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54
24화
쐐애액!
수천수만 개의 검들이 소나기처럼 세상을 가득 메우고 쏟아졌다.
노리는 것은 진무 하나였으나, 협비는 따로 목표를 두지 않았다. 뒈지거나 말거나 어차피 살아날 놈들의 목숨 따윌 뭐 하러 신경 쓴단 말인가?
하지만 당하는 처지에서야 어디 마음이 그러한가?
“이런 염병!”
모든 곳을 메우며 쏟아지는 검우에 황신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는 협비의 권능에 의해 만들어진 검우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이미 당해 봤으니까.
권능의 힘이 스민 검우는 도산옥 외부를 둘러싼 검수의 강도에 뒤지지 않는다. 하여 막을 수 없다. 막는 것조차 꿰뚫어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피할 수도 없다. 순차를 두지 않고 한꺼번에 공간 전체에 촘촘히 쏟아지는 것을 어찌 피한단 말인가?
협비의 권능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동일한 힘을 지닌 육계마왕이나 귀모뿐이었다.
“천주…….”
자신도 위험함을 알면서 황신이 진무의 안위를 걱정할 때였다.
“신!”
“……?”
“뒤로 와!”
“뒤로?”
무슨 소릴 하는 걸까?
황신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청상을 향해 외쳤다.
“이 자식아! 저게 막는다고 막아지는 건 줄 알아?! 협비의 권능이라고! 육계마왕만이 가진…… 응?”
“닥치고! 오라면 오라고 이 새끼야!!”
“…….”
순간 황신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천생 도사였던 청상의 입이 언제 저리 걸걸해졌지?
더 황당한 건 언제 움직인 건지, 함께 있던 이생이 냉큼 청상의 곁에 붙어서 황신에게 손짓하는 게 아닌가.
와중에 저 표정은 또 뭐지? 걱정이라고는 한 올도 보이지 않을 만큼 여유로운 저 표정은?
괴 따위가…….
“신!”
“이런 씨부랄!”
청상의 외침에 황신이 더는 생각지 않고 몸을 날렸다.
이런 씨발! 그래, 뭐든 생각이 있겠지! 허튼소리를 하는 놈은 아니니까.
[자충!]황신이 가까스로 등 뒤에 도착하자 청상이 힘차게 손을 뻗으며 언령을 외쳤다.
쑤우욱!
손바닥에 새겨진 화인에서 선명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자충이 모습을 드러냈다.
[늘어져라!]우우우웅!
청상의 언령에 자충이 흐물거리는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졌다. 그리고 검우가 머리를 꿰뚫으려는 찰나, 청상의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차르르륵!
자충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과 검우가 도산옥의 모든 것을 꿰뚫은 것은 거의 동시였다.
콰콰콰콰!
“끄아아악!”
비명이 속출하고 검우에 닿은 모든 것들이 꿰뚫려 파괴되기 시작했다.
“크윽!”
이미 당해 봐서 그 고통을 알고 있는 황신이 눈을 질끈 감으며…… 눈을…… 응?
“……?”
단단히 각오했는데, 기대했던 고통이 아무리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았다.
까드드드득!
“……??”
게다가 이 소리는……?
의아해하며 슬며시 눈을 뜬 황신은 부릅뜬 눈을 채 깜박이지도 못하고 멍하니 눈앞을 응시했다.
굳건한 등을 보이며 오연히 선 청상, 그리고 그의 손에서 휘돌며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붉은 회오리…….
까드드득!
“……!”
검우가 잘려 나가고 있다.
청상의 손과 이어진 붉은 빛 덩어리가 만든 거대한 막을 뚫지 못하고 조각조각 잘려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이게 뭔…….”
육계마왕의 권능이 스민 검우를 잘라 내?
황신은 황당함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걸 알아차린 듯, 청상이 고개를 돌리곤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 법구다.”
“…….”
자랑 안 해도 안다, 이 도사 나부랭이 쉐끼야. 니 손에 있으니 당연히 니 법구겠지.
중요한 건 대체 어떤 법구길래 저 무시무시한 검우를 잘라 낼 수 있느냐 하는 거였다. 자신도 저거에 온몸이 벌집이 됐었는데…….
“옥…… 아니 사숙께서 양보…… 여하튼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해 주마! 지금은 이걸 막아야 하니.”
잠시 여유를 부렸던 청상이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금 검우를 막는 데 집중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황신의 얼굴이 짜증스럽게 구겨졌다.
귓가에 청상이 완성하지 못한, 그러나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던 말이 맴돌았다.
사숙께서 양보하셨다.
즉, 그가 손에 넣은 법구는 진무가 나눠 준 것이다.
망할 사질 자식……. 개천주 잘 만나서 팔자에도 없는 등선을 통해 천계에 오르더니, 이제는 마왕의 권능마저 무력화하는 법구까지 얻었냐?
제자도 아닌 것이 항상 그 옆자리에서 특별 대우를 받더니, 죽어서도 변함이 없구나.
……부럽다.
황신은 시샘과 부러움이 뒤섞인 눈길로 늠름하게 자신을 보호하는 청상을 쳐다보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잠깐, 개천주님께선 어찌 되셨지?
청상에게 저런 법구를 나눠 줄 정도라면, 그가 들고 있던 쇠봉 모양의 법구는?
황신이 재빨리 고개를 돌려 진무의 모습을 찾았다.
콰우우우!
“…….”
저게 뭔?
세 번째 황당함이 황신의 두 눈에 담겼다.
진무가 있던 곳에서 솟구친 검은 뇌전이 쏟아지던 검우의 막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버렸다.
마치 고작 자르기만 한 청상보다 자신이 훨씬 더 우위에 있음을 드러내듯…….
빠지지지직!
그 모습에 황신뿐 아니라 모두 기절할 듯 놀랐지만, 가장 놀란 건 역시나 협비였다. 그의 눈알이 쏟아질 듯 튀어나왔고, 턱뼈가 빠진 듯 입이 떡 벌어졌다.
대체 어떻게? 어째서 자신의 권능이 놈에게 먹히지 않는단 말인가?
“야!”
“……?”
“뭘 얼빠져서 쳐다보고 있어?”
“……!”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 협비의 멍한 눈동자에 진무의 모습이 투영됐다.
아, 어느새……. 조금 전까지 저쪽에……!
멍하니 생각하는데,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로 옆?!
송곳니를 드러낸 채 웃는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재수가 없게 느껴졌다.
[여의…….]“……!”
협비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이전의 경험을 떠올려 봤을 때, 저 자세와 표정이면 분명…….
[꾸버 버려어어!]역시나…….
검우를 꿰뚫고 하늘로 솟구쳐 올랐던 검은 뇌전이 직격으로 내리꽂혔다.
콰르르릉!
“크아아악!”
뼛속까지 저릿한 느낌에 협비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진무는 여전히 여의를 들고 웃고 있었다. 같은 자세로…….
[꾸버! 꾸버! 꾸버! 꾸버! 꾸버! 꾸버! 꾸버! 꾸버! 꾸버! 꾸버어어어!!]꽈르릉!
진무의 언령에 뇌전이 쉴 새 없이 내리꽂혔다.
아무리 도망치고 피하려 해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좌로 구워지고, 우로 구워지고……. 협비는 한 마리 생선처럼 빈틈없이 골고루 구워졌다.
“끄으으으…….”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 고통 속에서 흐른 뒤, 드디어 뇌전이 멈췄다.
눈동자에 어렸던 전의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협비가 겨우 몸을 일으키고 진무를 쳐다봤다.
고작 귀급의 마력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내가 졌다.”
“…….”
협비가 결국 무릎을 꿇었다.
귀모 아래, 육계의 하나를 지배했던 그는 그렇게 새로운 도산옥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던 진무가 천천히 걸어 다가갔다.
“야!”
“……?”
진무의 부름에 협비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끝자락을 양손으로 잡은 봉을 뒤로 뻗고 있지?
마치 당장에 휘두르려는 듯이…….
“이, 이봐. 내가 졌어. 이제 니가 도산옥주다.”
“……지랄하네.”
“어어?”
“니가 졌다고 하면 끝나는 줄 알아?”
“……?”
“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
진무가 거센 외침과 함께 여의를 힘차게 후려쳤다.
빠가가각!
“크아악!”
협비는 또다시 비명을 내질러야 했고, 진무는 쉬지 않고 후려 패기 시작했다.
뻐억! 뻐벅! 뻑뻑!
“이런 쌍놈의 마왕 새끼! 다 들었다! 니가 우리 황신이 줘 팼지! 패배고 나발이고, 넌 오늘 뒈졌어! 이 씨발 놈아!”
콰직! 콰지직!
진무가 여의로 후려 패면서도 분이 안 풀리는지 온 힘을 다해 협비를 짓밟아 댔다.
도산옥, 이승에서 타인에게 폭력을 일삼은 죄인들이 죽어서 모이는 곳.
그곳의 형벌은 본시 칼로 살점을 포 뜨고, 꿰고, 벤다. 가장 원초적인 고통을 가해, 죄인들이 지난 죄를 참회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새로운 형벌이 추가되었다.
콱콱콱, 콰지직!
죽을 때까지 짓밟히는 형벌.
협비는 진무의 발길질에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아스라이 졌다.
하지만.
“죽어어어!”
콰지지직! 콰직!
진무는 협비가 죽어 가는 그 과정에서도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개천주께선 여전하구나?”
“응, 여전해.”
협비의 형체가 회천으로 가기 위해 사라지고 있는 와중에도 짓밟아 대는 진무의 흉악한 모습에 황신이 멍하니 감탄하자, 청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굉장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그런데 상선이 아니라 상제였습니까?”
“응?”
이생의 말에 청상이 고개를 돌려 갸웃거렸다.
“왜요?”
“내가 알기론 그냥 천계 북방을 지키는 두장군으로 아는데?”
“예에? 두장군요?”
“어.”
청상의 대답에 이생이 황당하단 눈길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그런 농담을…….”
“응?”
“육계를 다스리는 마왕 중 한 분을 고작 두장군 따위가 저렇게 만들 수 있다면 지나가는 개도 웃겠습니다.”
“……사실인데?”
“사실……이라구요?”
“어.”
“…….”
청상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생이 커진 눈을 천천히 끔벅였다.
“정말 두장군입니까? 그 이십팔수 중 북쪽을 방비하는 천계의 장수라고요?”
“그렇다니까?”
거듭되는 물음에 청상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이자 이생이 더욱 황당해했다.
“대체 왜 그러는데?”
“아니, 그게…… 말이 안 되는 게…… 급이 너무 안 맞는데요?”
“응?”
“육계를 다스리는 마왕은 천계로 따지면, 상제와 맞먹는 힘을 지닌 존재입니다. 제가 천계의 종속은 아닌지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적어도 옥황의 아래에 있는 각 원의 주인 정도는 되어야 그 힘이 비등할 것인데…… 어찌 저런?”
“…….”
그러고 보니 청상도 의아했다. 진무가 협비를 어떻게 이길 수 있었던 거지?
그가 느끼기에도 둘 사이의 격차는 분명했다. 생각해 보니 옥황도 그리 말했다. 진무가 세 번이나 참아야 할 만큼 강한 무당의 초대 조사이자 선인 등록소를 맡은 보화선인조차 육계의 마왕들에겐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
청상의 얼굴이 서서히 굳을 때, 황신이 옆에서 딱 잘라 말했다.
“저분께서 어디 보통 분인 줄 알아?”
“…….”
“천주이시다. 위로는 황제의 스승 대접을 받으셨고, 아래로는 수천, 수만의 무림인들을 거느리셨던 인계의 왕이셨다. 마왕이 어떻고, 상제가 어떻고……. 이곳이 인세가 아니라곤 하지만, 천계와 지계의 잣대로 감히 저분을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 중요한 건 우리 천주님이 도산옥주에게 이겼다는 거야.”
“흠, 하긴…….”
맹목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진무에 대한 신뢰로 똘똘 뭉친 황신의 말에 청상이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진무와 함께 있을 땐 고민이란 건 그저 사치다. 그냥 따르면 된다. 그는 언제나 믿음직한 천주였고, 사숙이었으니까.
봐라, 황신의 말대로 또 이기시지 않았는가? 늘 그랬듯이.
“하긴 이승에서도 가늠하기 어려웠던 분인데, 등선하셨다고 달라지기야 했을까? 네 말대로다, 황신. 사숙께선 이기셨어. 저 도산옥주를 말이지.”
“암! 그렇고말고! 가자! 승전하셨으니 마땅히 술을 준비해야지!”
“그래 술을…… 아!”
황신의 말에 덩달아 기뻐하던 청상이 무심코 떠올린 생각에 멈칫했다.
“왜?”
“술이 어디 있는지 알아?”
“……아!”
모른다. 알 리가 없다. 협비가 오기 전에 도산옥을 열심히 뒤졌는데도 끝내 못 찾지 않았던가?
협비를 쓰러뜨리기 전에 그걸 먼저 물어봤어야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이런 싸움 뒤엔 항상 술을 찾으셨으니……. 괜히 성질내시기 전에 협비의 거처를 뒤져 보는 수밖에.”
“그러지. 이생, 자네도 함께 가세.”
“예? 아, 예.”
황신의 안내를 따라 청상과 이생이 협비의 거처로 향했다.
한편 이생은 못내 의아함을 풀지 못하고 연신 고개를 돌려 진무를 쳐다봤다.
상제가 아닌데 어떻게 마왕을 쓰러뜨릴 수가 있는 거지?
설마…… 쇠봉에서 나온 용 때문인가? 대체 그놈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좀 이상하긴 했다. 저런 무시무시한 짐승을 봉인한 법구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이생! 뭐 해! 꾸물거리면! 천주님한테 개 맞듯 처맞는다고!”
“응? 아, 알았네. 지금 가네!”
황신의 재촉에 이생이 그제야 의아함을 거두고 바삐 쫓아갔다.
* * *
그리고 다시 귀모의 거처 포궁.
미리 붙여 둔 눈으로 협비와 진무의 싸움을 재미 삼아 구경하고 있던 귀모가 부릅뜬 눈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시, 신수(神獸)라고?!”