라봤다.
곧바로 재생되긴 했으나 분명히 베였다.
“이런 쌍!”
협비가 욕설과 함께 거친 마력을 발산하며 진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나 진무의 봉은 멈추지 않았다. 충, 타, 단의 세 가지 움직임이 순서가 뒤바뀌고 변형되고 응용되어 협비와의 격차를 메웠다.
공방이 이어지고 싸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진무는 지쳤으나, 협비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 갔다.
진무의 공격은 때론 뱀의 독니처럼 위협적이고, 또 때론 용의 꼬리처럼 둔중하여 무엇이 허이고, 무엇이 실인지 가늠되지 않았다.
또한 무엇보다 빨랐다.
찌르고, 때리고, 베는 공격이 가속화되고 더 가속화되어 이제는 막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스걱, 스거걱!
어느 순간, 진무의 봉이 속도의 한계를 초월했다.
협비의 재생 속도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드드득!
고작 귀급의 마력을 가진 놈에게 육계 마왕인 자신이 내몰리고 있다. 협비가 어금니를 거칠게 갈았다.
분명 뛰어난 기예다. 하나 그것만으론 절대로 자신을 쓰러뜨릴 수 없다. 자신은 이 도산옥의 주인이니까.
“놈! 차이를 보여 주마!”
후아악!
협비가 검은 안광을 토하며 세상을 어둡게 물들이는 순간…….
쐐애애액!
도산옥이 솟구친다.
아니, 그 외형을 장식했던 날 선 검들이 하늘에 솟구쳤다가 진무를 노리고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콰콰!
빗속을 거닐 정도로 기민하다 하여 붙여진 우중거의 경공도 도움이 되진 못했다. 진무는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푹, 푸푹! 푹!
미처 피하지 못한 검들이 진무의 몸을 꿰뚫고 바닥에 박혔다.
“큭!”
얼굴을 찡그린 진무가 공격권에서 한참을 물러나 협비를 바라봤다.
“놈, 잔재주는 여기까지다.”
“…….”
화가 잔뜩 난 듯한 협비의 말에 진무가 눈을 가늘게 떴다.
휘이이이…….
협비의 머리 위에 떠올라 하늘을 가득 메운 채 휘돌고 있는 수많은 검.
과연 마왕인가? 인간은 평생을 깨달아 검 하나를 부리는 것에 그치는데…….
“놈! 보이느냐? 이것이 도산옥주로서 귀모께 부여받은 나의 권능, 검령(劍靈)이다.”
“…….”
“네놈이 대단한 것은 인정하마. 귀급의 마력으로 나를 이리도 몰아붙이다니……. 하나 이제 끝이다. 나의 권능으로 너를 소멸시킬 것이다.”
이를 득득 갈며 내뱉는 으름장에 진무가 픽 실소를 터트렸다.
이 새끼가 싸울 거면 지가 가진 힘만으로 싸우지, 질 것 같으니까 엄마가 준 힘의 도움을 받아?
그런데 그거 아냐? 내가 비록 귀급의 마력을 가졌지만, 법구는 다르거든? 아까 보니 여의의 공격은 막지 않고 피하더라?
두려웠다는 이야기지, 피해야 할 정도로.
그래서 너무 쉽게 끝나 버릴까 봐 안 쓰려고 했는데……. 니가 이런 식이면 나도 가만있을 순 없지.
니가 엄마면 나는 용이다, 이 엄마 의존도 높은 마왕 애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